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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구는 조용하다. 비린내도 가셨다. 닻 내린 어선들이 빼곡하다. 갈매기 한 무리가 갯벌에서 졸고 있다. 어구들이 부둣가에 수북하다. 멸치덕장에서는 멸치 말리기가 한창이다. 귀신은 속여도 그물코는 못 속인다고 했던가. 김양식을 준비하는 어부들이 그물손질에 여념이 없다. 군산에서 서북쪽으로 약 23㎞ 떨어진 가까운 섬, 개야도(開也島). 210여 세대에 600여 명이 살고 있다. 옥도면 섬 중에서 경지면적이 가장 넓다. 개야도는 본래 충남 오천군 하남면 지역으로서 개주 또는 개야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개야도리라 해서 옥구군 미면(미성)에 편입됐다. 높은 봉우리가 없고 구릉으로만 이어진 개야도. 누구든지 들어와 개간하면 잘 살아 개야도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이 비좁다 싶을 정도로 가옥과 창고가 많다. 어업을 겸한 농가가 많아 생활 수준이 여느 섬보다 높다. 개야 섬길은 대략 4㎞거리이며 1시간 정도면 일주한다.
갓 잡은 실멸치 푸득 푸득 뛰고
개야 선창은 섬 냄새가 물씬 풍긴다. 여느 섬보다 어구가 많다. 부둣가 좌우에 어른 키 높이로 그물 등이 쌓여 있다. 썼던 것과 쓸 것들이다. 한쪽에선 멸치 삶기가 한창이다. 푸득 푸득 뛰는 갓 잡은 실멸치를 커다란 전기 솥에 붓고 휘젓는다. 소금도 한 바가지 넣고 어느 정도 익으면 꺼낸다. 열기를 식혀 햇볕에 말린다. 날씨가 흐리면 냉동창고에 넣어 급랭시켜다가 다시 말린다. 멸치 냉동창고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마른 멸치 소득이 짭짤하다. 지르멸(실 멸치)는 1박스(1.5㎏)에 1만2천 원에서 3만 원까지 간다. “군산화력발전소에서 배출하는 온배수로 해수온도가 약간만 올라가도 김양식은 끝장난다. 개야도 주민들의 생명줄이 끊기는 것이다.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 결사투쟁중이다.”장흥배(57)어촌계장은 항상 바쁘다. 이날도 타르 피해 보상 및 군산 화력발전소 문제로 총대(총대의원) 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물고기나 김은 수온에 민감하다. 지금 고기가 예전처럼 잘 안 잡히는 것도 지구 온난화 영향이 아닌가 싶다" 며 장 계장은 목청을 높였다. “개야도에는 외지에서 선원들이 많이 들어와 산다. 일 잘하는 사람은 한 달에 150만 원 받고, 그렇지 못하면 100만 원 정도 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말이다." 그는 이곳이 다른 섬보다 아직은 활기가 넘친다고 말한다.
섬에 웬 강변마을인가
포구를 따라 마을 쪽으로 가면 강변마을이다. 섬에 웬 강변인가. 해변이 아니고. 포구가 섬 안쪽으로 연결돼 있다. 마을 복판에 있는 보건지소 턱밑까지 배가 닿았다고 한다. 이런 지역 상황이 파악되면 강변이라는 말이 이해된다. 통개마을에 이르니 갯벌에 가재같이 생긴 게가 깔렸다. 길손을 보고 놀랐는지 우르르 잠수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게를 ‘속’이라 부른다. 낚시 미끼로 마리당 300원에 거래된다. U자형으로 굴을 파고 살아 갯벌 속에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문제는 이 속이 바지락 종패를 잡아 먹어 어민들이 고민이다.
“날씨가 궂어서 큰일이다. 멸치를 말릴 수 없다.”선창가 3평 남짓한 창고에서 해태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송태수(67)씨. 송씨는 바다농사와 땅 농사를 짓고 있다. 선외기 2척을 갖고 주꾸미, 소라,꽃게 등을 잡는다. “지금은 금어기라 꽃게를 잡으면 어업허가가 취소된다. 근데 일부 주민들은 꽃게를 건지고 있다. 참으로 간도 크다. 그렇다 걸리면 어찌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는 밭 300평도 일군다. 고추 등 푸성귀를 심어 먹는다. 대바늘로 그물 코를 맞춰 그물을 수리하는 그의 손놀림이 빠르고 유연하다. ‘저녁 10시부터는 평화롭고 조용한 개야도를 위하여 술을 판매하지 않습니다.’ 동네수퍼 창문에 붙인 문구가 인상적이다.
교사 4명에 전교생은 12명
산자락을 돌자 습지에서 나는 황소개구리 소리로 놀랐다. 여기까지 황소개구리가 침입했다니. 습지는 갈대밭이다. 보존도 잘 돼있고 규모도 꽤 큰 편이다. 삼거리다. 왼쪽은 보건지소로 통하고, 오른쪽은 개야도초등학교 길이다. 오른쪽 길은 연밭과 습지로 이어진다. 연꽃은 아직 보이질 않고 연잎만 무성하다. 예서 500m가면 초등학교. 학교 정문에 대형 현수막 2개가 눈길을 잡는다. 하나는 청소년 과학탐구 군산시대회에서 학생 7명이 수상했고, 다른 하나는 소년체전 전북대표 선수 선발대회에서 여자 포환던지기 1위를 축하하는 문구다. 1943년 4월에 설립된 개야도초등학교는 현재 교사 4명에 전교생은 12명이다. 아담한 학교로 운동장에 잔디가 잘 정돈돼 있다. 학교 옆으로 통해 가는 길은 약간 가파르다. 길 바닥에는 멸치그물이 널려 있다. 햇볕에 말리는 중이다. 또 삼거리다. 오른쪽은 해수욕장으로 빠지는 코스. 쭉 내리막길. 활처럼 휜 백사장은 생각보다 멋졌다. 오른쪽엔 할미섬이라고 부르는 까까머리처럼 생긴 섬이 자리한다. 할미섬 코앞엔 빛바랜 방갈로 10여 개가 늘어서 피서객을 기다리고 있다. 왼쪽엔 악도(岳島), 안악시섬이다. 이름처럼 큰 섬은 아니다. 앙증맞은 형제처럼 할머섬을 빼닮았다. 가족단위 휴가지로 적합하다. 수영과 야영하기에도 그만이다. 다시 학교 뒤 삼거리. 내리막 해안도로가 쭉 뻗어있다. 우레탄 보행로가 별도로 나있고 무성한 소나무가 하늘을 찌른다. 소나무 사이로 바닷가가 얼굴을 내밀고 파도소리를 들려준다. 가끔 바람까지 불어 걷기엔 그만이다.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
내리막 끝은 장골. 개주 서쪽에 있는 골짜기다. 마을과 여의 교차점이다. 해풍에 송풍에 가슴속까지 시원하다. 바람에 귀를 씻고 소나무 푸르름에 눈을 씻고 하얀 구름에 마음을 씻는 곳이다. 시름도 절로 날아간다. 다시 오르막이다. 길가에 또 멸치 그물이 먼저 와 앞장선다. 전망점 정자에서 바다를 보니 장구처럼 생긴 장구섬이 반긴다. 그 너머 등대가 서있다.
‘지쳐가는 일상/ 생기 불어넣어주는 시/ 여행 그리고 /사랑//해 타오르다 지며/ 어둠 깔린다/ 바람아 구름이 되어/ 저 산에 닿으렴// 달도 외로움에 지치면/ 새벽 찾아온다/바람아 파도가 되어/ 저 섬에 전하렴// 사랑 만났다가 떠나며/ 눈물 흘린다/ 바람아, 그리움 되어/ 내 마음 달래주렴//그리움 번질 때/ 생기 불어 넣어주는 시/ 여행 그리고/ 그대’ 안국훈 시인의 <바람아, 그리움 되어>이다. 시와 여행 그리고 그대. 시인이 개야도 둥그섬 가는 길을 걷고 읊은 것 같다. 어쩜 그렇게 시인의 마음과 느낌이 닮을 수 있을까. 검게 지친 일상에 하얀 구름이 되고, 갑갑한 생활에 시원한 파도가 돼서, 내 마음을 그대에게 전해주고 싶다.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중략> 혹시 이런 경험은 없는가. 텃밭에서 이슬이 내려앉은 애호박을 보았을 때, 친구한테 따서 보내주고 싶은 그런 생각 말이다. 혹은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피어 있는 들꽃과 마주쳤을 때, 그 아름다움의 설렘을 친구에게 전해주고 싶은 그런 경험은 없는가. 이런 마음을 지닌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의 그림자처럼 함께할 수 있어 좋은 친구일 것이다. 법정스님의 <오두막 편지>일부다. 하늘 냄새가 난다. 머릿속이 청량하고 폐부가 뻥 뚫린 듯하다. 파도 냄새, 바람 냄새, 구름 냄새가 밀려온다. 군산출신 라대곤 작가는 <취해서 50년>수필집에서 “술만 취하면 개야도의 달밤이 생각나면서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며 “지금도 내 가슴속에 남아 있는 멋진 개야도의 밤이었다”고 노래한다.
독살 흔적 7군데 아직 남아
이산창(장골 남쪽에 있는 언덕)을 넘으면 둥그섬이 눈앞이다. 나무 계단이 듬성듬성 놓여 있어 걷기 편하다. 소나무 사이로 해변이 보인다. 소나무를 지주 삼아 담쟁이가 하늘로 오른다. 소나무가 여름옷,푸른 윗도릴 걸친 것 같다. 색다르게 보이지만 갑갑한 느낌도 든다. 검은 돌, 검은 바위가 많은 싸수건이라는 곳이다. 걷기에 동행한 개야도 발전소장은 “아마도 이곳 남쪽에 미군이 대포를 설치해 ‘south gun’을 우리 식으로 ‘싸수건’이라 부르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듣고보니 그럴싸하다. 개야도에서 그 이상 구체적인 얘기는 듣지 못했다. 아는 사람도 없었다. 개야도 섬길에서 가장 멋진 코스다. 바다와 모래톱, 하늘과 섬이 하나로 엮이는 곳이다. 백사장에 내려와 걷는 맛도 좋다. 장구섬도 저만치 와 있다. 코스를 바로 잡고 500미터쯤 가면 SK중계탑. 곁길로 100미터 가면 당집이 있는 당산이다. 녹슨 양철지붕에 돌담장이 둘러 있다. 담이 높고 잡초가 무성해 안을 볼 수 없다. 해마다 풍어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제가 행해지고 있다. 거리제, 가신제도 지낸다. 배치기소리, 뱃노래, 흥타령 등 민요도 전해지고 있다. 개야도의 함정 어업은 독살, 궁발, 개메기, 살 등이 있다. 독살을 주민들은 주벅이라 부른다. 독살마다 주인이 각기 있다. 현재 흔적이 남아 있는 독살은 7곳. 해방되던 해까지 고기를 잡았다. 그 후 어획량이 줄고 소득이 감소하자 독살 보수를 소홀히 하여 중단되었다. 이곳 독살은 갯벌에 초승달처럼 돌을 둥글게 쌓는 것이 일반적 형태다. 안악시섬 독살에서는 청어,조기 등이 잘 잡혔다. 어살과 비슷한 궁발은 개야도에서만 불리는 독특한 명칭이다. 1m정도 되는 대나무를 잘게 쪼개어 대나무를 촘촘히 엮은 어살이다. 꽃게가 잡혔으나 소득은 높지 않았다. 이런 함정 어업은 60여 년 전에 사라졌다.
개야도 내연발전소가 씩씩거리며 코에서 연기를 내뿜고 있다. 발전량이 좋아져 멸치냉동고를 운영, 마을 소득이 높아졌다. 그 전에는 전기가 부족해 냉동고까지 생각지 못했다. 소나무 숲과 대 숲이 연결된다.
새들 지저귀고 꽃피는 섬 길
‘산 밖에서 산을 보고/ 산 속으로 들어가 산길을 걸으면/호락호락한 길이 아니네//가는 곳마다 생소하고 낯설어/산길에 내가 속고/믿음에 내가 속네//나는 묻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알았다고 가는 길이 내 길이 아니고/믿었던 꿈이 깨지네//새들이 울고/꽃이 피는/아름다운 산과 길//그 길은 힘든 고개길/막히면 트이고/트이면 다시 막히네//가다가다 되돌아서며 생각해 보네/내가 가야할 산길을/푸른 소나무는 울울창창//어서 가라 내 발길을 끄네/아무 말이 없는 아름다운 산/나는 속네 그리고 서운해 하네//똑같은 길이 하나도 없는 숲길/돌아돌아 되돌아서는 첫길/맞이하는 길마다 선택이었고//선택은 내 운명이었네/그리고 가지 못한 길은 언제나/미련으로 남아있네.’차영섭시인의 <산길>이다. 개야도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섬길은 소나무가 울울창창하다. 그 사이로 코스모스가 만발이다. 요즘 코스모스는 철없이 꽃핀다. 날씨탓인가, 종자가 다른 탓인가. 소나무 사이로 포구의 모습이 장관이다. 낙조 모습은 환상적이다. 대숲을 지나면 선착장이다. “예전엔 바다에 고기들이 버글버글했다. 40년대 하루 저녁이면 조기를 한 배씩 잡았다. 1동이면 1천 마리인데, 하루 저녁에 30동을 거뒀다. 고기 2동은 팔아야 쌀 한 가마니 샀다. 고깃금이 그만큼 쌌다.”선착장 휴게소에서 쉬고 있는 유종태(80)씨. 유씨는 15살 때부터 73살 때까지 58년 동안 배를 탔다. 95년 노루섬 근처에서 선외기 타고 가다 큰 배와 부딪혀 죽을 뻔했다. 7일간 병원 신세 지고 회복됐으나 그때 후유증으로 척추가 심하게 다쳐 지금도 고생하고 있다. “그땐 조기, 갈치,준치 등 안 잡히는 고기가 없었다. 지금은 고기 씨가 말랐다.” 그는 건네 준 음료수를 마시는 둥 마는 둥하더니 지팡이를 집고 힘겹게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이재기(48)씨는 개야도 마당발이다. 어촌계 간사,우편배달,여객선 표발급 업무 등 3가지 일을 하고 있다. “예전같이 않지만 개야도는 살만한 곳이다. 도서개발 유형화사업 구상을 하고 있다. 펜션단지 조성,회타운과 리조트 건설등을 담고 있다. 여기에 전통어업 박물관 건립, 연꽃 체험데크 조성도 준비하고 있다. 학교 뒤 해수욕장에서 풍여 북쪽에 있는 산, 국시당까지 1㎞ 해안 산책로를 연결할 계획이다.” 그는 또 다른 개야도를 꿈꾸고 있다.
기획특집팀=하대성·조경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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