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악곡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음반 몇 종.

[송진명]

최근 1-2개월 사이에 들인 바흐 음반들입니다.

(이 무반주 음반들은 다른 CD나 LP들을 구입하는 와중에서도 꼭 한 달에 하나 이상씩은 구입하고 있나봅니다.)

간단하게 느낀 점을 적어 봅니다. Bach님의 글들처럼 마음으로 듣고 적은 글은 아닙니다. 그냥 제가 음반들에 대한 첫느낌들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런 생각들이 변할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 마음에 안 들던 사람들도 언제든지 자주 접하고 이해하면 그에 대한 마음도 바뀌지 않습니까. 그러니 제 얘기에 크게 신경 쓰진 마세요.   

Devy Erlih, Accord, 1969

Universal music France에서 복각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비 에를리, 또는 줄여서 드비 엘리라고 불리우는 프랑스 출신 바이올리니스트이구요. 이 분에 대해서는 일전에 myth님께서 새 음반에 대해 소개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 세 번째 게시판에 가시면 이 분에 대한 이력과 레코드에 대해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녹음의 가장 큰 특징은 거침없이 나아가는 뜨거운 추진력입니다. 그런데 이게 그냥 가볍게 흩날리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명확한 구조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무척이나 선이 굵다는 말씀.) 특히나 푸가 악장을 쌓아나가는 위용이 엄청납니다. 파르티타 2번의 시작 알라망드부터 엄청난 속보로 질주하는데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으며 오히려 녹음 연대를 감안한다면 신선함까지 느껴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69년이란 녹음 시기를 생각한다면 아쉽게도 바이올린 소리가 최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이 일련의 복각 시리즈들의 quality를 생각해볼 때, 비록 원판 LP는 안 들어봤지만 아마도 원 녹음 자체가 이렇게 된 것이 아닐까하는 성급한 추측을 해봅니다만 그럼에도 오히려 녹음의 고풍스러움이 옛 녹음의 향수를 느끼게 해줍니다. (아주 가끔씩 들리는 비음악적인 소음들조차 말이죠. 예를 들어 활이 옆선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 같은... 물론 이런 경우는 섬세함이 떨어진다고 느낄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Jean-Jacques Kantorow, Denon, 1979

장 자크 칸토로우, 또는 칸토로프라고도 읽는 이 분은 프랑스 출신의 중견 바이올린 주자입니다. 이 분이 녹음한 프랑크 소나타는 타슈너, 마르치 등과 더불어 개인적으로 너무나 사랑하는 연주입니다. 일본인들이 제작하고 일본에서 녹음된 것으로 추측되지만 제가 일본어를 알 수 없으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어떤 바흐 연주는 정확성에 치우쳐 열정의 분출이 소홀히 되는 경우가 있지만 본 연주에서는 이런 걱정을 덜어도 됩니다. 뜨거울 정도로 낭만적인 바흐를 들려주지만 그것이 도를 넘칠 경우는 아닙니다. (무협지 좋아하시는 분들께서는 잘 아시겠지만 가끔 정도를 겉는 곽정보다도 약간씩 邪氣를 발휘하는 양과에게 더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독특한 프레이징이 특징적인데 듣는 분들에 따라서는 음악의 흐름이 단절되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될 정도로 가끔식 분절이 강조되기도 합니다. 샤콘느의 뜨거운 격정과 D장조부분에서의 프레이즈 처리는 밀스타인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습니다. 

Gregory Fulkerson, Bridge, 2000

1950년 아이오와에서 태어난 미국 바이올린 연주자. 가장 최근의 녹음이지만, 이상하게도 음향 상태는 가장 좋지 않아 1774년산 Guadagnini가 맥을 못 춥니다. 왜 이렇게 답답한 녹음이 나왔는지, 원래 바이올린 소리 자체가 이런 건지 이해가 좀 안 될 정도.

다른 연주들과는 달리 전반적으로 강약의 변화나 곡의 표정을 세심하게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 듯 합니다. 예를 들어 파르티타 3번의 Loure를 나긋나긋하게 연주하는 것 등입니다. (사실 형식상 소나타는 엄격하게, 파르티타는 무곡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좀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샤콘느의 경우 7번 변주부터의 갑작스런 속보가 흐름에 맞질 않아 당황하게 되는데 D장조의 마지막 변주는 악보대로 아르페지오 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돋보입니다. (많은 이들은 이렇게 연주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소개한 세 개의 전곡 녹음들 중에서는 실망스럽습니다.

 

Henryk Szeryng, TDK internation, 1976

동경문화회관에서의 라이브 연주. 일본 친구들도 이 녹음을 구하는데 애를 먹었는지 주문 넣은지 한 달 이상 걸려서 도착한 것입니다. 피아노 반주가 들어간 바이올린 소나타 3번, 6번과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소나타 1번이 2장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좀처럼 실황으로는 듣기 힘든 셰링의 연주는 최상의 감동을 제공합니다. 비록 샤콘느에서 두 어번의 실수가 있지만 그게 무슨 대수겠습니까. 라이브의 열기가 느껴지는 소중한 녹음. 게다가 재킷의 연주 모습조차 무한한 신뢰감을 줍니다. 

Hyman Bress, Mace (녹음연도 미상) 

한 장짜리 LP. 소나타 2번과 파르티타 2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템포의 차이는 크지만 Erlih와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담담하지만 너무도 흐름이 자연스럽고 가식이 없습니다. 제가 샤콘느와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곡인 소나타 2번의 안단테가 지극히 아름답고 장중한 템포의 샤콘느, 그 중에서도 D장조에서의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달아가는 부분이 황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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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셰링이나 그뤼미오의 표준적 해석과는 많이 차이가 나니 오히려 즐겁습니다. (여기서 표준적이라는 의미는 그들의 연주방식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이 연주가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많은 분들에게 해석의 표준, 또는 다른 연주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써본 단어입니다.)

위의 세 개의 전집 중에서는 앞서 말씀드렸듯, Fulkerson의 연주가 좀 실망스러운데.. 이야 말로 비록 감탄은 있지만 감동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연주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겁니다. (이것은 곡궁을 사용한 Rudolf Gahler (Arte Nova)의 연주에서도 느꼈던 부분입니다. 연주 수준은 훌륭하지만 큰 감동은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감동을 이끌어 낸다는 것... 그 미묘한 차이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연주의 차이인지 혹은 듣는 제 마음에서 기인한 것인지.. 저도 그 점이 무척 궁금합니다.

회원님들께는 Jean-Jacques Kantorow의 연주를 권해드립니다. (게다가 이 음반은 염가반입니다.) 지나가다 이 연주자가 눈에 뜨인다면 제 생각도 한 번 해주시구요.

간단히 쓰려던 글이 어느덧 또 이렇게 길어지고 말았습니다. 언제나 음악 속에서 즐거운 생활 하시길 바라며 아울러 좋은 연주가 있다면 기탄없이 추천해 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BACH2138]

우아 보물같은 바흐 무반주의 연주들을 소개해 주시네요. 제가 위의 음반을 하나도 들어보지 못하였지만, 알 만합니다. 장 자크 칸트로우 정도만 눈에 익고 나머지 연주자들은 생소하답니다. 송진명님의 핵심을 찌르는 명확한 이런 리뷰가 제가 보기엔 훨 낫습니다. 무반주의 소나기를 만난 듯 합니다. ^^

[송진명]

소나기..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많은 연주들이 있을 줄을 정말 몰랐습니다. 하여튼 하나하나가 분명 소중한 녹음들임이 분명합니다. 어린 시절의 치기로 겁없이 녹음할 만한 곡은 아니니까요.

[막달레나]

흠....한달에 하나이상,,,,,,ㅡ.ㅜ.. 모두 궁금하네요..어떤 연주일지...^^

[송진명]

필요하시다면 언제 몽땅 구워서 보내드릴께요... ^_^

[파르티타]

헨릭 셰링연주로 바하와 크라이슬러곡 몇 장 갖고 있는데 단정한 연주가 듣기 편하더라구요. CD구워 주실 수 있어요? 저 번 포레 것도 꿩 궈 먹으셔 놓고는 칸토로우까지 셋이요.ㅋㅋ

[송진명]

그렇게 하죠. 사실 포레는 adobe audition 프로그램이 한달 만에 종료되는 바람에 손을 못 봤습니다. 트랙 구분이 안 된 통편집인데... 그래도 괜찮으실지 모르겠습니다. ^^;; 주소 쪽지로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