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 발표한 작가성명입니다. 언론에 여러 군데 보도되었는데요, 꼭 한번 읽어보세요.
지지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100명 이상의 작가분들이 서명하셨어요.
아래 내용을 복사해서 전파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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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희망이고 창작활동이 긍지가 되는 사회를 소망한다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의 불공정 신탁약관 개정을 촉구하는 작가 성명서
우리는 지금 급격한 매체의 증가와 다변화로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 보호가 더욱 절실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 맞지 않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사단법인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이하 ‘협회’)의 회원으로 가입하는 순간 작가들이 겪게 되는 어이없고 황당한 사태이다.
이 사태는 포괄적 신탁을 규정한 ‘협회’의 약관 때문에 발생했다. 가장 문제가 되는 조항은 “위탁자(작가)는 현재 소유하고 있는 저작권 및 장차 취득하는 저작권을 저작권 신탁계약서에 규정한 바에 따라 수탁자(‘협회’)에게 신탁”(제2조 1항)하도록 한 규정이다. 이 말을 쉽게 풀면 ‘오래전에 출간한 작품뿐만 아니라 앞으로 출간할 작품, 구상중인 작품은 물론 구상조차도 하지 않은 작품에 대해서도 저작재산권 행사를 창작주체인 작가가 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입도선매보다도 악독하면서도 어떤 씨앗을 고를지 고민하기도 전에 이미 과실을 유통하고 판매할 권리가 수탁자에 있다는, 그 자체로 모순을 품고 있는 불공정약관이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작가는 구상한 작품을 창작하기 전후에 출판사와 출간계약을 맺는다. 이때 작가와 출판사 사이에 맺어지는 가장 기본적이고 도의적인 약속은 ‘동일한 책을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협회’의 약관은 저작권자인 작가에게 알리지 않고도 동일저작물에 대한 중복 출판을 마음대로 허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가 출판사와 이미 맺은 계약 자체를 무효로 만들 수도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작가가 출판사를 선택하고 계약할 수 있는 권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최근에 이 조항은 실제로 심각한 사태를 발생시켰다. ‘협회’는 해당 작가와 일절 협의하지 않고 제3의 출판사(글뿌리출판사)에 ‘창작동화전집’(전60권) 출간을 허락함으로써 이미 다른 출판사에서 판매하고 있는 작품 41권이 중복 출간된 것이다(한겨레 2011. 1. 24.). 중복 출간도 모자라 원작을 크게 훼손한 몰지각한 작태까지 발생했으니, 작가의 인격권은 물론 원작을 읽을 독자의 권리까지 무참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이러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협회’는 작가가 원하지 않는 계약을 거듭 종용하거나 ‘협회’의 의견을 따르지 않는 작가에게는 탈퇴서를 보내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자인 양 횡포를 부리고 있다. 또한 경제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있는 작가들에게서 저작권료의 15~20%에 달하는 유례없는 고율의 수수료를 공제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일반인들에게 ‘협회’는 작가의 권리와 저작권 보호를 위해 합리적으로 활동하는 법인으로 알려져 있고, 저작권을 보호받으며 창작에 전념하고자 ‘협회’에 가입한 많은 작가들 역시 마찬가지로 알고 있다. 작가들은 ‘협회’의 기능을 원저작물의 무단사용과 임의적인 재수록을 방지하고 학습지 등에 재수록될 때 저작권 사용료를 받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만 인식하고 있다. 예의 조항을 근거로 ‘협회’가 저작물에 대한 포괄적이면서 전면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작가가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이 불공정약관 때문에 초등학생조차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선진사회, 공정사회를 외치는 21세기의 우리 사회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협회’에 포괄적 신탁을 규정한 불공정약관 조항의 폐기를 촉구한다. 또 포괄신탁을 대신하고 작가의 의사에 따라 저작물 사용 허락을 대행하는 수준에서 원저작물로 인해 파생하는 저작물 이용(학습지 재수록, 2차적 사용 등)에 대해 작가가 선택적으로 위탁할 수 있도록 약관을 전면 개정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만이 작가의 권리를 보장하는 동시에 ‘협회’의 순기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임을 천명한다. 이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동료작가들의 지지서명 운동도 같이 벌여나갈 것이다.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을 두고 사회적 보호망이 없는 현실을 개탄하는 이즈음에 가장 기본이 되는 창작자의 위상과 저작권에 대한 존중과 보호에 반하는 ‘협회’의 약관은 현실과 괴리되고 창작자의 땀방울을 무시한 관료주의의 전형이다. 가뜩이나 무단복제 등 저작권 침해 사례들로 상처받으면서도 창작의 고통을 감내하는 작가들에게 계속해서 불공정약관을 강요한다면 창작콘텐츠가 21세기 문화산업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주장은 한낱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의 요구를 무시하고 현상황을 묵과하고자 한다면 “저작물은 희망이고 저작자는 긍지, 저작권은 복지”로 규정하면서 “협회가 울타리이자 소통”이라고 강조하고 있는(홈페이지 협회장 인사말) ‘협회’의 정체성과 존립여부에도 심각한 타격과 영향을 미칠 것이다. 거듭해서 문제 약관의 신속한 개정과 ‘협회’의 순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대안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촉구한다.
1. 작품을 훼손하고 작가의 의사를 무시하는 출판계약의 근거가 되고 있는 불공정한 포괄 신탁 약관을 전면 개정하라!
1. 저작자의 의사에 따라서만 저작물 이용을 허락할 수 있도록 약관을 전면 개정하라!
1. 창작의 노고에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합리적인 수준으로 신탁 수수료를 인하하라!
2011년 2월 24일
도종환 송언 박상률 노경실 이가을 이은봉 김이구 박수연 박성우 채인선 박혜숙 공지희 김근 정란희 백은하 천희순 최형미 (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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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신탁의 실태와 관련 사례 등
어린이책 전문 출판사인 글뿌리출판사가 '창작동화 전집'(총60권으로 구성)을 묶어내면서 이미 다른 출판사에서 출판계약을 맺고 출간하여 판매중인 작품 41권을 중복 출판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작가는 물론 출판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이 출판사는 2009년 11월 작가들의 저작권 신탁관리단체인 사단법인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를 통해 텍스트를 일부 발췌하여 선집으로 발간할 조건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2010년 10월에 출간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텍스트를 수정하여 새로운 삽화를 그려 그림책 형태로 출간하여 원작을 크게 훼손한 경우여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가능했던 것은 근본적으로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신탁계약약관의 불공정성과 기능 자체의 문제에서 기인한다. 약관의 문제점은 크게 다음과 같다.
첫째는 신탁의 범위인데 저자의 모든 책이 포괄적으로 신탁된다는 점이다. 이 말은 오래 전에 출간한 작품뿐만 아니라 앞으로 출간할 작품, 구상중인 작품은 물론 구상조차도 하지 않은 작품까지 신탁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미 출판사와 계약해 책을 출간했고 그 계약이 유효한데, 그 책의 저작권을 포괄 신탁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이다. 또한 아직 창작되거나 발표되지 않은, 특정되지 않은 책은 저작물의 권리를 신탁한다는 것은 노예계약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신탁 방식은 그 자체로 모순일 뿐 아니라 문제의 원천이 되고 있다.
둘째, 권리의 주체 문제로 작가를 대신해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가 저작재산권을 행사하게 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원칙적으로 저자는 무권리자가 되어 글의 부분이나 전체 재수록뿐 아니라 2차적 저작물의 작성과 신간 계약시도 원칙적으로 출판사는 협회와 계약해야 한다. 이런 신탁 방식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이미 출판된 저작물과 동일한 출판물을 제3자가 출판하도록 협회가 허락할 수 있다. 현재 모든 단행본 출판사와 저자의 계약에는 다른 회사에서 같은 책을 내지 않는다는 서로간의 약속이 담겨 있으나, 신탁하는 시점에서 서로간의 계약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다. 협회는 저작권자에게 알리지 않고 제3자가 출판할 수 있게 얼마든지 허락할 수 있다.
이 모든 문제가 집약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글뿌리출판사 사태이다. 저자로부터 저작재산권을 위탁 받은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가 저자와의 협의나 고지가 전혀 없이 저작재산권을 행사했고, 저자들은 자신의 책이 원작과 달리 얼마나 훼손된 상태로 출판되었는지는 말할 것도 없고 책 출판 자체를 도무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처럼 저자가 본인의 저작재산권 행사를 포기해야만 저작권협회가 관리해줄 수 있는 불합리한 신탁 방식은 전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모델일 것이다.
이번 글뿌리출판사 사건과 관련 있는 아동작가 중 한 분이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에 사태를 해결해달라고 강력하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약관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면 탈퇴하겠다"고 하였는데 협회는 오히려 항의를 받자마자 저자에게 탈퇴서를 우편으로 보내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저자가 탈퇴서에 서명하여 저작권협회에 보내지 않았는데 협회는 일방적으로 홈페이지에서 저자의 작품을 모두 삭제했다고 하니 얼마나 무성의하고 관료적인 태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협회는 이번 글뿌리출판사 사태를 해결해야 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제반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였어야 할 것이다.
협회에 신탁한 작가들은 협회에서 자신의 저작물 이용 허락을 어떻게 하였는지, 자신의 저작물의 이용방법, 계약기간과 저작권료 등 계약조건을 알 수 있는 계약서 사본을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사후 관리가 제대로 되는지도 파악할 수 없고, 중복 출판이 되거나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허락이 되어도 사후에 알고서 분쟁에 휘말려 고통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상기한 문제 외에도 문예학술저작권협회의 신탁계약약관에는 수탁자(협회)의 저작권관리수수료율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15~20% 사이인 것으로 알려진 비율 자체도 상당히 높은 편이지만, 신탁계약 체결 시 수수료율 책정 기준을 저자에게 고지하지 않고 있으므로 저자의 알 권리가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위탁자와 수탁자의 쌍방 계약인 만큼 모든 거래의 약관에는 서로간의 의무조항이 규정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나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의 신탁계약약관에는 꼭 필요한 수탁자의 의무조항들을 찾아볼 수 없는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약관인 것이다.
이러한 포괄 신탁으로 인한 문제점 때문에 A 출판사의 경우 최근 모 시인의 시전집 발행을 위하여 불가피하게 협회와 3자 계약서 작성을 시도하였으나 저자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는 이에 응하지 않고 오히려 작가에게 탈퇴를 권고하였고, 반대로 탈퇴를 원하는 모 시인에게는 신탁을 지속하도록 설득하는 등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다. 일관성도 없을뿐더러 저작자의 인격을 존중하는 태도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이런 일이 발생한 이상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의 기능을 심각하게 재고하지 않을 수 없다. 협회의 약관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제2, 제3의 '글뿌리출판사 전집' 사태가 또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협회에 가입할 때부터 포괄신탁 대신 특정 저작물만 신탁의 대상으로 지정하거나, 신간 계약은 제외하고 부분 재수록 허가만 가능토록 하는 등 신탁의 범위를 세분하여 저자가 선택적으로 위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도 눈 가리고 아옹 하는 식으로, 존재한다 해도 사문화된 약관 조항의 형태가 아니고, 실질적이고도 전면적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작가가 직접 맺은 계약은 불소급의 원칙에 따라 유지되고 최우선 적용되도록 명문화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저작물 이용 허락 시 저자에게 알리고 저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결정하는 것을 의무조항으로 해야 할 것이다.
첫댓글 얼마 전 이 문제로 작가들이 분개했었지요. 저작권협회도 문제지만 출판사도 문제예요. 모 출판사에서 얼마 안 되는 원고료지만 저작권 협회를 통해 지불하겠다며 저작권협회에 들라고 권유하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했더니 일대일로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번거롭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더니 기다리라 하고선 아직 소식이 없네요.
제 의지와 상관없이 처신을 어떻게 하고 살아야 할 지, 난감하고 곤혹스러울 때가 많아요.
뭘 알아야 소신껏 생각하고 실천할 수도 있을텐데요.
모르는 게 약이라지만 때로는 모르는 게 죄이기도...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갈 때도 있고요.
걍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