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골마을 – 도월화
옻골마을에 가보고 싶다. 동네 어귀의 느티나무숲의 사계절을 보고 싶다. 이 가을 인스타그램 사진에서 단풍 지고 낙엽 쌓인 장관을 보았다. 수령 350여 년의 느티나무가 구부정한 모습부터 거의 누운 자세까지 갖가지 형태로 서 있다. 그 아래로 긴 의자와 연못이 보인다. 숲은 벤치에 앉아서 쉬는 사람들 쪽으로 기울어 감싸주려는 듯하다. 초록 잎새 무성한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로 뜨거운 태양을 가려줄 것이다. 느티나무 비보숲은 옻골의 풍수지리적 결함을 보완하여 질병이나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심은 비보림이다. 연못도 가까운 산봉우리의 생구암, 또는 대암이라고 불리는 거북 바위가 물을 찾는 형국이라서 조성됐다.
옻골마을은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의 경주최씨 집성촌이다. 마을 안쪽에 종가, 백불암 고택이 있다. 고운 최치원의 후손인 최흥원의 호가 백불암(百弗庵)이다. 백불암 종택에는 '백불고택'이라고 한문으로 쓴 현판이 붙었다. 대구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조선 시대 가옥이다. 이 한옥마을의 담은 대부분이 토석담에 기와를 인 옛 담장이다. 고즈넉한 돌담길을 마냥 걷고 싶다. 봄에는 담 너머로 노란 산수유, 홍매화, 온갖 꽃봉오리들이 피어난다. 여름이면 담장 머리에 능소화 화관 흐드러지게 쓰고, 울 밑에 핀 봉선화는 새악시 손톱에 곱게 물들 상념에 잠긴다. 접시꽃 나리꽃 달맞이꽃 개망초가 정감을 부른다. 열린 한옥 대문에서 들여다보이는 반지레한 항아리들이 정겹다. 3면으로 둘러싼 산과 들에는 옻나무가 많아 옻골마을이다.
옻골에서 백불암 최흥원은 영조의 명으로 실학자인 유형원의 『반계수록』 교정을 보기도 했다. 최흥원의 본관은 경주이며 대구에서 태어났다. 옻골과 부인동은 대구의 팔공산 밑에 있다. 그는 「부인동동약」이란 향약을 만들어 주민의 생활 안정을 위해 노력하였다. 일반 향약과 같이 4개 강령(德業相勸덕업상권, 過失相規과실상규, 禮俗相交예속상교, 患難相恤환난상휼)으로 돼 있다. 『정조실록』에는 ‘최흥원은 재물을 내어 가난한 사람을 구제했으며, 선공후사의 창고가 있어 이웃이 조세 부역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또 향약으로 권장하고 가르친다.’라고 기록됐다. 향약은 향촌의 자치규약으로 오늘날 새마을운동의 근면, 자조, 협동 정신과 같은 맥락이라고 한다.
조선 후기의 학자, 최흥원이 1757년 가야산 해인사를 둘러보았다. 최흥원(崔興遠, 1705~1786)의 시문집 『백불암집』에 ‘최치원 선생이 직접 심은’ 나무가 말라버려 등걸만 남았다고 했다. 이어서 ‘마침 2월이고 비가 와 나무 심기에 좋아서 노비를 시켜 4그루의 나무를 그 곁에 심게 했다.’고 나온다. 마른 나뭇등걸에는 신라 시대 최치원이 해인사 학사대를 떠나며 꽂아 둔 지팡이에서 싹이 난 전나무라는 전설이 있지 않았던가. 조선 후기에 심은 것으로 보는 후계나무도 2019년 태풍으로 쓰러져 고사했다. 새로 희망의 전나무를 심겠다고, 해인사 측에서 학사대 전나무 위령제를 봉행했다고 한다. 고운 최치원을 시조로 하는 경주최씨 광정공파 후손인, 최흥원은 효행과 조상을 받드는 마음이 남달랐던 것이 아닌가.
백불암 최흥원은 어버이가 병이 들면, 밤잠 아껴 의서를 연구해가며, 간병에 열중했다. 그의 나이 36세 때 부인 손씨를 잃는다. 아내는 모친 봉양을 위해 재혼하라고 유언했지만, 첩도 두지 않았다. 홀로 40여 년을 보낸다. 아들이 요절하는 불운도 겪었다. 그는 자식을 잃고도 어머니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슬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 뛰어난 성리학자인 백불암의 효 사상은 가족과 부인동의 향약으로 확장되었다. 하인을 부릴 때도 먼저 배가 고프거나 추운지 살폈다. 남의 집 귀한 자녀인데 싶어, 연민을 가지고 잘 타이르며 지시했다. 좀체 화내지 않으니 모두가 진심으로 따랐다.
백불암은 효행으로, 그가 죽은 뒤 옻골에 정려각이 세워졌다. 최흥원 정려각은 붉은 문에 태극이 그려졌고, 흙돌담으로 이어져 있다. 기둥이 4개인 사주문을 마주하는 비각은 단칸 규모이며, 지붕의 단청이 고풍스럽다. 정조 시대, 정려각을 세울 때이다. 옻골마을에 축제가 벌어졌다. 잔치에 온 이들이 지은 시가 수십 편 이상 꽃다발처럼 피어났다. 세월이 흘러 6ㆍ25 때, 좌익들이 집에 불지르려 하자, 동네 머슴들이 나서서 막았던 일도 종택을 향해 피운 마음의 꽃이 아닌가. 최흥원 정려각에는 그의 성심성의를 다한 효심이 형제와 이웃과 자연 사랑에 닿은, 미담과 일화들이 무궁화처럼 화사하게 피어 있지 않은가.
옻골마을에도 근래에 원치 않은 도시 개발 바람이 불었다. 옻골 앞에 팔공산 순환도로가 하늘 높게 놓였다. 가까운 문중 땅에는 아파트가 섰다. 토지보상금이 나왔다. 특이하게 문중과 종택이 보상금을 서로 양보해서, 문중 장학기금을 마련했다. 또한 종택과 마을을 잘 지키라는 뜻으로 문중에서 급여가 나온단다. 백불암이라는 호는 겸손을 상징하지만, 최흥원의 선한 영향력은 대대로 전해오고 있지 않은가. 백불암은 '백부지 백불능(百弗知百弗能 백 가지를 알지 못하고 백 가지에 능하지 못하다)'이라는 주자 말씀에서 따온 것이다. 백불암 최흥원은 옻골(漆溪 대구 칠계)에 살았으므로 세상에서 칠계 선생이라고도 하였다. 옻골마을의 백불암 고택에 이어 내려오는 칠계 선생의 정신이 길이 빛나기를 바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온라인 화면으로 여행을 대신하는 추세라고나 할까. 2020 도쿄 올림픽도 한 해가 연기되어, 2021년 여름엔 급기야 역대 최초의 무관중 올림픽을 개최했다. 우리 작은아들의 기타 취미 동아리는 컴퓨터 화상회의로 매주 연습하면서 해가 거듭 바뀌었다. 어디서든 비대면이 대세이다. 그런데 인파가 몰리던 해변에서 사라진 거북이가 길손이 찾지 않자, 요즘 다시 어디선가 나타난 거북 떼의 영상을 보고 얼마나 신기했던가. 행락객들 등쌀에 거뭇거뭇하던 대숲에서는 입산 금지 후 새파랗게 새로 자란 산뜻한 대나무 사진도 보았다. 인터넷에서만 본 옻골마을의 회화나무와 느티나무숲에 가보고 싶다. 바람결에 스치는 나무향을 실컷 느끼고자 한다. 어서 펜데믹도 마스크도 벗어나면 좋겠다.
살다 보면 인력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다. 그런가 하면 해결이 어렵던 일도 하늘이 돕기라도 하듯 자연히 풀릴 때가 있다. 다시 나타나야 할 거북 떼는 다 돌아오고, 사라져야 할 코로나바이러스는 빨리 없어지도록 생태계를 보존해야 하지 않겠는가. 종교를 가진 나는 창조주가 알아서 도우신다고 믿는다.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일 수도 있겠지만···. 언제까지나 느티나무 비보숲이 옻골을 보호하고, 지구촌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손 모아 빈다. 옻골마을의 백불암 최흥원을 본받아 어려울수록 성심성의껏 살아가야겠다. (문협 한국문학인 2022봄호 수록)
-도월화 약력-
수필집 『최치원 향내』 『여월여화』 『달처럼 꽃처럼』 출간
창작수필 등단(2000)
한국수필문학상 수상(2014)
선수필 편집위원
너섬 시니어아카데미 수필강사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 졸업
(前)중등학교 사회과 교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사계수필동인회 회원
창작수필문인회 회원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이메일] ssopia7@naver.com
오늘의 수필감상 180 ▶ 도월화 수필가 ⇒ 《최치원 향내》 ⇔ 〈연꽃 만나러 가는 길〉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수필감상 15 - 도월화 수필가 《선수필 2019 봄호》 -<최치원의 향내를 따라 1,하늘향내>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