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교회에 매어 주의 일을 하는 목회자들로서는 결코 쉽게 낼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큰마음 먹고 참석했는데 개운치가 않다. 부부가 함께 참석해야 할 터인데, 아내를 두고 나 혼자 참석한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아내는 바나바훈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영성훈련에 참석하고 있는 관계로 참석하지 못했다. 수양회 내내 아쉬움을 달고 다녀야 했다.
모두 53명의 목회자 부부가 참석했으니 작은 숫자가 아니다. 우리 김천감찰만 해도 교역자회 총무를 맡고 있는 이진상 목사 부부(남산교회), 감찰장 김규효 목사 부부(향천제일교회), 이두성 목사 부부(신안교회), 육종섭 목사 부부(신일교회) 박정무 목사님 부부(남산교회 원로) 그리고 나, 이렇게 열한 명이나 참석했다. 이런 대 군사(?)를 이끌고 있는 교역자회 회장 김홍직 목사(김천북부교회)와 총무 이진상 목사 그리고 서기로 섬기고 있는 배동명 목사(구미 좋은교회)의 노고에 먼저 고마움을 표해야 할 것 같다.
사진설명-이번 수양회 기간 중 결혼 30주년 기념일(6월4일)을 맞은 조영일 목사님(김천은혜교회) 부부를 위해 케이크를 마련하고 축하의 시간을 가졌다.
사람은 서로 만나 교제하도록 만들어졌다. 사람을 뜻하는 '人(인)'이라는 글자도 사람이 만나 서로 의지하는 모양을 형상화한 뜻글자이다. 하나님께서 아담(남)을 먼저 만드시고 그의 갈비뼈로 하와(여)를 만드신 것은 남녀 사이의 선후를 말하는 것이라기보다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 철인(哲人)은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설파하기도 했다.
53 명의 일행들이 이틀 밤을 편하게 보낸 곳은 부산 송정호텔이다. 무궁화 네 개로 호텔 등급을 표시하고 있었지만 지내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고 직원들의 서비스도 좋았다. 우리의 호텔업도 경제 수준에 비례해 서비스가 많이 향상되어 가는 것 같다. 막힌 예배당을 벗어나 이런 호텔 라운지에서 드리는 예배도 나름대로 파격의 미가 있어서 새로웠다. 어제(6월3일) 저녁 개회 예배가 그랬다. 사회자나 기도 인도자 그리고 설교를 한 교역자회 회장 김홍직 목사까지도 ‘쉼’의 의미를 강조했다.
사진설명-김종국 목사님이 하모니카로 찬송가를 멋스럽게 불고 있다.
둘째 날 아침 식사는 호텔식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우거지 탕이 나왔다. 고급의 서양식 호텔에서 먹는 우리의 전통 음식인 우거지 탕을 먹는 부조화도 아주 멋스럽게 수용되었다. 아마 오래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호텔에서의 조반 식사 중 사회를 맡은 교역자회 회장은 오늘은 특별한 날, 김천 은혜교회 조영일 목사님이 결혼 30주년을 맞이하는 날이라며 케이크를 내왔다. 축복 송이 제창되었고 주인공들이 케이크를 자른 후, 모두들 축하의 덕담들을 한마디씩 던졌다. 좀 짓궂은 목사님들은 사랑의 키스를 나누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오신 김종국 목사님(구미 중앙교회 원로)은 감미로운 하모니커 연주로 두 사람을 축복했다.
오늘의 여행지 중 압권은 단연 이기대(二妓臺)이다. 부산의 용호동 해안에 길을 만들어 이름을 붙이고 관광객을 부르는 상술이 놀랍다. 물매길, 갈맷길 등 어원조차 확실치 않은 여러 개의 길을 만들어 놓고 '이기대 해안 산책로'로 묶으니 내용이 그럴 듯했다. 현대인은 놀이와 건강에 관심이 많다. 이 두 개를 묶어 홍보하면 사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부산광역시의 한 자치단체 남구도 이런 목적을 갖고 이기대를 관광지로 조성한 것 같다. 현대인의 바람을 잘 읽고 있는 것이 된다고 하겠다.
사진설명-이번 수양회 중 가장 힘든 프로그램이었던 이기대 산책길 완주. 우리는 역(逆)으로 산책로를 걸어 덜 힘들게 완주한 셈이다.
호텔에서 출발하기 전, 나는 스마트폰 검색을 해가며 이기대에 대해 공부를 검색했다. 과연 몸이 불편한 내가 도전해볼 만한 코스인가? 또 부산 지리에 밝은 김규효 목사에게 물어보기까지 했다. 인터넷 검색 결과와 김 목사님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도전과 포기가 반반이었다. 이럴 때 나의 히든카드는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이다. 나는 인생을 늘 그렇게 살아왔다. 김규호 목사님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기대 입구에서 선착장에 이르는 길은 오르막이 많기 때문에 몹시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역(逆)의 길을 걷기로 했다.
선착장에서 입구에 이르는 길도 말같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해변을 따라 만들어 놓은 인조(人造) 길에는 계단 투성이어서 내게 무척 힘든 길이었다. 포기할 걸 그랬나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다행히 나의 힘든 부분을 이두성 목사님(신안교회)과 유경석 목사님(언덕위의 교회)이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준 관계로 완주할 수 있었다. 맨 나중 그룹으로 목적지에 닿긴 했지만 이기대 해안 산책길 완주는 나의 인생사(?)에 획을 긋는 일대 사건에 속할 일이다.
사진설명-내겐 힘든 난코스를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 무사히 완주하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 우로부터 이두성 목사(신안교회), 필자 그리고 김규효 목사(향천제일교회), 채수호 목사(인평교회)가 산과 바다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멀리 보이는 섬이 해운대 동백섬이다.
산책로를 걷는 힘든 여정(旅程) 중에도 이기대의 볼거리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것들을 소개하기 전에 이기대에 대한 유래를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이기대의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그 중 유력한 것은 400 여 년 전의 임진왜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왜군이 수영성을 함락시키고 경치 좋은 이곳에서 축하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두 기생이 왜장에게 술을 잔뜩 먹이고 대취(大醉)한 왜장과 함께 바닷물에 떨어져 장렬하게 죽었는데 그 두 기생을 이곳에 묻고 '이기대'라 불렀다는 것이다.
이형하(李亨夏)가 편(編)한 '동래영지(東萊營誌)'도 이와 같은 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二妓臺 在營南十五里 上有二妓塚云"(이기대는 좌수영에서 남쪽으로 시오리에 있다. 위에 두 기생의 무덤이 있어 그와 같이 말한다)
이기대 입구가 아닌 반대 쪽, 그러니까 선착장에서 시작된 우리의 이기대 등정(?)은 많은 볼거리를 쏟아내고 있었다. 오륙도는 부산의 상징과도 같은 섬이다. 밀물 때는 다섯 개였다가 썰물 때는 여섯 개가 된다고 하여 오륙도로 불리는 섬, 조용필의 노래로 대중의 귀에 더 익숙하게 된 오륙도는 부산기념물 제22호라고 한다.
바람이 불면 넘어질 듯 위태롭게 서 있는 바위가 있다. 농(籠)바위라고 안내판에 기록되어 있었다. '농(籠)'이란 장롱을 일컫는 것일 텐데 아무리 이리저리 둘러봐도 상하로 구분되어 모양만 기다랄 뿐 장롱을 닮은 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허긴 이 '농(籠)'자는 '대바구니 농'자이니 대나무로 만든 옷 담는 생활 도구를 가리킨다면 그런대로 이해할 만 했다.
이기대 해변 산책로 중간쯤에 자리잡고 있는 널따란 바위에 치마바위라는 이름을 붙여 놓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심미안(審美眼)으론 치마를 연상할 수 있는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관계가 없는 것도 의미를 억지로 상징화하고, 그것을 관광객들에게 제공하는 것, 이것은 상술과 정성의 결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자치단체의 노고는 인정해 주어야 하겠다.
이기대 어울마당은 영화 '해운대'의 촬영 장소로 유명해진 곳이라고 한다. 그곳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니 광안대교, 누리마루, 해운대해수욕장 등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지고 있었다. 강행군한 도보객들이 쉬어가기 좋게 몇 개의 간이 테이블에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지친 몸을 잠깐 의자에 의탁하니 주인장이 뽀로로 달려와 영업하는 곳이라며 의자를 내어놓으라고 했다. 야박한 인심이라고 두런거리며 자리를 떴다.
해안절경(海岸絶景)을 자랑하는 이곳도 전쟁을 대비한 요충지로 이용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제는 이곳에 굴을 파놓고 한반도를 대륙 침략의 병참기지로 삼았으며, 6.25 전쟁 이후 오랫동안 미군이 이 지역을 통제하고 관리했다고 한다. 이곳이 이기대공원으로 조성되기 전까지만 해도 철책 선을 쳐두고 민간인의 출입을 막은 군 작전 권역이었다고 하니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대의 부침(浮沈), 한반도에서 예외 지역이 없는 듯해 마음이 무거워 옴을 느낀다.
사진설명-2박3일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 송정호텔 라운지에서 단체로 기념촬영을 했다.
시장이 반찬이란 말이 있다. 에너지가 소진된 시장기는 더 많은 식사량을 요구한다. 힘들게 해변 길을 행진한 우리는 모두 점심 식사 때 곱빼기를 시켜 먹어야겠다고 별렀다. 오랜만에 초여름 진한 햇볕을 쏘이며 걸은 도보였다. 이런 우리에게 시원한 가야 밀면이 예약되어 있다고 했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 배고픔을 가시게 할 수 있는 유명한 밀면 식당이었다. 해운대구 좌동에 있는 음식점인데 정말 소문대로 손님으로 만원이었다. 우리는 밀면과 만두로 배를 채우고 다음 코스로 이동했다.
이기대 강변산책로 걷기는 이번 수양회 중 가장 힘든 프로그램이었지만 ‘수양회(修養會)가 ’내 몸을 닦고 다스리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최상의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힘은 들어도 목표를 완수했다는 뿌듯한 마음, 이것은 참석한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다음 시간을 내서 조용히 다시 찾아 이기대와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된 것도 내겐 수확이라면 수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