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스의 전 프로듀서였던 노장 필 스펙터(62)가 최근 2가지 수난을 동시에 겪고 있습니다.
로이터에 따르면 필 스펙터는 지난 2월 그의 LA 대저택에서 한 여성 영화배우가 숨진 채 발견돼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10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석방됐으며, “그녀를 이전에 본 적이 없으며 자살일 뿐”이라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숨진 배우는 라나 클락슨(40)으로 B급 영화에 주로 출연해왔으며, 클락슨의 시체가 발견된 스펙터의 LA 저택은 침실만 10개에 이른다고도 하네요.
필 스펙터는 비틀스가 마지막으로 발매한 ‘렛 잇 비(Let It Be)’의 프로듀서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이후 존 레넌의 음반 ‘이매진(Imagine)’, 조지 해리슨의 ‘올 씽스 머스트 패스(All Things Must Pass)’ 등에서 프로듀서를 맡았으며 어릴 적의 티나 터너와 작업하기도 했지요. 1960년대 초반 팝 음악부터 1980년대 중반 ‘탑건’ ‘더티 댄싱’ 등 팝 음악 위주의 영화 사운드트랙까지 폭넓은 디스코그래피를 지니고 있습니다.
스펙터는 그의 방법론인 ‘사운드의 벽(Wall of Sound)’으로 록 음악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용어는 원래 제트기가 처음으로 음속을 넘어섰을 당시 기술문명에 경의를 표하며 사용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스튜디오 공간에 가능한 한 많은 뮤지션과 악기를 배치해 다양한 악기의 어울림으로 투텁고 풍성한 효과를 창출한다는 그의 방법론은 이전까지 단조로웠던 록 음악을 풍성하게 만들었으며,
이 공로로 그는 1980년대 후반 ‘록앤롤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기도 했습니다.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그가 이번엔 비틀스의 멤버들에게 ‘역사적 공로’까지 부정 당하는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로이터에 따르면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는 최근 필 스펙터와 작업했던 그들의 음반 ‘렛 잇 비’를 재출시할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폴 매카트니는 “우리가 방(스튜디오)에서 했던 그대로 다시 만들 것”이라고 말했고, 링고 스타는 “새 음반은 우리가 비틀스였던 그 시절로 돌아가게끔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는 11월 중순 출시될 예정인 이 음반의 핵심은 1969년 녹음 당시의 소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즉 스튜디오의 효과음이나 코러스·오케스트레이션·연주 등을 삭제하겠다는 것이지요.
폴 매카트니는 비틀스의 마지막 넘버원 히트곡인 ‘롱 앤드 와인딩 로드(Long And Winding Road)’에 대해 많은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있지요.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는 폴의 의도와는 관계 없이 이 곡엔 수많은 오버더빙이 시도됐고, 오케스트라 연주와 여성 코러스까지 덧붙여져 폴 매카트니는 당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고 합니다. 폴은 곡의 수정을 요구했지만 당시 매니저는 음반 발표일이 얼마 남지 않아 시간이 없나며 거절했다는 뒷이야기가 남아있습니다.
이번 발표를 보면 폴 매카트니의 분한 감정이 지금까지 남아있었던 것 같네요. 이 발라드가 비틀스의 마지막 넘버원 히트곡이 되기에는 풍성한 오케스트레이션의 덕을 톡톡히 본 것도 사실이기에 무척이라 아이러니컬합니다.
새 음반에는 20분여에 걸친 비틀스의 리허설과 스튜디오 작업 과정도 담길 것이라고 하니 ‘비틀매니아’들에게는 더 없이 반가운 소식일 터입니다. 그러나 예순 넘은 나이에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명 프로듀서로서는 때늦은 ‘역사 바로세우기’의 희생양이 된 것 같아 착잡하기 이를데 없을 것 같네요. 필 스펙터에겐 인신(人身)에 대한 ‘재판’보다 역사적 가치에 대한 ‘거부’가 더 가슴 아플 것 같다는 추정도 해봅니다.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