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원룸 계약이 만료되었고 마지막 학기는 수업도 별로 없어 집으로 들어오려고 짐을 집으로 옮겼습니다. 짐만 옮겼습니다. 반려동물 때문이었습니다. 정이 많고 친구의 요청에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사정이 생긴 친구로부터 어쩔 수 없이 고양이 두 마리를 받아 몇 개월을 키웠는데 정이 들어 헤어질 수도 없고 다른 이에게 넘기려 해도 분양받고자 하는 사람도 없기에 데리고 들어오겠다는 것을 제가 단호히 거절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동물이 전반적으로 싫습니다. 멀리서 보는 것은 괜찮으나 가까이서 만지고 스치고 하는 것은 끔찍이도 싫어합니다. 방 안에서 동물을 키우는 것은 더더욱 싫습니다. 냄새도 싫지만 특히 털이 여기저기 떨어지고 날리어 옷 따위에 붙거나 이로 인해 재채기가 날 때면 평정심을 잃습니다. 오죽 했으면 간절히 부탁하는 큰 녀석에게 “만약 고양이 데리고 들어오면 내가 들어오지 않겠다.”고 엄포까지 놓았습니다. 아이들 어릴 때는 동물을 키우는 것이 정서함양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 물고기도 키웠고 햄스터도 키워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밥 주고 물 갈고 열심히 하더니 시들해져 결국 물고기가 죽었었고 햄스터는 지나친 번식력에 질렸을 뿐 아니라 자기 새끼도 물어 죽이는 반천륜성(?)에 끔찍해졌기에 이후 집안에 동물은 들이지 않았습니다. 강아지를 키우는 지인 집에 갔을 때 자기는 반갑다고 그러는지 모르지만 멍멍 짖으며 다가와 몸을 비비면 진저리가 쳐질 정도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옷에 묻은 털을 털어내는 기분이 좋을 수는 없지요. 그나마 강아지는 멀리서라도 보면 이쁜 구석이라도 있지만 고양이는 예뻐지지가 않는 동물입니다. 그러니 제 반응이 단호할 수밖에요. 아이는 제가 그렇게 단호한 모습을 처음 보았다며 고양이 때문에 집에 못 들어오고 친구 집에 당분간 있겠답니다. 다른 것은 대부분 아이의 판단에 맡기고 이해하고 수용하는 입장이지만 고양이 건 만큼은 양보는 절대 없을 것입니다. 정 붙여 살 사람만도 넘치는데 굳이 반려동물을 내 인생에, 내 가까운 이들의 삶에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는 확고한 생각 때문입니다. 교감하고 의지처로 삼을 대상은 인간만이 유일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요즘 반려동물 키우는 이들이 넘쳐나지만 한편으론 유기동물 또한 넘칩니다. 동물에 정 붙이는 것을 굳이 말리거나 호오 판단을 할 수는 없지만 내가 끔찍하게도 싫어하니 비록 반려동물이라 할지라도 내 주변에서는 접할 기회가 없었으면 합니다. 내 이런 생각이, 이런 말이 다른 이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그들도 결국은 내 삶의 동반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어찌되었건 아이를 집 밖으로 내몬 꼴이 되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이런 때는 자연을 가까이 접하며 흐려진 마음을 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침 아내가 바람 쐬러 가자기에 성주로 가 성밖숲을 거닐며 마음을 추스렸습니다. 언제 누구와 가더라도 항상 거기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며 반겨주는 고택, 들풀, 나무,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나를 편안하게 감싸줍니다. 생각을 내려놓은 산책이 흐트러졌던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게 도와 주었습니다. 그래서 산책이 좋습니다. 고택이, 자연이 함께 하는 산책이 말입니다. 성밖숲과 한개마을의 이모저모를 아래 담아보았습니다.
http://blog.naver.com/bornfreelee/220108586185
★속아도 꿈결
산책이라고 함은 정해진 목적 없이
얽매인 데 없이 발길 가는 대로 갈 것
누굴 만난다든지 어딜 들른다든지
별렀던 일 없이 줄을 끌러 놓고 가야만 하는 것
인생에 속은 채 인생을 속인 채 계절의 힘에 놀란 채
밤낮도 잊은 채 지갑도 잊은 채 짝 안 맞는 양말로
산책길을 떠남에 으뜸 가는 순간은
멋진 책을 읽다 맨 끝장을 덮는 그 때
인생에 속은 채 인생을 속인 채 계절의 힘에 놀란 채
밤낮도 잊은 채 지갑도 잊은 채 짝 안 맞는 양말로
산책길을 떠남에 으뜸 가는 순간은
멋진 책을 읽다 맨 끝장을 덮는 그 때
- 이를테면 <봉별기>의 마지막 장처럼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 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 질러 버려라'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 싱어송 라이터 정바비 작사 작곡, 인디밴드 가을방학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