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서 만날 수 있는 봄 나무 꽃은 대부분 노오란색이나 흰색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중에 마을 돌담을 끼고 자라며 꽃을 피는 산수유는 마을을 아름답게 꾸미면서 전령사 노릇을 하지만 산중에도 이에 못지않은 생강나무 꽃도 있습니다. 이 또한 노오란색입니다. 향신료로 사용하는 생강의 향이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어느 해인가? 주문모 신부님의 발자취를 찾기 위하여 어농성지를 순례한 후 귀경을 하면서 들러 본 백사마을 안부에서 봄 향기에 취했던 기억이 떠올라 금년엔 꼭 다녀올 계획을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마을은 대부분 남향으로서 산기슭에 부채꼴 모양으로 자리를 잡고 이웃과 소통하며 평화롭게 서로 도우며 살던 백의민족이었습니다. 마을 어귀에는 마을 수호목이라 할 수 있는 느티나무를 심고 돌과 흙 그리고 풀과 나무를 소재로만 집을 짓고 자연환경적으로 삶으로 정주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식용이나 약재용으로 쓰임새가 좋던 나무들을 선택한 후 돌담 안쪽으로 심고 키우며 가을에 수확을 하여 가계에 보태는 경제적 수단으로 사용하곤 하였습니다. 봄을 노오란색으로 치장하는 산수유나무는 특히 효자 나무로써 열매를 팔아 자식들을 대학공부를 시켰던 대표적인 나무였습니다. 이제는 값싼 중국산 약재들이 들어와 옛적에 누렸던 호사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요긴하게 사용하는 열매입니다.
산수유나무는 층 층나 무과에 속하며 낙엽이 지는 키가 큰 나무입니다. 주로 산기슭이나 인가 부근에서 자란답니다. 중국과 한반도 전역에서 자생하고 있으며 주로 우리나라 중부 이남에서 기르고 있습니다. 주산지는 전남 구례, 경북 의성과 봉화, 경기 이천과 양평 등입니다. 산수유는 배롱나무와 노각나무, 모과나무처럼 나무껍질이 아름다운데 15년 이상 지나야 매끈하고 무늬가 있는 나무껍질을 갖게 되고 산수유 열매는 약간 달지만 강한 신맛이 강하고 떫은맛이 강한 편입니다. 이러한 산수유 열매는 씨를 발라내고 솥에 찐 후 햇볕에 말려서 사용합니다. 산수유 열매에는 사포닌의 일종인 코닌(cornin), 모로니 사이드(morroniside), 올레아놀릭산(oleanolic acid) 등이 함유되어 있으며 그밖에도 다양한 유기산과 비타민이 들어 있습니다. 산수유 추출물은 면역세포인 B세포를 도와 알레르기를 완화시키며 혈당을 낮춰 당뇨병에도 효과가 있으며 피부 손상을 방지해주는 효과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한방에서는 산수유는 맛이 시고 약성이 따뜻하며 깔깔하여 독성이 없으며 촉촉한 특성을 가진다고 합니다. 또한, 자양, 수렴, 항균작용이 있다고 하고. 특히 열매 즙액은 황색 포도상구균에 대한 항균작용이 알려져 있습니다. 간과 신장에 작용하며 간이 말라 진액이 부족한 것을 보해주며 진액이 새는 것을 그치게 하고. 신장이 허약하면 몸의 정기가 새어나가는데 소변이 자주 마렵거나, 요실금이 생기거나, 땀이 지나칠 정도로 많거나, 월경이 과다한 증상 등 이런 증상에 산수유가 좋은데 이는 정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효능이 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허리와 무릎이 시리고 통증이 있을 때 효과가 있고 유정과 몽정이 심하고 하체 힘이 약해 보행장애가 있거나 발기가 안 되거나 조루 등에 장기적으로 복용하면 좋은 효과가 있지만 그러나 산수유는 부종이 있고, 몸 안에 습열이 많아 소변을 잘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천시 북쪽에는 경기도 광주시와 여주 경계를 이루는 해발 634m의 원적산 등 작은 준봉을 일궈내며 지역의 산으로 동서로 늘어서 있습니다. 그중에는 서울로 가는 관문인 넋 고개를 가로질러 있으며 산 아래로는 신둔, 백사, 송말, 도립 등의 마을에서 생산되는 산수유가 전국 집산지를 이루고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산중에는 이천의 최고봉인 천덕봉은 공민 봉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고려 31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렀던 역사적 사실에서 유래된 명칭이며 그 당시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던 축성의 흔적이 남아 있어 원적산 고성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한편 광주군에 속한 산 반대쪽에는 여지수라 불리고 있는 못이 있는데 공민왕을 따라 피난을 왔던 많은 궁녀들이 개경이 적에 수중에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에 몸을 던져 빠져 죽은 곳이라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봄이 오면 나들이는 필연적인 행락입니다. 과연 죽었던 나뭇가지에 싹이 돋아나고 꽃이 필 것인가? 하는 의문에 휩싸이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입니다. 이러한 것은 의문이라기보다는 사실은 생명의 가치와 그 존귀함에 대한 인식을 더욱 확고하게 함이 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저에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생명의 존재성은 태어남과 성장과 성숙한 본연의 자리를 매김 한 후 홀연하게 아무런 미련도 없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봄에 대한 의미를 잘 깨닫는 것은 여름의 성숙과 가을의 결실과 나눔에 대한 실현까지 염두에 둔다는 것일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궤도를 사유하며 요즈음 역질의 환경으로 소수인원으로 출행을 하기로 결심한 후 강변도로를 달려 남한강 줄기를 어깨 높이에 두고 달렸습니다. 마재 곁을 지나며 정약용 형제의 삶을 의식의 흐름으로 반추하고 이어서 이벽에 대한 삶에 궤적도 살피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그러나 양근을 스쳐 지나면서 권철신, 일신 형제를 생각하다 길을 다시 이들이 앵자산 기슭 주어사에서 강학을 하기 위하여 걸어가던 길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산북으로 나가는 길을 접고 이포나루 방향을 선택한 후 참외생산으로 유명한 금사까지 단숨에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금사를 지나면서 지형이 많이 바뀐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동차 전용도로, 고속도로 등 지상 구조물이 연달아 3곳 이상 생겨 백사로 나가는 길에 혼선을 느끼고 세종대왕 영릉으로 나가는 길로 잘못 접어든 것입니다. 그래도 즉시 간파하고 되돌아 나와 기억을 살려냈지만 그것 또한 미덥지 못해 동행자에게 내비게이션을 켜 보라 하며 달려 나갔습니다. 도착한 후 안전한 곳을 찾아 차를 주차한 후 행장을 수습하고 걸음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꽃차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손편지를 자신에게 또는 상대에게 써 볼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고 생태환경에 대하여도 한번 즈음 스스로 자각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러한 시설물과 달리 바로 뒤에 붙은 대지에는 현대적 감각의 전원주택들이 신축되어 분양되었고 지금도 건축 중이며 나대지마다 새롭게 착공된 곳도 많습니다. 산수유는 아무래도 고전적인 틀의 모습이 어울릴 덴데 말입니다. 옛 모습이 환영이 되어 스크린처럼 살아 마음에 스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상실의 늪을 만난 것처럼 상심이 컸습니다.
마을 어귀에 너른 주차장을 시설하고 부속건물로 화장실과 산수유 사랑채를 2층 한옥으로 이천 백사 산수유 영농조합법인이 건축해 놓았습니다. 한옥스테이가 가능한 산수유 사랑채는 가온( 한가운데), 누리(세상), 도담(야무지고 탐스러운), 라온(즐거운), 미루(널리 펼쳐진 들판) 등 5개의 한실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다섯 개의 방 중에서 가온 방은(린넨실)으로 사용하고 있어 대여할 수 없습니다. 가온 방을 제외한 4개의 방만 외부 손님에게 대여 가능한 객실입니다.
경기도 지방 특유의 아름다운 촌락을 이루던 곳이 남해의 독일마을처럼 변신해 가고 있는 중이라 옛 모습은 사라져 버려 산수유마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마을로 변신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역질로 인하여 행동이 부자유스러운 환경이라 행락객이 참 많았습니다. 슬쩍 시계를 보자 곧 40여분 후 점심시간 때라는 것을 인식한 후 걸음 여행 코스를 조금 비틀어 보았습니다. 작은골로 들어간 후 살피며 걷다 다시 산수유마을 중심부로 접근하며 많은 행락객과 조우를 피할 수 있다는 판단을 갖고 변경한 것입니다.
언덕 곳곳에 옹기종기 몰려 있던 집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현대식 주택으로 신축되어 참 낯설었습니다. 그리고 일률적으로 설치한 울타리용 철제가 아름다운 풍경의 고유의 멋을 앗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옛적에 이곳을 찾아 포토존을 만들어 놓고 출사 했던 기억이 있어 400여 년 된 느티나무 아래를 찾았습니다. 고목 뒤편에 서있는 산수유 꽃이 만개되면 아주 좋은 풍경을 건질 수 있던 곳입니다. 관리가 소홀하였는지 산수유나무는 많이 퇴락되어 꽃은 열리지 않고 삭막했지만 나름대로 구도를 잡아 보았습니다.
멋있어~ 정말?
멋있어요 두 사람 다~~
좌측으로 난 길을 걸어 나가면 산 능선을 만나게 된다. 그 주능선을 따라 걸으면 산수유마을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된다. 새삼 아름다운 산수유 단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행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고목나무 아래에 앉아 행동식을 나누었습니다. 떡, 참 요긴한 행동식입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작은 골 안부로 걸어 돈 후 산수유마을 중앙으로 접근하기로 하였습니다.
돌로 쌓아 만든 돌담 그 너머로 심어 놓은 산수유나무, 나름대로 우리 고유의 마을 정취를 떠올릴 수 있지만 돌담 안 양지바른 곳에 정주용 초가나 기와집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지금 그 위에는 새 집을 짓기 위하여 터를 닦아 놓고 거푸집을 들여다 쌓아 놓고 있었다. 조화라는 것은 편안함이다. 어울림이라는 것은 동질적인 요소가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다. 삶의 터전은 자연과 조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럴려면은 우선 자연의 질서 안에서 고찰되어야 하는 것인데... 이곳은 사정없이 그틀을 허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담 아래에서 잠시 쉬었다가 원적산 기슭을 천천히 걸어 오르기 시작하였다.
청명한 하늘 아래 노오란 산수유 꽃, 풍성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오전보다 줄어든 행락객들 탐방하기에 적정 인원이었습니다.
여유롭다는 것 편안하다는 뜻이지요. 오후로 갈수록 빛은 느긋하게 모든 것을 편안하게 이끌어 줍니다.
살면서 가끔은 뒤를 돌아다보아야 한다는 일은 참 중요한 생활습관인 것 같습니다. 어디 즈음 가고 있으며 현재 내가 버릴 것은 무엇이고 얻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서라면 걸어온 길을 살펴야 합니다.
이제는 서서히 원적산 기슭을 떠나야 할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산수유 길이라 명명된 돌담 사잇길을 걸어 천천히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돌담 모퉁이가 허물어져 있어 잠시 사진 찍던 손을 내려 주섬주섬 들어 다시 제자리에 올려놓아 주었습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미는 변함이 없습니다. 옛 추억을 소환해 주는 구옥을 만나니 얼마나 반가운지..
익숙해진 마음으로 연출한 후 찍어 본 사진입니다. 참 정겹습니다. 그리고 바로 아래 돌담에 붙어 서서 파전을 부치고 도토리묵을 만드시는 아낙 내를 보면서 피어오르는 음식 향이 위산을 분비시켜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파전과 도토리 묵을 시킨 후 목을 축였습니다.
산수유나무 그늘에서 모처럼 찾아본 해방감, 절대 자유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공유의 시간이기도 하였지요. 다시 도시로 돌아오다 가끔 찾는 유달산이라 집을 찾아 가 홍어탕으로 암모니아를 가득 채운 후 각자 귀가하여 하루의 일정을 매듭지었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속히 오미크론이 조신해져야 하는데 큰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