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고려...대륙조선...
극소수 막연한 국수주의, 애국주의 환타지메니아들의 자위질모임...
이런식으로 폄하돼고 있는 현실은...꼭히 그 반대진영들이 무식하고 안하무인이라서 그런것도 아니다.
어찌보면 대륙고려&조선 연구자들께서...사서해석이 각기 천차만별이다 보니....
대륙고려&조선연구자들 간에도 의견이 중구난방 대립하면서 반목한단게 그 욕을 자청한 것이다.
대륙고려&조선 연구자님들 백이면 백...
다 자신이 가장 과학적이고 객관적이고 포괄적으로 사서를 검증했다 하신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각 연구지님들마다....이미 대륙고려&조선은 여기서 여기까지다...지도까지 확정했다.
연구과정중의 일시적 가설과 가정이 아니라 확정이란게 문제다.
어느 분들은...
대륙조선은 단군조선때부터 근세 이성계의 조선까지...
대륙조선은 역사내내 유라시아 대륙의 천자국으로...고려와 조선을 핍박한 거란 금나라 몽골 청나라등은...
조선천자의 분봉을 받는 강력한 제후가 천자를 핍박한 것이였을 뿐...
고려가 몽골에 입조하고...
근세조선 인조가 청에 치욕적으로 항복했단건...역사왜곡이자 과장일 거라신다.
어느 분들은...
역사서와 역사지도들이 다 왜곡됐다 흥분들 하시면서도...
정작, 그 왜곡됐단 역사서들에 나오는...현 동북삼성만이 고려와 조선의 강역였는데...
일제와 짱깨들이 그걸 왜곡한다 흥분하신다.
어쩌다가..그 지도가 북경을 넘어가기라도 하면...대단한 역사의 진실이나 찾은듯 날밤들을 패시며 흥분하여
북경도 고려와 조선였었는데 왜들 몰라주나~~~~!!! 라고들 분노하신다.
어느 분들은...
고려&근세조선은...천자국였단 주나라의 오경(五京)제도를 두고...주나라식으로 왕도 주변을 경기(京畿)라 하고...
고려같은 나라는...틀림없이 황제국만이 하는 자체연호를 쓰고...모든 범례가 황제국에 맞게 했었으니...
고려가 명실상부한 유라시아의 유일무이한 천자국이였고...
이를 빼앗은 이성계의 조선도...당연 유라시아의 유일무이한 천자국이였다 하신다.
어느 분들은...
현 파미르 서역 동유럽과 지중해에도...단군조선문명의 흔적이 나오니...
거기가 바로 단군조선의 원 중심지요...그를 승계한 기자조선, 부여,고구려,발해,왕건고려.근세조선...이 모두는...
그 중심이...파미르 서역 동유럽이나 지중해에 있었고...
파미르 이동의 중원은...그저 그 조선의 황도를 말하는 중국(中國)..즉, 동유럽이나 지중해의 상대적 동토인...
지중해조선의 동부지역 제후국 땅이란신다.
한반도는...?
뭔 오랑케들이 살았는지 같이 연구해 보자신다.
구체적인 연구들의 토론과 대략적 합의와 동의를 거친 텍스트 생산시도는 커녕...
내 말 안 믿으려면 떠나라...난 이미 확실한 증거들 다 가지고 주장하는 거니...제발 정신들 차리라...
백이면 백이 다들 이러시면서도...모두 그 연구주장이 천태만별이니...
국민들 누가 대륙고려&조선 연구자란분들을 신뢰할 수 있겠나...?
토론과 합의 동의를 통한 텍스트구성 과정의 지리함과...
그 와중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의견충돌과 감정적 대립과..소소한 분열...
이런게 구찮어...너 내말에 토달거면...중이 절 실으면 떠나듯...나가면 돼지...왜 나를 구찮게 허나...
이런 식으로 각 연구단체가 운영돼다 보니...
대륙조선 연구자들끼리도 서로 인정치 못하는 주장을...
국민 대중들이 믿어주지 않는다고 않타까와 하고...한심해 하는 자체가 ...
내 보기엔 차라리 더 한심한 것이다.
대륙고려&조선 연구자님들 백이면 백...
자신만은...자기 단체들만은...정확한 사서의 객관적 증거로 대륙조선을 찾아가고 있고...
여타 연구자나 단체들은...그저 무책임한 과대해석이요...넘겨집기식 소설류라 폄하들 하신다...서로...
그러나 자세히 보면...
연구자들께서 인용한 사서들도...어떤 사서들엔...그건 오류라 명기됀 것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조선의 가장 기본영토인 가장 북방의 백두산 조차도...
조선의 사서를 보면...여긴거 같다 저긴거 같다...누가 쓴 사서는 전혀 틀렸다고 날리부르스인게 엄연한데...
그걸 다 한 문명의 한 군데의 유일한 백두산이라 하는 주장도 문제이긴 하다.
그러한 당대 사서작성자들의 기록오류나...전쟁의 승패에 따른 영토이동과 자연스런 지명축소 확대...
이런건 감안치도 않고...딱히 몇개의 사서에 나온 구절만을 이게 진실이고...나머진 다 왜곡사서구절이라 히시고...
고구려같은 전대 왕조의 최전성기의 영토였을때의 지명을...
다 망하여 영토가 축소됐기에...자연스럽게 지명도 옮겨진 근세조선의 지명과 동일시하고...
고려&조선의 주변 나라들이 대제국이 돼기 이전...
깡촌에서 잠시,고려나 조선에 굽신대던 서북 오랑케 시절였을 때의 역사기록만으로...
그들이 나중엔 사방의 나라들을 침략해 명실상부한 대륙의 천자국을 선포하고...
고려나 조선도 그들을 천자국으로 인정했던 기록이 역사기록의 99.9%임에도...
그건 다 역사왜곡이고...처음부터 엄연히 고려&조선의 서북에서 조선에 굽신댄 촌동내 추장이 만든 나라니...
나중에 출세해 천자를 자칭하던 땅이 온 대륙을 뒤덥던...그때도...
무조건 고려&조선의 제후국였다고 하는 논리는 모순이 많다 보인다.
5경6부를 주나라 제도대로 두고...
왕도 주변 직할지를 경기(京畿)나 기내(畿內)라 하는 나라는 천자국이다...?
왜놈들도 그랬는데...?
고려는 4경(四京)밖엔 없었는데...?
발해(대진국)은...5경 6부를 정확히 동서남북 중앙에 두고...
고려와 마찬가지로 자체연호 쓰고...신라와 고려가 존숭했던 당나라도 사정없이 처 들어가던 나라인데..?
고구려,조선,옥저,숙신,말갈의 땅을 다 자치한 해동성국이라는데...?
그럼, 서서증거대로면...진정한 대륙의 천자국은 발해가 맞는거 아닐까...?
당연 그 땅과 권위를 찬탈한 거란이 천자국이고...금나라...몽골이 천자국에 더 가까운 조건이 아닐까...?
신라와 고려가 천지국으로 존숭하던 ..당나라가 망한 이후엔...명실상부한 대륙의 천자국이 없었을 그때..
고려는 황제국의 자체연호도 쓰고...모든 범례를 황제국에 맞게 사용한다.
그러나 당을 계승한 송나라가 정립돼면선..형식적이긴 하나마...송나라를 천자국으로 인정했으며...
거란이 발해를 치고...이후 그대로 5경6부를 유지하고...송나라를 무릅꿀리고...고려를 위협하면선...
이후 고려는 거란을 중국이라 했다가...
금나라가 거란을 제압할 시기...몽고가 또 그럴 시기...거란 패잔병들과 유민들을 두 번 제압하곤...
다시 금과 몽골을 중국이라..형식적으론 인정한다...
이 거란과 금나라를 다 제압하고...유라시아를 다 먹은 몽골을 다시 고려는 중국이자 천자국으로 인정하는데...
그 당대의 역사서를 보면...
몽골이 원나라란 한족들과 섞인 한자분명 복합정권이 서면선...
한자문명권의 천자제도에 눈을 뜨고선...
고려는 어찌하여...외람되게 중국 천자만이 사용하는 짐이란 용어와...황제들만이 쓰는 여러 관례들을 사용하고 있는가...?
이건 좀 아니지 않냐고 으름장을 놓는 구절이 있음을 보건데...
당나라의 멸망후...고려가 황제국을 자칭했고...자체연호도 썼고...모든 범례도 황제국에 맞게 정했고...
혼란한 중원의 영토쪽으로도...즉, 요동으로도 영토를 넓힌건 맞으나...
그게 고려가 유라시아대륙의 유일무이한 천자국이였단 증거는 못 돼는 것이다.
당대 다 망한 발해의 유민국들도...개국하자 마자..모두들 자체연호 쓰고...황제국이라 했다.
왜놈들은 아예 지들 왜왕늠을...천황(天皇)이라고 오바질도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누구하나...그 나라들이 유라시아대륙을 다 통치한 천자국였다 인정하질 않는다.
고려나 근세조선도 그건 마찬가지였던게 모든 사서들에 한결같다.
중요한건...
고려와 근세조선이 분명,유라시아를 다 호령한 천자국은 아니였을진 몰라도...
역사서들을 보면...그 영토는 틀림없이 현 중원과 더하면 중앙아 동부까지 미쳤던 때가 있던 강국였단 점이다.
천자국 당나라도 물리친 신라...천자국 송나라도 맘대로 타치하지 못한 고려...
유라대륙을 다 통치한 몽골의 대표인 원나라도...
어느 제후국왕이건...국토가 아무리 크건 말건...오로지 칭기스칸의 직계들만 참석한단 행사에..
방계혈통으론 유일하게 고려국왕만 참가했을 정도로...고려의 국력과 위세는 무시할 수 없었단것이 중요한 것이다.
유라시아대륙을 다 통치한 몽골제국입장에서...
한반도와 동북삼성은 그저 극동의 한 구석 외지의 지방일 뿐이다.
거기에 있던 고려가 뭐이 그리 무섭고...대단해...
칭기스칸직계들만의 회의에 유일하게 고려왕만 참가시켰줬단 것일까...?
이런걸 구체적으로 연구해야지...
계속 고려나 근세조선이 유일무이한 천자국이란 스스로 정한 연구의 전제를 못 버려...
객관적 사서해석은 없고...그저 백가지 전혀 다른 학설의 연구단체별로 백가지 동떨어진 설들을 양산하는 상황이라 보인다.
그 나라가 대 제국이 돼기 전의 우리와의 관계를 적은 역사냐...아님, 대 제국이 돼고 나서의 역사냐...
특히, 다 망하고 이미 여러 주변민족들과 혼합됀어 명칭까지 오랑케라 달리 호칭돼던 시대의 우리와의 관계역사서냐...
이런걸 시대별 상황별로 감안치 않고....
그저 우리가 그들보다 상대적으로 가장 강했을 때의 역사서 구절만을 텍스트로...'
나머지 역사서들은 다 왜곡이라 하는 논리는...세계인들은 커녕...우리 국민들조차 설득키 어려운...
역사서 해석의 편취에 의한 확대해석이란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걸면 귀거리식이고...시대마다 다 달랐을 위상과 강역...이런거 다 초월하는...
아주 빼도 박도 못할...
대륙고려와 대륙조선의 간단명료한 증거사서를 제시하겠다.
밑의 해동역사 물산지엔...
잣나무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아주 길게 나온다.
현 중원 동부엔...산간지대면...어딜가나 잣나무가 있다.
사천성.감숙성, 신장성,티벳등지만 뜸하다.
중국인들은...잣나무를 신라송(新羅松)이라고도 부른단다.
그 유래는...신라가 당,송시대에...중국에 잣 무역을 많이했기에...거기에 유래한단다.
이거 이해가 않간다...?
우린 미국 소나무를... 흔히 미송(米松)이란 왜놈들식 건축용어로 부른다.
미국에서 자란 소나무니 미송(미국소나무)인 것이다.
당연 , 신라에서 자라는 소나무니 신라송(新羅宋)이요...그게 잣나무란 얘기인것이다.
사서들이 백(栢)이라 기록하면 다 잣나무도 아니고...신라송...오엽송(五葉松)이라 할 때만 잣나무인 것이다.
당나라,송나라때... 이게 현 중원에 널널한데...왜 당나라,송나라는 신라에서 이 잣열매를 수입하느라 야단였을까...?
뻥~하면... 단연 짱께들인데...지들 나라에도 나는 나무면...중국송 당송(唐宋)...송송(宋松)이라 할께 뻔한데...
왜 유독 바다건너에서 엄청난 경작지의 중국에도 흔한 잣을 ...극동의 신라배가 싯코와서 팔았다고...
중국에도 널널한 잣나무의 대명사가 신라송이 돼어 버렸을까...?
그건 바로...
당대 당나라나...송나라란 나라는...옛 사서에 나오는 중국들은...현 중원 동부의 나라가 아니였단 반증이다.
잣나무란 종은...
유독 거의 동아시아에서만 나고...
산림이 많은 동북삼성과 몽골 시베리아 북유럽등의 타이가지대에만 나는 나무이다.
그 대략적인 재배 한계선이...
중원대륙 광서성,운남성,섬서성,산서성.부터 동쪽으로가 한계선이다.
실상,한반도 남부의 잣나무도... 본격재배는 근세의 일들이다.
자생적인 잣나무들은...산간 한랭지대에 적합하며...
그런데 이상하게도... 중국 동부지역에는 산간에는 잘 자란단다....?
서역에서 식용 잣열매가 열리는 진짜 잣나무가 자라는건...서히말라야 산간지대가 거의 유일하단다.
잣 좀 먹자고 히말라야 올라갈일 없다...수확량이 얼마나 됐을까...?
그래, 그 휘귀한 열매를 현 중원동부에서 서역 중국이란 나라들이 사다 처먹은게...
당나라나 송나라가 신라에서 수입한 신라송(新羅松)열매인 잣이였던 것이다.
이는 다시 고려만의 특산물 대명사가 돼어...
송나라 사신 서긍은....이 잣나무를 설명하면서...잎이 두개인 자기나라의 그 측백소나무(栢)와 근본적으로 다른...
잎이 다섯개인 나무고...솔방울을 과실로 먹을 수 있는 해송자(海松子)란 열매가 나고..어쩌고...
마치 우리가 이역만리 나라들의 특산물을 백과사전에 소개하듯 했단 것이다.
화한삼재도회"엔...
해송(海松)이란...중국(짱께나라)는...늘상 자기 나라가 아닌 곳들을 해(海)자로 불러 이르니...
해송(海松)이란 잣나무는 고려의 나무를 이른 것이라고 명기됐음에도...
뭔 학자란 물건들은...이를 바다에서 나는 소나무니...바다를 건너 신라에서 들어온 나무라서 해송이니 뭐니 헛삽질이셨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역사가 현재에도 셀프왜곡돼고 있는 것이다.
또한 더 중요한건...
유일하게 유라시아 대륙의 중남방인 ...고려만이 이 잣나무가 나니...
이 영향으로...양이들도 이 잣나무의 학명을...코리아 소나무[Pinus koraiensis]라 했단 것이다.
일본열도와 중국동부지역도 나는 잣나무를 왜 하필 가장 작은 지역인 한반도나무라 했을까...?
동아시아 소나무라 했어야 하는거 아닌가...?
더 빼도박도 못할 구절은...
중국에서 조선으로 올때...경기도부터 이 잣나무가 있단 기록이다.
현 중원의 섬서성부터 잣나무가 본격적으로 있다.
거기가 조선의 경기도란 것이다.
중국사서는...조선의 잣나무를,,,화산송(華山松)이라고도 했단 것이다.
화산(華山)이란 산의 의미는...죽어도 섬서성 화산(華山)이외엔 동쪽으론 없다.
섬서성 화산에 그 산잣나무가 많다.
조선시대에도 중국은 잣나무를 조선의 특산이라 했단다.
그럼 명나라의 요동은...잣나무 천지인 현 동북삼성도 아니요...청나라도 현 동북삼성이 아니란 반증이다.
이건 아주 빼도박도 못할 대륙고려의 증거인 것다.
이미 예전부터 양이들도 다 인정한 거다.
잣나무는 고려에서만 주로 나는 나무니....학명이 코리아소나무 [Pinus koraiensis]라고...
이러고도 대륙고려&조선을 믿지 못하겠다면...
그것도 일종의 아주 자학적인 불치병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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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栗]○ 마한에는 큰 밤이 많은데, 배[梨]만 하다.
《후한서》○ 백제는 토지가 낮고 습하며, 큰 밤이 난다.
《수서》○ 왜(倭)와 한국(韓國)의 토종밤은 크기가 계란만 하며, 맛이 좋지 않다.
《모시의소(毛詩義疏)》○ 고려의 밤은 크기가 복숭아만 하며, 단맛이 있어서 먹기에 좋다. 옛 기록에 이르기를, “여름에도 밤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 까닭을 물어보니, “질그릇에 담아서 흙 속에 묻어 두므로 해를 넘겨도 썩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해송자(海松子)○ 해송자는 신라에서 나는 것이 살이 아주 향기롭고 맛있다.
《일용본초(日用本草)》○ 신라의 오립송(五粒松)은 한 떨기에 다섯 개의 잎이 돋아나는데, 비녀[釵]와 같이 생겼다. 도가(道家)에서 곡기(穀氣)를 끊고 이것을 먹는다. 씨앗은 파두(巴豆)와 같이 생겼다. 신라에서 가끔씩 진상한다.
《사성본초(四聲本草)》 ○ 《통아(通雅)》에, “소병(蕭炳)이 말하기를, ‘오립송은 한 떨기에 다섯 개의 잎이 나는데 모양이 비녀와 같은바, 바로 신라의 해송자이다. 작은 밤과 같이 생겼으며 삼각으로 모가 났는데, 그 씨는 향기롭고도 맛이 있다.’ 하였다.” 하였다.○ 오렵송(五鬣松)은 겉껍질에 비늘이 없으며 열매가 맺히는데, 신라에서 많이 심는다.
《유양잡조(酉陽雜俎)》○ 신라의 송자(松子)는 맛이 달고 성질이 아주 따뜻하다. 껍질을 제거하고 먹으면 매우 향기롭다.
《해약본초(海藥本草)》○ 해송자는 신라에서 생산된다. 작은 밤과 같이 생겼으며, 삼각형으로 모가 졌다. 그 안에 있는 씨는 향기롭고도 맛이 있어서, 동이(東夷) 사람들이 그것을 과일로 먹는데, 중국에서 나는 송자(松子)와는 다르다.
《대관본초(大觀本草)》○
신라의 사신이 올 때마다 매번 송자를 많이 파는데, 송자에는 옥각향(玉角香), 중당조(重堂棗), 어가장(御家長),
용아자(龍牙子) 등 몇 가지 등급이 있다. 그 가운데에서 옥각향이 가장 좋아서, 사신으로 온 자 역시 이를 보배로 여긴다.
《청이록(淸異錄)》○ 신라의 잣나무는 크기가 몇 아름이나 되며, 오립자(五粒子)가 있다. 모양새가 복숭아씨[桃仁]와 같이 생겼는데, 약간 작으며 껍질이 단단하다. 사람들이 그것을 채취하여 먹는데, 맛이 호도(胡桃)와 같으며, 술에 담가서 먹으면 풍(風)을 치료할 수 있다.
《신라국기(新羅國記)》○ 무릇 잣나무잎은 모두 두 갈래인데, 유독 괄송(栝松)만이 매 이삭당 세 개의 솔잎이 있다. 그런데 고려에서 나는 것은 매 이삭당 다섯 개의 솔잎이 있으며, 열매를 맺는다. 지금 화산송(華山松)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계신잡지(癸辛雜識)》○ 신라의 송자는 필점국(畢占國)의
핵도인(核桃仁)과 같이 맛이 시다.
《완위여편(宛委餘編)》○ 해송자는 일명 신라송자(
新羅松子)라고도 한다.
《본초강목(本草綱目)》○ 고려의 송자는 처음 막 달렸을 때는
송방(松房)이라 하는데, 모양이 모과(木瓜)와 같으며, 푸르고 윤기가 나면서 단단하다. 그러다가 서리를 맞으면 이내 갈라지면서 열매가 비로소 여물며, 송방이 자색으로 된다. 그 나라의 풍속에는 이것을 비록 과실과 술안주와 국과 적[胾]에도 쓰기는 하지만, 많이 먹어서는 안 되니, 사람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구토가 나게 하기 때문이다.
《고려도경》○ 조선의 잣나무에는 두 종류가 있다. 열매를 맺는 것은 껍질이 그다지 거칠지 않으며, 솔잎이 위로 치켜 솟아 있다. 그 열매는 반드시 한 해가 지난 다음에야 딸 수가 있다. 경기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소나무가 있다.
《조선부 주》○ 해송자는, 중국 이외에서 나는 것에는 모두 해(海) 자를 붙이니, 해홍(海紅)과 같은 것이 그와 같은 것이다. 이 송자(松子)는 대부분 조선에서 왔는데, 과일로 먹는다. 씨앗을 뿌리면 자라나는 것이 가끔씩 있는데, 잣나무잎이 길어서 일본의 잣나무와는 크게 다르다. 그러나 열매를 맺는 것은 아주 드물다.
《화한삼재도회》함도(含桃)○ 고려의 과일에는 6월에 나는 함도라는 것이 있는데, 초(酢)와 같이 맛이 시다.
《고려도경》복숭아[桃]○ 신라의 복숭아는 먹을 수 있으며, 성질이 뜨겁다.
《농정전서(農政全書)》○ 동리(同里) 양창서 선생 호(楊滄嶼先生鎬)가 고려(高麗 조선을 가리킴)에 사신으로 가서
-살펴보건대, 양호(楊鎬)는 만력(萬曆) 연간에 경리사(經理使)로 우리나라에 나왔다.- 마노도(瑪瑙桃) 한 개를 얻었는데, 윗부분에는 단사(丹砂)와 같은 붉은 점이 7개 찍혀 있었다. 비단 보자기로 그것을 쌌으며, 보자기 위에는 7자를 수놓았는데, 거기에 이르기를,
“이 복숭아에는 원래 칠성이 나타나 있다.[此桃原現七星]” 하였다.
《균랑우필(筠廊偶筆)》개암[榛子]○ 신라의 개암은 통통하고 흰 것이 가장 좋다. 씨는 허기를 없애 주고, 속을 편안하게 하며, 식욕을 증진시키는 데 효험이 있다.
《제가본초(諸家本草)》오얏[李], 배[梨], 대추[棗], 능금[來禽], 외[瓜]○ 발해의 과일에는
환도(丸都)의 오얏과
악유(樂游)의 배가 있다.
《신당서》○ 고려의 과일에는 능금, 청리(靑李), 과(瓜)
-살펴보건대, 과의 속명은, 서과(西瓜)는 수박이고, 첨과(甜瓜)는 참외이다.-, 복숭아[桃], 배, 대추가 있는데, 맛이 별로 없고 형체가 작다.
《고려도경》귤(橘), 유자[柚], 감(柑)○ 고려의 무주(武州)에서는 귤과 유자가 생산된다.
《연번로속집(演繁露續集)》○ 조선의 과일로는 배, 대추, 개암이 가장 많아서 어딜 가나 있다. 감과 귤은 전라도에서 난다.
《조선부 주》곶감[柿餅], 은행[白果]○ 강희(康煕) 21년(1682, 숙종8) 3월에 성경(盛京)에 도착하니, 조선에서 곶감, 송자(松子), 은행, 밤을 진상하였다.
《강희어제문집(康煕御製文集)》 ○ 살펴보건대, 시병(柿餅)은 건시(乾柿)이고 백과(白果)는 은행(銀杏)이다.
첫댓글 복귀하시더니 좋은글을 또 이렇게 올려주시네요...
감사할 다름입니다...ㅡ. .ㅡ
정말 이것만은 생각을 못했네요. 다양한 조선사 연구의 결실(?)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조선사 연구에 특정인이 해야한다는 그런 "룰"은 존재할 수 없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포용"입니다. 그러나 모두들 문을 걸어 잠그고 특정인들만을 위해 문을 열기 때문에 조선사 연구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건강하세요.
이젠 텍스트를 하나씩 만들어 갈 떄도 돼었다고 봅니다.
저도 쉬는 김에...민정시찰차 딴 카페 마실좀 갔었는데...거기 쓴 글이 송악(松岳)은...숭산(嵩山)이란 글였는데...
오늘 문무님의 글도 같은 글이니...기가 통했나 봅니다...ㅡ. .ㅡ
문무님도 계속 건강하십시요.
정말 감탄 그 자체입니다!!!!!!!!....
저도 제 글들 보고 가끔씩...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답니더...
궐한님 !!!
잠깐 쉬시더니 에너지가 충전되셨나봅니다. 정말 대륙조선의 확실한 증거로서 손색이 없을것 같읍니다.
잣나무의 학명이 [Pinus koraiensis]였었군요... 코리아 소나무....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경기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소나무가 있다' 란 말인데요. 이 말 한마디로 현 섬서성 서안이 한양일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이네요..신강성이나 현 양자강가의 무한은 한양의 후보지에서 탈락시켜도 되지 않을까요..?
잘 보았읍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좋은 글 기다리겠읍니다.
격려 감사합니다 맑은영혼님...
제 생각의 조선 경기지역의 기준은...남경격인 한양이 중심이라기 보단...
전통적으론 송악이자 숭악(嵩岳)인..개봉부가 있던 개경(숭산 남단 등봉시)이 그 중심기준였다 봅니다.
더 원조는 동으로 옮겨진 장안이자 왕검성인 서안이고여...
서안(西安)은...조선사가 늘 이르던 북악이자 화산(華山)의 남단에 있단 기본을 벗어니니...
절대 조선의 한양자리가 아니라 봅니다...오로지 화산 남단의 한수(漢水)가 흐르는 한중(漢中)일대 어디가
조선의 원조 한양일 가능성 많으며...
무안이 계속 고지도에 한양으로 나옴도...한수의 동남하류가 동정호 북단(호북)의 현 무안일대니..
한양의 남쪽 행성이거나 원조 강화도인게...
청의 침략이후로 서북영토가 기련산으로 좁아지자...
코앞인 한중을 벗어나 강화도격인 현 무안으로 자꾸 이동하면서 무안이 후기의 한양이 돼지 않았을까 추정해 봅니다.
고지도들이 괸히 그리 한결같이 표기할 뭔가 이유있다 보거든여..
서안(西安)...
대륙조선의 영원한 성지이자...신장성 중동부와 감숙성 중심의 단군조선이 기자에게 밀려...
단군이 장당경으로 이주했단 동이들의 성지인 새로운 왕검성이 현 장안였다 보입니다.
중국(中國)인 기주(천산일대) 개념에선...해뜨는 동쪽의 조양(朝陽)개념이 서안이자 장안이고...
고려 송도인 숭산위치에서 볼땐...서경(西京)이니...
고려 4경의 하나인 서경의 자리는 서안이라 봅니다.
동경인 신라 경주는 현 강소성 남경정도...
남경은 화산남부의 원조 한양인 한중(漢中)정도 전 이리 추정합니다.
그리고 고려나 조선의 서경(西京)이라 하면...
연구가님들은 무조건 평양이라 하시는데...저도 그리 알았었는데...
자꾸 찾다보니...그건 아닐거란 짐작이 슬슬 듭니다.
고려와 조선의 원래부터의 서경(西京)은...
천산일대가 중심였던 원조단군조선의 동쪽 도성인 조양(朝陽)이자 왕검성인 현 섬서성 서안이고...
평양이란 그 더 서쪽의 백두산 주변 어느 자리니...감숙성을 거란이나 원나라에 빼앗끼지 않았을땐...
백두산이 천산이니..그 동쪽 언저리인 감숙성 주천등지가 원조 평양이고...
감숙성이 날라간 연후엔...백두산도 자연스레 현 기련산으로 옮겨지니...
그 남단의 청해성 부근 서녕시가 그 후보지라 생각됍니다.
동남으로 옮겨진 천산의 동남줄기인 현 기련산맥 여러 봉우리 중 하나가...
고려시기 평양성 주위의 그 묘향산이 있는 곳이며...고지도들에 가끔 그렇게 나오니...
그 밑의 청해호 청해성이 조선의 해주요 황해도고...
그 북단의 대통하 강가의 서녕시 등지가 고려의 평양 조건이라 봅니다.
이도 조선이 청에 께지면서 기련산이 반으로 날라가니....다시 동으로 옮겨...현 감숙성 최 동남단이 란주(蘭州_가...근세조선 후기의 서쪽 경계선인 평양이 돼고...
고려의 평양성이던 서녕시는 연경가는 산길에 있는 고려의 옛 평양인 서평양으로 불려졌다 보입니다.
청나라인들이 차지햇을 거라 봅니다.
제 생각으론 맑은영혼님이 전에 평양이라 하셨던 그 산서성 평요고성여...
거기가 조선이 북경으로 하고자 했던 함흥의 흥경 같은데....이도 청나라에게 날라가곤 청나라것이 돼지 않앗을까 싶습니다.
이슬람사원들이 많은 곳들은...조선이 후대에 청에 빼앗낀 자리들일 확률이 짙다 봅니다.
이 평요고성 주변인 오대산(五臺山)이 조선의 원조 오대산이며...
거긴 기황후가 불사를 거창하게 일으켰단 후기 원나라의 도교(항산)와 라마불교(운대산) 성지같습니다.
원나라가 기황후의 아들이 대칸이 돼니 못돼니로 내전으로 망할 무렵...
기황후나 아유시르다리를 옹호하던 군벌이...원조 명태조라 보이는...쿠쿠티무르에게 밀려 피신했단...
대동(大同)의 자리일까 싶습니다.
지명에도 거기 오대산지역 평요고성일대에 대동(大同)이 자꾸 나옵니다.
그게 현재는 천진일대로 옮겨지고여...
단군조선, 부여, 고구려 그리고 신라와 발해, 고려, 조선으로 이어진 우리 역사의 주 무대는, 처음부터 현 산서성 섬서 하남 하북 산동성등 현 중원 지방이란 생각입니다. 과거 단군조선의 영역이 신강성 천산일대로 보는 시각이 많으나 전 그리 생각치 읺습니다. 자연 환경이 큰 문명과 문화가 일어날 조건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거 수천년전에는 물도 많고 기후도 좋았을것이란것도 추정일뿐이요. 서(西)에서 동(東)으로 이동했다는것도 근거가 없읍니다.
처음부터(단군조선) 근세조선이 다하기까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핵심)은 현 중원 지방인 산서 섬서 하남 하북과 그 주변 일대란 생각입니다. 그곳에 백두산이 있고 백두산의 백(白)은 흰 돌인 백석(白石)이고 그 돌은 흰 옥돌(玉石)로 연행록에 연척(碝磩)일거란 생각입니다.
그 북경일대는...고구려의 동쪽이자...낙랑의 동쪽인 예맥과 동옥저...동예의 본거지라 보입니다.
이들이 진정한 동이(東夷)이자 치우천자의 청구국의 후손이고...
그건 또 초기단군조선이나 그 영토를 점령한 기자조선관 좀 구별됀다 보입니다
청(淸)의 실체를 어떻게 생각할것인가가 중요한것 같습니다. 병자호란 이전에는 현 서안이 중심지요, 호란 이후로는 북경이자 함흥인 현 산서성 중부가 중심일것입니다. 이성계와 이방원의 갈등 이후로 함흥에 사자를 보낸것이 사은사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읍니다. 태종의 아버지 땅이고 그 고향이니 상국으로 모셨던 것이죠. 청(淸)은 조선의 북방에서 일어난 반란이자 전쟁으로 한양과 북경을 동시에 접수하여 실권을 차지한 세력으로 생각합니다.
연행록에서, 현 서울부터 의주까지의 지명을 보면, 개성(개주),봉산(봉황산),청석동(골), 총수, 그리고 평양, 영원(평양 북동부), 곽주 그리고 의주로 이어저 있읍니다. 다시 압록강 건너서도 같은 지명이 반복됩니다. 즉 개주(開州),봉황산, 총수, 청석령, 영원성(원숭환과 청과의 전투),그리고 산해관, 계주, 북경의 순입니다. 산해관과 평양이 서로 다릅니다. 즉 산해관은 평양에 있어야 합니다. 요동의 평양설은 바로 산해관과 무관치 않을거란 생각입니다. 영원(寧遠)의 지명이 산해관 앞이냐 뒤냐의 차이는 있지만 분명 영원은 중요한 지명으로 제 추정상 산서에 있어야 하고, 그 근거는 인간(印簡)이란 스님의 프로필에 있읍니다.
한가지 한시대의 사서들만 보셔서 그럽니다.
해동역사를 보면...각 시대별로 지명의 오기가 발생한단 내용이 허다합니다.
말씀하신 개주(開州)도...원래는 요동의 서북에 인접한 지명인데...원래 개원(開原)이고...
그건 또 거란이 발해의 유민들을 요동근처로 옮겨와 살게 하면서 지명이 이동됀거로...원래의 개주는...
징기스칸이 발원한 영고탑지근방의 동쪽이랍니다.
현 하라호름(화림)근처란 얘기입니다.
지명은 음모자들이 고의로 왜곡한것이 많으나...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왜곡돼는 경우도 역사엔 허다하단 겁니다.
해동역사엔 또...개주(開州)란 요동서북으로 옮겨진 그 지명이 고려의 도성북쪽인 개주(開州)에 있음의 오류도 고려의 지명이동인것 같다 지적한 부분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이걸 저도 글로 옮기려고 했었는데...상대적으로 덜 급한거라 보류했던 겁니다.
그래 고지도에도 현 산서성 부근이 기(箕)로 표기돼는 것이지...현대의 왜곡이 아니란 겁니다.
고려가 이동시킨 겁니다.
그리고...발해에서 거란으로 옮겨진 개주(開州)는...원래 기주(箕州)이고....기자의 땅이며...
신주(神州)라 한 구절도 봤습니다.
원래 경기도는 거기였고...거기가 원래의 고조선 중국(中國)격인 옛 원조 압록강 서북의 땅인...
흉노들의 땅이란 곳입니다.
제 생각엔 후대의 연경이자 투르판입니다.
제 생각에 오환(烏桓)과 환인제국을 암시하는 환도성...그 환도성의 위치도 그 개주의 동쪽 근방이라 나오고여...
참 알수록 숨겨져있는 역사에 대한 의구심이 점점더 느네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하찮은 글을 읽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ㅡ. .ㅡ
한 가지 걱정은, 사서들마다 제각각인 것 같으면서도 진실은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확정한다>는 말은 가능하면 미뤄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조선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지금부터라고 해야 됩니다. 과거 선구자들이 이뤄 놓은 것과 또 잘잘못과 새로운 사실들의 발견, 연구하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것들을 모아 정리해가다 보면, 분명 좋은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따라서 미리 <확정적>으로 말해버리면, 후에 새로운 사실이 발견될 때, 난감해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때는 과거의 말이 거짓말이 되어버려 또 소동이 일어나는 일이 반복됩니다. 지금 "재야에서 조선사연구를 하는 분"들이 바로 이것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잘 압니다...현재의 확신으로 전달한 거고...그걸 저 스스로 바이블같이 텍스트로 만들진 않겟습니다.
언제든 더 정확하고 다른 연구결과가 나오면,,,제 주장은 바로 접을 준비는 됐습니다.
그게 공부하는 자세라 봅니다.
지금 시중에, 인터넷에 허다하게 "자신만만한 글과 주장"들이 난무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사실이 아닌 사실들을 진실인냥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것은 전후좌우의 여러가지 감안해야 할 것들을 무시한 채 한 가지 사실만을 갖고 논하는 것의 "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등은 결코 황제국이 될 수 없는 제후의 역사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조선사는 풀릴 수 없다는 것이 제 사견입니다. 만약 이들을 중원대륙의 황제국 위치로 보고 조선역사를 풀면, 조선은 영원히 "전하의 나라"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서와 유물유적으로 증명해 나가는 것이 조선사의 진실찾기입니다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보는게 제 주장입니다.
환국과 베달국 단군조선과 부여, 고구려 까지는 ...분명 천자국였는데...
그 뒤부터는 대부분은 아니란 추정이 저는 나오단 겁니다.
아직까진 제 생각엔 그렇단 것이지 확정도 아닙니다.
부여, 고구려도 시작부터 천자국이 아니고...숫한 역경을 격고나서 천자국 위치에 오른거라 보이고...
당,송,요,금.원,명,청..이 모두도...
첨부터 천자국도 아니요...마지막까지도 천자국은 아니였다 봅니다.
힘 없고 주변국이 인정 않하면...자기들이 지아무리 천자국이라 해도 그건 말로만이지...
실질적인 천자국은 바뀌어 버린게 과거나 현재나 마찬가지였다 봅니다.
제후가 천자국을 능가하는 국력을 갖고 있는 예도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이것은 국력의 성함에 따라 "천자나 황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주위의 많은 열국들이 인정할 때만이 가능하며 송나라 같은 경우는 원사에서 "송과 고려와 왜"의 요충지 땅에 "탐라"가 개 입빨처럼 물려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이치로 보면 "송"나라는 고려의 제후로써 밖에 그 이상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명나라 역시 고려의 황제에게 처분을 맡긴 것을 보면, 결코 황제국이 될 수 없으며, 청나라 역시 똑같은 경우입니다. 이러한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버리면 그 후의 연구는 아무리 좋은 방향으로 가고있다고 해도 전혀 엉뚱한 결과로 이어집니다.
북방의 흉노나 배달국...부여 ,북부여(고구려)...
이 나라들이 역사의 중국개념의 문자와 관료제도들만을 유일하게 사용했었겠냔 것도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천자를 한(칸)...에센칸...가한...선우...텡그리(당골)등으로 호칭한 나라들이
한자문명권의 천자제도에 연연했겠냔 것이요...
북방족들 개념에선...남방의 한자문명의 천자니 황제는...북방족들이 힘이 강력할땐
그저 자신들이 정복한 남방 속지인끼리의 일개 통치자들 호칭이니
관여할바 아녔을 수도 있단것도 감안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그들이 한자문명과 융합돼기 전까지는요...
자기들의 가한,에센칸,선우.텡그리만 참칭하지 않으면 초기엔 그냥 넘어갔다 봅니다.
좋은 정보내요. 어떤 정보를 보는 관자에 따라서 달리 해석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증거가 결정적으로 한반도도 조선의 영토다라는 명확한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조공무역의 경우 반드시 없는 것을 받치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별로 뛰어난 물건이
있기에 그것을 교류하는 것으로 압니다. 일예로 본피(한국 호피)가 으뜸이라 무역을 한
것이고 해마다 150두나 보냈다고 합니다. 한반도에서는 날 수 없는 양이죠. 해마다 그렇게잡
아대면 1년이면 호환소리는 전설이 될 겁니다. 무예도보통지에 보면 무기 재료들도 뛰어난
외국산을 무역해서 씁니다. 그처럼 잣나무도 확실한 물증을 만들려면 좀더 보강을 해야 할 듯
합니다
당연 한반도도 잣나무 나고...고려의 영역이겠져...
그러나 왕건고려의 직접통치를 받던 자리같진 않습니다.
한반도는 왕건고려와 발해해와의 등거리왜교로...많은 무역과 간접통치가 이뤄졌을 것이며...
그러지 않곤 왕건고려가 거의 한반도만의 특산물인 황칠(黃漆)을 몽골에 금과 같은 값으로 조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발해(대진국)도 고구려(고려)란 국명을 공식 사용했단 점이 한반도는 무었였냐의 답을 준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