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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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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조선사 일반 이야기 게시판 빼도박도 못할 대륙조선 증거...잣나무는 송나라,청나라엔 없었다.
궐한 추천 1 조회 2,050 13.11.01 13:39 댓글 3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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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11.01 15:06

    첫댓글 복귀하시더니 좋은글을 또 이렇게 올려주시네요...

  • 작성자 13.11.01 20:14

    감사할 다름입니다...ㅡ. .ㅡ

  • 13.11.01 16:18

    정말 이것만은 생각을 못했네요. 다양한 조선사 연구의 결실(?)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조선사 연구에 특정인이 해야한다는 그런 "룰"은 존재할 수 없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포용"입니다. 그러나 모두들 문을 걸어 잠그고 특정인들만을 위해 문을 열기 때문에 조선사 연구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건강하세요.

  • 작성자 13.11.01 20:18

    이젠 텍스트를 하나씩 만들어 갈 떄도 돼었다고 봅니다.
    저도 쉬는 김에...민정시찰차 딴 카페 마실좀 갔었는데...거기 쓴 글이 송악(松岳)은...숭산(嵩山)이란 글였는데...
    오늘 문무님의 글도 같은 글이니...기가 통했나 봅니다...ㅡ. .ㅡ
    문무님도 계속 건강하십시요.

  • 13.11.01 16:36

    정말 감탄 그 자체입니다!!!!!!!!....

  • 작성자 13.11.01 20:19

    저도 제 글들 보고 가끔씩...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답니더...

  • 13.11.01 19:33

    궐한님 !!!
    잠깐 쉬시더니 에너지가 충전되셨나봅니다. 정말 대륙조선의 확실한 증거로서 손색이 없을것 같읍니다.
    잣나무의 학명이 [Pinus koraiensis]였었군요... 코리아 소나무....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경기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소나무가 있다' 란 말인데요. 이 말 한마디로 현 섬서성 서안이 한양일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이네요..신강성이나 현 양자강가의 무한은 한양의 후보지에서 탈락시켜도 되지 않을까요..?
    잘 보았읍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좋은 글 기다리겠읍니다.

  • 작성자 13.11.01 20:57

    격려 감사합니다 맑은영혼님...
    제 생각의 조선 경기지역의 기준은...남경격인 한양이 중심이라기 보단...
    전통적으론 송악이자 숭악(嵩岳)인..개봉부가 있던 개경(숭산 남단 등봉시)이 그 중심기준였다 봅니다.
    더 원조는 동으로 옮겨진 장안이자 왕검성인 서안이고여...

  • 작성자 13.11.01 20:30

    서안(西安)은...조선사가 늘 이르던 북악이자 화산(華山)의 남단에 있단 기본을 벗어니니...
    절대 조선의 한양자리가 아니라 봅니다...오로지 화산 남단의 한수(漢水)가 흐르는 한중(漢中)일대 어디가
    조선의 원조 한양일 가능성 많으며...
    무안이 계속 고지도에 한양으로 나옴도...한수의 동남하류가 동정호 북단(호북)의 현 무안일대니..
    한양의 남쪽 행성이거나 원조 강화도인게...
    청의 침략이후로 서북영토가 기련산으로 좁아지자...
    코앞인 한중을 벗어나 강화도격인 현 무안으로 자꾸 이동하면서 무안이 후기의 한양이 돼지 않았을까 추정해 봅니다.
    고지도들이 괸히 그리 한결같이 표기할 뭔가 이유있다 보거든여..

  • 작성자 13.11.01 21:00

    서안(西安)...
    대륙조선의 영원한 성지이자...신장성 중동부와 감숙성 중심의 단군조선이 기자에게 밀려...
    단군이 장당경으로 이주했단 동이들의 성지인 새로운 왕검성이 현 장안였다 보입니다.
    중국(中國)인 기주(천산일대) 개념에선...해뜨는 동쪽의 조양(朝陽)개념이 서안이자 장안이고...
    고려 송도인 숭산위치에서 볼땐...서경(西京)이니...
    고려 4경의 하나인 서경의 자리는 서안이라 봅니다.
    동경인 신라 경주는 현 강소성 남경정도...
    남경은 화산남부의 원조 한양인 한중(漢中)정도 전 이리 추정합니다.

  • 작성자 13.11.01 20:50

    그리고 고려나 조선의 서경(西京)이라 하면...
    연구가님들은 무조건 평양이라 하시는데...저도 그리 알았었는데...
    자꾸 찾다보니...그건 아닐거란 짐작이 슬슬 듭니다.
    고려와 조선의 원래부터의 서경(西京)은...
    천산일대가 중심였던 원조단군조선의 동쪽 도성인 조양(朝陽)이자 왕검성인 현 섬서성 서안이고...
    평양이란 그 더 서쪽의 백두산 주변 어느 자리니...감숙성을 거란이나 원나라에 빼앗끼지 않았을땐...
    백두산이 천산이니..그 동쪽 언저리인 감숙성 주천등지가 원조 평양이고...
    감숙성이 날라간 연후엔...백두산도 자연스레 현 기련산으로 옮겨지니...
    그 남단의 청해성 부근 서녕시가 그 후보지라 생각됍니다.

  • 작성자 13.11.01 20:55

    동남으로 옮겨진 천산의 동남줄기인 현 기련산맥 여러 봉우리 중 하나가...
    고려시기 평양성 주위의 그 묘향산이 있는 곳이며...고지도들에 가끔 그렇게 나오니...
    그 밑의 청해호 청해성이 조선의 해주요 황해도고...
    그 북단의 대통하 강가의 서녕시 등지가 고려의 평양 조건이라 봅니다.
    이도 조선이 청에 께지면서 기련산이 반으로 날라가니....다시 동으로 옮겨...현 감숙성 최 동남단이 란주(蘭州_가...근세조선 후기의 서쪽 경계선인 평양이 돼고...
    고려의 평양성이던 서녕시는 연경가는 산길에 있는 고려의 옛 평양인 서평양으로 불려졌다 보입니다.
    청나라인들이 차지햇을 거라 봅니다.

  • 작성자 13.11.01 21:06

    제 생각으론 맑은영혼님이 전에 평양이라 하셨던 그 산서성 평요고성여...
    거기가 조선이 북경으로 하고자 했던 함흥의 흥경 같은데....이도 청나라에게 날라가곤 청나라것이 돼지 않앗을까 싶습니다.
    이슬람사원들이 많은 곳들은...조선이 후대에 청에 빼앗낀 자리들일 확률이 짙다 봅니다.

  • 작성자 13.11.01 21:14

    이 평요고성 주변인 오대산(五臺山)이 조선의 원조 오대산이며...
    거긴 기황후가 불사를 거창하게 일으켰단 후기 원나라의 도교(항산)와 라마불교(운대산) 성지같습니다.
    원나라가 기황후의 아들이 대칸이 돼니 못돼니로 내전으로 망할 무렵...
    기황후나 아유시르다리를 옹호하던 군벌이...원조 명태조라 보이는...쿠쿠티무르에게 밀려 피신했단...
    대동(大同)의 자리일까 싶습니다.
    지명에도 거기 오대산지역 평요고성일대에 대동(大同)이 자꾸 나옵니다.
    그게 현재는 천진일대로 옮겨지고여...

  • 13.11.01 21:32

    단군조선, 부여, 고구려 그리고 신라와 발해, 고려, 조선으로 이어진 우리 역사의 주 무대는, 처음부터 현 산서성 섬서 하남 하북 산동성등 현 중원 지방이란 생각입니다. 과거 단군조선의 영역이 신강성 천산일대로 보는 시각이 많으나 전 그리 생각치 읺습니다. 자연 환경이 큰 문명과 문화가 일어날 조건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거 수천년전에는 물도 많고 기후도 좋았을것이란것도 추정일뿐이요. 서(西)에서 동(東)으로 이동했다는것도 근거가 없읍니다.

  • 13.11.01 21:45

    처음부터(단군조선) 근세조선이 다하기까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핵심)은 현 중원 지방인 산서 섬서 하남 하북과 그 주변 일대란 생각입니다. 그곳에 백두산이 있고 백두산의 백(白)은 흰 돌인 백석(白石)이고 그 돌은 흰 옥돌(玉石)로 연행록에 연척(碝磩)일거란 생각입니다.

  • 작성자 13.11.01 21:53

    그 북경일대는...고구려의 동쪽이자...낙랑의 동쪽인 예맥과 동옥저...동예의 본거지라 보입니다.
    이들이 진정한 동이(東夷)이자 치우천자의 청구국의 후손이고...
    그건 또 초기단군조선이나 그 영토를 점령한 기자조선관 좀 구별됀다 보입니다

  • 13.11.01 22:01

    청(淸)의 실체를 어떻게 생각할것인가가 중요한것 같습니다. 병자호란 이전에는 현 서안이 중심지요, 호란 이후로는 북경이자 함흥인 현 산서성 중부가 중심일것입니다. 이성계와 이방원의 갈등 이후로 함흥에 사자를 보낸것이 사은사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읍니다. 태종의 아버지 땅이고 그 고향이니 상국으로 모셨던 것이죠. 청(淸)은 조선의 북방에서 일어난 반란이자 전쟁으로 한양과 북경을 동시에 접수하여 실권을 차지한 세력으로 생각합니다.

  • 13.11.01 22:29

    연행록에서, 현 서울부터 의주까지의 지명을 보면, 개성(개주),봉산(봉황산),청석동(골), 총수, 그리고 평양, 영원(평양 북동부), 곽주 그리고 의주로 이어저 있읍니다. 다시 압록강 건너서도 같은 지명이 반복됩니다. 즉 개주(開州),봉황산, 총수, 청석령, 영원성(원숭환과 청과의 전투),그리고 산해관, 계주, 북경의 순입니다. 산해관과 평양이 서로 다릅니다. 즉 산해관은 평양에 있어야 합니다. 요동의 평양설은 바로 산해관과 무관치 않을거란 생각입니다. 영원(寧遠)의 지명이 산해관 앞이냐 뒤냐의 차이는 있지만 분명 영원은 중요한 지명으로 제 추정상 산서에 있어야 하고, 그 근거는 인간(印簡)이란 스님의 프로필에 있읍니다.

  • 작성자 13.11.01 23:36

    한가지 한시대의 사서들만 보셔서 그럽니다.
    해동역사를 보면...각 시대별로 지명의 오기가 발생한단 내용이 허다합니다.
    말씀하신 개주(開州)도...원래는 요동의 서북에 인접한 지명인데...원래 개원(開原)이고...
    그건 또 거란이 발해의 유민들을 요동근처로 옮겨와 살게 하면서 지명이 이동됀거로...원래의 개주는...
    징기스칸이 발원한 영고탑지근방의 동쪽이랍니다.
    현 하라호름(화림)근처란 얘기입니다.
    지명은 음모자들이 고의로 왜곡한것이 많으나...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왜곡돼는 경우도 역사엔 허다하단 겁니다.

  • 작성자 13.11.01 23:55

    해동역사엔 또...개주(開州)란 요동서북으로 옮겨진 그 지명이 고려의 도성북쪽인 개주(開州)에 있음의 오류도 고려의 지명이동인것 같다 지적한 부분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이걸 저도 글로 옮기려고 했었는데...상대적으로 덜 급한거라 보류했던 겁니다.
    그래 고지도에도 현 산서성 부근이 기(箕)로 표기돼는 것이지...현대의 왜곡이 아니란 겁니다.
    고려가 이동시킨 겁니다.

  • 작성자 13.11.01 23:44

    그리고...발해에서 거란으로 옮겨진 개주(開州)는...원래 기주(箕州)이고....기자의 땅이며...
    신주(神州)라 한 구절도 봤습니다.
    원래 경기도는 거기였고...거기가 원래의 고조선 중국(中國)격인 옛 원조 압록강 서북의 땅인...
    흉노들의 땅이란 곳입니다.
    제 생각엔 후대의 연경이자 투르판입니다.
    제 생각에 오환(烏桓)과 환인제국을 암시하는 환도성...그 환도성의 위치도 그 개주의 동쪽 근방이라 나오고여...

  • 13.11.01 23:33

    참 알수록 숨겨져있는 역사에 대한 의구심이 점점더 느네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 작성자 13.11.01 23:37

    하찮은 글을 읽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ㅡ. .ㅡ

  • 13.11.02 12:33

    한 가지 걱정은, 사서들마다 제각각인 것 같으면서도 진실은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확정한다>는 말은 가능하면 미뤄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조선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지금부터라고 해야 됩니다. 과거 선구자들이 이뤄 놓은 것과 또 잘잘못과 새로운 사실들의 발견, 연구하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것들을 모아 정리해가다 보면, 분명 좋은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따라서 미리 <확정적>으로 말해버리면, 후에 새로운 사실이 발견될 때, 난감해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때는 과거의 말이 거짓말이 되어버려 또 소동이 일어나는 일이 반복됩니다. 지금 "재야에서 조선사연구를 하는 분"들이 바로 이것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 작성자 13.11.02 19:51

    잘 압니다...현재의 확신으로 전달한 거고...그걸 저 스스로 바이블같이 텍스트로 만들진 않겟습니다.
    언제든 더 정확하고 다른 연구결과가 나오면,,,제 주장은 바로 접을 준비는 됐습니다.
    그게 공부하는 자세라 봅니다.

  • 13.11.02 12:40

    지금 시중에, 인터넷에 허다하게 "자신만만한 글과 주장"들이 난무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사실이 아닌 사실들을 진실인냥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것은 전후좌우의 여러가지 감안해야 할 것들을 무시한 채 한 가지 사실만을 갖고 논하는 것의 "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등은 결코 황제국이 될 수 없는 제후의 역사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조선사는 풀릴 수 없다는 것이 제 사견입니다. 만약 이들을 중원대륙의 황제국 위치로 보고 조선역사를 풀면, 조선은 영원히 "전하의 나라"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서와 유물유적으로 증명해 나가는 것이 조선사의 진실찾기입니다

  • 작성자 13.11.02 19:57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보는게 제 주장입니다.
    환국과 베달국 단군조선과 부여, 고구려 까지는 ...분명 천자국였는데...
    그 뒤부터는 대부분은 아니란 추정이 저는 나오단 겁니다.
    아직까진 제 생각엔 그렇단 것이지 확정도 아닙니다.
    부여, 고구려도 시작부터 천자국이 아니고...숫한 역경을 격고나서 천자국 위치에 오른거라 보이고...
    당,송,요,금.원,명,청..이 모두도...
    첨부터 천자국도 아니요...마지막까지도 천자국은 아니였다 봅니다.
    힘 없고 주변국이 인정 않하면...자기들이 지아무리 천자국이라 해도 그건 말로만이지...
    실질적인 천자국은 바뀌어 버린게 과거나 현재나 마찬가지였다 봅니다.

  • 13.11.02 12:51

    제후가 천자국을 능가하는 국력을 갖고 있는 예도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이것은 국력의 성함에 따라 "천자나 황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주위의 많은 열국들이 인정할 때만이 가능하며 송나라 같은 경우는 원사에서 "송과 고려와 왜"의 요충지 땅에 "탐라"가 개 입빨처럼 물려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이치로 보면 "송"나라는 고려의 제후로써 밖에 그 이상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명나라 역시 고려의 황제에게 처분을 맡긴 것을 보면, 결코 황제국이 될 수 없으며, 청나라 역시 똑같은 경우입니다. 이러한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버리면 그 후의 연구는 아무리 좋은 방향으로 가고있다고 해도 전혀 엉뚱한 결과로 이어집니다.

  • 작성자 13.11.02 20:11


    북방의 흉노나 배달국...부여 ,북부여(고구려)...
    이 나라들이 역사의 중국개념의 문자와 관료제도들만을 유일하게 사용했었겠냔 것도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천자를 한(칸)...에센칸...가한...선우...텡그리(당골)등으로 호칭한 나라들이
    한자문명권의 천자제도에 연연했겠냔 것이요...
    북방족들 개념에선...남방의 한자문명의 천자니 황제는...북방족들이 힘이 강력할땐
    그저 자신들이 정복한 남방 속지인끼리의 일개 통치자들 호칭이니
    관여할바 아녔을 수도 있단것도 감안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그들이 한자문명과 융합돼기 전까지는요...
    자기들의 가한,에센칸,선우.텡그리만 참칭하지 않으면 초기엔 그냥 넘어갔다 봅니다.

  • 13.11.04 22:08

    좋은 정보내요. 어떤 정보를 보는 관자에 따라서 달리 해석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증거가 결정적으로 한반도도 조선의 영토다라는 명확한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조공무역의 경우 반드시 없는 것을 받치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별로 뛰어난 물건이
    있기에 그것을 교류하는 것으로 압니다. 일예로 본피(한국 호피)가 으뜸이라 무역을 한
    것이고 해마다 150두나 보냈다고 합니다. 한반도에서는 날 수 없는 양이죠. 해마다 그렇게잡
    아대면 1년이면 호환소리는 전설이 될 겁니다. 무예도보통지에 보면 무기 재료들도 뛰어난
    외국산을 무역해서 씁니다. 그처럼 잣나무도 확실한 물증을 만들려면 좀더 보강을 해야 할 듯
    합니다

  • 작성자 13.11.07 02:16

    당연 한반도도 잣나무 나고...고려의 영역이겠져...
    그러나 왕건고려의 직접통치를 받던 자리같진 않습니다.
    한반도는 왕건고려와 발해해와의 등거리왜교로...많은 무역과 간접통치가 이뤄졌을 것이며...
    그러지 않곤 왕건고려가 거의 한반도만의 특산물인 황칠(黃漆)을 몽골에 금과 같은 값으로 조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발해(대진국)도 고구려(고려)란 국명을 공식 사용했단 점이 한반도는 무었였냐의 답을 준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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