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은행이나 등등에 진 빚이 모두 사라져서 원점으로 돌아간 세상이 온다고하면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은행에 갈까요? 은행에가서 무엇을 하실려고요? 돈 빌리러 가시겠죠. 그렇게 못되게 살면 안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어떤사람은 은행에 5천만원 빚을 졌고, 어떤사람은 5억을 빚을 졌습니다.
그런데 두사람 모두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 이 주인이 두사람의 빚을 모두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5천만원 빚진 사람도 없는 것으로, 5억을 빚진사람도 없는 것으로 해주었습니다,.
그러면 이 둘중에 어떤 사람이 더 감사했을까요?
5천이에요, 아니면 5억이에요?
5억입니까? 그러면 5천을 빚진 사람은 감사하지 않을까요?
“아이.. 이럴줄 알았으면, 한 1억이나 4억을 빚지는건데..” 라면서 5천을 빌린 사람의 마음속에는 화가날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이런 마음이 있지요?
내가 만약에 5천만원을 빌린 사람이라면 감사하겠습니까? 그때부터 마음속에 후회가...
“이럴줄 알았더라면 내가 5억을 빌리는건데..!”
이 5천을 빌린사람에게는 감사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원래 용서는 누가 더 많이 받았습니까? 5천입니까, 5억입니까?
오늘 여러분 성경을 다시 보시면, 지난주의 본문을 이어서하는것입니다.
어떤 바리새인이 자기 집에 예수님을 초대 했습니다. 그래서 식사를 하려고 앉아 있는데,
<첫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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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정말로 선지자라면, 이 여자가 죄인인 것을 알텐데, 이것 지금 모르는 것 같지요? 그러니까 앞에 계신 예수님이진짜 선지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첫 번째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수님을 청한 바리새인은 예수님이 들어왔을 때에 죄인여자가 함께 들어왔고, 이 죄인여자가 예수님의발에 자신이 일평생 모아 왔던 향유를 뿌려대고 있습니다.
이 멋진 모습을 보면서, 바리새인은 무엇을 보고있습니까?
향유를 붓는 한 여인의 눈물을 보고있습니까?, 이 여인이 죄인이라는 것을 보고 있습니까?
이 바리새인은 사람을 볼때에 죄인이 보였습니다. 이 사람의 눈이라는 것이 참 무서운 것입니다.
이 여인은 그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눈물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눈물이 뚝뚝뚝뚝 떨어집니다. 그 눈물을 보지 못하고 이 사람이 누구이며, 어떤자인지.. 다시 말해서, ‘얼마나 더러운 여자인지?’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여행복에의 초대 10번째입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행복해 지려고 하면 무엇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남편들을 세워놓고 보면, 이쁜데가 많아요, 미운데가 많아요?
내속에 보는 눈이..
똑같은 여자 한사람이 예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있는데, 이 바리새인의 마음에 죄가 많으니까 이 여자를 나쁜 사람으로 보입니다. 결국은 내 가슴에 따뜻한게 없고 얼음만 들었다는것입니다. 내 가슴속에는 뜨거운 심장이 뛰고 있어야 하는데 내 가슴의 심장이 얼음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오늘 이 바리새인의 마음속에는 얼음만 들었어요. 그래서 이 여인의 눈물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참 아름다운 여자입니다. 왜요? 누구든지 나를 보고 욕하는거 알겠지요. 그런데 이런 훌륭한 사람인 바리새인의 집에가면 욕먹을꺼 뻔히 알잖아요. 이런 여자는 밤에 정육점 불이 반짝반짝 하는데에 가면 인기가 많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여자는 빛가운데로 가서 눈물을 뿌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발을 붙들고, 하나님의 앞에서 눈물을 뿌리면서 기도하고있는 모습입니다. 눈물을 뿌려서 기도하지 못하는 목사보다, 교회에 나올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창녀가 하나님 앞에는 더 아름다울지도 모릅니다. 더 훌륭할 지도 모릅니다.
이 눈물을 가진 사람, 이 여인의 마음에는 예수님을 만난 감격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이 여인이 향유를 부을때에 가롯유다가 그 여인에 호통칩니다. 사람들은 향유를 붓는 것이 낭비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 사람에겐 감격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이 여자는 죄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난 감격 때문에 은혜에 깊이 들어간 여자입니다.
44절
시몬이 원래 봤습니까, 안봤습니까? 봤습니다.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않았는데, 이 여인은 내 머리에 향유를 붓고 있다. 이 여자는 바보 입니까? 왜그랬을 까요? 왜 눈물로 이렇게 감격하고 있을까요?
이 여자는 용서받은 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삶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참된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 앞에 내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을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되어서 들어갔고, 그 초대되기를 거부 하지 않으셨습니다. 똑같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누가 50을 빚진사람이고, 누가 500을 빚진 사람일까요?
500이나 빚진 사람은 이 여자같고, 50빚진 사람은 바리새인같고...
그런데 저는 누가 더 많이 빚졌는데 용서를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받은 은혜 때문에 향유를 부으면서 감사하는 사람이 있고, “이왕 이렇게 될거였으면 좀 더 많이 빌렸을텐데..” 누가 더 많이 주인을 사랑해야 할까요? 둘다 똑같이 사랑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자신의 100%를 다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가끔씩보면 그런사람이 있잖아요. 이게 지금 50데나리온 빚진자와 500데나리온 빚진자의 차이입니다.
늘 불평할 것만 찾아내면 너무너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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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절 처음에 보면, 마음에 이르기를..! 이 사람이 이여자가 나쁜여잘s눈
우리 지금 황우석아저씨때문에 난리가 되었는데, 먼저 과학은 연구실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속에서 먼저 합니다.
머릿속에서 나무 판자에다가 기둥을 박는 것!
원래 과학은 상상입니다. 상상에서 무언가 먼저하고,
그래서 이해하십시오. 내 아내가 좀 실수를 했다 하더라도 이해하십시오. 내 남편이 좀 잘못했다 하더라도 이해하십시오.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우리가 죄를 갚을 길이 없기 때문에 용서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 엎어 버렸으면 누가그것을 치워야 합니까? 내가 저질러 놓으면 그것 내가 다시 정리 해두어야 합니가 내가 한번 실수 할 수 있습니다. 거기 내가 한편 책임져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 값을 내가 치러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중간 10~49살 까지의 그 기간이 그에게 다시 주어진 나. 향유를 붓는 이 여인처럼 섰다면,
“하나님의 좋은 뜻이 있겟지요” 라고 이야기 하지만, 더 좋은 뜻은 없습니다. 차선책이 있
을 뿐입니다.
이번에 대입고사 발표가 났는데, 못본 아이들에게 “아들아 그래도 다음번에 하나님의 더 노==hgds=
다시 또 만회하는 기회가 생기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ㄴ은 백성에게 지옥가는 것은 하나님이 떨어진 백성입니다. 축구에 있어서 그런게 있지요. 초반에 가가지고, 5분만에 골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게임이 잘 풀립니까? 맞습니다. 초반부터 게임이 잘 풀리면 전바전 잘 뛰고 후반전도 열심히 뛰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