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듬해 빚내어 집을 사서는 임대를 주고, 십 여년 넘게 전세로 전전하다가, 새 천년 여름에 이제는 우리집에서 살자 하여 작은집 팔고, 전세금 보태고 하여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했었다. 이제는 이사하지 말자고, 장롱도 붙박이로, 침대로 넓고 좋은 것으로, 그리고, 애들 방도 모두 붙박이로 꾸며서 들어가면서, 지긋지긋한 이사도 끝이려니 생각했었다. 돌이켜 보건대, 회사 입사이래 연중행사로 이사 다니고, 결혼 후 사는 집도 2년에 한번 꼴로 이사를 다녔으니 이사에 이력이 날 만도 하건만, 이사만큼 사람 진 빼는 것이 없다. 가진 게 별로 없으니 웬만한 것은 남 시키지 않고 하려하니 더욱 그런 모양이다.
살다 보면, 그렇게 세상살이가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 이제는 이사 안 다녀도 되겠지 했던 기대가 겨우 3년도 못되어 또다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과정이야 어렵게 결정되었지만, 일단 이사하기로 작정을 하니 옛날처럼 뭐 며칠 고생하면 되지 하고 시작했는데 그 며칠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역사였다.
옛날에는 이사를 한다면, 형제들은 물론이고 회사 직원까지 와서 도와주고 그랬는데, 요즘은 회사 직원들은 고사하고, 이사한다고 바쁘게 살고 있는 형님들한테도 도움을 청할 처지가 못 된다(총각 때는 사촌형 이사 짐도 날라준 적이 있다). 그나마, 이사당일에 처제네 식구들이 와서 큰 힘이 되어주니, 역시 형제밖에 없다는 어부인과 장모님 말씀을 들으며, 장모님이 여기 계시니 온 것이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그래도, 나는 주중이면 회사 사택에 머무는 핑계로 주말에만 집안일에 관여를 하니, 이사결정에서 계약, 그리고, 모든 이사관련업무를 어부인이 전담하다시피 하였고 나는 그저 이사기간 노동을 제공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하루휴가 내어 정리에 힘 보태고는 이렇게 회사 나와 편히(?) 앉아 있으니 어부인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이사날짜를 토요일로 잡고, 며칠 전부터 어부인은 새집으로 그릇이며, 화분 같은 부피는 많이 나가고 위로 쌓기 어려운 것들은 미리 날라다 놓고, 짐도 싸느라 날밤을 새우고 했다는데, 회사에 매인 나는 목요일 날 새벽까지 전화회의에 매달리느라 잠도 제대로 못자고, 금요일에 오전근무만 하고 퇴근하여 본격적으로 짐을 싸기 시작 하였다. 웬만하면 포장이사 하라고 얘기해도, 노는 손 두었다가 뭐하냐며 일반이사를 한다고 하였을 땐 이번 이사로 또 녹초가 되겠구나 생각하며 아득했었다. 틈틈이 짐 싸서 날라다가 놓은 짐이 큰 트럭 한 대분은 된다고 하니, 사실 짐 쌀 일도 별로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자정이 넘도록 끝이 없는 이사 짐 싸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토요일에 7시부터 짐을 내리겠다는 이사 짐 센터의 말이 있어 새벽부터 일어나야겠기에 한시쯤 자리에 누웠는데 창틀을 뒤 흔드는 바람소리가 요란하다. 예보로 오전에는 비가 내리고 오후에는 바람이 많이 불 거라 하여 걱정을 하며 눈을 붙였다. 새벽녘, 거센 비바람 소리에 잠이 깨었는데, 여섯시에 눈을 뜨니 고요하다. 하느님이 그래도 이사는 하게 해 주시나 보다 하며 일어나 하늘을 보니 파란하늘에 구름이 반반이다. 베란다 문을 여니, 날씨는 춥지 않은데 바람이 있다. 대충 아침을 먹고 일을 보고 나자 이사짐 센터 직원들이 바람이 어쩌고 궁시렁 거리며 들어온다. 붙박이 장을 해체하고, 냉장고에 남아있는 반찬류등을 부지런히 담고 있는데, 사다리차가 바람이 거세어서 올라올 수가 없다며 난감해 한다. 전문가들이 나서고, 곤돌라가 어쩌고 한동안 위 아래 연락 하더니, 오늘은 도저히 안되겠다고 한다. 흐미, 이사란 게, 연결 지어 순차적으로 이동하게 되 있는데, 우리집으로 이사 오기로 한 사람은 대전에서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이제 와서 하루 연기하면 어쩌란 말이냐…. 대전에 전화하고, 대전은 또 그 집으로 이사 올 사람한테 전화하고, 그 사람은 또 전화하고,,,,결국은 우리집은 연기하고, 대전집은 서울 와서 짐을 보관소에 맡기기로 하여 집이 아닌 창고에서 하루 대기를 하기로 하였다.
모든 문명의 이기들이 전기로부터 차단되고 포장된, 누우면 깔고 덮을 이불과 베게도 없는 아파트에서의 하루는 그야말로 적막 강산이다. 장모님은 냉장고에서 꺼냈던 반찬류들 다시 일일이 꺼내어 집어넣느라 바쁜데, 하릴없는 나는 안방 한구석을 다시 걸레질하여 누울 자리 마련하고, 하강 대기중이던 텔레비전 가져 다가 코드 꽂고 안테나선 연결하니 그나마 문명의 소리가 있어 좀 나았다. 딱딱한 바닥이지만, 팔 베게 하고 어제오후와 새벽에 쌓인 피로도 풀자하며 누우니 졸음도 몰려왔다.
허탈하게 뒹굴다가 라면과 튀김 닭으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웬 가구점 사람이 와서 짐 내리라고 떠든다. 이정도 바람에 이사를 못하면 어쩌냐며 베테랑 기사가 사다리를 가져왔으니 시작하자고 한다. 10년경력의 고층사다리 기사는 바람불어 취소된 집의 이사담당 전문이라며 호언 장담을 한다. 모든게 틀어져 답답했는데, 무슨 구세주라도 만난 격이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사 올 집에서 가구를 새로 맞추었는데, 이사짐 오기 전에 미리 가구를 셋팅 한다고 고층사다리 기사 대동하고 왔는데, 나가야 할 이사짐이 하나도 못 내려갔으니 기가 막혔던 모양이다. 부랴부랴, 센터에 전화를 하니 그러냐고 하면서 사다리 기사 빼고 사람들을 곧 보낸다고 한다.
18층에서 바라다보는 지면은 까마득한데, 윙 하며 올라오는 거대한 사다리의 위용은 대단하다. 바닥에서 50여 미터를 수직으로 올라오더니 비스듬히 누워 딸애 방 창문 틀에 머리를 걸친다. 불안하여 손으로 움직여보니, 그것은 거대한 다리처럼 꿈쩍을 않는다. 그려, 이렇게 문제가 없거늘, 그 친구들은 초짜들이라 그런 모양이다….. 가구점 친구는 시간이 금이라 빨리 안 온다고 성화이고, 한번 간 친구들은 다시 모여 오는데 시간이 걸려서 둘 간에 시비도 붙고 그러더니 오후 두시쯤 되어 세 명중 두 명이 도착하였다. 책임자가 그래도 전문가에 속하는데, 다른데 용달 배달 갔다 오느라고 좀 늦는다고 했다.
많이 늦었는데, 기왕 시작했으니 서두른다며 도착하자마자 짐을 내리는데, 짐이 줄어 드는게 확 눈에 띄게 금방 짐이 내려간다. 과거 곤돌라에서 사다리차로 아파트 이사방법이 바뀐 이래, 짐 내리고 올리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 들었을 거라 생각하며 그저 하릴없이 왔다 갔다 짐 부리는 것을 구경하였다. 장모님이 냉장고에 집어 넣었던 반찬이며 양념들을 다시 꺼내어 바구니에 담아 부지런히 실어 보냈는데, 갑자기 와장창 하는 소리가 들리며 놀라는 소리가 들린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보니, 아뿔사, 사다리 상단부에 카트가 비스듬히 누워있고, 저 아래 탑차와 사다리차 위에 풍비박산난 이사 짐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가늠해보니 15층 정도에서 쏟아져 내린듯하니, 그 충격이 대단했을 터이다.
부지런히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 보니, 주변이 아수라장이다. 일단, 사람피해는 전혀 없음이 천행이다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각종 주방기기들(주로 스테인레스류들), 일부 소형가전제품, 그리고는 고추장, 고추 가루, 참기름, 젓갈류, 김치…… 충격이 얼마나 컷던지 유리와 프라스틱 부품들은 조각조각 깨져있고, 그 단단한 후라이팬 등이 처참하게 구겨져있다. 사다리차 기사는 넋을 잃고 허공에 매달린 카트를 쳐다보고, 이사짐 직원들은 움푹 들어간 탑차 지붕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허겁지겁 따라 내려온 어부인은 어쩔 줄 몰라 하고, 장모님은 사람 안 다쳐 다행이라 하시더니, 쏟아진 물건들을 보고는 가슴아파 하신다. 그저 반찬이고 양념처럼 보이는 것들 하나 하나가 광천 가서 새우젓 사오고, 소사인가 가셔서 종일 기다려 겨우 사다가 담근 젓갈도 그렇고, 고추장이며 김치며 그것들에 쏟아 부은 정성이 얼마인데….(실제, 저녁에는 많이 우셨다.)
정신을 차리고, 카메라 가져다 현장 사진 찍어놓고, 어부인 보고 일일이 품목을 기록하여 그 금액을 대충 계산하라 하고는 정리를 하는데, 깨지고 부서진 물건들은 한군데 모아두었지만, 음식물들은 아스팔트에 흥건이 퍼져있어 냄새가 고소하고 매콤하니 빨리 치워야 하겠기에 경비아저씨랑 물 청소하여 쓸어버리니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다.
뒤늦게 나타난 책임자 격인 친구가 다짜고짜 성질부터 낸다. 이런 일 벌어질 까봐 오늘 못한다고 했잖유…… 한쪽은 바람이 원인이라 하고, 한쪽은 짐을 한쪽으로 편심 되게 실어서 그렇다고 싸운다. 바람은 좀 셌지만, 떨어진 물건이 수직 낙하를 한 것을 보면 사다리 기사말이 맞아 보이지만, 짐이 편심 되었다 쳐도 결국은 바람이 원인을 제공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연신 핸드폰 들고 한시간 넘게 논의하더니, 똑 같은 사다리차가 한대 더 오고, 이사짐 센터 직원들은 내일 오겠다며 철수를 한다. 왕왕대던 가구점 친구는 슬며시 사라지고, 큰소리 치던 사다리차 기사는 우선 중간에 매달린 카트를 끌어 내리느라 새로운 친구와 두어 시간을 씨름 하다가 겨우 끊어버리고는 수리비만 3천 여 만원 깨졌다고 시무룩해 한다. 대전에서는 두차 가득 짐을 싣고 와서는 아연실색….(안 오려다가 가구점 친구가 빨리 오라고 연락을 했다나….)
그래서 이사는 하루 연기가 되고, 새로 이사 올 사람들한테 짐도 다 못 내린 우리집을 인계하고는 이불 보따리 하나 싣고 새집으로 가서 온 식구가 새우잠을 잤다. 새집에 가는 길도 어찌 그리 먼지, 학원 갔던 아들녀석 기다리느라 두어 시간 허비하고는 찾아 나서서 보니 마지막이라고 체육학원에 가서는 친구들이랑 농구 하다가 삐끗하여 발목 인대가 늘어났다며 절룩거리고, 새집 주인에게 잔금 치르러 갔다가 비어있었던 한달 보름간의 아파트관리비를 누가 낼 것인가 하며 또 두어 시간을 씨름 하다가 썰렁한 새집으로 열시 넘어 들어갔다. 가스도 없고, 주방기기도 없고, 냉장고도 없는 집에, 어제가 어부인 생일이었지만 경황이 없어 미역국도 못 먹었다고 그나마 처제가 끓여온 미역국과 불고기, 그리고 부랴부랴 사온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전부였으니, 그야말로 피난민이 따로 없다.
새집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새우잠을 자면서도 피곤에 절어 곯아 떨어졌고, 새벽녘 창 밖이 밝아오매 눈을 뜨니 역시 오늘도 세상은 고요하다. 베란다 문을 열어보니, 세상에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바람기 하나 없는 고요한 봄날의 아침 같다. 그래, 이사는 이런 날 하는 것인데…..일요일에 이사하자 했는데 이사 올 사람들이 주일은 꼭 쉬어야 한다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토요일에 한 것이 화근 이었다는 둥….
부지런히 아침 때우고 사당동으로 달려가면서 미련을 버리자 했다. 어차피 부서진 주방 물품들 거개가 오래된 것들이니 이번기회에 새것 장만하라는 배려라 생각하고, 음식들도 새집에서는 새로 만들어 먹으라는 말씀인가보다 하며 아쉬움을 접자고 하니 마음이 많이 좋아진 듯 보였다(이후에 우리는 부서진 것들을 하나하나 생각날 때마다 녀석이 낡은 것이 미안해서 자살했다는 자살설로 웃음을 찾았다. 손해배상도 처음엔 어렵게 얘기가 진행되다가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여 깨끗하게 처리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이사도 일요일 오후 늦께 겨우 다 도착하였고, 짐 정리는 그로부터 월요일까지 하였는데도 도무지 끝이 안보였다. 이사를 하면서 두 평이나 줄어든 집으로 갔으니 그런지 더더욱 정리가 안 되는 기분이었다. 월요일 내내 각종 문명의 이기들이 제자리에서 역할을 하도록, 연결하고, 정리하고, 테스트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러고는 온갖 짐들의 마무리는 어부인과 장모님 몫으로 남겨놓고 출근을 하니, 하루종일 편히 앉아 있다는 자체가 한편으로는 쉼이요,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크다.
이사는 순리대로 해야 하는데, 무리하여 커다란 낭패를 보았기에, 이사하며 생겼던 일들을 길게 써 보았다. 이사는 좋은 날 골라 무리하지 맙시다.
요즘은 포장 이사를 해도 다시 정리하는데 며칠씩 걸리지.....포장도 아닌 일반 이사를 하였으니, 짐 정리 하는데, 한달은 걸릴것같다......뭐가 그리 바쁜지, 찜질방 갈 시간도 없다네....집은 낡았지만, 부자되는 집이라니 덕분에 꿈이라도 꿔보고 싶네...고마워,하늘빛...
첫댓글 아이구 대장 이사 한번 요란하게 했구랴~~~~~옛날처럼 짐이 단출할때 예기지 포장 이사해도 힘들어요, 세월이 흐를 수록 늘어나는게 짐이야, 넘 힘들게 이사해서 집들이 하려는 엄두도 못내겠내,어부인과 장모님 맛난거 사드리고 찜질방에 모시고라도 가야 하겠네~어쨌든 이사해서 가내두루 평안하시고 부자되기를 빕니다.
요즘은 포장 이사를 해도 다시 정리하는데 며칠씩 걸리지.....포장도 아닌 일반 이사를 하였으니, 짐 정리 하는데, 한달은 걸릴것같다......뭐가 그리 바쁜지, 찜질방 갈 시간도 없다네....집은 낡았지만, 부자되는 집이라니 덕분에 꿈이라도 꿔보고 싶네...고마워,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