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극장에서 막을 내렸다. 수고한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봉준호 감독은 소란스러웠던 이 영화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며, 하루 빨리 '<괴물> 감독'에서 잊히고 싶다고 말한다.
<괴물> 최종 스코어 기억하나? 1,310만은 안 되고 1,301만인가? 정확하게 기억 못 한다.(배급사가 발표한 총 관객 수는 1,301만 9,740명)
그런데 왜 활짝 못 웃나? 내가 웃으면 사람들이 다 싫어할 것 같다. 너 좋겠구나, 속으로 비웃을 것 같고. <살인의 추억> 때는 작품성도 인정받고 흥행에도 성공했지만, 실화사건 영화라 경거망동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항상 나 자신을 누르려 했다. <괴물>은 그런 영화가 아니라 활짝 웃으려 했는데 그러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언젠가는 그동안 못 웃었던 거 다 합쳐서 활짝 웃을 날이 올 거다.
집에 가서 이불 뒤집어쓰고는 활짝 웃었나? 그것도 아니다. 솔직히 맘 편하게 웃은 적 없다.
흥행에 있어 순수하게 가장 기뻤던 시점은? 개봉 첫 주? <살인의 추억> 기록 깼을 때? 천만 넘었을 때? 아니다. 400만 명 넘었을 때 가장 기뻤다. 왜냐면 그게 손익분기점이었거든. 400만 명이 넘어가니까 됐구나, 이제부터는 보너스구나, 하면서 안도했다. 누구 말대로 이무기 나오는 영화 찍다가 망하는, 그것도 나 혼자가 아니라 한국영화 산업에 파탄을 일으킬 수 있는 대재앙이 안 일어나 천만다행이다. 사실 감독은 흥행에 있어선 강 건너 불구경 하는 입장이다. 후반작업하고 기진맥진해서 바닥에 푹 쓰러져 있는 건데 강 건너 불길이 막 타오르는 거지.
그래도 불길이 타오르면 다행이지. 안 타면 속이 타지. 솔직히 <괴물>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세방현상소에서 끝났다. 애초 <괴물>은 420개 스크린에서 개봉할 예정이었다. 할리우드현상소에서 프린트를 뽑고 있는데 갑자기 스크린 수가 620개로 늘어났다고 연락이 왔다. 기자, 배급시사 후 반응이 좋아 프린트 요청이 쇄도한다는 거였는데, 그러다 보니 물량이 감당이 안 되고 세방까지 가서 작업을 해야 했다. 신사동에서 서울역을 오가며 완전 난리였다. 그 다음은 내 손을 떠났고 그 소동 속으로 들어간 거다.
그 620개 프린트가 소동의 실마리였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 거지 의도한 건 아니다. 나도 천만이 넘을 줄은 몰랐다. 이 영화 때문에 <100분 토론>이 마련될 줄도 몰랐다. 약간 불만인 것은 <괴물>이 박스오피스에서 2, 3, 4위 한 한국영화들에게 폐를 끼친 거는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만 독립, 예술영화들의 설 자리를 뺐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맞짱’ 뜬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만든 거지 <내 청춘에게 고함>이나 <피터팬의 공식> 같은 영화에게 직접적으로 폐를 끼쳤다고는 생각 안 한다.
직접적인 폐 말고도 간접적인 영향은 있지 않겠나? <괴물>이 너무 잘 돼서 웬만큼 잘 된 영화는 잘 된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 착시효과, 상대적인 박탈감, 뭐 이런 게 심화된 건 사실이다. 착시효과? 사실 난 다른 감독들에게 얼마 들었냐고 물어보지도 못한다. 염장 지르느냐고 욕 할까봐. 어떻게 하면 튀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민폐를 갚을 수 있을까 눈치를 본다. 그래서 시네마테크나 영화제나, 영화 다양성을 위한 자리에는 몸보시라도 할까 싶어 빠짐없이 참석하려 노력한다. 솔직히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부산영평상 작품상을 <가족의 탄생>이 받아 정말 기뻤다. 개인적으로도 올해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하고. 이번 대한민국영화대상도 <가족의 탄생>이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괴물>이 받게 돼서 김태용 감독에게 미안했다.
그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받아야지. 제임스 카메론이 <타이타닉>으로 오스카 받을 때 ‘아임 킹 오브 더 월드!’라고 외친 거 꼴불견이지 않나. 얼마나 잘난 채인가? 왕 주책이지.
당신도 칸국제영화제 첫 시사회에서 주먹 쥐고 일어서지 않았나. 그거야말로 제임스 카메론적인 제스처지. 하라고 해서 할 수 없이 한 건데, 미스코리아 행진하는 것도 아니고 손 흔들기가 민망해서 팔을 든 건데, 거기에 스톱모션을 걸어 마케팅을 했으니 무지 창피했다.
그래서 <괴물>과 정 떼려고 <괴물> 속편을 정윤철 감독이 준비 중이라는 근거 없는 얘기를 전국 방송으로 발표했나? 내가 원래 진지하게 농담을 한다. 충분히 농담 할 수 있는 사이고. 대신 정윤철 감독의 <좋지 아니한가> 편집본을 봐주기로 했다.
그렇게 <괴물> 감독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고 싶나? 나는 남이 안 한 영화를 한 감독이라는 데 가장 보람을 느끼고 있었는데, <괴물> 때문에 ‘새로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아니라 ‘역대 흥행 1위를 한 감독’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부담스럽다. 빨리 누군가가 기록을 깨줬으면 좋겠다. <태극기 휘날리며>나 <왕의 남자>는 <괴물> 만큼 심각한 논란이 있었던 것 같지 않은데, <괴물>이 그런 경험을 다 겪었으니까 다음 영화는 좀 더 순탄하게, 또 평화롭게 기록 경신을 해줬으면 좋겠다.
<괴물>의 성공으로 과분한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다는 죄책감 같은 게 드는 건가? 그건 아니다. 열심히 고생해 만든 영화의 결과이므로 나는 자랑스럽다. 그런데 내가 <괴물>을 발판으로 뭔가 이루려는 게 아닌데 <괴물> 이후 뭐가 좋아졌나, 회사 안 차릴 거냐, 그런 질문을 받으니까 싫은 거다. 감독은 한 작품이 끝나고 다음 작품을 하려면 또 다시 알몸뚱이로 추운 벌판에 서 있게 되는 거다. <플란다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이나 다 똑같다. 물론 처음보다 투자 받기도 수월하겠고, 캐스팅도 한결 수월해지겠지만 그것 또한 작품 하는 것에 있어선 똑같다. 내가 감독이 아니라 제작자라면 직원도 늘리고, CG 회사도 만들고, 상장도 하면서 한 작품, 한 작품에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발판을 마련하겠지만, 내가 <괴물>로 투자를 받아 회사를 차릴 생각이 없기 때문에 작품에 있어서는 이렇게 또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괴물> 연출료로 2억 원을 받았고, 흥행수익에 대한 10%의 지분을 갖고 있어 관객 1천만이 들었을 때 예상되는 감독의 수익이 40억 원이 넘는다고 하더라. 사실인가? 사실이 아니다. 흥행지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보다는 적게 받는다. 40억 원은 부풀려진 액수다.
어쨌거나 그것 때문에 ‘제작자가 돈 벌지, 내가 돈 벌어?’라며 흥행과 무관한 척할 순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보란 듯이 활짝 웃기 어려운 것 아닌가? 그보다는 스크린 독과점이나 흥행 양극화 문제와 관련해 민폐를 끼친 것 같아 불편한 거지. <괴물>을 계기로 사람들에게 인식돼서 다행이지만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진작 토론의 장으로 나왔어야 할 문제고 빨리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괴물>로 수고한 자신에게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말은? 무사히 완성했다는 것을 칭찬해주고 싶다. 또 <괴물>을 계기로 새롭거나 모험적인 시도를 하는 작품에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생겼으면 좋겠다. <살인의 추억> 때도 범인이 안 잡히는 걸로 끝나는 실화사건 영화라고 편집본 보고서도 투자를 철회한 사람이 있었다. <괴물>도 이런 장르 왜 하냐는 말들이 많았던, 한때는 저주받은 프로젝트였다. 투자자들이 0.01%라도 우리가 흔히 안 되리라고 생각하는 영화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검증된 감독의 프로덕션에 한해선 그런 변화가 있을 것 같긴 하다. 90년대 중후반에 프로듀서들이 강하게 드라이브하면서 신인 감독들이 많이 나왔고, 그때 데뷔했던 신인 감독들이 지금 이름 있는 감독들이 됐다. <괴물>이 감독 중심 프로덕션에 힘을 실어줬느냐 아니냐는 좋은 면, 나쁜 면 다 있겠지만, 어쨌든 한국영화가 개인의 독창성이나 취향 같은 것을 인정해주는 건 둘째 치고라도 영화의 완성도를 보장하는 것은 역시 감독이었다는 인식, 영화의 질과 완성도를 감독 이름이 보장한다는 인식을 심어준 건 중요한 것 같다.
능력 있는 감독에게 기회가 많이 가는 게 나쁠 건 없지만, 이렇게 산업이 요동칠 때 감독이 프로덕션까지 짊어지는 게 부담이 될 수 있고, 결국 좋은 감독을 빨리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사무라이는 한 명씩 무찌르고 앞으로 나아가야 진정한 무사가 되는 거다. 물론 객잔이라는 걸 만들어 많은 사람을 끌어안고 가는 걸 원하는 감독이라면 그렇게 가도 되는데, 사실 그건 감독 개개인의 문제인 것 같다. 그래서 난 박찬욱 감독이 모호필름 차린 것도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다. 저 양반 성격상 회사 하는 게 어울릴까 싶었는데, 본인 나름대로 생각이 있는 것 같고. 내가 보탬이 됐으면 좋겠는데, 이제 곧 그 순간이 다가온다.
<설국열차>는 프로덕션 경험이 적은 회사에서 만들기 어려운 영화인데 어떻게 모호필름에서 하게 됐나? 아주 심플하게 진행됐다. 모호에서 연출 제의가 왔고 내가 <설국열차>라는 만화가 있어요, 그래서 좋다고 하고 판권 산거다. 박찬욱 감독과는 DVD 보고 수다 떨던 사이인데 제작자와 감독으로 만나면 어느 시점에서 의견이 갈라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제작자가 나보다 더 파격적이니….
다국적 스탭, 다국적 언어를 쓰는 글로벌 프로젝트라 들었다. 당신은 <살인의 추억>과 <괴물>을 거치면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상당히 다양한 ‘가상의 반응자들’을 만났다. 그게 창작에 있어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특히 <설국열차> 같은 영화에선? <괴물>은 사실상 가장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사이즈로 개봉하는 한국영화였다. 전부 국내용과 같은 버전이다. 자, 그래서 이제부터는 한국 관객도 보고 프랑스 관객도 보고, 미국 관객도 볼 건데 어떻게 영화를 만드느냐? 그런 질문이 가능한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그런 걸 하고 싶어도 안 된다, 못 한다. 막상 시나리오 쓰다 보면 아귀 맞춰 내느라 그 자체가 너무 힘들어 인터내셔널이고 뭐고, 어떻게 러닝타임 두 시간 만들어서 틀까 그 생각뿐이다. 내 능력 부족인지 몰라도 난 거기까지다. 그리고 난 이미 한국 관객들이 국제화됐다고 생각한다. <살인의 추억> 때 많은 사람들이 외국 관객이 이해하기 힘들 거라고 말했지만, 프랑스 관객이 웃는 포인트도 같고 반응도 큰 차이가 없었다. 이미 전 세계 대도시 문화는 균질화됐기 때문에 국적에 따른 관객 차가 거의 없다고 본다.
이젠 관객을 알겠단 얘기네. 차이가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지.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국제화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어디에 지사를 냈다, 어느 회사와 합작한다, 누가 할리우드 가서 찍을 거다 말이 많지만 사실은 멋진 장면 하나가 있느냐, 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대사 한마디가 있느냐, 이런 것들이 더 국제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게 있어야 한다. 얼마나 좋은 캐릭터와 이야기와 화면이 있느냐가 국제화로 가는 지름길 아닐까.
차기작은 <설국열차>가 아니라 <마더>로 알고 있다. 모자 이야기라는 <마더>를 하게 되면 <괴물>과 가족이라는 화두에서 마주치게 된다. <괴물>과 <설국열차> 사이에 좀 작은 영화를 하려고 <마더>를 하게 됐다. 가족에 대한 테마에 특별히 집착이 있어서는 아니다.
다른 관계의 사랑에는 관심 없나? 나 스스로는 내가 정말 로맨틱하다고 생각하는데 영화로 표현하려니까 어렵더라. 사랑이야기를 써놓은 게 두 개 정도는 있다. 때가 되면 하려고 준비하는 중이다. 관심 없는 건 전혀 아닌데 워낙 영화 찍는 속도가 느려서 언제 찍게 될지 모르겠다. 2년에 한 편이 목표인데 난 너무 느려.
2년에 한 편 하려면, 프로덕션 사이즈나 난이도를 낮추든지 누가 시나리오를 써줘야 되지 감독 혼자 부지런을 떤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내 말이 그말. 나도 누가 시나리오 좀 써줬으면 좋겠다. 정말 파트너십이 되는 프로듀서와 작가, 아니 이 둘 중 하나, 작가만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이준익 감독은 최석환 작가와 호흡이 잘 맞는가 보더라. 부럽다. 내가 작가를 찾는 데 게을렀던 건가 반성도 해본다. 내가 인간관계가 좁기는 하지.
한눈 파는 편이 아닌 것 같다. 중학교 때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딴 일 한 적도 없고, 한눈 판 적도 없기 때문에 행복하지만 영화를 사람이라고 볼 때, ‘너 아니면 좋아할 사람이 없는 것 같아?’ ‘너 아니어도 나 좋아해주는 사람 많아’ 이러면서 확 삐지는 모습도 모여주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 할 줄 아는 게 없고, 하다 보면 영화 생각나고. 결국은 영화라는 애의 포로가 돼서 이렇게 살다 죽을 것 같은데 가끔 그런 게 화가 나기도 한다. 영화란 매 순간 너무 힘든 일이니까.
그런데 왜 어떤 자리에서 감독의 가장 중요한 자질을 묻는 질문에 끈기나 집중이 아니라 정신력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썼나? 솔직히 그런 부류의 질문은 생각나는 대로 답변한다. 영화감독이란 뭐냐? 왜 영화를 찍냐? 난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거나 별 다른 생각이 없다. 난 정말 모르겠다. 지금 숲 속에서 나뭇가지 하나 붙잡고 가기 때문에 숲이 안 보인다.
많은 비유에서 자신을 어리거나 미성숙한 상태로 얘기한다. 그게 사실이다. 나는 초기작 세 편이 빨리 잊혀졌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누가 마틴 스콜세지의 초기작 세편을 기억하나?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감독으로선 빨리 잊히고 나중에 다른 영화로 기억되고 싶다. 5, 60대에 좋은 영화를 쏟아내고 있는 감독이 되고 싶다.
예술가가 나이 들면서 작품이 좋아진다면 누가 나이 먹는 걸 마다하겠나?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노년에 전성기인 감독은 별로 없었다. 아니다. 이마무라 쇼헤이, 스탠리 큐브릭, 마틴 스콜세지, 알프레드 히치콕, 다 노년에 좋은 작품을 냈다. 많은 사람들이 <풀 메탈 자켓>이나 <아이즈 와이드 셧>이 큐브릭 영화 중에 떨어진다고 하지만 그 영화 자체로 너무 훌륭하다.
지금 거론한 감독처럼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인가, 아니면 그런 영화세계를 이루겠다는 의지와 목표가 있는 건가? 의지이자 내 목표다. 스콜세지가 지금 몇 살인가? 한때 미국영화의 영 제너레이션이었던 그가 이제 노인네다. 그 나이에 만든 <에비에이터>도 좋고, <디파티드>도 아직 못 봤지만 좋다더라. 이제 한국영화도 감독이 조로하지 않고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스콜세지나 히치콕처럼 그러고 싶은 거다. 그래서 <괴물> 감독으로는 어서 빨리 잊히고 싶다. <괴물>은 내가 지금까지 연출한 세 편의 장편영화 중 무인도에 가져가라면 가져갈 가장 아끼는 한 편이지만, 난 정말 <괴물> 감독으로 남고 싶지 않다.
사진 김동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