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오 프라야강을 거슬러가는 뱃전에 누런흙탕물이 부서지고, 스쳐가는 강바람이 더위를 식혀준다. 왕궁앞 선착장에 내려 하얀담을 끼고 실라파콘 미대쪽으로 걸어가는길... 담넘어로 보이는 에머랄드붓다 사원과 왕궁의 금빛지붕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강변 정원에 심어진 프렌지 페니가 하얗게 웃는다. 길가에 펼쳐진 노점상들. 볼거리 먹거리가 즐비하다. 그사이를 뚫고 많은 관광객들이 배회하고, 오렌지색 승복을 걸친 승려들의 발걸음이 코끼리처럼 느릿하다. 타마삿대학에서 기초 태국어 수업을 듣지만, 이번에는 실용회화 위주의 생존언어 수준을 넘지 않을 예정이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국제통용어 한두가지면 족하다는 생각이다. 민족성 전통성 독창성 역사성등의 측면에서 문화의 우열을 가릴수는 없지만, 좀 심한 말일지는 몰라도, 힘이나 쪽수로라도 밀어 붙이지 못한다면 , 효율적 경제적 과학적 측면에서 일찌기 박물관에 가야할 언어들이 얼마나 많은가? 바벨탑이 무너지고 인류는 행복해졌을까 ? 불행해 졌을까 ? 문화의 다양성은 중요하지만 언어만큼은 바벨탑이 다시 서야되않을까? 언어의 궁극적 목적은 소통이 아닌가 ? 바깥세상과 담쌓고 살겠다면 모를까... 그런의미에서 음악이나 미술등의 예술은 국제통용어의 하나가 아닐까 ? 한글은 외국인이 배우기 쉽지는 않지만 어느 단계를 넘어가면 쉬워진다. 세상의 거의 모든발음을 원어에 가깝께 표기할수도 있고 과학적 이지만 힘과 쪽수에서 밀리는것은 사실이다. 허지만 UNESCO에서 과학적이고 창의적인 것에 대해주는 영예로운 상이 세종대왕상 이라는 사실을 아시는가? 임관을 하고 미공군이 있는 기지에 배치되었을때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미군헌병이 하는 말을 알아 듣지 못했다. 충격적 이었다. 세상에 ! 중고등학교 대학에서 영어를 드립다 판시간이 얼만데... 언젠가, 조카에게 말해주었다. " 어학은 소리를 듣고 큰 흐름을 이해하면 되는거야. 느긋하게 소리를 잘듣고 나면 그다음 일은 뇌가 알아서 뜻을 전달할거야. 너의 뇌를 믿어봐. 소리를 들으면서 초조하게 번역할려고 하지마. 그러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막혀서 다음소리를 놓치게되고 엉망이 되는거지. 못들었거나 모르면 물어보면 되는거야. 어차피 우리말이 아닌데.. "읽어보고 번역해봐 !" 이런 구닥다리 교육방식에 주눅든 나쁜습관을 고치는데 나도 시간이 걸렸어." 어학은 상대언어간의 구조적 차이점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야. 수업을 맞치고 왕궁앞 사남루앙의 넓은 잔디광장을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 생각해본다. 이곳에 온지 두달이 되어간다. 그동안 많이 바빴다. 25년전에 왔던 이곳에 다시 앉아있다. 무었이 나를 이곳으로 오게 했을까 ? 허허 ! 내가 스스로 왔지. 중국 항주생활이 익숙해졌지만, 쳇바퀴 돌아가듯 바쁜생활속에, 틀에 박혀가는듯한 느낌이 내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내가 감히 예술을 논할 자격은 없지만 내마음이 나에게 말하고 있다. 전통도 물론 중요하지만, 예술은 무리속에서 줄서서가는 선입선출 방식이 아니다. 그래 이제는 깨버려야한다. 나를 찾아 앞으로 가야한다. 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내 철학이 있어야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있어야한다. 배움에 완벽함이 어디 있겠는가 ? 어차피 지나처갈 생각이었는데..... 그러던중 회사생활에서 만나 20년지기 동생인 YH에게서 전화가 왔다. 방콕에서 근무를 시작했다고.. 무심코 내마음은 그쪽을 향하고 있다. 그래 분위기를 바꿔보자. YH, 이친구는 불어를 전공하고 무역부문에서 근무를 하다가 다 때려치고 파리의 호텔스쿨에서 MBA를 했다. 내가 모회사에 재입사 했을때 이친구도 우연하게 재입사를 해서 해외개발사업부문에서 같이 근무하게 되었고 같이 해외출장도 자주 다녔다. 둘다 풍류를 좋아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다. 런던 노래방에서 박수받은일, 슬로베니아 클럽에서 관광객인 그리스 여인에게 프로포즈한일, 싱가폴 클럽에서 오랬만에 왔다고 마담에게서 꼬냑한병을 공짜서비스 받은일, 중국 폴란드 인디아 알제리 등등.. 항주를 떠나오기전, 오랫만에 Hiro 와 같이 자전저를 타고 길을 나섰다. 주변 야산을 몇개 넘고 교외로 빠지자 분위기가 평화롭다. 한적한 농촌 찻집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이친구 요즘 고민도 많아 보인고. 불교적인 것에 푹 빠진것 같다. 나에게 물었다. 운명을 믿느냐고 ? 나를 잘따르는 이 어린동생같은 친구에게 무언가 말해 주어야 할것 같았다. " 운명은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고, 받아 드릴건지 말건지의 문제야. 운명은 일종의 무대장치 같은것, 너가 인생이란 무대에 서기전에 이미 셋팅되어진 것. 태어나면서 부모가 결정되어 있고 혈액형 성격 지능등이 결정되어있고 등등.. 이미 설치된 무대장치나 시나리오가 맘에 안든다고 불평하기엔 어쩔수없어. 그걸 고치려면 그만한 힘과 의지가 있어야만 해. 노력만 가지고는 현실적으로 쉽지않아. 이미 주어진 운명을 부정적으로만 보지말고 그것을 발판 삼아서 도약해봐. 그러면서 그걸 고쳐나가. 그리고 너의 운명은 다른 사람들 보다 한결 낳아 보이는데 ? " 여기 저기에 많은 문제들이 있다고? " 그래 모든일에는 문제들이 있지.그리고 또 해답도 있고... 허지만 아무리 해도 해답이 없을때는 그건 이미 문제가 아니야. 새로운 현상이고 사실이야.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드려야 되는 경우지. 물론 받아드리고 말고는 너가 결정 해야 되는것 이지만.." 배우가 되고 싶다고? " 너는 이미 배우가 아니였나 ? 연기공부도 했고 .. 단지 아직 세상에 내놓은 작품이 없을 뿐이지... 너 자신이 배우라고 생각하면 너는 이미 배우야. 작은것부터 찾아봐. 처음 부터 큰것 노리지 말고.." 배우가 되어 돈많은 여자와 결혼하라고 아버님이 유언을 하셨다고 ? 하! 하! 그런 아버님도 계셨나 ? 아냐 ! 아냐 ! 아들을 위해 정말 하고 싶은 말씀을 하셨네.. 그대신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주고 많은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편하게 느끼는 여자하고 같이 살아. 그것이 결혼이건 동거던 친구건 그건 중요치 않아...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 좋겠지. 무슨일을 해야될지 모르겠다고 ? 세상에는 자신이 하고싶은일, 할수있는일 그리고 사회가 원하는일이 있어. 삼박자가 맞으면 금상첨화 겠지만 , 세상에 그런 경우가 별로 없지. 어떤 사람은 사회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사람도 있고 어떤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까 사회가 원하는 일이 되어버린 사람도 있고 허지만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다는것이야. 마치 암벽에 붙은 소나무가 이리휘고 저리 휘고 해도, 결국은 햇빛쪽으로 방향을 틀듯... 니가 하고 싶은일 을 하면 되는거야. 니 본능데로 하면되. 너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 ! listen to your heart ! and be yourself ! 여자? " 그래! 바로 가자. 궁극적으로 남자나 여자나 왜 이성이 필요하지 ? 내가 여자를 분류하는 원초적인 기준은 딱 한가지야. 같이 잘수있는 여자와 같이 잘수없는 여자. 좀 지나쳤나 ? 인간이 만든 제도나 법률 혹은 시대적 통념에 의해 분류되는 친구관계, 동거, 매춘,결혼등의 차이가 사실혼{sex) 앞에서 무슨의미가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여자에게는 누구에게 propose 받았느냐 하는것도 중요하지만 누구에게서든 관계 없이 propose 받았다는 그사실을 더 좋아 할지도 몰라. " 사랑을 소유하거나 확인 하려 하지마. 정말 의미 없는 일이야. 어느 학자의 이론에 따르면 남녀사이에 좋은감정의 chemistry는 3개월 에서 6개월 정도 지속한다고 했어.. 물론 서로 인내하고 이해하고, 그래서 장기적으로 인생의 동반자가 되는것도 좋겠지. 사랑과 sex 에 조건을 달지마 거래가 아니니까. 사랑이 SEX의 전제조건도 아니고, SEX도 사랑의 전제조건이 아닌것 같아... 한달후에 예정된 파티를 기다리며 굶을수는 없잖아.. 그파티가 연기될수도 있고 취소 될수도 있고 또 기대에 못미칠수도 있는데... 단, 끝낼때는 여자가 떠난것 처럼 마들어 주는것이 신사야. 이친구는 남자인 내가 봐도 미워할수없는 playboy다. 주변에는 항상 여자들이 불나방들 처럼 날아든다. 하늘이 여자들에게 내린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되는건지 모르겠다고? 나도 잘몰라 ! 내가 기억나는 산문시 하나 말해줄까? 정확한지는 모르겠는데 대충 이래. " 어느 애벌래가 태어났어. 얼마후 혼자서 꿈틀거리며 기어가기 시작했고, 한참을 가다보니 많은 애벌래들이 어디론가 가고있는것을 보았어. 그래서 아무생각없이 무리에 합류해서 같이 기어가기 시작했지. 어디로 가는줄도 모르고.. 왜 가야 되는지도 모르고.. 계속 가다가 더큰무리들을 만나고, 그리고 또 더욱더 큰무리들속에 휩쓸려서 기어갔어. 서로 부딛치며.. 또 한참을 가다보니 수도없이 많은 애벌래들이 어느기둥을 기어올라가고 있는것을 보았어. 왜올라가야 되는지도 모르고 남들도 다올라가길래, 올라가 보기로 맘을 먹고 올라가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위에서 끌어주고 밑에서 받혀주고 옆에서 잡아주면서.. 그러다가 위에서 차고 밑에서 끌어 당기는 바람에 바닥으로 떨어졌지. 떨어져 생각해보니, 달리 갈곳도 할일도 없어서 다시올라가 보기로 마음을 먹었어. 이번에는 끌어 댕기고 밑으로 차면서 모질게 올라갔어. 그리고 결국 그기둥 끝에 올랐지. 그런데 깜짝 놀랐어. 기둥이 하나인줄만 알았는데, 수도없는 기둥들을 보았어. 크고 작고 높고 낮은 기둥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있는거야. 그러는 사이에 벌써 밑에서는 다른 애벌래들이 자신을 끌어내리고 있고... 그순간 멋진것을 보게되었지. 이기둥 저기둥을 날아 다니는 나비들을 본거야. 아! 탄성을 지르는 순간, 끌려서 밑으로 내동뎅이 쳐지고 말았지. 밑으로 떨어진 애벌래는 자기도 나비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그동안 왔던 반대방향으로 돌아갔지. 가는길에 운좋게 어떤 나비를 만났어. 그래서 그 나비에게 물어 보았지. 어떻게 하면 나비가 될수 있는지? 그나비의 대답은 간단했어 " 깊은 잠을 자봐 ! " 그래서 그애벌래도 나비가 되었냐고 ? 그건나도 모르지.... 먹구름이 밀려온다. 바람이 시원해진다. 숙소까지 걸어보자. 숙소를 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어차피 사는일이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끊임없는 선택과 실수의 연속일진데 망서리거나 두려워 하지말자. 편리함과 체면을 쫒는 몸과, 마음이 향하는곳이 달랐지만 결국 나는 내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이세상 배낭족들의 성지라는 카오산 근처에 둥지를 틀었다. 그거리를 통해서 걷는 즐거움중의 하나가 사람구경이다. 인종시장같다. 걷다보니 몸이 촉촉하게 젖어온다. 노점상에서 코코낫을 하나 깨서 마신다. 그순간 몰려온 먹구름이 스콜을 시원하게 쏟아 붓는다. 세상의 고민과 잡념, 지저분함과 위선등을 송두리채 쓸어가듯 쏟아 붓는다. 그래 또 새로운 시작이다 ! 이정인 전화번호 : 66 084 250 590
첫댓글 정인 친구 오랜만에 친구의 글을 읽고 소식을 전하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수는 없지만 그래도 친구와의 즐거운 시간을 다시 떠올려보는구려 항상 건강하고 만나서 소주 한잔 기울릴 시간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