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두 나라를 세운 여걸 소서노
“달려라!”
어머니 소서노의 명령에 두 아들은 쏜살같이 달려 나간다. 오늘은 저 산꼭대기까지다.
“내가 먼저야!”
두 팔을 높이 올리며 형이 먼저 들어왔다. 동생도 있는 힘을 다해서 달렸지만, 형을 따라잡지는 못했다.
“둘 다 잘 달렸어. 끝까지 힘껏 달리는 마음가짐이 중요해.”
어머니는 두 아들 겉모습만 아니라 속마음까지 훤히 꿰뚫었다.
큰아들 비류는 몸집이 크고, 부리부리한 눈을 지녀 예사 인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작은아들 온조는 눈빛이 따뜻하고, 뽀얀 살결과 복숭아 빛의 볼을 지닌 아름다운 소년이다.
성격 또한 비류는 여포창날같이 날카롭고, 폭포처럼 급하며 거칠 것 없이 돌진하는 용맹성을 지녔고, 온조는 온화하고, 부드러워 양보하고 베푸는 너그러움을 가졌다.
“끝까지 과녁에 눈을 떼지 말고, 집중하라.”
기본 체력이 어느 정도 단련되자 이제 익혀 둔 무술을 모조리 두 아들에게 쏟아 부었다. 활쏘기는 물론 창 쓰기, 칼 쓰기, 말 타기 등을 배우며 두 아들은 늠름하게 자라났다.
“하하하, 통쾌하다! 내가 한 발 더 맞추었어.”
“하하하, 참 즐거웠어. 형.”
“뭐! 나에게 지고도 즐거웠다고?”
“형하고 시합하면 지든 이기든 무조건 재미있어.”
소서노는 형제의 대화를 들으며 조용히 웃음 짓는다.
소서노는 압록강 한줄기 동가강 근처 졸본에서 기원전 66년에 태어났다. 졸본은 현재 중국 요령성 환인현으로 고구려의 첫 번째 수도인 오녀산성이 있는 곳이다. 그녀는 졸본 세력가 연타발의 딸로서 어릴 때부터 용맹스럽게 사내아이들과 어울려 사냥도 잘했다.
씩씩하게 자란 소서노는 북부여왕 해부루의 자손 우태와 결혼하여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 그러나 행복한 그 가정에 불행이 닥쳤다. 남편 우태가 죽은 것이다. 그 뒤 졸본으로 돌아와 두 아들을 훈련시키는 재미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홀연히 북쪽 숲속에서 활을 멘 웬 사나이가 나타났다.
‘어쩌구리, 활을 차고 있다니! 어디 얼마나 잘 쏘는지 시험해 볼까?’
소서노는 두려움보다도 호기심이 일었다. 그를 향하여 말을 달려 나갔다.
“그대는 어디서 오셨소? 왜 함부로 남의 땅을 밟는 거죠?”
소서노가 모습을 드러내며 묻자 사나이는 첫눈에 보아도 이 여인이 예사롭지 않은 집안의 딸임을 알아챘다. 그는 대항하기보다 겸손하게 땅에 무릎을 꿇었다.
“제 이름은 주몽이라고 하옵니다. 북부여 금와왕의 아들인데 이복형들이 저를 죽이려 해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아가씨는 혹시 연타발의 따님이 아니신지……?”
“그래요. 제 이름은 소서노라고 합니다.”
소서노는 우선 시비를 걸지 않는 주몽이 마음에 들었다. 아마 활솜씨도 훌륭할 거라는 믿음이 갔다.
“저는 이곳에 새 나라를 세울 꿈을 가지고 왔습니다.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무슨 힘이 되겠습니까만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그러리다.”
불꽃 튀는 시합이 아니라 평화의 꽃이 피었다. 날이 갈수록 주몽은 터전을 넓혀나갔고, 그 뒤에는 반드시 소서노가 있었다. 얼마 후 주몽은 소서노 없이는 나라 세우기는커녕 잠시라도 떨어져 살 수 없음을 깨달았다.
“소서노! 난 그대와 결혼하고 싶소.”
“안 될 말입니다. 저는 아이가 둘이나 있는 몸입니다.”
“그게 무슨 문제입니까? 제 맘속에는 그대를 사랑하는 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소서노도 마침내 마음이 움직였다. 곧 그들의 결혼을 알리는 방이 곳곳에 나붙었고, 사람들은 그들의 결혼을 축하해주었다.
소서노의 적극적인 지지 아래 주몽은 졸본 지역 전체를 장악하는 대 수장으로 군림하며 새나라 고구려를 세웠다. 기원전 37년으로 주몽의 나이 22세 때의 일이다.
주몽이 왕이 되자 소서노는 당연히 왕비가 되었다. 그리고 두 아들 비류와 온조는 왕자가 되었으며 그 중 형인 비류를 다음 왕 자리를 물려받을 태자로 삼았다.
행복하던 어느 날,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결혼한 바 있는 예씨의 아들 유리가 바람처럼 나타났다.
“네가 내 아들이라면 그 징표를 보여라.”
미심쩍어하는 주몽에게 유리는 품속에서 칼 한 자루를 꺼내 보인다.
“이 칼을 어디서 찾았느냐?”
“일곱 모 난 돌 위의 소나무 밑에서 찾았습니다.”
그러자 주몽은 손뼉을 쳤다. 예씨와 약속한 말이 생각난다. 장차 아들이 태어나면 이 칼을 찾아 보내라고.
“오호, 그렇다면 유리 네가 내 아들이 맞다. 그 칼을 찾아내다니 참 지혜롭구나. 그곳이 어디였느냐?”
“바로 어머니 침실이 있는 대궐 기둥 밑입니다. 주춧돌이 일곱 모였으며, 그 위 기둥이 소나무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주몽은 크게 기뻐하며 유리를 일으켜 세운 후 당장 목욕을 시키고 새 옷으로 갈아입도록 했다.
며칠 동안 지나치게 유리에게 사랑을 쏟던 주몽은 소서노가 은근히 염려하던 말을 슬며시 꺼냈다.
“유리가 비류보다 나이가 위이니 태자로 삼고 싶은데 어떻소?”
소서노는 유리 나이가 많다는 명분으로 갑자기 태자를 바꾸겠다는 주몽의 말에 얼떨떨했다.
“대왕마마, 천천히 결정해도 늦지 않겠습니다.”
소서노는 주몽이 시간을 두고 자기와 의논할 줄 알았다.
“왕비도 제 생각과 다름없는 것 같으니 미룰 것 없이 내일 당장 유리를 태자로 삼는 식을 올리겠소.”
주몽은 왕비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건지,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건지 태자를 바꾼다고 선언을 해 버렸다.
소서노는 며칠을 두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처음에는 주몽이 야속했지만 차츰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다툼보다 평화롭게 물러나기로 마음을 굳히자 두 아들을 조용히 불렀다.
“처음 대왕께서 부여의 난을 피하여 이곳으로 도망하여 왔을 때, 나는 집안의 재산을 기울여 가며 도와 마침내 새 나라를 세웠다. 대왕께서 그 노고를 잊고 태자를 유리로 삼았으니, 우리가 쓸모없이 이곳에 있는 것이 남쪽으로 가서 땅을 택하여 따로 새 나라를 세우는 것만 같지 못하다.”
두 아들은 두 말 없이 소서노의 결정에 따랐다. 소서노는 사랑하는 주몽을 위해서라도 떠나야 했다. 그날 밤이 이슥해지자 두 아들과 자기를 따르는 많은 무리를 이끌고 패수(압록강)와 대수(대동강)를 건너 남쪽으로 내려왔다.
아리수(지금 한강)까지 내려왔을 때 소서노는 두 아들을 다시 불러서
“너희 둘은 모두 새 나라를 세우려고 내려왔다. 어디에다 세우고 싶은지 먼저 비류부터 말해 보아라.”
“어머니, 저는 바닷가에 나라를 세우고 싶습니다.”
비류는 바닷가에 나라를 세워야 강대한 나라를 이룩할 수 있다고 어릴 때부터 꿈꾸었다.
“좋아! 다음은 온조가 말해 보아라.”
“저는 넓은 들판에다 나라를 세우고 싶습니다.”
소서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조용히 그러나 힘을 주어 말했다.
“한 나라에는 두 왕이 있을 수 없다. 여기서 형제는 헤어져야겠다. 제 각각 강대한 나라를 세워라! 그리고 언제나 고구려를 잊지 말라.……, 비류야, 너는 담대하나 지혜가 부족하다. 지혜를 갖추어 훌륭한 왕이 되거라. 온조는 지혜가 있으나 용기가 부족하다. 용맹성을 길러 훌륭한 왕이 되거라.”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어졌다.
“나는 온조와 같이 가겠다. 비류! 너는 내가 없어도 새 나라를 세우는데 자신이 있지?”
“예!”
비류는 우렁차게 대답했다.
“온조가 번듯하게 나라를 세운 뒤 나는 너에게 찾아가마.”
“예, 그때쯤 저는 사방 천리가 넘는 나라를 만들어놓고 기다리겠습니다.”
비류는 곧 어머니께 이별의 인사를 드리고 자기를 따르는 무리들을 이끌고 서쪽으로 떠났다. 나라를 일으킬 만한 미추홀[지금의 인천]로 가서 터를 잡았다.
한편 소서노는 온조와 함께 하남 위례성(한강유역)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십제라 하였다.
온조는 어머니 말씀을 깊이 새겨 용맹성을 기르는데 힘썼다. 가슴 속에 품었던 지혜가 용기로 나와 모두 힘이 되었다. 그리고 더 든든한 어머니가 곁에 계시니 얼마나 좋은가.
비류는 대궐을 짓고, 큰 배를 만드는 등 큰 꿈을 착착 발 빠르게 진행시키는 한편 군사들을 이끌고 용맹스럽게 이웃 부족을 쳐부수었다.
소서노는 위례성에 터를 잡자 온조를 불러 물었다.
“온조! 왕으로서 지켜야 할 첫째 도리가 무엇인지 아느냐?”
온조는 여러 가지 낱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용맹성? 지혜? 개척정신? 너그러움? 통솔력? 다 필요한 것 같다. 그렇지만 첫째가 무엇이 되는지 알 수 없었다.
“모르겠습니다.”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다.”
온조는 그 말을 나라 다스리는 주춧돌로 삼았다. 그가 백성들을 어여삐 여기고, 사랑한다는 소문은 널리 퍼졌다. 온조가 군사를 몰아 말발굽 아래 그들을 굴복시키기 전에 저절로 고을을 들어 바쳤다. 온조는 전쟁 한번 하는 일 없이 주위 기름진 땅들이 모두 그의 나라가 되었다. 나라 이름을 백제로 새로 고치고.
소서노는 온조의 나라가 틀을 갖추자 큰아들 비류를 찾아갔다. 그러나 비류는 병들어 누워 있었다.
“비류! 네 큰 꿈은 어디 갔느냐?”
어머니 음성이 들리자 비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제 마음이 교만하여 어머니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기에 제 꿈은 바다 건너서, 언덕을 넘어서 날아가 버렸습니다.”
비류는 성급하게 배를 만들고, 혹독하게 군사를 훈련시키며, 백성을 회초리로 다스렸기 때문에 견디지 못한 백성들이 언덕을 넘어 도망가고, 적과 싸우러 보냈던 군사들의 배는 돌아오지 않았다. 화가 난 비류는 나라는커녕 자기 스스로도 다스리지 못해 병을 얻은 것이다. 소서노는 기대가 무너지자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그러나 곧 나라 큰 틀을 생각했다.
“비류! 이래선 안 된다. 마음 크게 먹고 다시 건강을 되찾을 때까지 온조에게 나라를 맡겨라.”
비류는 어머니 말씀대로 나라를 온조에게 다 넘겼다. 그러나 회복되지 못하고 곧 죽었다. 온조는 형 비류의 나라까지 아우르니 더욱 강대한 나라가 되었다.
온조왕 13년(기원전 6년) 봄 2월, 괴상한 소문이 연달아 나돌았다.
-성안의 한 노파가 남자로 변신했다는데?-
-다섯 마리 호랑이가 성 안으로 들어왔단다.-
곧 소서노의 죽음을 알리는 방이 온 나라에 걸렸다. 나이 예순 하나. 온조는 슬퍼하며 비문에다 다음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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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두
경남 남해 태생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교육자료지 동시 천료
경남아동문학회장 역임
동화집<세상에서 제일 큰 어항>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