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대포에 오면 발코니에 앉아 해무 피어 오르는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이 많다. 멍때리는 시간이다. 어떤 주제나 화두를 두고 사색이나 사유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냥 허비하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나이에 이 귀한 시간을 말이다.
칠순이 되면서 내게 남아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미 있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을 생각해 본다. 사전적 의미로 크로노스가 실제로 흘러가는 절대적 시간을 뜻한다면, 카이로스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한 순간' 또는 '인간이 평생 동안 체험하는 주관적 시간'을 뜻한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간은 달력이나 시계로 잴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의 개념이 크로노스의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공평하게 적용되는 시간이다. 우리는 이 시간에 맞추어 살아가기 때문에 크로노스의 시간은 어느 정도 미래를 예측하는 기준이 되고, 지난 날 어떻게 사용했느냐에 따라서 현재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모두에게 다르게 나타나는 시간이다. 같은 1분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 때가 많다.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1분은 매우 짧겠지만,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 숨을 몰아쉬는 어머니가 느끼는 1분은 너무나 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크로노스의 시간을 소비하고 사라진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해주는 사람들도 없어지게 된다.
우리는 성인 철학자 사상가 예술가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분들의 말이나 생각을 인용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기억으로 살아있는 것이다. 그분들은 카이로스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사라지지 않는...
크로노스의 시간은 내 마음대로 관리하기가 불가능하다. 하루 24시간을 25시간으로 만들 수 없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의미의 시간이라고 했다. 노력하기에 따라 영원한 시간도 만들 수 있는 거다.
고딩 친구가 틈틈히 올리는 글이나 사진을 보면 시간을 참으로 알차게 잘 보내고 있다는 걸 느낀다. 글과 사진이 가슴에 많이 와 닿고 그곳의 느낌을 잘 전해 준다.
그 친구는 주어진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바꾸어 내게 전해준다. 시간을 의미있게 만들고 있다.
望八을 앞두고 다시 되돌아 내게 묻는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게 주어진 크로노스의 시간 말고 카이로스의 시간을 만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