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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Sermon 스크랩 교회성장은 성경에 한마디도 없다 (20180422 오후 이송오 목사) 요약
kingdom 추천 0 조회 90 18.05.01 09:2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성경: 사도행전 10:34~43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원제목: 내면을 보시는 분 


옛날 돛단배들은 바람이 없으면 항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지 않으시면 항해를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지요.

하나님께서 주관하지 않으시면 목적지가 어디인지, 어디로 경유해서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모르는 것이에요. 성경이라는 나침판을 주셨는데, 이 나침판이 없으면 인생은 어디로 갈 줄 모르는 것이에요.

프랑스가 비키니섬에서 핵 실험을 한 이래로, 거북이들이 방향을 모르는 것이에요. 알을 낳아놓고 바다로 들어가야 하는데 바다로 못들어가고 헤메다가 그대로 배고파서 죽어버린거에요. 방향감각을 상실했다는 것이 거기서 나온 거에요.

1492년 8월3일 콤롬버스 산타마리아 재현한 것입니다.그의 일기에 9일동안 무풍지대에 움직이지 못했다고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목적을 가지고 항해해야 할 배가 장기간 바다위에  닻을 내리고 그냥 있는 것은 무료하기 그지 없었을 거에요. 그런 상황이 오래가면 절망이 주는 공포에 휩싸이기도 했다고 그래요.  그리스도인의 영적침체는 이와 같다. 하나님보다도 더 귀히 여기는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영적 침체에 걸리게 되어 있어요. 성장하게하는 동기를 발견하지 못한체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니게 되면 무풍상태에 갇혀있는 선원들처럼 낙담하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모르게 되면 교회 생활에 활력을 잃게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이후로 여러종류의 경건파운동이 독일의 대학들에서 시작되었는데 무기력한 루터교회의 침체에서 견딜수 없는 학생들이 가정에서 작은 그룹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던 것이에요.  예수님을 믿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잘믿고, 기도해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기도를 잘하는지 어떻게 해야 응답받는지 몰랐기 때문에 영적 나태에 빠져버린 것이지요. 

 the history and theology of Moravian Church from the time of John Hus (15th Century) through the time of Zinzendorf (18th Century) to the present day.

체코슬로바키아 옛날 보헤미아에서 시작된 진젤돌프의 모라비아운동, 그 다음에 퓨리탄들의 운동, 필라델피아 학회들도 심지어 예수회까지도 성질은 달랐지만 침체된 카톨릭으로부터 하나의 탈피수단이었던 것이에요. 그러니까 진리를 가르치지 않고, 성경을 가르치지 않고, 강단에서 쓰잘데 없는 소리만 했다할 것 같으면요 여러분은 이미 영적으로 피폐해져 버린 것이에요. 영적으로 죽어버린 것이에요. 교회만 왔다갔다 할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 카톨릭 전통으로부터 하나의 탈피수단으로 모임을 가졌지만, 지도자도 성경을 모르고, 거기에 있는 자도 성경을 모르고, 책도 없고 그러기때문에 그들안에는 성령이 역사하는 것이 전무했어요.

수도원은 자신들의 약점을 숨기는 산무덤이 이었다고요. 그 안에서 살다가 죽으면 하늘 나라으로 이어지는가? 천만의 말씀, 그들은 성경에 무지한 은둔자들이었다고요. 바른 성경이 없이, 구령의 열정이 없이, 진리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교과서들이 없이, 교리서들이 없이,자격있는 성경 교사가 없이, 자격있는 리더쉽이 없이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모범을 보이지 못했을때, 그러한 운동의 생명은 단명할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 사람이 많이 모이니까 좋은 교회인것 같지요? 아니에요.     


우리 교회는 중세의 그들과 다르다고요. 뜻만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동기를 활성화 시킬수 있다고요. 영적침체에서 벗어나려면 증인의 임무를 신실히 수행하면 되는 것이에요. 여기에 우리 거리에서 설교하고 구령하는 성도들 있지요?  이 성도들이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에요. 의무적으로 나가는 거 아니에요. 마음속에서 기도하니까 성령님게서 역사하시는 거에요. 그러니까 거리에 나가서 설교도 하고 구령도하고 하는 것이에요. 왜 우리나라에서 우리 성경대로 믿는 우리 교회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들은 성경에 무지하기 때문에 입도 뻥끗 못하는 거에요. 사람들을 처다보지 말고 주님을 처다보라. 주님은 외향을 보는 분이 아니시라 사람의 내면을 보는 분이시라고요.

 

고린도후서 4:16 이런 까닭에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라. 오히려 우리의 겉 사람이 썩어질 지라도 우리의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 지나니  성경을 읽지 않고, 바른 교리서를 읽지 않고는 속사람이 새로워 질 수 없어요. 17이는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환난이 우리를 위하여 훨씬 뛰어난 영원한 영광의 비중을 이루어 가기 때문이라. 18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들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 이는 보이는 것들은 잠깐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하기 때문이라. 그렇죠?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신실한 사람이지요.


1. 새생명을 받았으면 그 생명을 나눠주라. 살아있는 영적 생명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에요.

 첫째가 고넬료의 집에서 베드로의 설교에요. 34절에서 38절이에요. 34그때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기를 "참으로 내가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이 세상에는 두 부류밖에 없다. 하나님에 속한 사람하고 마귀에 속한 사람이다. 구원주시고 그리스도인 생활의 주인이에요. 영어로 Savior and the Lord라고 했다고요. 구원주만 되시고 생활의 주인이 안되시면 그 사람 반쪽 믿음밖에 안되는 거에요.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주시고 우리의 생활의 주인이세요.



우리가 알아야할 교훈은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선교행적을 기록한 책이지 신약교회의 교리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사도행전을 교리로 여기는 은사주의자들, 그리스도의 교회들, 로마 카톨릭교회들은 모두가 이단 교리들을 실행하고 있어서 신약교리와 맞지 않는 것들이 허다하다고, 당시 예루살렘 교회도 이 점을 몰랐기 때문에 사도행전 15장 20,21절을 교리로 알고 지켰던 것이에요. 예루살렘교회도 그때까지는 교리를 몰랐어요.

사도 바울이 신학교회를 정립한 것이에요.신약교회 교리는 AD 53년부터 66년사이에 사도 바울이 기록한 14권의 서신서에 들어 있고, 사도 요한의 요한복음과 요한 1,2,3서 요한 계시록과 베드로가 쓴 베드로 전후서에 들어있는 것이에요. 한 사람만이 기록했다면 모르는데 세사람이 기록한 것이지요. 에!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제외해 놓고도 그렇다고요.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점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도행전 2:38절 위에 교리를 정립해서, 침례를 받으면 구원을 반는다고 가르쳐 이단이 된 것이에요. 뿐만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영적침례도 물침례로 알고 행하는 것이에요. 그런 교회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이에요? 



교단들이 생겨난 것은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지 못한데서 생겨난 것이에요. 무조건하고 자기가 신학교를 나왔으니까  목사를 해야한다고, 그런 사람이 오류를 범하는 것이에요. 그 사람은 사실은요 그사람을요 죽이는 거에요. 알지 못하는 사람이 설교를 해야지 되는데 무엇을 설교하지요? 죽이는 거에요. 알지 못하는 것은요, 성령님이 그 사람을 부르시지 않은 거에요.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은 사람이라고요.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설교하는 거, 어떻게 한 두번은 할 줄 몰라요. 그러나 매주, 54주 설교를 한다? 그것도 오전 오후로 나누어서설교를 한다, 불가능한  것이에요. 그래서 거짓말하게 된 거라구요. 아무거나 떠들어버리면 전부 오염시키는 거에요. 각자가 받아들이는 것이 다 다르기 때문에 오염시켜버린 것이에요. 그래 성경적인 교리가 아닌 것을 가져와서 세상에 나가 써먹는 거지요? 새 생명을 받는 성도는 그 생명을 나누어주어야 되는 것이에요. 


거기 사도행전 10:39에서 41절 보십시요. 39우리는 그분이 유대인들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일의 증인이라. 그들이 그분을 죽여서 나무에 매달았으나  40하나님께서 그분을 셋째 날에 살리셔서 드러나게 여 주셨으니  41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미리 택하신 증인들에게 하신 것이니 곧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신 후 그분과 함께 먹고 마신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하나님께서 미리 택하신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교단 교리를 전하는 사람들은 죄인들을 자기 교회로 유인할 목적으로 접근해서 예수 믿으면 병낫고, 귀신 쫒고 방언한다고 가르치거나, 예수 믿으면 부자가 된다고 가르치며, 기도하면 응답받는다고 꼬셔서, 그런 자들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아니에요. 그것은 속임수에요. 교회에서 속임수가 있어서 되겠어요?


거기 정부에서 투표로 사람을 뽑는다고 하니까요 그것을, 투표를 속여버린 거에요. 진리가 물건너 가버린거에요.거짓말쟁이들이 정치를 하니까요 정치가 되겠어요? 어! 유기지요. 이제 좀 정신차려야 되는데요, 어떠게 해든지 사람들이, 실업자들이 빌붙어가지고 가증스러운 자들이라. 이제 좀 정신차려야 되는데요,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이, 실업자들이 거기에 빌붙어가지고 한자리 해 먹을라고 하는 것이에요. 


신약교회가 전하는 복음의 핵심은 고린도전서 15:1~11절에 다 들어있는 것이에요

주님을 증거하는 성도들은 누구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된다. 반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지혜를 얻지 못하기에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시편 111편 1절에서는 주를 두려워함이 지혜의 시작이라. 잠언 1장7절에서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거늘 어리석은 자들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욥기 18:28절에서 보라,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곧 지혜요, 악에서 떠나는 것이 곧 명철이라. 복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다고 시인하면 구원받는 되는데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그는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이에요. 성경을 인간적인 지혜로 믿는다고 가정해보라. 거기서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무슨 영적교감이 있을 수 있겠어요. 없어요. 


하나님을 두려워 함으로써 성도가 얻는 결실들은 지혜를 얻게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어요. 시편 141편 11절대로.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받아주시는 것이에요. 여기 본문 35절에 있는대로. 그 다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자비를 얻는 것이에요. 시편 103편 17절에 있는 대로요. 그리고 복을 가져오는 것이에요.


받은 복을 헤아려보라는 찬송가 있지요? 찬송가 부르면서도 잘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복이란 것은 무엇이 보이게 오는 것이 아니에요.

그 사람의 믿음으로 형성한 환경속에서 시작부터 탁~ 복이 있는 거에요.

자식을 하나 낳아보지요. 그 자식이 자라다가 죽어버리면 어떻게 하는 거에요? 병걸리거나 사고나가지고.

그 자식을 잘 보호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이신거에요. 

그 집안에서도 볼 수 있어요. 자식 한 명이 성장하는 과정을 딱 보면서요, 다른 자식하고 다르다 했을 경우에는 그 자식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이에요. 그래, 받은 복을 헤아려보라. 

왜 나는 하는 일마다 안되냐고? 

하나님께 먼저 묻지 않아서 그런 거에요?  자기가 먼저 시작해버린 것이라고요. 아세요?

각 가정마다 다 마찬가지입니다.


아,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왕을 만들라고 세워놓았는데, 병이 들어 죽어버렸다고요. 어디 나무에 올라가 떨어져가지고 다리가 부러졌더라던지, 불구가 되었다든지, 눈이 하나 없어졌다든지 한번 보세요. 부모은 자식들 다 사랑하고요, 잘못된 자식을 병들고 그런 자식을 더 많이 사랑하는 거에요. 볼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셨구나, 특히 엄마가 애 젖 물리고서 다 볼 수 있는 것이에요. 그게 복이에요.  

인간의 노력으로만 하는 것이 그것이 복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무엇을 해주시겠다고 하시면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에요.  그게 그리스도인 Virtue에요. 그리스도인의 덕이에요. 다른 사람에게는 안주어요. 나도 지금 80년 살았지 않았어요? 만으로 80년 살았는데 그동안 내 생애에 일어났던 일은 별일이 다 있지요. 주님이 계속해서 내 생을 인도해서 오신 거에요. 


3. 새 생명을 받은 성도는 그 생명을 나누어 주라. 

세번째로 모든 선지자들도 동일한 메세지를 전했다고 했어요.  

43절에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죄들의 사함을 받으리라."  이 말씀은 율법과 유대인 전통에만 매달려 있던 그들에게는 충격적인 메세지가 아닐 수 없었어요.  이제 그 자리는 율법을 지키는 자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를 믿는 자들로 나뉜 것이에요.  이 말씀을 듣고서도 여전히 율법쪽으로 기울어진 자들에게 후에 바울이 규명해 준 것이에요.  거기 로마서 2장 1~16절까지 읽으세요.


말을 잘한다고해서 복음을 전하는 거 아니에요.

한마디 말도 되는 것이에요.

사람이 왜 죽습니까?  죄 때문에 죽습니다. 그말 한마디만 해도 되는 것이에요.

당신이 지상에 사는동안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을 받습니다.

이것은 내가 한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쓰고 있는 달력의 주인공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두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점으로하는 달력을 쓰고 있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분이 왕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는 순회설교를 하면 이 설교를 하는 거에요


그분이 통치하러 오신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우리는 기다리는 거에요.

기다리려면 제대로 기다리라는 거지요.

사람은 죽음으로 끝나는거 아니에요. 영원히 사는 거지요. 혼은 불멸이에요. 

우리는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가진 것이라고요. 

그것을 실질적으로 자기가 느끼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안는다면 그사람 잘못 믿는 것이에요.  


예수님의 양쪽에 매달렸던 죄수들은 중 한사람은 예수님의 제안을 받아 새 생명을 받아 낙원으로 갔고, 왼편 죄수는 거절하여서 지옥으로 간 것이에요.  이 일은 지상생명이 촌각에 달려있을 때, 한 찰라에 벌어진 일이었어요. 선한 양심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현대인의 잘못된 발상은 교회성장에 있지만요, 교회성장은 성경에는 한마디도 말씀하지 않았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고만 말씀하셨지요. 교회성장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성경에 없어요. 

예루살렘 교회는 당시에 하루 삼천명도 늘어난 것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고서 사람들이 교회로 달려온 것이에요.

여러분은 이미 부활의 소망을 지니게 된 것이지요.

영생도 받았고 부활의 소망도 받았고, 주님이 오시면 공중으로 솟구쳐 올라가는 것이에요. 

우리 앞에 죽은 사람이 먼저가고 그 다음에 우리가 가는 것이에요. 안믿는 거에요.  

누가 교회성장에 관심있지요?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지요. 왜 주님께서 교회성장을 말씀하셨겠는가? 

성경은 구원받지 못한 혼들이 둘째 사망을 위해서 예비된 지옥불에 태워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주님이 왜 교회성장을 말씀하시겠어요? 쓰레기들을 모아가지고 교회성장을 자랑하라고 그러신 것이에요? 절대로 그러지 않으셨지요? 주님은 지상에서 집도 없었고, 몸둘데도 없었고 모이는 장소 그것도 없었어요. 우리는 지금 너무 행복한 거에요.  


생명책에 자기 이름이 등재되지 않은 사람은 지옥불에 들어가는 것이에요.

그것이 성경 계시록 20:15절의 말씀인 것이에요. 

계시록 22장 7절, 12절,20절에서는 주님이 오신다고 3번 약속하신 것이에요. 

근데 의심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거에요.   


설교동영상 바로가지 https://www.youtube.com/watch?v=PIJkt7M4Pwc&t=1549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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