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 1부 제 3장
<사업>
이 장은 에드워드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단어를 동양에 대한 서양의 접근을 서술하기 위한 총칭적 용어로 사용하여 왔고, 그것은
규율-훈련이며, 그것에 의해 학식과 발견 및 실천의 주제인
동양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행해져 온 것이라는 에드워드 생각으로 시작이 된다.
유럽에서 동양이란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일관하여 서양이 움직일 수 없는 지배를 미쳐 온 영역이었다. 하지만 아랍과 이슬람의 동양만이 정치적 및 지적 차원에서 또 경제적인 차원에서 유럽에 대하여 확고하게 도전을
계속했었다. 이러한 점에서 분명히 이슬람은 많은 점에서 참으로 도발적인 존재였다. 헬레니즘적 전통을 유발한 것과, 기독교로부터 독창적인 방식으로 차용한
것도, 군사적 및 정치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공을 과시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슬람이었다. 이슬람이 로마제국을 능가하고 로마보다 우수했다고 하는 사실은, 과거와
현재의 어떤 유럽인의 마음에서도 잊혀질 수 없는 사실이었다.
1798년, 나폴레옹에 의한 이집트 침입과 시리아 침략은 오리엔탈리즘의
근대 역사에 훨씬 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 되었다. 나폴레옹 이전 단 두 번의 동양 침입 시도는, 동양을 덮은 베일을 벗김에 의해, 비교적 안전한 장소였던 성서 속의
동양에까지 진출하고자 함에 의해 달성되었다. 그 최초의 시도는 괴짜 평등주의 논객인 앙크틸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쟌세니즘을 정통가톨릭교와 브라만교와 융합시키고자 했고, 선민과
성서에 기록된 계보가 성서시대 그대로 현존하고 있음을 입증하고자 아시아를 여행했다. 그러나 그는 목적을
달성하기 이전에 최초의 목적지를 통과하여 더욱 먼 동양인 수라트를 방문했고, 그곳에서 아베스터 문헌의
저장고를 발견하여 아베스터의 번역을 완성하게 되었다. 앙크틸에 의해 처음으로 동양은 텍스트와 언어 그리고
문명이라고 하는 실체성을 수반하고 유럽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또 아시아가 엄밀한 지적 및 역사적인
차원을 확보하고 그것에 의해 아시아의 지리적인 거리와 광대함의 신화가 보강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나폴레옹
이전의 오리엔탈리즘 프로젝트 전부에 공통되게 나타나는 특징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하여 사전에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폴레옹 이후,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오리엔탈리즘의 서술적 사실주의는 격상되었고, 더 이상 단순한 표상의 한 양식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 실제로 창조를
위한 수단으로 변했다.
나는 이 장을
읽으며 ‘마치 육지의 장벽이 수로로 변한 것과 같이, 동양도
또한 반항하는 적대자로부터 협력적이고 순종하는 동맹자로 변질되었다.’ 라는 부분에 대해 많은 의문점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우리 동양인들은 왜 동맹자가 되어야했는가? 라는
의문점을 가지면서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하였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동양인들은 왜 동맹자가 되어야했는가?' 라는 의문점에 대한 이해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