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 닦는 법과 육바라밀은?
이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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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김형학의 한마디~>
-자~
지금 만나는 사람이 나의 運命을
만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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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利利他요, 그 知人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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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법무사 김형학>
-이글은
제4분의 ’마음 닦는 법 妙行無住分‘은
# 육바라밀의 자기 생활화?
# 六波羅密을 修行하라!
# 현상에 집착하지 말라.!
순서로 쓰고 있지요.-
자~
# 妙行無住分 第 4는~
위의 수보리가 수행하는 법문을 청할 때
’어떻게 마음이 머물러야 하는가?
應云何住 ?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 ?
云何修行 云何降伏其心?
라는 두가지 질문을 했지요.
그 첫 번째 질문은~
마음 머무는 법에서
네 가지 마음에 머무르되 4相을 항복
시키라‘고 했고,
여기서는
그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이랍니다.
’보살은 육바라밀을 수행해야 하며,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4相에 집착하지 말라.‘
자~
이것은 보이는 세계, 들리는 세계,
우리 눈 앞에 펼쳐진 현상에~
세속적인 세계에~
욕심내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이지요.
육바라밀을 닦는다는 말을
不住相 보시, 無住相 보시라고 한답니다.
’보시‘라는 말 속에는 육바라밀이~
다 들어있지요.
☀반야 바라밀의수행은 無住相 보시
이랍니다.
무주상 보시는~
色聲香味觸法에 집착하지 않고,
보시를 닦고 持戒를 닦고
인욕을 하고, 정진을 하고,
또 선정을 닦고,
지혜를 닦는 보시 이지요.
그러나
집착하지 않고 닦기 때문에
닦기는 수없이 닦지만~
닦는다는 마음은 없답니다.
또 수보리야,
보살은 온갖 법에 대하여
마땅히 머무름이 없이 공덕을 닦아야
하나니,
이른바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소리에 집착하지 말고, 좋은 냄새,
맛있는 음식, 여러 가지 촉감,
자기 주장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공덕을 닦아야 하느리라.
수보리야, 네 생각은 어떠하냐?~
동쪽에 있는 허공을 생각하여
헤아릴 수 있겠느냐?
’못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남쪽 서쪽 북쪽 네 간방과
위 아래에 있는 허공을 생각하며
헤아릴 수 있겠느냐?‘
’못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보살은
이 현실적인 욕망에 끌리지 않고
중생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
공덕생활을 하는 공덕도~
그와 같아서
생각하여 헤아릴 수 없느리라.
수보리야, 보살은
단지 이렇게 가르쳐 준 대로만
실천해야 할 것이니라.‘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囑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不可思量
須菩提於意云何 東方虛空可思量不不也
世尊 須菩提 南西北方四維上下虛空
可思量不不也
世尊 須菩提
菩薩無住相布施 福德亦復如是 不可思量
菩提樹 菩薩 但應如所敎住
자~
☀현상에 집착하지 말라.~
현상에 집착하면 결국은 잡히지도 않고
끝내 허망할 뿐이랍니다.
-See You Again-
<옮긴이 법무사 김형학>
## 六波羅密을 修行하라!
<옮긴이 법무사 김형학>
’또 수보리는 앞에서 한번 말했기
때문에
‘또 復次’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보살은 온갖 法에 대하여
마땅히 머물러 있는 생각이 없이
보시해야 하나니~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는
’보살은 어떤 경계에 머물러서~
보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랍니다.
온갖 법은 물질과 정신을 통틀어서
이르는 말로~
색성향미촉법 등 육근의 대상인
六境, 六塵을 말한답니다.
보이는 세계, 들리는 세계, 냄새나는 세계,
등 이런 세속적인 모든 현상이지요.
자~
여러 세속적인 것을 다 法이라고 한답니다.
현장은
이를 事라고 옮겼답니다.
불교에서 萬法이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초기 불교에서는
眼耳鼻舌身意를 한문으로 의미심장하게
뿌리 根이라 옮겼답니다.
이를 인드리아 indriya라고 하는데,
이것은 인드라 indra에서 파생되었는데요.
이는 인도의 神들 중에서 가장 힘이 센
王이랍니다.
☀그런 힘을 가진 것을
감각기능이라 表現하는 것이지요.
색성향미촉법은~
우리가 빠져들고 움켜쥐고
연연하는 대상으로서~
수행자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것들이지요.
☀감각기능 자체인 육근과
그 대상인 六境을 12處라 하지요.
無色界의 四禪 jhana 즉
空無邊處, 識無邊處, 無所有處,
非想非非想處를
부처님은 四處 ayatana라고 하여
수행자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相이라고 했지요.
‘머무른다.’는 말은~
머무를 住의 세 번째 뜻인 집착을
의미한답니다.
보살이 세속적인 것에 집착하면~
목표도 세속적인 것이 된답니다.
그래서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염원이 흐려진답니다.
항상 목표와 현실이 문제인데요.
자기 욕망을 이루면~
중생을 제도하는 불심이 약해지니
중생을 복되게 하려는 목표를 위해
보살은 세속적인 집착을 버려야 하지요.
그래서
머물러 있는 생각은 집착이랍니다.
보살은
마땅히 이렇게 보시를 행하여
겉모습에 집착하지 않아야 되느니~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에서
겉모습을~
현장은 相想,
구마라습은 그냥 相으로 옮기고 있답니다.
각목스님은
이를 앞서의 4상의 相과 구분한답니다.
☀4상은 샨냐 sanjna로서
마음에 무엇이 槪念化되고
理念化 내지 音韻化, 觀念化된 것인 반면,
여기의 상은 니밋따 nimitta로서
마음에 어떤 것이~
形象化 visualization 된 것이라고
해석된답니다.
예를 들어
수행자가 성불이라는
개념이나 이념을 만들어 낸다면~
그것은 샨냐 sanna이며
마음에 극락세계를 무릉도원으로
形象化한다면~
그것은 니밋따인 것이지요.
보시 布施는 범어 다나 dana의 번역인데,
‘공덕을닦는다.’
‘육 바라밀을 닦는다. ’ 는 뜻이랍니다.
☀보시 布施는 내용에 따라~
재물을 주는 財施와
진리를 일러주는 法施
그리고
두려움을 없애고 안도감을 주는
無畏施로 나눈답니다.
또 보시의 형태로 보아서
有住相布施와 無住相布施로 나누는데,
전자는
마음에 보시한다는 자취가 있는 것이며
후자는
아무런 자취도 없고 머무름도 없는
보시이지요.
부주상보시나 무주상보시는~
앞 글자만 틀릴 뿐 같은 내용이지요.
상에~
집착하지 않고 보시한다는 뜻이랍니다.
‘상’은 현실적인 여러 가지 내용,
즉 보이고 들리고 냄새나고 맛보는
세속적 욕망이지요.
현실적인 내용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은~
자기 욕구에 매달리지 않고
중생의 평화와 행복을 위한 공덕 생활을
한다는 뜻이랍니다.
따라서
☀ 깬 사람은~
중생의 행복을 원하게 되지만,
못 깬 사람은~
자기만의 행복을 원하게 되지요.
중생의 행복을 위해서
공덕을 닦으면
自己도 행복하고 중생도 행복하지요.
자~
이것을 自利利他라고 한답니다.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자기도 물론 중생도 괴로움에 빠지게
되지요.
우리는 흔히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친답니다.
그러면 결국~
자기도 파멸하고 손해를 당한 사람은
큰 고통을 당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부주상보시를 하라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육 바라밀이랍니다.
보시, 지계, 인욕,/정진, 선정, 지혜는~
財物 보시, 無畏보시, 法 보시로서
모두가 보시 이지요.
깨우침을 줄 사람에게는
깨우침을~
위안을 줄 사람에게는
위안을~
또 재물이 필요한 중생에게는
재물을 주며 사는 것이 보살이지요.
중생은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는답니다.
☀ 왜 그럴까?
自己 목표가 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출세하고 싶다.
부자가 되고 싶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엇을하든 쉬운 것이 있겠는가,~
수재 의연금이나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라고 하면
그것이 어디에 쓰이는지 의심스럽고
체면 때문에 안 낼 수도 없고
아주 괴롭답니다.
그런데
보살은 같은 돈을 내면서도
기쁘게 낸답니다,
아들딸에게 주는 것은 기분이 좋은데,
엉뚱한 사람에게 줄 때는 억울하지요.
자~
전부 마음 먹기 달린 것이랍니다.
미국 인디언들의 전설에는
레인메이커rain maker를 치송하는
내용이 있는데요.
그들에게는 곡식이 자라는데
필요한 단비를 내리게 하는
주술능력을 가진 이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지요.
비가 내리지 않으면 가뭄에 시달리다가
끝내 자신들의 생활 터전을
옮겨야만 했기 때문이지요.
요즈음은 이 말이
매출을 늘리는 영업사원이나~
신규회사의 창업자, 또는
이를 도와주는 자본투자가~
사회에서 소외 받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자선사업가 등의 의미로 쓰인답니다.
비는 보슬비일 수도, 소낙비일 수도,
장맛비일 수도 있지요.
그러나 어떤비든 간에
그것은 보살행에 속한답니다.
초기 로마 시대의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솔선수범과 공공 보상,
자발적인 기부와 헌납 등으로 표현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지noblesse oblige도
이에 속한다 할 수 있지요.
오늘날 기업경영도 그렇답니다.
처음 조그맣게 자기 사업을 할 때는
자기 이익을 챙기게 된답니다.
그런데 기업이 커져서 국가적 산업으로
발전할 때는
자기 자신이나 가족의 이익만
생각할 수는 없지요.
얼마 전 빌케이츠 마이크로소프트회장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며
창조적 자본주의 creative capitalism를
주장하였답니다.
이와 같은 기업문화에서
결국 남을 위하는
利他主義가 생겨나는 것이며
그 행위로
자신이 만족하고 즐거워한다면~
自利利他가 되는 것이지요.
마음에서 나오는 목표의 차이는~
이렇게 다른 결과로 나타난답니다.
보살은 깨달음을 통해서~
중생을 복되게 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기에
보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금강경에서 말하는
보살행이랍니다.
자~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데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
無住相 不住相
금강경에서는
중생 제도를 위한 보살행을 강조한
반면,
세속적인 욕망에 끌리지 말라고
경고한답니다.
그 경고가
금강경 제일 마지막 부분까지
나온답니다.
-See You Again-
<옮긴이 법무사 김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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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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