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江 정철과 진옥(江아)의 사랑이야기
지난 17일, 여름 폭염 열기가 독버섯처럼 피어나던 화요일, 향교에서 선비교육을 받는 회원들 30여명은 삼척 죽서루(竹西樓)를 다녀왔다. 문화 해설사가 따라붙어 진지하게 국보 1호의 삼척 보물을 마중물로 특히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사미인곡, 훈민가를 설명하였다. 국내 유일하게 삼척 죽서루와 16세에 와서 과거급제한 10년간 전남 담양에 정철 기념비가 두 군데 서 있다고 강조한다. 편액에 걸린 죽서루 시를 흠뻑 감상하고, 애틋한 송강의 사랑 이야기 또한 메마른 가슴에 감동이었다.
윤선도와 쌍벽을 이루는 한국 시가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은 선조 임금의 총애도 받아 도승지와 삼공을 모두 지냈지만, 광해군 세자 옹립문제로 노여움을 사서 함경도 강계로 귀양을 갔다.
송강이 46세 때 전라도 관찰사에 갔다가 진옥이라는 관기의 머리를 올려주었다. 당시 진옥은 10세를 조금 넘긴 어린 나이였다. 어린 기생의 머리를 올려주고 첫밤을 치렀지만, 손하나 대지 않고 플라토닉 사랑을 한 송강은, 그 후 세월이 흘러 당쟁의 한 복판에서 서인으로 유배와 낙향을 전전하다가 강계로 유배를 갔을 때였다.
한 밤중에 찾아든 여인이 진옥(眞玉)이었다. 전라도에서 함경도까지 찾아온 화룡월태花容月態의 진옥, 쓸쓸한 말년 귀양살이 정철과의 만남, 글을 흠모한 아름다운 기생은 이름도 송강의 강을 받아 강아(江娥)라 했다. 송강의 글을 강아는 거문고로 노래하며 술상을 가운데 두고 자자구구(字字句句) 댓구 형식으로 시를 주고 받는다.
*정철ㅡ옥玉이 옥玉이라커늘 변옥(인조玉)인줄 알았더니/ 이제와서 보아하니 진옥이 틀림없네/
내게 살송곳(生肉錐) 있으니 풀어줄까 하노라
*진옥(강아)ㅡ철鐵이 철이라커늘 섭철(잡철)인줄 알았더니/ 이제사 보아하니 정철正鐵(순수한 철)이 틀림없네
나에게 골풀무(骨火無) 있으니 녹여줄가 하노라
부창부수(夫唱婦隨)로 머리 올린지 10여년이 되어, 관찰사와 관기가 그 날 밤 뜨거운 밤을 보냈다. 송강 부인 유씨도 서신을 받고 유배지에서 고생하는 남편에 고마워했다.
임진왜란때 풀려나 전라 충청도 체찰사로 다시 임명되어 떨어진 두사람, 부인 유씨도 진옥을 한양으로 불렀으니 마다하고 혼자 강계에 남아, 진정 님을 사모하며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다. 후에 그가 있다는 고양 신원골을 찾았으나 아뿔싸 송강은 이미 강화도에서 죽은 후(58세), 무덤만이 쓸쓸히 그를 기다렸다.
진옥(江娥)은 이후 불교에 귀의해 소심(素心)보살로 송강의 묘소를 지키며 여생을 보냈다. 마을사람 덕德에 100미터 되는 곳에서 서로 바라보며 그곳에 묻혔다. 이런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듣고 송강 문중에서 진옥(江娥)의 제사도 지내주었다고 전한다,
그 후, 후손 송시얼에 의해, 송강 손자가 현감으로 있는 충북 진천으로 묘를 옮기고, 고양 신원골에 홀로 누워 있는 진옥(江娥)은 저 세상에 가서 분명 함께 영원하리라 .
우리 시조문학에서 진옥(江娥)을 송강첩(松江妾)으로 유일하게 문서에 기록되어 전하고 있다.평생 한 잔의 술을 사랑 한 송강은 고개 넘어 파주에 사는 성훈의 집에 술 익었다는 말 듣고, 누운 소 깨워 안장 깔아 올라타고 술친구를 찾아간 글이 그의 시 장진 주사에 여실히 보여준다. 술에 취해 산 관동별곡의 주인공, 그는 정치를 하면서 결코 간신배란 소리는 듣지 않았다.
문학과 술 그리고 사랑, 지고지순의 순정을 다시 소년처럼 온 몸으로 느낀 것은 하루가 긴 하지夏至 다음 날이었다.<끝>
글 德田 이응철
*1960년초 월탄 박종화의 대하소설 "자고가는 저 구름아" 7권도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송강과 진옥의 사랑이야기임,
첫댓글 좋은글잘 읽었읍니다.
살송곳.골풀무.~~
감사합니다. 살송곳, 골풀무 아무리 읽어도 사랑스럽기만한 부창부수,결코 남녀 성기를 들먹여도 음담패설 같이 느껴지지 않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