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동시 선정의 뒷이야기와 문제점들
박두순
‘시시하다. 재미없다. 깊이도 없다. 말장난 같다. 시의 맛이 적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 동시에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말들이 따라다닌다. 어린이들과 교사, 동시인들이 지적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집약하면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이하 교과서로 약칭) 동시는 부실하다’가 되겠다.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나, 부실한 작품이 많기 때문에 나오는 말일 게다. 왜 부실할까? 부실 근본 원인은 문학성, 예술성의 결핍 내지는 결여에서 온다.
교과서 동시는 먼저 문학성, 예술성이 짙어야 한다. 시이기 때문이다. 시가 된 다음에 분석과 감상, 평가가 이루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시가 되지 않은 작품을 놓고 일반시니, 동시니, 시조니 따지는 것은, 옷의 첫 단추를 제자리에 끼우지도 않고 옷을 제대로 입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교과서 동시는 이 점에 소홀하다. 시성詩性이 모자란다.
교과서 동시는 또 전범적典範的 이어야 한다. 전범이 되는 작품은 성숙돼 재미와 감동을 준다. 어린이들은 교과서 동시를 시의 절대적 전범으로 볼 것이다. ‘아, 시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태어나서 시를 처음으로 읽고, 감상하고, 쓰는 까닭에서다. 동시는 어린이들이 처음 맛보는 시여서, 시의 모유와 같다. 모유는 영양이 가장 풍부하게 그리고 골고루 배합된 어린이의 첫 음식이다. 어린이에게 이런 좋은 음식과 같은 시를 주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 점에 있어서 교과서 동시는 소홀하다.
중. 고등학교 교과서의 시는 대체로 그렇지 않다. 작품 선정의 객관성을 지니고 있어서다. 작품성(문학성, 예술성)도 어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왜 그런가? 먼저 교과서에 실을 만한 작품인가를 검토한다고 한다. 그 다음 시를 쓴 시인의 역량이나 문학적 성취를 살핀다. 이러면 수준 이하의 작품이 선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초등학교 교과서 동시는 어떤가? 작품성이 떨어지는 동시가 수두룩하다. 현재 교과서에는 100여 편의 동시가 수록돼 있다. 이 가운데 작품성 으로서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함량 미달의 동시가 30%가 넘는 30여 편은 된다고 한다. 적은 숫자가 아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첫째, 교육 목표에 따른 작품 선정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예절에 관한 동시를 고른다고 하자. 그런데 적당한 것이 없다. 이럴 땐 여기에 대충 맞는 시를 골라 넣는다는 것이다. 몸에 맞추어 옷을 지어야 하는데 옷에 맞추어 몸을 짓는 꼴이다. 이러니 수준 낮은 시가 들어갈 틈이 생긴다. 이럴 땐 어떻게 할 것인가.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개선문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리로 소방차가 들어가야 하는데, 문이 작아 통과를 못할 형편이었다. 소방서에서 그것을 옮겨 달라고 문화재청에 요청했다. 그러자 문화재청이 문을 옮길 것이 아니라 소방차를 줄여서 오라고 답했다. 이것이 맞다. 교육 목표에 시를 맞출 게 아니라 시에 교육 목표를 맞추어야 한다.
필자가 고백할 게 있다. 7차 교육과정 3학년 2학기 교과서에 필자의 동시 ‘무지개 만들기’가 실렸었다. 이 시가 실린 과정이 별로 개운하지 못했다. 어느날 선배 동시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지개를 소재로 동시 한 편을 빨리 쓰라고 했다. 교과서에 싣는다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쓴 동시가 좋을 리가 없었다. 교과서엔 실렸지만, 작품이 맘에 들지 않아 떳떳하지도 않았고, 내내 찜찜했다. 이것도 교육 목표에 맞춘 시 선정이 빚은 일이다,
교육 목표에 맞는 시가 없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그 교육 목교를 없애거나 수정해야 할 것이다. 이러면 어정쩡한 시가 들어갈 틈이 없어진다. 교육 과정 짜기의 통성이 필요하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먼저 좋은 시를 선정해 놓고 그 시에 맞춰 교육 목표를 추출해 가르치면 아주 이상적인 시 교육 내지는 국어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둘째, 작가 선정의 문제다. 교과서에 실릴 정도라면 문학적 성취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작가의 작품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권위의 문제이다. 문학이나 예술엔 훌륭한 작품에 대한 권위라는 절대적으로 존재하고 또 필요로 한다.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이것을 검증해서 작품을 싣는다. 그 때문에 수준 이하의 작품은 실리지 않는다. 작가로서의 튼튼한 문학적 권위를 가진 시인의 시를 찾아 싣는 까닭에서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도 80년대 이전엔 그랬다.
현재, 교과서 수록 동시 100여 편의 작가 면면을 살펴보자. 이름이 생소한 작가가 권윤덕, 김경성, 김석전, 박희각, 이상인, 김유진, 김일연, 박필상, 성덕제 등 11명이나 된다. 35년 동안 동시를 쓰고 읽은 필자가 잘 모르는 동시인이라면, 작가로서의 문학적 성취가 어느 정도일까.
등단 10년 미만 작가도 이정인, 최명란 등 10여 명에 이른다. 이러다 보니 설익은 작품이 실리게 되었다. 기막힌 것은 금방 등단한 신인의 등단작도 실렸다. 등단작이 실리지 말란 법은 없지만, 그 작품 수준이 어련하겠는가. 읽어보니 수준 이하다. 일상생활 경험을 그대로 전달한 산문화된 작품이었다. 등단작이 좋다고 해도 금방 실을 일이 아니다. 그 작가가 어느 정도 문학적 성취를 이룬 다움에 싣는 것이 순서다. 등단작 명작 수준인 정완영의 시조 ‘조국’이나 신경림의 ‘갈대’와 같은 문학,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도 작가의 성숙을 기다린 다음 교과서에 실었다. 이렇게 하면 나무랄 일이 아니다.
피천득 등 비시인의 작품도 수록됐다. 일반시를 쓰는 송찬호, 신현림, 이정환 등 10여 명의 시인 작품도 실렸다. 시를 쓰다 어느 날 갑자기 동시집 한 권을 내었는데, 대접을 받고 작품이 실리는 영광(?)을 안았다. 평생 동시를 써서 동시문학사에나 작품사에 획을 그은 동시인의 작품도 실리지 않았는데, 유명 시인이라고 해서 이런 대접을 해서야 되겠는가.
이런 경우도 있다. 동시조가 교과서에 실린 한 시조시인이 털어놓은 이야기이다. 교과서에 어떻게 해서 작품이 실렸는지 물었다. 자신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동시조를 많이 썼느냐고 묻자, 딱 7편을 썼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교과서에 실렸냐니까, 그 중 한 편을 어느 동시조 문예지에 실었는데 그것이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그 작품도 그리 좋지 않았다. 작품 선정 현실이 이렇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면밀한 조사, 검토 없이 오다가다 잡힌 작품을 교과서에 실었다는 이야기이다. 웃지못할 이야기 아닌가.
작품 수록이 특정 작가에게 쏠려 있는 것도 문제다. 교과서를 편찬하는 쪽에서 세운 선정 기준은 한 작가의 작품을 2편으로 제한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쏠려 있다. 2편이 수록된 작가는 김종상, 박두진, 박목월, 유경환, 윤동주, 이상교, 정완영 등 7명이다. 3편 실린 동시인은 문삼석, 이준관, 김은영 3명이고, 4편 게재된 동시인은 권오삼, 정두리 2명이다.
여기서 김은영, 권오삼, 권윤덕, 이태선의 작품이 이렇게 많이 실릴 만큼 뛰어난 작가인가? 아무래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이들 동시인이 우리 동시문학사에 찬연히 빛나는 윤석중, 이원수. 강소천, 어효선, 박홍근, 신현득 같은 작가보다 좋은 작품을 많이 쓴 동시인인가. 어효선, 박홍근 같은 작가의 동시는 아예 실리지도 않았다. 수긍하기 어렵다. 이유 없는 쏠림 현상이다. 게재 원칙에도 어긋난다. 시정되어야 한다.
셋째, 수준 모자라는 작품을 고르는 교과서 편저자의 안목도 문제다. 작품을 보는 눈이 모자라거나 자신의 취향, 아니면 가까운 사람 것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이렇다면 큰 문제다. 교육 목표에 맞는 작품이 없어 그랬다고 할런지 모르지만, 수준 높은 좋은 동시는 얼마든지 있다. 아니 많다. 아마 그런 자료를 갖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그랬다면 작가나 관련 단체 등에 자료 협조를 받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교과서 동시 선정은 임시방편이나 땜질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다시 개정되고 있는 교과서에는 이런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을 당국에 촉구한다. 어린이에게는 모유 같은 동시를 먹여야 하는 것이다. 동시의 본질을 어린이에게 맛보이자. 참된 아동문학, 예술의 향기를 어린이들이 접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알찬 동시를 선정하는 것이 절대 옳다.
게재 편수도 줄이는 것이 좋다. 현재 교과서 동시 100여 편은 학년당 17편으로 좀 많다. 15편 이하로 줄이는 게 좋겠다. 그래서 고만고만한 동시는 빼고 자타가 공인하는 알찬 동시를 실어야 한다. 어린이가 즐겁게 읽는 것은 물론 외우고 싶을 정도의 우수 동시를 싣는 게 옳다. 좋은 동시를 더 읽히려면 교사가 우수 동시집을 골라 읽히도록 지도 교과서에 명기하면 될 것이다.
시 선정은 위해 동시 선정 자문 위원회 같은 것을 두어 작품과 작가 검증을 거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니면 아예 동시 선정을 맡기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다. 이렇게 객관성을 유지할 때 비로소 작품 선정의 부작용이 최소화 되고, 소기의 성과를 거둘 것이다.
끝으로, 이러한 논의나 제의를 부디 불평불만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란다. 오직 빛나는 시가 교과서에 가득차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이런 의견을 내었다. 좋지 않은 동시를 읽히는 것은 어른이 어린이 마음을 흐리게 하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과 같다. <오늘의 동시문학>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