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예서(隸書)
- 주가 멸망하고 천하는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었는데, 이를 통일한 진(秦)의 시황제(始皇帝)가 군현제(郡縣制)를 실시하면서 행정적 실용성이 중시되어 전서를 보다 빠르고 쉽게 쓰기 위해 고예(古隸)가 발생됨
- 예서의 명칭에 대한 일반적인 학설로는 법가(法家)를 바탕으로 철권통치를 행했던 진(秦)나라였기에 강한 형벌(刑罰)의 행사로 노역(勞役)의 죄수들이 많아 이 죄수들을 관리하는 형리(刑吏)들이 간편하고 쉬운 행정 문서를 다루기 위해 고안했다고 해서 '노예 예[隸]'자를 써 예서(隸書)라 명명됨
- 한무제(漢武帝)때에 예서가 국가의 공식 문자로 정착됨
- 예서는 진예(秦隸)인 고예(古隸)와 한예(漢隸)인 팔분(八分)으로 구분되며, 그 차이는 파법(波法)에 있음
* 곡선의 둥근 자형으로 인해 아직 회화적 요소가 남아 있던 소전의 자형에서 완전히 벗어나 직선의 기호적 성격을 지닌 서체를 만들어 전체적인 자형이 사각형 모양으로 되는 전형을 이루게 되며, 현대의 한자에서 둥근 원형 모양의 획이 없는 것이 바로 이 예서에서 형성된 것임
(1) 고예(古隸)
- 진예(秦隸)라고도 하며, 전서를 빠르게 쓴 것으로 진대(秦代)에 시작되어 전한(前漢) 때 통용되었는데 전(篆)이 예(隸)로 변화하는 과도기적 특징을 나타냄
① 특징
ㅇ 소전(小篆)보다 곡선이 적고 획이 간결하지만, 소전처럼 좌우대칭이며 팔분처럼 편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소전처럼 장방형도 아님
② 종류
ㅇ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 : 고구려 장수왕 2년(414년)에 세워진, 동양에서 가장 큰 비석(높이가 6미터가 넘고 넓이가 1.5미터가 넘는 자연석). 우리 민족의 서적(書跡)중 최고(最古)의 것으로 중국식과 다른 비석의 형식도 그러하거니와 소박장엄한 고예체(古隷體)의 서(書)는 고구려인의 독립자존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음
(광개토대왕비 사진)
(2) 팔분체(八分體)
- 팔분이라는 명칭은 팔자처럼 좌우로 흩어진 모양을 하고 있다는 팔자분배(八字分背)에서 유래한다거나, 전서의 팔분을 취하고 있다는 의미의 팔분체에서 유래한다고 설이 있으나 글자의 높이가 소전체의 팔할(八割) 정도의 네모형태를 띠고 있다는 자방팔분(字方八分)에서 유래한다는 설이 일반적임
- 한(漢)나라 중기에 채옹(蔡邕)이라는 인물이 만들었다고 알려지고 있는 서체로 한예(漢隸)라고도 하며 전서(篆書)의 요소를 완전히 탈피하여 예서의 틀을 완성시킴
- 고예를 미화하기 위하여 횡힉의 종부를 누르고 힘차게 삐치는 것이 波(파)인데, 이것이 있는 것을 팔분이라고 함.
- 특히 장식미를 더한 양식의 서체로 후한시대에 많이 사용됨으로 해서 고예와 해서의 과도기적 단계의 서체라고 보기도 함
① 특징
ㅇ 자형이 옆으로 납작한 직사각형이며
ㅇ 가로획이 수평이며 오른쪽 끝을 파책으로 처리
ㅇ 획의 굵기에 변화가 있고
ㅇ 전서보다 약간 동적으로 절을 모나게 꺽음(직선적)
ㅇ 필법은 방필
② 종류
ㅇ 예기비(禮器碑) : 후한시대(155년)에 세워짐. 한래비라고도 부름. 노나라의 제상이던 한래의 공적을 칭송한 글인데, 그는 공자묘를 수리하고 제사에 쓰이는 가장 중요한 기구류, 즉 예기를 정비하는 등 공자를 존중하였음. 서법이 가늘면서도 강하고 웅건하며 단정하고, 아름다우면서도 표일(기상이 뛰어남)한 맛이 있고, 용필은 방필과 원필을 겸하였기 때문에 섬세하고 아름다운 맛이 있으면서도 두터움. 자체는 납작한 것, 장방형, 아래위가 긴 것 등이 어우러져 있고, 필획이 수경(글자의 획이나 그림의 선 따위가 가늘면서도 힘이 있음)하며 파책이 잘 발달
ㅇ 을영비(乙瑛碑) : 후한시대(153년)에 세워짐. 내용은 공자묘에 백석졸사(百石卒史)를 둔 유래와 당시의 상소문의 형식을 나타낸 것으로 을영(乙瑛)은 웅고(雄古)를 나타냄. 서법이 단정하고 근엄한 가운데 질탕하고 붓을 꺾어서 누른 필치가 드러나며, 용필은 방필과 원필을 결합시켜 굵고 가는 획을 서로 섞었으며, 파책의 꼬리 부분은 항상 크게 삐쳐서 응축되면서도 표일하고 웅건하면서도 소박한 맛을 나게 하였음. 을영비는 팔분예법(八分隷法)의 정통으로 꼽힘
ㅇ 사신비(史晨碑) : 후한시대(168~169년)에 세워짐. 노국(魯國)의 상(相)인 사신(史晨)이 공묘(孔廟)의 제사를 성대히 행하였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刻한 것. 고박하고 후실(厚實)하며, 팔분예의 전형. 서법을 확실히 지켜 늘씬한 맛이 있고 화려하고 기교있는 필법에 신중하고 긴장미가 있으며 단아하게 자형이 잡혀 있어 예서를 배우는 입문으로 적당
ㅇ 조전비(曹全碑) : 후한시대(185년)에 세워짐. 부양현 장관이던 조전(曹全)의 창덕비로 글씨는 수려하면서도 골력이 있고, 용필은 화창(통쾌하고 막힘이 없음)하여 마치 행운유수(行雲流水)와 같으며, 풍신(風神)이 뛰어난 작품임. 결체는 납작하며, 필획이 섬세하며 파책이 날아 춤추는 듯한데 그 염미(姸美)함은 어느 것도 따르지 못함. 한예 중에서 원필의 아름다움을 갖운 전형적인 작품
ㅇ 장천비(張遷碑) : 후한시대에 낙음현의 현령이었던 장천의 공덕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것. 서법이 순박하고 두터우면서도 강하고, 아름다우며 방정하면서도 변화가 많음. 장천비는 다른 漢碑에 비하여 어딘가 굳세고 투박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장천비의 독특한 맛임. 한편, 파세를 가지지 않게 한 가로획 등은 세태의 변화를 부여하지 않고 그어 소박한 맛을 내고 있음. 요컨대 기교를 부리지 않고 運筆한 것이 현대적인 우리들에게는 매력적인 것임. 말하자면 건강하고 남성적인 서법으로 일관해 있다고 보여짐. 그리고 장천비는 전서이면서 다분히 예서적임. 따라서 전서와 같은 圓味나 건강을 나타내지 않고 펑퍼짐하고 자연스럽게 문자를 배합하고 있음.
ㅇ 서협송 : 71년에 마애각으로 무도(武都)의 태수가 서협의 각도(閣道)를 수리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 원형, 사각형의 결, 구로 시작하거나 끝나고, 파책이 다른 비석처럼 강조되지도 않은 소박하고 야성미 넘치는 글씨. 굵고 가늠이 없이 똑같은 굵기로 글씨를 쓰고 있지만 무미 건조하지 않고 마음에 다가오는 박력이 있음. 장천비에서처럼 단순하고 소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

ㅇ 석문송(石門頌) : 후한시대(148년)에 마애에 새겨진 것으로 후한(後漢) 제일의 걸작이라 할 수 있음. 한나라 사예교위(司隸校尉)를 지냈던 양맹문(楊孟文)이 석문(石門)을 뚫어 교통을 편리하게 했다는 일을 적은 것. 소박한 서풍을 가지며 예기비, 조전비와는 반대로 예서의 법에 얽매이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있음. 한예에서도 가장 배우기 어려운 작품의 하나로 장조익(張祖翼)은 발문에서 “300년 동안 한비를 스승으로 삼은 자가 많았으나 <석문송>을 제대로 배운 사람은 없었다. 대개 웅혼하고 자유분방한 기는 담력이 약한 사람이 감히 배울 수 없고 필력이 약한 자 또한 배울 수 없다.”라고 했음. 이 비는 장봉(長鋒)으로 종이에 강한 필력을 넣지 않으면 안 되며, 손과 마음은 너그럽고 붓끝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허공에서 형세를 얻어 필봉에서 묘한 변화를 다해야 함
<소전과 예서의 비교>
- 소전은 그 자형이 아주 길며 예서는 일반적으로 아주 납작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전서는 세로로 내리쓴 획이 강조되고 예서는 가로로 건너 그은 획이 강조됨
- 선과 선 사이 즉 분간(分間)의 경우도 전서일 때는 세로획과 세로획의 내려 그은 간격이 필연적으로 긴밀한 반면, 예서일 때는 가로로 건너 그은 획이 이에 해당하므로 가로획간이 아주 긴밀함
- 획의 조합을 보면 전서의 경우 키가 커서 세로로 길 뿐 아니라, 세로로 내리그은 선이 대개 수직이고 가로획은 수평으로 되어있음. 이점은 예서도 같아서 세로는 수직, 가로는 수평임. 즉 형태상의 특징으로서 길고 납작한 차이는 나지만 자획상의 균형법은 두 서체가 같음(左右相稱)
- 전서와 예서는 수직 수평이라는 기본 원칙하에 다같이 좌우상칭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필법도 그리 다르지가 않음. 즉, 전서가 붓을 곧추 세우고 힘의 중심이 선획(線劃)의 중심을 통과하게 쓰는 서법, 즉 중봉으로 쓰여졌는데 이것은 거의 그대로 예서에서도 통용됨. 단지 특수한 예로서 전서에는 없는, 예서의 '파(波)'라고 불리는 부분 등에 가끔 그 중봉이 흐트러져서 측필이 되어가는 기미가 엿보임
<예서와 해서의 비교>
- 해서의 경우 자형은 거의 네모가 반듯한 정방형에 가깝고 특히 길거나 납작하지 않으며, 가로 긋는 획이 오른쪽으로 치켜 올라가 있음. 세로획이 수직인 점은 예서와 별로 다를 바가 없지만, 오른쪽 어깨가 치켜진 가로획은 해서의 특징이며 그것이 예서와 전혀 다른 점이며, 그것 때문에 예서와 전서에 공통되는 좌우상칭의 조립법이 해서에는 통하지 않고, 나아가서는 그 필법까지도 전혀 다르게 진전하게 됨
- 전서에는 없는, 예서의 '파(波)'라고 불리는 부분 등에 가끔 그 중봉이 흐트러져서 측필이 되어가는 기미가 엿보이는데, 그것이 해서의 파임의 경우가 되면 측필의 특징이 한결 더 뚜렷이 두드러짐. 이렇게 보면 예서가 전서와 해서의 중간서체라는 사실이 더 명확히 드러나는 셈임
- 해서는 가로획을 우상방으로 치켜 긋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관계로, 다른 획의 용필법도 측필이 되기 마련이며 파(波)에 해당하는 부분에서는 예서와 아주 비슷하면서도 힘을 주는 법이 달라, 이런데서 예서와 해서의 용필법이 서로 다른 특징을 볼 수가 있음. 더구나 꺾이는 부분에 이르면 이 특징이 더욱 명확해져서, 예서는 중봉, 해서는 측필이 원칙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히 드러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