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독서 에세이】 삼대(三代)가 함께 읽는 ‘할아버지의 반성문’

[윤승원]

【윤승원 독서 에세이】

삼대(三代)가 함께 읽는 ‘할아버지의 반성문’

― 평소 독서 생활이 주는 안정적인 신뢰감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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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의 말​

  순수 종합문예지 《현대문예》 2024년(132호)에 졸고 수필이 소개됐다. 『폐지 더미에서 발견한 두 권의 소중한 책』 -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쓴 ‘아버지의 반성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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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부제가 ‘아버지의 반성문’이지만 손자에게도 이메일로 보내주었으니 ‘할아버지의 반성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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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삼대(三代)가 함께 읽는 할아버지의 반성문’이 됐다. 아들에 대한 아비의 미안한 마음이 손자에게도 ‘반성문’이란 이름으로 고백하게 됐으니, 가족사에 기록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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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손때 묻은 책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새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들이 읽었던 책을 아비가 다시 읽으면서 아들의 숨겨진 의식 세계를 단편적이나마 살필 수 있는 것은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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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밑줄 그어 놓은 대목에서 아비도 똑같은 심정으로 ‘공감의 밑줄’을 긋고 싶었다. 독서를 통해 부자(父子) 간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서를 공유한다는 것은 특별히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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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폐지 더미에서 발견한 두 권의 책뿐이랴. 자식은 평소 부단한 독서 생활을 통하여 깊은 사색과 지적 정서를 풍부하게 쌓아 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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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줄 모르고 ‘먼발치의 자식’을 늘 걱정만 해온 아비이기에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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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으로 신뢰해도 좋은 성실함과 삶에 대한 열정을 그동안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데 대하여 아비가 미안한 마음으로 뒤늦게 반성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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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7. 20.
  독서를 통한 새로운 가치 발견과 삶의 고백
  윤승원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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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ysw2350/223519391978

【윤승원 독서 에세이】 삼대(三代)가 함께 읽는 ‘할아버지의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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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독서 에세이】

폐지 더미에서 발견한 두 권의 소중한 책

―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쓴 『아버지의 반성문』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ysw2350@hanmail.net

“아니, 이 건 형이 보던 책 아닌가, 이 귀한 책이 어떻게 여기 나와 있지?”

현관 앞에 쌓인 폐지 더미를 바라보면서 둘째 아들이 하는 말이었다. ‘형의 손때 묻은 책이 버려지는 것이 아깝다’라는 뜻이었다.

아내가 말했다.

“네 형이 두고 간 책인데, 창고에서 나왔어. 그런 색 바랜 책을 이제 누가 다시 읽겠니? 더구나 스마트폰 시대에 책 읽는 풍토도 점차 사라지는데 그런 책을 누가 거들떠보기나 하겠니. 창고 정리도 할 겸 내가 내놨다.”

아, 둘째 아들도 탄식하고, 나도 한숨을 쉬었다. 내가 두 권의 책을 살펴보았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 문예출판사),

《링컨의 일생》(김동길 지음 / 샘터).

책장을 넘기면서 또 한 번 놀랐다.

“밑줄 그은 것을 보니, 지환이 아빠가 이런 책을 꼼꼼하게도 읽었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아비는 자식에게 늘 철부지 대하듯 걱정하는 소리만 했어. 적어도 이런 책을 읽은 자식에게는 아비가 인간적인 신뢰를 보내야 해.”

▲ 폐지 수거 할아버지 손수레에 실려 갈 뻔한 책[1]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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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지 수거 할아버지 손수레에 실려 갈 뻔한 책[2] - 《링컨의 일생》(김동길 지음 /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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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소리로 중얼거리자 아내가 말했다.

“책을 많이 읽었더라고요. 창고에서 수북이 나온 다른 책들은 이미 두 상자나 버렸어요.”

아들이 결혼 후 분가할 때 집에 두고 간 책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기야 나 역시 이사할 때 책을 한 트럭이나 버리고 오지 않았던가.

어느 가정이나 요즘은 책이 짐이 되어 안타깝게 버려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차마 버릴 수 없는 책도 많다. 손 때 묻었거나 다시 펼쳐 볼 만한 소장 가치가 있는 책도 많다.

바로 이런 책들이다. 아들이 분가할 때 미처 챙기지 못한 책은 아비가 챙겨줬어야 한다.

더구나 아비가 서점에 가서 특별히 선별하여 뜻깊은 날 곱게 포장하여 선물한 책도 있지 않은가. 폐지 수거 할아버지의 손수레에 실려 갈 뻔한 책을 용케 구해낸 셈이다.

《링컨의 일생》 책 표지를 넘기니 첫 장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사랑하는 아들 준섭이의 ROTC 육군 소위 임관을 축하하며.

--- 2006.12.12. 아버지가』

▲ 책의 앞장에 <축하의 뜻>과 함께 <책을 선물한 날짜>를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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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감명받았다는 저명인사가 많다.

특히 그 유명한 KBS 김동건 아나운서 역시 “머리맡에 두고 지금도 읽을 만큼 아끼는 책”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2023.3.26. 인터뷰 기사)

김동길 박사가 1977년 펴낸 책인데, 내가 아들에게 선물한 책은 2005년 발행(3판 9쇄) 한 책이다.

나는 왜 하필이면 이 책을 아들이 ROTC 소위 임관하던 날에 선물하였을까. 돌이켜보니, 이 책을 특별히 고른 이유가 떠올랐다.

김동길 박사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前略] 이 땅에 태어난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희망과 지혜를 주고 싶어서 이 책을 쓴 것이다.
[중략] 정직하게, 착하게 살면서 열심히, 사심 없이 일한다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을 우리는 링컨에게서 배우게 된다. 그 책임감, 그 지혜, 그 용기, 그 너그러움, 그 여유, 그 건강, 그 상식, 그 유머 – 그에게 배우는 것은 또한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下略]』

나는 책을 고를 때 책의 머리말부터 꼭 먼저 읽는다. 저자의 머리말 한 줄이 독자의 책 선택 여부를 좌우한다.

독자는 머리말 한 줄에 홀딱 반하거나 푹 빠지기도 한다. 내가 이 책을 고를 때도 그랬다.

책장을 넘겨보니, 아들도 연필로 밑줄을 그은 대목이 여러 군데다. 반가웠다.

“아, 그랬구나. 아들도 이 책을 건성으로 읽지 않았구나. 고맙기도 하지.”

나는 아들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남모르게 내적 정서를 가꿔온 아들에게 이 아비는 때론 야속하고 서운한 말을 여과 없이 던진 것이 미안했다.

아들은 이 책을 최전방 부대에서 소위 계급장을 달고 군 복무할 때 읽었으니, 더 큰 의미가 있다.

소대장이 이 책을 읽었다면 부대원들에게도 교육했을 것이다.

▲ ROTC 육군 소위 임관식 날 축하 장면(육군학생군사학교)과 전방 전차부대 소대장으로 복무할 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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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를 마치고 아들은 수학교사가 됐다.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담당 과목인 수학만 가르쳤겠는가.

담임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인생의 나침반과 같은 인성 교육도 중요시했을 것이다.

어떤 교육 철학을 학생들에게 심어주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앞날도 발전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링컨의 일생》이란 책뿐만 아니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펼쳐 보고 나서 깜짝 놀랐다. 책의 첫 장에 이런 메모가 눈에 확 들어왔다. 아들의 연필 글씨였다.

『니체의 산문 시 – 이처럼 훌륭한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책을 나는 여태껏 본 적이 없다. 2006.2.27. 』

책을 읽고 감동한 소감을 책에 메모해 둔 것은 처음 보았다. 책을 다 읽은 날짜도 꼼꼼하게도 기록했다.

▲ 책을 읽고 감동받은 소감을 책의 맨 앞장에 메모했다. 『니체의 산문 시 – 이처럼 훌륭한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책을 나는 여태껏 본 적이 없다. 2006.2.27. 』 아들은 책을 읽은 날짜도 꼼꼼하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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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아들이 얼마나 집중해서 진지하게 읽었는지, 본문에 그어 놓은 수많은 밑줄을 통해 나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들이 밑줄을 그은 대목만 살펴봐도 아비는 감동했다.

이 책을 옮긴 이의 서문에 이런 대목도 있다. 아들도 밑줄을 진하게 그었다.​

『[前略] 내 저서 중에 《짜라투스트》는 특수한 것이다. 나는 이 저서로 지금까지 인간이 받은 선물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을 선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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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에 걸쳐 가슴을 울려 줄 소리를 가진 이 책은 세계 최고의 책이며 정녕 준령(峻嶺)의 분위기를 가진 책이다. [中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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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略]이 책에는 니체의 모든 사상이 집약되어 있어서 니체 사상의 진수를 보여준다.
​
그뿐만 아니라 이 책은 서사시적 구성에 문장 또한 유려하여 어떠한 문학서, 어떠한 시보다도 더 문학적이고 시적이다. [下略]』

아들이 꼼꼼히 밑줄을 그은 대목만 살펴봐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아들아,

깊은 울림을 주는 귀한 책을 통해 네가 위대한 스승을 만난 것을 아비는 그동안 미처 몰랐구나. 못난 아비를 용서해라.

네가 소중하게 읽은 책을 우연히 폐지 더미에서 발견한 오늘, 이 아비가 감동하여 쓰는 글은 <독후감>이 아니라 <반성문>이다. 아들아, 고맙고 미안하다. ■

2024. 5. 5.

아버지 윤승원 독후 반성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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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순(시인, 대전문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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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용(동화작가, 전 대전문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