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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동생 장흥(면)에 밀려 관광지로서 위세가 꺾였던 양주(시).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이곳만큼 다양한 볼거리를 종합 선물 세트처럼 보유한 고장도 드물다. 찬란한 역사를 간직한 회암사지부터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조명박물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탈놀이 공연까지. 다만 내비게이션만 믿고 출발했다간 귀신 홀린 듯 같은 장소를 맴돌기 쉽고, 무턱대고 맛집을 찾아 나섰다간 대기 번호에 깜짝 놀랄 수 있다. 이제부터 ‘그러한’ 고생을 모두 겪은 박씨네의 우여곡절 양주 여행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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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se 01 상상으로 사찰을 짓다 ‘회암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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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첫 발걸음은 회암사지에서 시작했다. 터만 남아 있는 관광지를 우선으로 꼽은 이유는, 과거 경주 황룡사지를 보고 무한감동에 빠졌던 여운에서 비롯됐다. 드넓게 펼쳐진 역사의 ‘자국’은 이상하리만큼 우리 가족의 마음을 울렸는데, 양주에서는 회암사지가 그럴 것만 같았다. 양주시에서 회암사지로 들어가는 길은 이름(전나무 회)처럼 푸른 전나무 숲이 이어졌다. 시원한 공기에 익숙해질 무렵, 우리 앞에는 언덕배기에 층층이 자리한 회암사지가 등장했다. 역사의 소용돌이를 통과하면서 화려하던 건축물은 모두 사라지고, 이제는 터만이 여유롭게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우리는 과거의 위세를 느끼기 위해 전망대에 올라섰다. 입구에서 볼 때와는 새로운 모습, 아무리 좋은 광각렌즈로도 담을 수 없는 드넓은 계단식 터가 드러났다. 그렇게 엄마와 내가 감동의 바다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아빠의 날카로운 질문이 날아들었다. “이상한 걸. 어떻게 조선시대에 이렇게 큰 사찰이 있었지?” 학교에서 주야장천 외운 바에 따르면 조선시대는 숭유억불 정책이 강력하게 시행된 시기. 앞뒤가 맞지 않았다. 역시나 불타버린 과거 사찰을 상상력으로 재건하려면 역사적 지식이 필요했다. 다행히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줄 해결사가 등장했으니 관광안내센터(오전 10시~오후 5시, 전망대 앞에 위치, 예약 가능)의 문화해설사다. “태조 이성계는 정신적 스승 무학대사가 회암사에 재임하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어요. 심지어 자신이 왕을 그만둔 뒤에도 회암사에서 기거하며 수도 생활을 했답니다. 숭유억불 정책에도 회암사가 최대 사찰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죠.” 무려 3천 명의 스님들이 머무르던 거대 사찰은 왕의 비호로 유지된 거다. 회암사의 정체가 밝혀진 과정도 흥미로웠다. 당시 회암사가 알려진 것은 터에서 발견된 풍경 ‘청동금탁’ 덕분이다. 다른 사찰과 달리 풍경의 지름이 30센티미터에 달했다는 사실과 표면에 빼곡히 적힌 글씨를 통해 사찰의 규모와 탄생 과정을 알 수 있었다고. 청동금탁이 발굴되지 않았다면 회암사는 영영 빛을 발하지 못했을 터.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는 역사의 굴곡 앞에 탄성을 내지를 수 밖에 없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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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 Info. 위치 양주시 회암동 14 문의 회암사지 관광안내센터 031-865-4080 들렀다 갈까, 말까? 계곡이 시원한 ‘회암사’ GOOD! 회암사지에서 길을 따라 약 300미터 올라가면 회암사가 있다. 아담한 규모지만 천보산의 깊은 곳에 자리해 조용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보물 388호로 지정된 무학대사 부도를 볼 수 있는 것도 마음을 끈다. 지역 주민들은 약수를 긷기 위해 회암사를 자주 찾는다. 미리 약수통을 준비하면 천보산의 생수 선물을 챙길 수 있다. 더불어 길을 따라 흐르는 계곡도 과거 태조가 회암사를 행궁으로 사용했듯 지역 주민들의 피서지로 애용되고 있다. 혹 늦은 피서를 원한다면 돗자리와 도시락을 챙길 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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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se 02 부추 맛집 찾다 미궁에 빠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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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암사지의 감동을 안고 향한 곳은 양주의 맛집이었다. 지역 주민들이 입을 모아 추천하는 곳은 ‘양주골부추마을’. 부추국수와 부추전, 부추만두의 삼색 조합이 최고란다. 우리 가족은 내비게이션의 친절한 안내 멘트를 들으며 은현면 용암리로 향했다. 그렇게 달리기를 약 20분. 내비게이션은 연방 “목적지 인근입니다”를 외쳐댔지만 주변에 식당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다급한 마음에 관광안내도에 소개된 식당 전화번호를 눌렀더니 이번에는 잘못된 번호란다. 귀신에 홀린 듯 같은 자리를 맴돌던 우리를 구해준 것은 1330 관광 안내 전화. 알고 보니 이전한 식당의 위치와 번호가 내비게이션과 지도, 인터넷에 수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내비게이션은 6개월 전에 업데이트를 했는데 말이다). 부추에 필이 꽂힌 우리는 다시 달릴 수밖에 없었다. 30분 남짓 달리자 ‘드디어’ 고대하던 부추마을이 등장했다. 이름은 마을이지만 부추식당 한 곳만 덩그러니 자리했다. 한 곳이면 어떻고 마을이면 어떤가. 우리는 보물섬에 도착한 주인공처럼 식당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오후 2시가 넘었는데도 식당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심지어 열댓 명은 입구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는 주인에게 다가가 상황을 묻자 “최소한 40분은 기다려야 한다!”는 매정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리 (주민들에 의하면) 주인장의 천성이 무뚝뚝하다고 해도 서비스 정신은 그야말로 꽝이었다. 비좁은 식당과 무미건조한 주인의 태도에 화가 난 우리는 과감히 ‘패스’를 외치며 자동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언제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남는 법. 식당에서 멀어질수록 ‘어디 가서 그런 맛 못 보는데”라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귓가를 맴돌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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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 Info. 위치 양주시 만송동 425-2(레이크힐스 CC 인근)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 가격 부추국수 4천~4천500원, 부추만두 3천 원, 부추전 3천 원 문의 0505-930-6000 먹을까, 말까? 부추국수로 유명한 ‘양주골부추마을’ SO SO! 내비게이션에 식당 이름만 찍으면 옛날 주소로 달리기 십상. 아예 처음부터 주소를 넣어야 헛걸음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주말에 찾는다면 1시간 대기는 각오해야 한다. 들렀다 갈까, 말까? 드라마 세트장 ‘대장금테마파크’ BAD! 회암사지에서 가장 가까운 관광지는 대장금테마파크. 주로 회암사지-대장금테마파크-부추마을 코스로 둘러보는 것도 가까워서다. 우리 가족도 위치의 효율성을 고려해 대장금테마파크에 머무른 케이스. 하지만 만족도는 기대 이하였다. 그래서인지 주말에 찾았음에도 ‘뒤늦게’ 드라마를 시청한 일본인들만 눈에 띄었다. 위치 양주시 만송동 30 관람 시간 오전 9시~오후 5시 입장료 어른·청소년 5천 원, 어린이 3천 원 문의 031-849-50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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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se 03 빛 놀이에 흠뻑 빠지다 ‘필룩스조명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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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과감히 접고 필룩스조명박물관으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에 이름을 치고 목적지로 내달리는데 신기하게도 부추마을의 악몽이 다시 이어졌다. (내비게이션에 따르면) 목적지에 도착했는데도 박물관 입구가 영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추마을처럼 박물관 이름보다 주소나 다른 명칭(예를 들면 우정식당 혹은 희망아파트)을 넣어야 찾을 수 있다. “무슨 입구가 이렇게 좁아?” 길 찾기에 지친 우리는 자연스레 불만을 내뱉었다. 하지만 박물관 내부로 들어서면서 짜증은 슬슬 풀리기 시작했다. 입구와 달리 꽤나 넓은 공간이 등장한데다, 박물관 내부에는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았으니까. 우선 빛이나 조명이라는 주제가 무척 흥미로웠다. 일상생활에 밀접히 연관된 조명이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할 줄은 몰랐다. 예를 들면 조명을 이용한 예술가들의 작품이나 화려한 샹들리에, 세계의 촛대와 전통 조명 기구들이 다양하게 박물관을 채웠다. 특히 ‘빛공해사진공모전’은 에디슨의 후예로서 부끄러운 심정이었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지. 밤이고 낮이고 불빛이 너무 강하니까 말이야!”우리의 이구동성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세계 인구의 3분의 2는 거주지에서 별을 관측하는 게 불가능하단다. 1950년대에 비해 인공위성에서 본 지구는 엄청나게 붉었다. 지하로 내려가자 예술 작품 전시에 빛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각종 생활공간에서 빛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아쉬움이 남는다면 주말 오후 1시와 3시에 진행되는 큐레이터 안내 프로그램에 참가하지 못한 것뿐이었다.
Tour Info. 위치 양주시 광적면 석우리 624-8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명절, 공휴일 휴관) 관람료 어른 5천 원, 청소년·유아 4천 원 문의 031-820-8001(www.lighting-museum.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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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se 04 취발이의 농탕질이 이리 재미있을 수가! ‘양주별산대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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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피날레는 신명 나는 양주별산대놀이로 정했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 공연장에 도착한 우리 가족. 그런데 기대와 달리 눈앞에는 무척이나 요상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늦더위 탓인지 겨우 30명이 넓은 놀이마당에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닌가. 놀이를 제대로 관람하는 사람은 없고 죄다 삼각대를 꺼내놓고 사진 찍기에 정신이 없었다. 등이 흠뻑 젖을 정도로 연기에 몰입한 전수자들에게는 정말이지 민망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공연에 몰입하면서 우리는 관람객이나 삼각대 개수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가면극 자체가 자연스레 우리의 흥을 돋웠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제6과장이다. 바로 절간에 있던 취발이가 속세에 내려와 여자를 두 명이나 데리고 농탕질을 하는 장면이다. 이 부분은 걸쭉한 대사가 많기로 유명해 그 옛날에는 여자들이 일부러 피했다고 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19세 이하 관람 불가 이야기들을 참으로 천연덕스럽게 관람한 셈이다. 우리는 연기자들의 과장된 몸짓과 걸쭉한 입담에 젖어 깔깔 웃어대다 한시간을 훌쩍 보냈다. 그리고 그것이 양주여행의 행복한 마침표였다. 물론 서울로 돌아오는 길, (한 맺힌) 부추 한 단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Tour Info. 위치 양주시 유양동 262 공연 시간 토·일요일 오후 3시 관람료 무료 문의 양주별산대놀이보존회(031-840-9986, www.sandae.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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