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요행의 꼼수는 가라>/구연식
지방 모 방송국에서 개국 50주년 기념 남성합창단 모집 공고가 TV 화면에 나왔다. 나는 노래는 못해도 눈에 번쩍 뜨였다. 공교롭게도 방송국이 있는 전주로 필히 봄에는 이사를 해야 할 상황이고, 여유적 시간도 유용할 겸 응시원서를 마감 하루 전에 우체국에서 속달 등기로 우송했다. 그것도 못 믿어 담당 아나운서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응시 원서가 접수되었는지를 확인하고 오디션 7일 정도 남은 기간에 노래 연습을 하기로 했다.
우선 곡명은 가곡 “가고파”를 정하고 악보를 준비하여 낮에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연습했고, 밤에는 노래방에서 시간당 15,000원 주고 맹연습에 임했다. 그런데 노래방 기계는 박자가 빨랐다 느렸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져서 아마추어인 나는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운전 중에는 스마트폰에 녹음하여 이어폰으로 듣고 연습할 정도로 7일간 밤낮으로 연습에 연습을 다 했다.
이렇게 7일째 되는 날에는 너무 갑자기 연습이 가중되어 목이 쉬고 몸의 컨디션이 안 좋아졌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생계란을 깨서 마셔도 쉰 목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쉰 목이 지속되니 심적 부담은 더해 갔다. 결국 오디션의 날이 밝았다. 나는 제일 마지막 날에 원서를 접수하여 오후 3시까지 방송국 대기실에 도착하라는 전화 메시지가 왔다.
그 방송국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내비게이션으로 찾아서 가까스로 시간 내에 방송국 꼭대기 주차장에 주차했다. 부랴부랴 방송국 안내자에게 오디션실가는 길을 물으니 지하 2층으로 내려가란다. 오디션 실에는 대기자 그리고 함께 온 가족들로 시끌벅적하며 발성 연습에 몰두하고들 있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긴장만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내 옆에 가까이 오더니 “구연식 선생님” 하면서 더 가까이 얼굴을 대미는 것이다. 순간 내 이름과 선생님 호칭을 하는 것을 보니 제자이고 여기에 온 것을 보니 나와 같이 오디션 대기자라는 것이 순식간에 해답이 나온다. 나는 속으로 반갑지 않은 나와 경쟁자라는 것을 생각할 때 반갑기는커녕 미운 생각이 들어 그 사람을 확인하기도 싫었는데 재차 “선생님 저예요” 하길래 눈을 들어 보니 25여 년 전에 남자고등학교에서 내가 가르쳤던 아무개 군이다.
나는 너무 뜻밖의 경우라 “야 네가 여기 어쩐 일이냐?”하고 물으니 “선생님 저 여기서 근무하고 있어요.”라고 한다. 그 아무개 제자는 공교롭게도 방송국 개국 50주년 기념 이벤트 하나인 합창단 모집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부장이란다. 응시자들의 원서를 정리하면서 주욱 훑어보니 낯익은 사진 그리고 이름이 있어 다시 확인해 보니 그 옛날 담임 선생님이셔서 오디션 날만 기다렸다 한다.
순간 나는 오디션을 준비했던 긴장과 목쉼이 모두 다 풀리는 느낌이었고 속으로 이 프로그램의 총책이 내가 가르친 우리 반 내 제자이니 나야말로 오디션은 따 놓은 당상이다. 라고 생각하고 그때부터 마음이 해이해지고 제자한테만 의지하고 또 모든 것이 대충 때우려는 마음과 행동으로 일관했다. 내가 오늘 보는 오디션은 무조건 합격이야 생각하고 벌써 오만과 자만에 빠져있었다. 대기실에 있으니 내 이름이 호명되어 오디션 실로 들어가니 5~6명의 오디션 대기자가 의자에서 다시 무대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오디션 무대로 오르니 긴장도 무엇도 하나도 느껴지질 않는다. 아마도 든든한 제자 아무개를 의식해서였을 것이다. 오디션 장에는 채점자 3명 그리고 피아노 반주자가 있었고 제자 아무개는 오디션에 관계되는 그 모든 사람을 총괄하는 눈치였다. 무대에 올라가니 앞에 앉아있는 오디션 채점자가 긴장을 풀라고 하는 과정으로 이것저것 질문이 있었다. 선생님 멀리 군산에서 오셨네요. 옛날에 합창단 경험이 있어요? 등을 질문했다. 나는 합창단 경험이라기보다는 학교 행사 있을 때마다 교내 합창단에 선발되어서 노래를 불렀다고 대답했다.
이윽고 내가 준비한 “가고파”를 피아노 반주에 맞춰 불렀는데 내가 준비한 악보도 가사도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긴장하지 않고 쓸데없이 제자 아무개 배경만 믿고 시건방진 나의 못된 마음이 먼저 앞서 저지른 행동의 결과로 생각된다. 겨우 오디션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가려니 제자 아무개가 얼른 달려와 선생님이 어려운 가곡을 부르시느라고 수고하셨어요. 여유 있으시면 다른 가요 한 곡을 부탁했다.
나는 순간 내가 너무 노래를 잘 불러서 앙코르 하는 느낌으로 받아들여 사양하고 내려왔다. 제자는 무엇이 아쉬워서인지 나를 다시 쳐다보면서 조금은 서운한 느낌의 시선을 주었다. 나는 속으로 나는 합격했으니 나중에 다시 보자 면서 방송국을 빠져나와 우랄라라 하는 기분으로 콧노래를 부르면서 석양이 비치는 서녘 하늘을 바라보면서 군산의 집으로 왔다.
며칠 후 발표 날이 되었다. 나는 합격자 발표를 나의 스마트폰에 문자 메시지만 확인하다가 지쳐서 방송국 홈페이지에 합격자 난을 뒤져보니 나의 이름이 빠져있었다. 순간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정신이 멍해졌다. 아무리 생각을 정리해 봐도 내가 떨어질 이유가 납득이 안 된다. 그 후 3일쯤 지나서 제자 아무개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죄송해서 어쩌지요”가 첫마디였다. 순간 아 내가 너무 제자만 믿고 7일간 연습을 최선을 다해 십분 발휘하지 않고 죄 없는 제자만 의지하고 원망했다.
그 제자는 나의 응시원서를 보는 순간 미리 전화하고 싶었으나 나의 마음이 들뜨고 섣부른 생각을 차단하기 위해서 전화를 안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오디션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나한테 다가와서 선생님 가요 한곡 더 부르시면 어때요, 한 것도 전문가 입장인 아무개의 판단으로는 가곡의 점수가 조금은 부족함을 직감하고 가요 한곡을 부탁한 것도 모르고 자만에 빠졌던 내가 너무 밉고 또 밉다. 교단에서 성실과 최선을 지도했던 내가 너무나 잘못된 생각이 40여 년의 교단생활이 부끄럽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요행과 꼼수를 쫓는 인간들의 껍데기는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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