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조선왕조 설계
경복궁이나 종묘 서울 도성(都城)을 보면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이다.
그것은 정도전이 조선왕조를 설계(設計)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 500년을 통하여 가장 위대한 정치가를 꼽으라면 정도전(鄭道傳)이다.
그리고 조선왕조 역사 속에서 아니 현대 정치사를 포함해서 세계정치에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우뚝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는 정도전이 이방원에 의하여 역모의 누명을 쓰고 살해당한 후 정도전에 관한 조선왕조실록의 내용들이 이방원 일파에 의하여 많은 부분이 왜곡된 가능성을 학자들은 지적하면서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에 대한 새로운 조명(照明)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정도전은 1398년(태조 7) 8월26일 이방원(李芳遠)이 일으킨 제1차 왕자의 난에 희생된 후 무려 467년이 지난후인 1865년 고종황제2년 때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그 설계자인 정도전의 공(功)을 인정해 복권(復權)이 된 것이다.
정도전을 조선왕조 설계자라 하는 것은 그가 이방원에게 살해당하기 3개월 전에 완성했다는 그의 마지막 저서인 〈불씨잡변(佛氏雜辨)〉에서 기록한 내용대로 〈불교로 인하여 부패한 고려왕조〉를 마감시키고 이성계와 같이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조선왕조를 건국하였다.
조선왕조는 무인(武人)인 이성계와 문인(文人)인 정도전의 합작품인 것이다.
그러나 정도전은 조선왕조라는 신생국가의 원대한 설계를 하여 놓고 그 꿈의 실현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이방원에게 살해된 것이다. 이것은 조선왕조와 우리민족의 불행이다.
정도전은 조선왕조의 헌법인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편찬(編纂)하여 그 토대위에서 조선왕조를 설계하였다.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은 중국의 주례(周禮)를 본받은 것이다.
중국의 주례(周禮)는 왕망(王莽BC45~AD 23)이 지은 것으로 왕망은 중국 전한(前漢) 말의 정치가로서 개혁정책을 통한 이상적인 나라를 세운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주례(周禮)에는 궁궐의 위치를 백악(白岳)을 주산(主山)으로 삼으면서 남쪽을 향하도록 하고 가운데 경복궁(景福宮)과 좌우에 종묘(宗廟)와 사직단(社稷壇)을 양쪽에 두는 것이다.
그리고 도성(都城)을 쌓아 국가의 틀을 갖추고 조정에서는 관직(官職)을 두어 국가의 질서를 확립하고 왕권(王權)을 제약(制弱)하고 재상(宰相국무총리)이 실제로 국가를 다스리는 정치 제도를 두었다.
정도전의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조선왕조를 민본사상(民本思想)의 이상적인 국가로 으로 삼은 것이다. 민본 사상이란 임금을 상위(上位)에 두지 않고 백성(百姓)을 상위(上位)에 두는 것이다. “김용옥이 쓴 삼봉 정도전의 건국철학”에 의하면〈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의 총론에 해당되는 정보위(正寶位)를 정도전은 해석(解釋)하기를 “임금의 지위가 한없이 높지만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왕업을 달성 못한다”는 것이다.
정도전은 500년 전에 지금의 민주주의 사상을 설계한 것이다.
민주(民主)란 무엇인가?
민(民) 즉 국민(國民)이 주인(主人)이란 뜻이다.
조선왕조 500년이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 받는 것은 서양(西洋) 왕들의 전제(專制)와 다르게 조선왕조는 항상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이 견제(牽制)를 통한 균형을 유지한 것이다. 이것은 정도전의 민본사상(民本思想)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의 본관은 경북 봉화(奉化)이며 봉화(奉化) 정씨(鄭氏)이다.
아버지인 정운경(鄭云敬·1305∼66)은 형부상서까지 지낸 청렴결백한 관료였지만 정도전이 역적으로 몰려 죽었기 때문에 기록이 부실해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정도전의 묘가 어디있는지도 모른다.
족보에는 경기도 광주(廣州) 사리현(士里峴)에 있다고 했고 김정호의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 과천현조에는 과천 동쪽 18리에 있다고 되어 있으나 확실치가 않다고 한다.
정도전의 후손들은 경기도 평택군 진위면 은산리 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고 이곳에 경부고속도로 안성휴게소 부근 산하리(山下里)에 3칸짜리 사당 문헌사(文憲祠)가 세우고 가무덤을 써 놓고 있다고 한다.
한우영의 〈정도전 사상의 연구〉에 의하면 정도전의 외가(外家)는 경북 영주(榮州)이며 외할아버지는 영주(榮州) 우씨(禹氏) 우연(禹淵)이다.
그러나 이방원파인 하륜(河崙)이 기록한 실록(實錄)에는 단양우씨(丹陽禹氏) 우연(禹延)으로 기록하여 정도전의 외할머니는 김전(金戩)이라는 사람이 노비를 간통하여 낳은 딸이라고 기록하여 정도전의 외가집 혈통을 비하(卑下) 하고 있다.
정도전의 호(號)인 삼봉(三峰)은 단양 8경의 하나인 도담삼봉을 보고 지은 것이라 하는데 이것도 외곡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정도전은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독서를 좋아했다고 한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문하에서 공부를 했고 정몽주(鄭夢周)를 스승으로 두었다
〈김용옥의 삼봉 정도전의 건국철학〉에 의하면 정도전의 민주주의 사상은 맹자의 귀민주의(貴民主義)를 표방하고 있다.
귀민주의(貴民主義)란 무엇이냐?
백성을 귀하게 여기는 사상이다. 정도전이 25세(1366년)때 부친상과 모친상을 당해 고향 영주(榮州)에 내려가 묘옆에 초옥(草屋)을 짓고 시묘(侍墓)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때 친구이며 스승인 정몽주(鄭夢周1337~1392)가 책을 한권 보내온다. 그것은 맹자(孟子)라는 책이다. 정도전은 맹자를 꼼꼼히 정독(精讀)했다고 한다.
맹자가 누구인가?
중국 전국시대의 유교 사상가로 도덕정치인 왕도(王道)를 주장한 사람이 아닌가.
전국시대(戰國時代) 천하의 제후들에게 백성을 위한 바른 정치를 하라고 목소리 높인 사람이 아닌가.
맹자는 백성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면 하늘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다.
맹자는 혁명적 사상을 가진 인물이다.
정도전은 맹자 사상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다.
정도전에 관한 여러 학자가 쓴 자료를 읽어보면 500년 전 역사속의 인물이 아니고 우리시대에 호흡을 같이 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진보(進步)니 보수(保守)니 좌파(左派)니 우파(右派)니 하는 아무 이념도 내포하지 않고 단어만 나열하고 폭력이나 일삼고 길거리에서 데모나 하며 상대방의 의견은 무조건 반대만 정치의 도구처럼 생각하는 소아병적이고 저속한 지금의 정치인들에게 충고하고 싶다.
정말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사람이면 소인배의 생각에 머무르지 말고 정도전의 높은 이상의 사상을 본받으라고 권하고 싶다.
-농월-
진신도팔경시(進新都八景詩)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 시비(詩碑)
畿甸山下(기전산하)
沃饒畿甸千里(옥요기전천리)-기름지고 풍요로운 천리의 경기 땅
表裏山下百二(표리산하백이)-안팍의 산하는 천하의 요새지로다.
德敎得兼形勢(덕교득겸형세)-덕교에다 형세마저 아울렀으니
歷年可卜千紀(역년가복천기)-왕업은 천 세기를 길이길이 누리리라.
都城宮苑(도성궁원)
城高鐵甕千尋(성고철옹천심)-성은 높아 천 길의 철옹성(鐵甕城)이고
雲繞蓬萊五色(운요봉래오색)-구름에 쌓인 궁궐 오색 찬연해.
年年上苑鶯花(년년상원앵화)-연년이 어원에는 봄 경치가 좋은데
歲歲都人遊樂(세세도인유락)-해마다 도성 사람 즐겁게 노네.
列署星拱(열서성공)
列署痑嶢相向(열서초요상향)-관청은 우뚝우뚝 서로 맞서서
有如星拱北辰(유여성공북진)-뭇 별이 북두성에 읍하고 있는 듯.
月曉官街如水(월효관가여수)-달 밝은 새벽 한길 물 같이 맑아
鳴珂不動纖塵(명가부동섬진)-귀인의 수레에는 먼지 하나 일지 않네.
諸坊碁布(제방기포)
第宅凌雲屹立(제택릉운흘립)-저택은 구름 위로 우뚝 솟았고
閭閻撲地相連(여염박지상연)-민가는 땅에 가득 서로 닿았네.
朝朝暮暮煙火(조조모모연화)-아침저녁 연화는 끊이지 않아
一代繁華晏然(일대번화안연)-한 시대는 영화롭고 태평하다네.
東門敎場(동문교장)
鐘鼓轟轟動地(종고굉굉동지)-북 소리 둥둥 땅을 흔들고
旌旗碣碣連空(정기패패연공)-깃발은 펄럭펄럭 하늘 덮었네
萬馬周旋如一(만마주선여일)-일만 마들 한결같이 굽을 맞추니
驅之可以卽戎(구지가이즉융)-몰아서 전장에 나갈 만 하다
西江漕泊(서강조박)
四方輻湊西江(사방복주서강)-사해 선박 물밀듯이 서강에 와서
墙以龍槐萬斛(궤이용양만곡)-용처럼 재빠르게 만 섬 곡식 풀어놓네.
請看紅腐千倉(청간홍부천창)-창고에 가득한 저 곡식 보소
爲政在於足食(위정재어족식)-정치란 의식의 넉넉함에 있다네.
南渡行人(남도행인)
南渡之水滔滔(남도지수도도)-남쪽 나루의 물결은 도도히 흐르고
行人四至祛祛(행인사지표표)-나그네들 사방에서 줄지어 오네.
老者休少者負(노자휴소자부)-젊은이는 짐 지고 늙은 이 쉬고
謳歌前後相酬(구가전후상수)-앞뒤로 화답하며 송덕가 부르네.
北郊牧馬(북교목마)
嬐彼北郊如砥(담피북교여지)-숫돌같이 평평한 북녘들 바라보니
春來草茂泉甘(춘래초무천감)-봄 오자 풀 성하고 물맛도 좋아.
萬馬雲屯鵲崲(만마은둔작려)-만 마가 구름처럼 모여 뛰놀고
牧人隨意西南(목인수의서남)-목자는 마음대로 여기 저기 서성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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