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하고 퇴직하고 본격적으로 집에서 꿀 같은 시간들인데,
헬스장 갔다 오는길에 마트에 들려서 계란도 사고 우유도 사고 고구마도 사오란다.
젠장 .... 다시 일정하게 나가는데를 물색해봐야 겠다는 생각.
에드워드 1세 뒤를 이어 에드워드 2세가 스코틀랜드에서 패배하면서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에서 쫒겨난다
이후 에드워드 3세 시기에 여러가지 요인으로 백년전쟁이 일어나고,
프랑스 영웅 잔타르크가 등장 해서 나라를 구했건만 그녀를 시기하는 남성 귀족들, 지배세력들의 비굴성과 두려움, 얄팍한 저울질로 포로가 된 그녀를 영국으로 넘겨줘 버리고 재판 끝에 화형을 받는다.
백년전쟁 이후 1455년 랭커스터와 요크의 유명한 대결이었든 30년 전쟁을 거치며 헨리 듀더가 승리, 튜뎌 왕조가 시작 된다.
이제 영국의 역사도 근세시대에 들면서 튜더 왕조와 엘리자베스 1세 시대를 거치며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는 시기.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남자 대신 영국과 결혼해버린 엘리자베스 1세는 후계자가 없어 잉글랜드의 왕위는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 왕가에 넘어갔고 숙적인 두 국가는 제임스 6세(스코틀랜드 제임스 6세, 영국에서는 제임스1세가 된다) 아래서 동군 연합을 이루었다.
이후 찰스 1세 시기에는 잉글랜드 내전이 일어나면서,
역사적으로 별로 환대 못받는 올리버 크롬웰의 잉글랜드 연방이 들어서고 명예혁명이 나면서 의회의 승리로 권리 장전을 발표해 왕권을 크게 제약한다.
여기서 권리장전의 한글 원문을 잠시 보자
1. 국왕은 의회의 동의 없이 법의 효력을 정지하거나 법의 집행을 정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주장은 위법이다
2. 최근에 권한을 독점하고 행사했던 바처럼, 왕권에 의해 법률이나 법률 집행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권력은 위법이다.
3. 최근에 종무 위원회 재판소를 설립하기 위해 발행된 위임장을 포함하여 그와 유사한 성격을 띤 모든 위임장과 재판소는 불법이며 유해하다.
4. 국왕의 대권을 구실로 의회의 승인 없이 의회가 이미 승인했거나 향후에 승인할 내용과 달리 기간을 연장하거나 편법을 써서 국왕이 쓰기 위한 금전을 징수하는 것은 위법이다.
5. 국왕에게 청원을 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이니, 그러한 청원을 했다고 해서 구금되거나 박해를 가하는 것은 위법이다.
6. 의회의 동의 없이 평상시에 왕국 안에서 상비군을 징집, 유지하는 것은 위법이다.
7. 신교를 믿는 국민은 상황에 따라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자기방어를 위해 무장할 수 있다.
8. 의회에서의 선거는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9. 의회 안에서 말하고 토론하고 의논한 내용으로 의회 아닌 어떤 곳에서도 고발당하거나 심문당하지 않는다.
10. 지나친 보석금이 요구되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지나친 벌금이 부과되어서도 안 되고, 잔혹하고 상식에서 벗어난 형벌이 가해져서도 안 된다.
11. 배심원은 정당한 방법으로 선출되어야 하고, 대역죄로 기소된 사람을 심리하는 배심원은 토지의 자유 보유권자여야 한다.
12. 유죄 판결 이전에 특정인에게 부과되는 벌금과 몰수를 인정하고 보장하는 조치는 불법이며 무효이다.
13. 모든 요구 사항을 처리하고 법률을 수정·보강·유지하기 위해, 의회는 자주 소집되어야 한다.
400년 전의 마그나 카르타와 비슷하지만 그 의도는 사뭇 다르다
영국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귀족이 왕을 처단한 청교도의 올리버 크롬웰에 관한 재밋는 이야기 다음에 영국 국회의사당 방문때 하자.
이어 영국은 근대 시대로 들어가면서 1707년 잉글랜드 왕국이 스코들랜 왕국이 연합 왕국을 이루어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 되고, 이 시기에 조지라는 왕호의 국왕들이 연속 즉위함으로 조지시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고 여겨지는 시대였고 7년 전쟁에서 프랑스 식민지들을 점령하며 세력을 넓힌다
18세기 후반에는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나 13개 식민지들이 독립해 나가기도 하고 특히 아일랜드 지역의 인구가 잉글랜드, 웨일즈 , 스코들랜드 지역에 비해 빠르게 증가한다.
1801년에는 명목상의 아일랜드 왕 직위를 없애고 아일랜드를 연합왕국의 일원으로 편입시켜 국호를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으로 고친다.
19세기 끝부분을 차지한 빅토리아 시대의 막강한 산업혁명은 가장 활발히 일어났고 막강한 해군력과 식민지를 바탕으로 전세계에 영향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영국 런던의 인구는 수백년 동안 끝도 없이 성장해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도시의 위상.
(다음 장에 또 나가지요)
이 무덤이 참회왕 에드워드1세 무덤인데 예민한 구역이라 예약한 일부만 입장이 가능하다는 안내와 함께
확인이 불가한 시기이네요
수리중인 현장인데 젊은 사람들. 고고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같다
주로 먼지 제거
이렇게 아쉬운 마음을 남기고 웨스트민스트 사원을 이탈합니다
다음 가야할 버킹엄 궁전,
런던에서 지하철은 1863년에 개통이 됐는데 산업혁명으로 매연과 길에 마차가 너무 많고 말똥으로 더러운 도로들이 원인이었다고 하고 지금은 국철을 비롯해 15개 노선이다
이름이 subway가 아니고 underground, 혹은 튜버라고도 하는데, 5일 이상을 머문다면 공항서 내리자마자 오이스트 카드( oyster caed) 를 사는 것이 절대 유리하다. 버스와 탬즈 강을 운행하는 페리도 공짜다( 그런데 공짜 타는 항구가 정해져 있다)
주변에서 기념비 하나를 볼 수 있는데
두 번의 전쟁(1854 -56년 크림전쟁 10명, 1857-58년 인디언 반란에서 9명)에서 죽은 웨스트민트 학교 학생들을 기념한다
어린 나이에 펴보지 못하고 죽어간 어린 학생들에 숙연
이제 버킹엄 궁전이 보인다
1703년 버킹엄 공작 셰필드의 저택으로 최초 건축, 1763년 조지 3세가 구입함으로 왕실 소유.
1825-1936년 개축 됐는데 1837년 빅토리아 여왕시절에는 왕실의 제1궁전이 됐다
궁전도 그렇지만 주변의 아름다운 호수와 큰 정원, 미술관, 도서관들이 있다.
특히 매일 오전 11시 궁전입구에서 펼져지는 근위병 교대식은 영국관광의 대표 볼거리다
그런데 하필 내가 시간을 줄여가며 열심히 쫒아간 이 날은 행사가 없는 날이었다
홈페이지에서 좀 자세히 볼 걸.....이 왕궁 구경의 하일라이트인데, 안됐다 오영감.
여름 왕가 일족들이 휴가를 갈 때 궁을 일부 공개를 한다는데 여행 시기와는 안맞는다
행사 때 사용하는 정문
보통은 옆에 있는 이 문들을 주로 사용하는 것 같다
하노버 왕조의 제6대 국왕인 빅토리아 여왕,
1819년 5월에 켄싱턴에서 태어나고 1901년 1월에 82살에 졸, 기억하는 별명이 유럽의 할머니
거기에 마누라 보좌에 1등 신랑 엘버트 공.
이 문을 나서면 성 제임스 파크
VICTORIA,
로마 신화에서는 승리의 여신이다. 그리스의 니케에 해당 하는데 글자 그대로 승리를 한다는 말이다
영어단어 VICTORY 역시 여기서 파생된 것으로 그 업적이 장대하다.
촌수로는 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고조모이고 현 국왕 찰스 3세의 현조모가 된다
대영제국을 선두로 유럽 국가들의 제국주의와 기술발전이 절정에 달했든 이 시절을 아예 영국에서는 빅토리아 시대라고 일컬기도 한다. 즉 제국주의를 대표하는 군주.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 세계에서도 가장 오래 재위한 여왕 타이틀을 갖고 있었으나 2015년 9월9일 엘리자베스 2세가 기록을 갱신하면서 깨지고 두 번찌로 밀려났다
지금껏 영국 왕 중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었음으로 차후 이 이름을 왕호로 사용하는 여왕이 나오기 전 까지는 1세로 불리지 않는다
처음 즉위할 때 그냥 영국 여왕이었으나 나중에 인도 제국의 황제 자리 까지 겸임한 결과 공식 칭호가 바뀐다
태어날 때는 일반적 상황으로는 즉위가 어려웠으나 운좋게 왕위계승 1순위가 되었지만 이번에는 친어머니가 섭정을 할 야심속에서 상속권자인 윌리엄4세와(빅토리아의 큰아버지 ) 그의 부인 아델라이드 왕비가 조카인 빅토리아를 만나지도 못하도록 방해를 한다.
비록 딸이 아닌 조카였지만 빅토리아를 진심으로 아끼고 좋아했든 그 들 윌리엄 4세 부부였다.
그가 건강 상태가 악화되어 언제 죽을지도 모를 상황에서 1836년 생일 만찬 때 빅토리아 어머니 켄트 공작 부인에게 대놓고 ' 짐은 빅토리아가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서 그대가 섭정이 되는 꼴은 결코 보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발언 전문을 소개하자
' 하느님이 짐을 최소한 9개월은 더 살게 해줄거라 믿소... 그렇게 되면 지금 내 옆자리의, 저 악마 같은 조언자( 콘로이라는 빅토리아 어머니의 비서지만 나중에 정부로 변신)에게 둘러싸여 상황도 제대로 제어 못해서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짓이나 하는 무능한 재수씨가 내 조카의 왕위를 가지고 노는 일 없이, 잠정 왕위 계승자인 저기 앉아있는 젊은 아가씨에게 왕위를 넘겨주게 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오.'
하늘이 영국을 어여삐 여겨 빅토리아가 18번째 생일을 맞아 성인이 되고 나서 26일 후에 윌리엄 4세가 세상을 떠났다.
빅토리아의 어린 시절,
어머니는 섭정의 야심으로 빅토리아 주변의 사람들을 모두 끊어버렸는데 오로지 가정교사 한 명만 공식적으로 보는 것이 가능.
그런데 그 가정교사는 빅토리아가 정치적으로 이용 당할 것을 우려해 강하고 타협하지 않는 여성으로 가르쳐서 자기 주장이 매우 확고하고 고집스런 성격으로 자라게 되는데 이 성격은 죽을 때 까지 간다
그녀 가정교사 이름이 루이스 레첸 여남작으로 나중에 남편 앨버트 공과의 마찰로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그녀가 사망할 때 까지 여왕과 친분을 유지했다
가정교사가 영향을 준 강직한 성격( 말이 강직이지 고집 쎈.....)으로 당대 최고의 보살급 맨탈인 남편 엘버트 공이 곁에서 빛을 발한다.
1837년 6월에 큰아버지 윌리엄 4세가 재위 7년 만에 71살로 사망하자 여왕으로 즉위하고,
만 18세 성인이 되어 섭정을 둘 필요가 없는 여왕은 정치적 욕망으로 자신의 섭정이 되어 나라를 흔들려고 했고 자신을 달달 복았든 어머니를 결코 내버려두지 않았다.
어머니와 내연의 관계에 있든 콘로이 비서를 내쫒아버렸고 어머니는 거처를 외딴 곳으로 정해 버킹엄 궁에 얼찐거리며 정치에 관여할 싹을 잘라버렸다.
그래도 나중에 어머니가 손주들을 지극히 예뻐하고 돌아가신 후에는 어머니가 소중하게 지니고 있었든 일기장을 읽어보고 생전에 소원하게 지냈든 일들을 몹시 후회했다고 한다.
사람들 가슴은 원래 따뜻하니까
꼭대기에는 브리타니아 여신 황금 천사 조각상
이 여왕은 이른바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전성기의 영국을 통치한 여왕이었다
이 때 영국은 자본주의 선진국이 되었으며 양당제 의회정치가 펼쳐지고 그 정치적 동향은 세계의 큰 정치바람이었다.
근데 본인이 여성음이었음에도 정작 여성 참정권 보장에는 반대했으며
64년의 긴 치세를 통해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틀 속에서 오늘날의 영국 군주제를 확립했다
결혼은 영국에 온 외사촌 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자 엘버트에 반해 결혼했는데,
지식과 교양이 풍부했지만 여왕의 남편이라 공직도 작위도 받지 못하고 아내를 보필하는 조력자 역할에나 충실.
슬하에는 4남5녀,
이 자녀들이 유럽의 많은 왕가들과 혼인을 하여 빅토리아 여왕의 피를 뿌리게 하여 얻은 별명이 유럽의 할머니.
그럴 것이 자녀가 9명, 손주 42명 증손주는 85명이니 별명이 빈말은 아니다
현재도 영국왕실을 비롯하여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스페인 국왕이 모두 그녀의 후손들이다
허지만 일찍 과부가 된다
1861년 부군인 앨버트 공이 42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같은 나이인 여왕의 상심은 컷고
섭정도 두지 않고 갑자기 은거해 버리자 총리가 일일이 찾아가 국정을 상의 하느나고 수고
한국에는 없고 영국에는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아무나 즐길 수 있는 이 개방된 공원들이다
자리펴고 술에 취해서 이상한 행동 하는 사람들은 안보인다
인공호수가 있는데 크고 길다
올해 태어난 새끼들을 몰고 다니는 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