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廻向할 善根
菩薩成就法智慧하야 悟解無邊正法門하고
爲法光明調御師하야 了知無礙眞實法이로다
菩薩爲法大導師하야 開示甚深難得法하고
引導十方無量衆하야 悉令安住正法中이로다
菩薩已飮佛法海하고 法雲普雨十方界하며
法日出現於世間하야 闡揚妙法利群生이로다
常爲難遇法施主하야 了知入法巧方便하니
法光淸淨照其心이라 於世說法恒無畏로다
善修於法自在心하야 悉能悟入諸法門하며
成就甚深妙法海하야 普爲衆生擊法鼓로다
宣說甚深希有法하야 以法長養諸功德하며
具足淸淨法喜心하야 示現世間佛法藏이로다
諸佛法王所灌頂으로 成就法性智藏身하고
悉能解了法實相하야 安住一切衆善法이로다
菩薩修行第一施하니 一切如來所讚喜라
所作皆蒙佛忍可하야 以此成就人中尊이로다
菩薩成就妙法身하니 親從諸佛法化生이라
爲利衆生作法燈하야 演說無量最勝法이로다
보살이 법의 지혜 성취하여서
끝없는 바른 법문 깨달아 알고
법의 광명 비추고 조어(調御)하는 스승이 되어
걸림없는 진실한 법 분명히 알도다.
보살이 바른 법의 대도사(大導師)가 되어
얻어 보기 어려운 깊고 깊은 법 열어 보이고
한량없는 시방 중생 인도하여서
모두 다 바른 법에 편안히 머물게 하도다.
보살이 불법의 바다를 이미 마시고
법의 구름 시방세계에 널리 비 내리며
법의 태양이 세간에 출현하여서
미묘법을 드날려 중생을 이익하게 하도다.
언제나 만나기 어려운 법의 시주가 되어
법문에 들어가는 훌륭한 방편을 알고
법의 광명 청정하게 그 마음 비추니
세상에서 설법하기 두려움 없도다.
바른 법에 자재한 마음 잘 닦아서
여러 가지 법문에 깨달아 들어가며
깊고 깊은 묘법의 바다를 성취하여
중생 위해 법의 북을 널리 치도다.
매우 깊고 희유한 법을 널리 설하여
법으로 모든 공덕 길러 내며
청정한 법에 기쁜 마음 구족하여
세간에 부처님 법의 창고를 나타내도다.
모든 부처님 법왕께서 정수리에 물을 부어서
법의 성품 지혜의 몸을 성취하였고
법의 진실한 모양을 다 능히 깨달아
일체의 선(善)한 법에 안주하였도다.
보살이 제일가는 보시를 닦아
일체 여래의 기쁘게 칭찬한 바가 되고
하는 일을 부처님께서 다 인가하시니
이것으로 사람 중에 높은 이를 이루었도다.
보살이 묘한 법신(法身) 성취하여서
부처님의 법으로부터 변화하여 나고
중생에게 이익 주려고 등불이 되어
한량없이 좋은 법을 연설하도다.
*
회향(廻向)할 선근(善根)
*
보살성취법지혜(菩薩成就法智慧)하야 : 보살이 법의 지혜를 성취해서
오해무변정법문(悟解無邊正法門)하고: 가없는 정법의 문을 깨달아 이해하고
위법광명조어사(爲法光明調御師)하야: 법광명의 조어사가 되어서
요지무애진실법(了知無礙眞實法)이로다 : 걸림이 없는 진실한 법을 요지하도다.
법지혜, 무변정법문, 법광명조어사 게송 하나하나마다 법(法)자가 한 자씩 다 들어있다. 부처님을 법광명조어사라고 했다. 법으로 빛을 낸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혼자 깨닫고 묵묵히 있었더라면 누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누가 존경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자기 혼자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니 법의 광명이라는 것이다. 부처님은 그 법의 광명으로써 조어사(調御師) 사람을 다스리는 스승이 되었다. ‘네가 그렇게 살면 안된다, 이렇게 살아라’ 부처님이 법광명조어사가 되어서 사람을 관리하면 당장 감동해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사는 것이다. 삶을 바꾸는 것이다. 법광명 조어사가 되어서 무애진실법 걸림이 없는 진실한 법을 요지하도다.
*
보살위법대도사(菩薩爲法大導師)하야 : 보살이 법의 대도사가 되어서, 여기도 법(法)이나왔다. 불교에서 ‘가르침’을 빼면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화엄경을 공부하면서 누차 봐왔지만 법을 가장 우선시 한다. 우리 집안의 어른이신 부처님이 그렇게 사셨다. 법을 위하는 그 힘으로 2600년 동안 불교가 전전이 상속하게 된 것이다.
보살이 법의 대도사가 되어서
개시심심난득법(開示甚深難得法)하고 : 깊고 깊은 얻기 어려운 법을 열어보이고. 법의 대도사가 되면 할 일이 무엇인가? 얻기 어려운 이 화엄경 같은 법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
인도시방무량중(引導十方無量衆)하야 : 시방의 한량없는 중생들을 인도해서
실령안주정법중(悉令安住正法中)이로다: 모두 다 하여금 정법 가운데 안주하게 한다.
마음 놓고 정법만 따라가도 된다. 정법만 따라가도 굶어죽을까봐, 절 운영 못할까봐 걱정하고 조바심 낼 것이 없다. 정법만 가지고 해도 다 먹고 살게 되어 있다. 오히려 정법만 가지고 한다면 더 잘 산다. 정법 중에 안주하게 하느니라.
*
보살이음불법해(菩薩已飮佛法海)하고: 보살이 이미 불법의 바다를 다 마신다. 팔만대장경과 많고 많은 가르침 그 좋은 법은 내가 다 공부한다는 뜻이다. 보살이 불법의 바다를 다 마시고
법운보우시방계(法雲普雨十方界)하며 : 법의 구름이 되어 시방세계에 널리 비를 내린다. 한 스님이 45년간 포교한 책을 오늘 우리가 받았는데 정말 힘닿는 데까지 법의 구름이 되어 비를 내려야 한다. 시방계까지는 아니라도 자기 지역사회에서라도 부처님 법을 기회가 될 때마다 전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초파일을 맞았다든지 동지를 맞았다든지 입춘을 맞았다든지 정초기도를 한다든지 등등 기회가 많다. 초하루, 보름, 지장재일, 관음재일, 약사재일 핑계거리가 얼마나 많은가. 그럴 때마다 부처님 정법의 가르침을 하나라도 전해주는 것이 법운이 되어 비를 내리는 것이다.
‘법운보우시방계(法雲普雨十方界)’ 이 일곱 글자만 근사하게 써서 걸어놔도 참 좋다. 법의 구름이 시방세계에 널리 비내린다.
법일출현어세간(法日出現於世間)하야 : 법의 태양이 세간에 우뚝 솟아서
천양묘법이군생(闡揚妙法利群生)이로다 : 묘법을 드날려서 군생들을 이롭게 하는 도다.
불법 같은 묘법이 어디 있겠는가. 그중에서도 특히 화엄경은 묘법이다.
화엄경의 양이 하도 많아서 이 두꺼운 책을 만지면서 ‘언젠가 떼기는 떼야 되겠는데’ 하면서 감동을 받았어도 그 감동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천양묘법이군생이로다. 묘법을 천양해서 군생을 이롭게 한다.
이 세상에 태양같이 복 많이 짓는 것이 없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태양의 힘으로 그 생명을 유지해 나간다. 지구 외의 다른 별에 생명체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전부 태양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느냐에 좌우된다. 태양과 거리가 너무 떨어져 있으면 추워서 생명체가 살 수 없고, 너무 가까워도 뜨거워서 생명체가 살 수 없다.
화성이나 금성 목성 같은 별들이 태양과의 거리가 적합하지 않아서 생명체가 못산다. 다행히 지구는 태양과의 거리가 알맞게 떨어져 있다. 같은 지구인데도 적도 부근은 너무 뜨겁고 남극이나 북극 같은 데는 너무 춥다. 우리 모든 생명체들은 태양에게 늘 감사해야 된다.
법의 태양이 세간에 출현해서 묘법을 천양해서 군생들을 이롭게 함이로다.
*
상위난우법시주(常爲難遇法施主)하야 : 상위난우 법시주 한다. 좋은 말이다. 항상 만나기 어려운 법의 시주가 된다. 나도 법공양을 하느라고 하지만 우리가 공부하는데 있어서 밖에서 책 공양이 많이 들어온다. 오늘도 책이 두 가지나 들어왔다.
만나기 어려운 법의 시주가 되어서 항상
요지입법교방편(了知入法巧方便)하니 : 법에 들어가는 선교방편을 환하게 아나니
법광청정조기심(法光淸淨照其心)이라 : 법의 광명이 청정해서 그 마음을 비추느니라.
법은 일단 우리 마음부터 비춘다. 화엄경 같은 경전을 열심히 공부하고 어떤 구절에 감동을 하고 또 다른 경전에서도 감동을 하면 내 마음이 시원해진다. 법광이 청정하니까 그 마음을 환히 비추는 것이다. 그래서
어세설법항무외(於世說法恒無畏)로다: 세상에서 설법함에 있어서 항상 두려움이 없음이로다.
*
선수어법자재심(善修於法自在心)하야 : 법에 대해서 자재한 마음을 잘 닦아서
실능오입제법문(悉能悟入諸法門)하며: 다 능히 모든 법문에 깨달아 들어가며
성취심심묘법해(成就甚深妙法海)하야: 깊고 깊은 미묘한 법의 바다를 성취해서
보위중생격법고(普爲衆生擊法鼓)로다 : 널리 중생을 위해서 법의 북을 둥둥 친다. 요즘은 스피커가 있지만 옛날에는 소리를 크게 내는 도구가 없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북을 달고 종을 달아서 친다. 둥둥하고 중생을 위해서 법고를 친다.
요즘 스님들이 자기가 법회를 이끌어갈 능력이 좀 부족하다 싶으면 신도들을 모아 놓고 번역된 책을 크게 확대 복사해서 ‘우리 소리내서 같이 읽읍시다’하는 것도 좋다. 이런 책이 글자가 작으면 마음대로 크게 복사해도 된다. 특히 내가 낸 책은 얼마든지 마음껏 크게 복사해서 돌려도 좋다. 그런 책을 다 같이 읽고 ‘오늘 여기까지 공부했습니다’하고 마치면 된다. 깜냥이 뻔한데 자기가 이야기 해봤자 실력도 뻔하고 무슨 좋은 소리가 나오겠는가. 세상에 경전을 지나가고 경전 말씀보다 우선하는 법은 없다.
화엄경강설을 읽기 좋게 해 놓았으니 신도들과 같이 읽고 자기가 감동 받은 대목에 자기 말도 몇 마디 보태면 그보다 더 좋은 법사가 없고 더 좋은 법문이 없다.
엊그저께 통도사 화엄산림 법회가 끝났다. 요즘엔 그날 법문이 바로바로 유트뷰에 올라온다. 올라온지 10분 됐다 20분 됐다 하는 것도 표시가 다 된다. ‘오늘 법사가 법문한 것이 올라온지 지금 몇 분 됐구나’‘몇 명이 검색을 했구나’하는 것까지 다 기록이 된다. 하루도 안 지난 법문이니까 아주 생생하게 살아있는 법문이다. 그래서 들어보면 교재를 가지고 충실하게 하는 법문은 들을 거리가 있다. 그런데 교재하고는 상관없이 자기 소리만 한시간씩 하고 내려오는 사람도 있다. 삼천 명 사천 명 수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그 얼마나 아까운 시간인가. 현전대중 삼사천 명만이 문제가 아니다. 티비에 나가고 유튜브에 나가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가면 보고 듣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다. 정말 귀중한 시간이다.
설사 작은 절에서 신도들 한 여남은 명 앉혀 놓고 법문을 한다고 하더라도 역시 법문에는 원칙이 있다. 부처님 말씀을 전하자고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니까 부처님 말씀에 근거해서 다같이 경전을 읽고 아니면 자기가 혼자 낭랑한 목소리로 부처님 말씀을 읽으면 얼마나 듣기 좋은가. 그런 좋은 방법이 있다.
그런데도 자기 말만 하다가 내려오는 것은 부처님 말씀에 그렇게 신심이 안나기 때문이다. 부처님 말씀이라는데 좋은지 어쩐지 이해도 안가고 믿음도 안가고 좋지도 않고 모르는 것이다. 모르니까 부처님 말씀 앞에 놓고 자기말만 하다가 내려온다. 참 안타깝다. 요는 자기가 신심이 있어야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오고 같이 감동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잘 안되더라도 무턱대고 경전을 의지하면서 해나가면 나머지는 경전이 알아서 해준다. 심심묘법해를 성취해서 널리 중생을 위해서 법의 북을 둥둥 치도다.
*
선설심심희유법(宣說甚深希有法)하야 : 깊고 깊은 희유한 법을 선설해서
이법장양제공덕(以法長養諸功德)하며: 법으로써 모든 공덕을 장양한다. ‘화엄산림’ 하듯이 우리가 ‘산림’이라는 말을 쓰는데 그 본뜻은 ‘최절인아산(摧絶人我山) 장양공덕림(長養功德林) 너니 나니 하는 아상 인상의 숲을 꺾어버리고 법으로써 모든 공덕의 숲을 장양한다’고 하는 말에서 나왔다. 그래서 산림이다. 그런 말들도 전부 화엄경에 근거한 표현들이다. 여기도 장양제공덕(長養諸功德)이라는 말이 나와있다.
구족청정법희심(具足淸淨法喜心)하야 : 청정한 법희를 구족한다. 법으로서 기뻐하는 마음은 청정한 것이다.
시현세간불법장(示現世間佛法藏)이로다 : 세간의 부처님 법의 창고를 나타내보이도다.
*
제불법왕소관정(諸佛法王所灌頂)으로 : 모든 부처님의 법왕, 제불법왕이 관정한 바다. 관정은 인가한다는 뜻이다.
성취법성지장신(成就法性智藏身)하고 : 법성의 지혜 창고의 몸을 성취하고
실능해료법실상(悉能解了法實相)하야 : 법의 실상을 다 능히 환하게 깨달아서
안주일체중선법(安住一切衆善法)이로다 : 일체 모든 선한 법에 안주함이로다.
*
보살수행제일시(菩薩修行第一施)하니: 보살이 제일시를 수행하니, 제일시는 법시, 법의 보시다.
기타태자, 급고독장자 이 사람들이 합작해서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불교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절인 기원정사라고 하는 만고의 제일가는 절을 지었다. 땅에 황금을 깔면서까지 그 땅을 사서 절을 지어 부처님께 보시했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이 지금은 그 터에만 가도 그만 감동을 한다. 부처님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런 일화는 만고의 귀감이 되니까 사람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겠지만, 그것이 제일시는 아니다. 그것은 제이시다.
일체여래소찬희(一切如來所讚喜)라: 일체 여래에게서 찬탄하고 기뻐하는 바가 된다. 부처님이 무엇을 가지고 기뻐하겠는가? 그 제일시는 법시다.
‘부처님의 식성이 뭔지 알고 불공하느냐?’
그런 말을 나는 자주한다.
도반이 왔다면 도반의 식성이 뭔지 알고 대접해야 돈도 적게 들고 시간도 아끼고 ‘공양 잘 받았다’는 칭찬도 받는다. 도반의 식성도 모르고 비싸니까 아무 거나 갖다가 대접한다고 해서 칭찬받는 바가 아니다. 부처님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부처님의 식성이 뭔지 알고 공양을 올려야 부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이고 그것이 제대로 된 불공이고 부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다. 식성을 알고 대접하면 부처님으로부터 복을 많이 받는 것이다. 일체 여래가 소찬희라, 일체여래가 찬탄하고 기뻐하는 바다.
소작개몽불인가(所作皆蒙佛忍可)하야 : 짓는 바에 다 부처님의 인가를 이룬다. 하는 일마다 다 부처님으로부터 인가를 받는다.
이차성취인중존(以此成就人中尊)이로다 : 이것으로써 인중존을 성취한다. 인중존 사람 가운데 가장 높으신 어른, 부처가 된다는 말이다.
*
보살성취묘법신(菩薩成就妙法身)하니: 보살이 미묘한 법의 몸을 성취하니
친종제불법화생(親從諸佛法化生)이라 : 친히 모든 부처님의 법으로부터 화생하는 것이다. 법으로부터 화생하는 것, 법에 감동해서 그 인생이 달라지고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금강경에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이 있다. ‘법에 의해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뜻이다.
여기도 친종제불법화생이라. 친히 모든 부처님의 법으로부터 화생했다. 우리는 거듭거듭 태어나야 된다. 부처님의 이런 법문을 우리가 볼 때마다 ‘야 참 근사하다 근사하다’ 하고 사람이 조금씩 달라지고 인격이 향상되어 가는 것이다.
위리중생작법등(爲利衆生作法燈)하야 : 중생을 이익하게 하기 위해서 법의 등불을 짓는다. 법의 등불을 짓는다는 말이 근사하다. ‘법등명(法燈明) 자등명(自燈明) 자귀의(自歸依) 법귀의(法歸依)’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진리 자체 그리고 법이라고 하는 그 자체가 내가 의지 할 바고 내 어두운 앞길을 비춰줄 바다. 법등(法燈)이다. 얼마나 근사한가.
연설무량최승법(演說無量最勝法)이로다 : 한량없는 가장 수승한 법을 연설함이로다.
3, 廻向의 行
隨所修行妙法施하야 則亦觀察彼善根하고
所作衆善爲衆生하야 悉以智慧而廻向이로다
所有成佛功德法을 悉以廻施諸群生하고
願令一切皆淸淨하야 到佛莊嚴之彼岸이로다
十方佛刹無有量에 悉具無量大莊嚴하니
如是莊嚴不可思로 盡以莊嚴一國土로다
如來所有淸淨智를 願令衆生皆具足호대
猶如普賢眞佛子하야 一切功德自莊嚴이로다
成就廣大神通力하고 往詣世界悉周遍하야
一切衆生無有餘하야 皆使修行菩薩道로다
諸佛如來所開悟한 十方無量諸衆生으로
一切皆令如普賢하야 具足修行最上行이로다
諸佛菩薩所成就한 種種差別諸功德이여
如是功德無有邊을 願使衆生悉圓滿이로다
수행하는 곳을 따라 미묘한 법을 보시하며
또한 저 선근을 관찰도 하며
여러 가지 지은 선근을 중생을 위하여
모두 다 지혜로써 회향하도다.
부처를 이루려는 공덕의 법을
회향하여 모든 중생에게 보시하면서
원하건대 모두 다 청정하여서
부처님의 장엄인 저 언덕에 이르러지이다.
시방의 부처님 세계가 한량이 없고
한량없는 큰 장엄을 구족했는데
이와 같은 불가사의한 장엄으로써
모두 다 한 국토를 장엄하도다.
여래가 가지신 청정한 지혜를
원컨대 중생들이 다 구족하여
보현보살이 부처님의 참다운 아들이듯이
일체 공덕으로 스스로를 장엄하여지이다.
광대한 신통력을 성취하고서
세계에 나아가서 두루 가득해
일체 중생 하나도 남기지 않고
낱낱이 보살도를 수행케 하도다.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깨치신 바를
시방의 한량없는 모든 중생들에게
그들이 하나하나 보현보살처럼
가장 높은 행(行)을 구족히 닦게 하도다.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이 성취한 바의
모든 공덕이 각각 차별해
이와 같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공덕을
중생들이 모두 다 원만하기 원하도다.
*
회향(廻向)의 행(行) : 회향하는 행
*
수소수행묘법시(隨所修行妙法施)하야 : 닦아서 수행한 바 묘법을 베푸는 것, ‘법을 베푸는 것을 수행하는 바를 따라서’ 이런 뜻이다.
즉역관찰피선근(則亦觀察彼善根)하고 : 또한 곧 저 선근을 관찰하고, 법을 베푸는 그 선근을 잘 관찰하고
소작중선위중생(所作衆善爲衆生)하야 :짓는 바 온갖 착한 일들을 중생을 위해서
실이지혜이회향(悉以智慧而廻向)이로다 : 모두 다 지혜로써 회향함이로다. 그렇게 할 줄 아는 사람은 첫째 자기에게 제대로 회향하는 것이 되고 그 다음에는 나 아닌 중생들에게 잘 회향하는 것이 된다.
*
소유성불공덕법(所有成佛功德法)을 : 있는 바 부처님의 공덕법 이루는 것을
실이회시제군생(悉以廻施諸群生)하고 : 모든 군생들에게 회향해 베풀고
원령일체개청정(願令一切皆淸淨)하야: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다 청정케 하나니
도불장엄지피안(到佛莊嚴之彼岸)이로다 : 부처님 장엄의 피안에 이르기를 원함이니라.
*
시방불찰무유량(十方佛刹無有量)에 : 시방 불찰이 한량이 없어서
실구무량대장엄(悉具無量大莊嚴)하니: 다 한량없는 장엄을 갖춘다. 이미 한량없는 장엄이 구족되어 있다. 시방불찰에 모든 것이 현재 그대로 이미 다 갖추어져 있다.
적도 부근의 뜨거운 사막이라면 뜨거운 사막 그대로, 남극이나 북극의 눈뿐이고 얼음뿐인 모습이라면 그 모습 그대로 무량대장엄이 다 갖춰져 있는 것이다. 마음의 눈을 뜨는 순간에 다 갖춰져 있다. 더운 곳에다가 얼음을 옮기고 뜨거운 열기를 남극이나 북극에 옮기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가 장엄이다.
여시장엄불가사(如是莊嚴不可思)로: 이와 같은 장엄은 가히 다 헤아릴 수 없음으로써
진이장엄일국토(盡以莊嚴一國土)로다 : 모두 다 한 국토를 장엄함이로다.
*
여래소유청정지(如來所有淸淨智)를 : 여래께서 가진 바 청정한 지혜를
원령중생개구족(願令衆生皆具足)호대: 중생들로 하여금 다 구족하기를 원한다.
부처님이 가진 청정한 지혜를 모든 중생이 다 저렇게 갖추고 있었으면, 부처님까지는 아니더라도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 정도라도 갖추고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부처님이나 지장보살이나 관세음보살이나 문수, 보현이나 다 동격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원하는 것이다. 여래께서 가진 바 청정한 지혜를 모든 중생이 다 구족하기를 원한다.
유여보현진불자(猶如普賢眞佛子)하야: 마치 보현보살 같은 참다운 불자와 같이
일체공덕자장엄(一切功德自莊嚴)이로다 : 일체의 공덕을 스스로 장엄함이로다.
십회향의 열한 권, 정확히는 열권 반까지 설하고 또 마지막에 이렇게 정리를 해서 게송으로 남기는데 그 게송의 한 글자 한 단어가 뜯어보면 의미심장하고 참 좋은 말이다.
내 모든 능력과 내 모든 재능 일체 것을 내 모든 복까지도 전부 중생에게 회향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인가. 아름다운 게송들이다.
*
성취광대신통력(成就廣大神通力)하고 : 광대한 신통력을 성취하고
왕예세계실주변(往詣世界悉周遍)하야: 세계에 다 두루해서
일체중생무유여(一切衆生無有餘)하야: 모든 일체 중생이 남김없이 해서
개사수행보살도(皆使修行菩薩道)로다 : 다 보살도를 수행하게 하는도다.
화엄경은 한 중생도 보살이 안되는 사람이 없도록, 모든 생명, 지구상에 70억 인구가 전부 보살이 되게 하는 운동이다. 전부가 보살이 되고 보살이 되어서 보살행을 하게 하는 가르침이 바로 화엄경이다. 여기도 보면 일체중생무유여(一切衆生無有餘) 한 중생도 남김없이 다 보살도를 수행하게 한다고 하였다.
*
제불여래소개오(諸佛如來所開悟)한 :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깨달으신 바
시방무량제중생(十方無量諸衆生)으로: 한량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일체개령여보현(一切皆令如普賢)하야 : 모든 중생들을 전부 보현보살과 같게 한다.
부처님이 보니 시방세계에 중생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시방무량제중생인데 그들이 전부 보현보살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절에 오는 사람만이라도 보현보살이 되게 하면 상당하다. 절에 오는 일반 신도는 숫자가 너무 많으니 불교의 프로가 되어서 부처님의 장자 큰 아들이 된 우리 스님들만이라도 모두 보현보살이 되게 한다면 숫자가 크게 많지 않아도 대단하다. 먹물옷 입은 사람은 전부 보현보살이다. ‘저 사람 함부로 건드릴 사람이 아니다. 보통 중이 아니라 불보살 같은 스님이다’ 모두 이쯤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구족수행최상행(具足修行最上行)이로다 : 최상행. 제일 높은 행, 보현행을 구족히 수행함이로다.
*
제불보살소성취(諸佛菩薩所成就)한: 제불보살이 성취한 바
종종차별제공덕(種種差別諸功德)이여: 공덕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람마다 관점이 달라서 공덕 닦는 것도 서로 다르다.
여시공덕무유변(如是功德無有邊)을 : 끝없는 이와 같은 공덕들을
원사중생실원만(願使衆生悉圓滿)이로다 : 원컨대 중생들로 하여금 다 원만하게 하는 도다. 모든 중생들이 그런 공덕, 끝없는 공덕을 다 갖추었으면 하는 뜻이다. 정말 십회향품다운 내용이다.
4, 果位
(1) 佛親見의 自在
菩薩具足自在力하야 所應學處皆往學하고
示現一切大神通하야 普詣十方無量土로다
보살들이 자재한 힘을 갖추고
배울 것은 모두 다 가서 배우며
일체 큰 신통을 나타내면서
한량없는 시방세계 두루 나아가도다.
*
과위(果位)
*
불친견(佛親見)의 자재(自在) : 부처님 친견의 자재
*
부처님을 친견하는데 대한 자재한 뜻이라.
*
보살구족자재력(菩薩具足自在力)하야 : 보살이 자재한 힘을 구족해서
소응학처개왕학(所應學處皆往學)하고 : 응당히 배울 곳에 가서 다 배우고
시현일체대신통(示現一切大神通)하야 : 일체 대신통들을 시현해서
보예시방무량토(普詣十方無量土)로다: 시방의 한량없는 국토에 널리 나아감이로다.
(2) 淸淨
菩薩能於一念頃에 覲等衆生無數佛하고
又復於一毛端中에 盡攝諸法皆明見이로다
世間衆生無有量이어늘 菩薩悉能分別知하며
諸佛無量等衆生이어늘 大心供養咸令盡이로다
種種名香上妙華와 衆寶衣裳及幡蓋를
分布法界咸充滿하야 發心普供十方佛이로다
一毛孔中悉明見 不思議數無量佛하며
一切毛孔皆如是하야 普禮一切世間燈이로다
擧身次第恭敬禮 如是無邊諸最勝하고
亦以言詞普稱讚하야 窮盡未來一切劫이로다
一如來所供養具가 其數無量等衆生이어늘
如是供養一如來하고 一切如來亦復然이로다
供養讚歎諸如來를 盡彼世間一切劫하니
世間劫數可終盡이어니와 菩薩供養無休懈로다
一切世間種種劫이여 於爾所劫修諸行하야
恭敬供養一如來호대 盡一切劫無厭足이로다
如無量劫供一佛하야 供一切佛皆如是호대
亦不分別是劫數하야 於所供養生疲厭이로다
法界廣大無邊際를 菩薩觀察悉明了하고
以大蓮華遍布中하야 施等衆生無量佛이로다
寶華香色皆圓滿하고 淸淨莊嚴甚微妙하야
一切世間無可喩로 持以供養人中尊이로다
衆生數等無量刹에 諸妙寶蓋滿其中으로
悉以供養一如來하고 供一切佛皆如是로다
塗香無比最殊勝이라 一切世間未曾有어늘
以此供養天人師호대 窮盡衆生數等劫이로다
末香燒香上妙華와 衆寶衣服莊嚴具로
如是供養諸最勝호대 歡喜奉事無厭足이로다
等衆生數照世燈이 念念成就大菩提하고
亦以無邊偈稱述하야 供養人中調御者로다
如衆生數佛世尊에 皆修無上妙供養하고
如衆生數無量劫에 如是讚歎無窮盡이로다
如是供養諸佛時에 以佛神力皆周遍하야
悉見十方無量佛하고 安住普賢菩薩行이로다
보살이 한 생각에 중생 수(數)처럼
무수한 부처님께 가서 뵈옵고
또다시 털끝만 한 그런 속에서
모든 법을 다 거두어 분명히 보도다.
세간의 중생들이 한량없거늘
보살이 분별하여 모두 다 알고
부처님 한량없기 중생 같거늘
광대한 마음으로 모두 공양하도다.
가지가지 이름난 향과 훌륭한 꽃과
보배로운 의복과 번(幡)과 일산(日傘)이
법계에 가득하게 널려 있거늘
마음을 내어 시방의 부처님께 공양하도다.
한 모공(毛孔)속에서 밝게 보는 부처님
그 수효 한량없이 부사의한데
일체 모공(毛孔)이 다 이와 같거늘
일체 세간의 등불께 두루 예배하도다.
이와 같이 그지없는 가장 수승한 분께
온몸으로 차례차례 예배를 하고
찬탄하는 말로써 칭찬하기를
미래의 일체 겁이 끝날 때까지 하네.
한 여래께 바치는 공양거리가
그 수가 한량없는 중생 수와 같거늘
이와 같이 한 여래께 공양하듯이
일체의 여래께도 그렇게 하도다.
모든 여래께 공양하고 찬탄하기를
세간의 일체 겁이 끝날 때까지 하나니
세간의 모든 겁은 끝날지언정
보살의 공양은 쉬거나 게으르지 않느니라.
일체 세간의 모든 겁이 한량없는데
그러한 겁 동안에 모든 행을 닦으며
한 여래께 공경하며 공양하기를
일체 겁이 다하도록 싫은 줄 모르도다.
한량없는 겁에 한 부처님께 공양하듯이
일체 부처님께 공양함도 다 이와 같이 하여
공양하는 겁의 수효 분별하지 않고
피로해하거나 싫어하지 않도다.
법계가 광대하여 끝이 없지만
보살이 관찰하여 분명히 알고
큰 연꽃을 그 가운데 가득히 쌓아
중생처럼 한량없는 부처님께 공양하도다.
보배꽃 빛과 향기 다 원만하고
청정한 장엄들도 매우 미묘하여
일체 세간에서 비유할 것이 없거늘
그것을 가져 세존께 공양하도다.
중생처럼 한량없이 많은 세계에
아름다운 보배 일산 그 속에 가득한데
그것으로 한 여래께 공양하듯이
일체 여래께 공양함도 이와 같도다.
바르는 향(香) 수승하기 비길 데 없어
일체 세간에 일찍이 있지 않았거늘
이것으로 천인사(天人師)께 공양하기를
중생 수효 같은 겁이 다할 때까지 하도다.
가루향과 사르는 향과 묘한 꽃들과
온갖 보배 의복이나 장엄거리로
가장 높은 이에게 공양하오며
환희하며 섬기기에 싫어할 줄 모르도다.
중생 수와 같이 많은 세간을 비추는 등불이
순간순간에 큰 보리를 성취하시고
그지없는 많은 게송 일컬으시어
인간을 조복하고 제어하는 분께 공양하도다.
중생의 수효처럼 많은 부처님 세존께
가장 높은 묘한 공양 이바지하며
중생의 수효처럼 한량없는 겁을
이와 같이 찬탄해도 끝나지 않도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 공양할 때에
부처님의 신력으로 모두 두루 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부처님을 친견하고
보현의 보살행에 안주하도다.
*
청정(淸淨) : 청정을 얻다
*
보살능어일념경(菩薩能於一念頃)에 : 보살이 한 생각 사이에
근등중생무수불(覲等衆生無數佛)하고: 중생수와 같은 무수한 부처님을 친견하고, 이 말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부어일모단중(又復於一毛端中)에: 다시 또 한 모단 가운데
진섭제법개명견(盡攝諸法皆明見)이로다: 모든 법을 다 섭하고 있는 것을 다 밝게 본다. 한 터럭 끝에 모든 법을 다 섭하고 있는 것을 다 밝게 보는 도다.
*
세간중생무유량(世間衆生無有量)이어늘 : 세간에 있는 중생들, 끝이 없다. 우리 중생들 사람만 쳐도 지구상에 70억 인구다. 내가 늘 노래처럼 이야기하는데 70억 인구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100조의 세포가 있고 그뿐인가. 그 외 다른 생명체들은 사람이라고 하는 생명체보다도 몇 천 배, 몇 만 배 많다. 저 하늘에 나는 새들만 봐도 얼마나 새의 종류가 많은가. 걸어다니는 온갖 짐승들도 그렇고 얼마나 생명체가 많은가. 세간중생 무유량이라.
보살실능분별지(菩薩悉能分別知)하며 : 보살이 그것을 다 분별해서 알며
제불무량등중생(諸佛無量等衆生)이어늘 : 제불이 한량없어서 중생숫자와 같다.
대심공양함령진(大心供養咸令盡)이로다 : 큰마음으로 공양해서 다 하여금 다하게 함이로다. 대회향, 크게 회향하는 마음자세가 함축되어서 여기에 잘 표현되어 있다.
*
종종명향상묘화(種種名香上妙華)와 : 가지가지 이름 있는 향과 아주 훌륭한 꽃과
중보의상급번개(衆寶衣裳及幡蓋)를 : 여러 가지 보배로 장엄한 의상과 그리고 번과 일산들을
분포법계함충만(分布法界咸充滿)하야: 법계에 두루두루 펼쳐서 이 법계가 가득차게 해서
발심보공시방불(發心普供十方佛)이로다: 발심해서 시방 부처님께 널리 공양올리는 도다.
*
일모공중실명견(一毛孔中悉明見) : 한모공 가운데서
부사의수무량불(不思議數無量佛)하며: 불가사의한 무량부처님을 다 밝게 본다.
한모공 가운데 불가사의하고 한량없는 부처님이 있다. 화엄경에는 왜 모공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것이 인체이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신체에서 제일 많은 숫자가 모공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을 보면 안다. 어릴 때 보면 온몸에 온통 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전신에 모공이 다 촘촘하게 박혀 있다.
우리에게 가까운 것은 신체이고 신체 중에 제일 많은 숫자가 모공이라서 화엄경에 모공이라는 말이 잘 나온다. 우리 인체 모공이 몇 개겠는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그 한 모공에서 불가사의한 무량 부처님이 계신다. 보살의 열려있는 눈으로는 그 계신 것을 밝게 보는 것이다.
일체모공개여시(一切毛孔皆如是)하야: 한 모공에서 그와 같듯이 일체 모공에서도 또 한량없는 부처님이 계신다. 모공하나에 한량없는 부처님이 계신다. 그러니까 몸을 함부로 하면 안된다. 몸을 잘 보살피고 몸을 잘 아끼고 ‘여기 수많은 부처님이 있는데 이 부처님 덩어리 건드리지 말라’고 해야 된다. 일체모공개여시다. 일체 모공 속의 그 많고 많은 부처님이 있는 곳에
보례일체세간등(普禮一切世間燈)이로다 : 일체 세간등에게 널리 예배하는 도다. 일체세간등은 세상의 등불, 부처님이다. 모공 속에 있는 부처님도 세간의 등불이어서 그분에게 널리 예배한다.
*
거신차제공경례(擧身次第恭敬禮) : 온몸으로 차례차례
여시무변제최승(如是無邊諸最勝)하고 : 이와 같은 가없는 가장 수승한 분, 누구인가? 역시 부처님이다. 제최승이라고 하는 것이 가없이 많고 많은 부처님인데 그것이 일체모공에 개여시라고 하는 그 부처님이다. 온몸으로 순서대로 하나하나 한분도 빠짐없이 공경해 예배한다.
은해사 거조암에 가면 오백 나한이 모셔져 있다. 내가 어릴 때 은해사에 살 때 거조암에 가서 울력도 하고 나한님들 방석도 갈고 할 때는 그런 법이 없었는데 근래에 가보면 한 나한 앞에 바룻대가 하나씩 다 있다. 거기다가 천원씩만 넣어도 얼마인가?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사탕을 갖다가 바룻대에다가 넣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동전 100원짜리를 가져와서 넣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한분 한분에게 예배올리고 공양하고 불공을 올리니까 숫자가 굉장하다.
마지하나 떠 놓고 오백명 나한님에게 보공양진언(普供養眞言) 해버리면 간단한데 한분한분에게 다 올린다니 불공 한 번 올리려면 보통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법을 만들어 냈다. 상당히 괜찮은가보다. 신도들은 그게 또 신기하다. 다 깨놓고 이야기는 못하지만 ‘오백나한 누구에게는 올리고 누구에게는 안올리나?’ 이렇게 되는 것이다. 여기도 보니 온 몸을 들어서 한 분 한 분에게 이와같은 무량 모든 부처님에게 널리 예경을 한다. 그래서
역이언사보칭찬(亦以言詞普稱讚)하야 : 또한 말로써 널리 칭찬해서
궁진미래일체겁(窮盡未來一切劫)이로다 : 미래 일체겁을 다할 때까지 하는 도다.
*
일여래공양구(一如來所供養具)가 : 한 여래 처소에 올리는 그 공양구가
기수무량등중생(其數無量等衆生)이어늘: 그 숫자가 한량없어서 중생수와 같거늘, 경전에도 이렇게 나와 있으니 오백나한 한 분 한분에게 공양할만도 하다.
여시공양일여래(如是供養一如來)하고: 이와 같이 한 여래에게 공양올리고
일체여래역부연(一切如來亦復然)이로다 : 일체여래도 또한 다시 이와같이 하는 도다.
*
공양찬탄제여래(供養讚歎諸如來)를 : 모든 여래에게 공양하고 찬탄하는 것을
진피세간일체겁(盡彼世間一切劫)하니 : 저 세간의 일체겁이 다할 때까지 하나니
세간겁수가종진(世間劫數可終盡)이어니와 : 세간의 겁수는 가히 다할 때가 있거니와
보살공양무휴해(菩薩供養無休懈)로다 : 보살이 공양하는 것은 쉬거나 게으름이 없도다.
*
일체세간종종겁(一切世間種種劫)이여 : 일체 세간 종종겁이여
어이소겁수제행(於爾所劫修諸行)하야 : 그러한 겁에서 모든 행을 닦아서 일체세간 종종겁 그 세월은 또 얼마나 많고 얼마나 긴가. 그 길고 긴 세월동안에 모든 수행을 다 닦아서
공경공양일여래(恭敬供養一如來)호대: 한 여래에게 공경하고 공양하되
진일체겁무염족(盡一切劫無厭足)이로다 : 일체겁이 다할 때까지 해서 싫어함이 없음이로다.
*
여무량겁공일불(如無量劫供一佛)하야 : 한량없는 세월동안 한 부처님에게 공양해서
공일체불개여시(供一切佛皆如是)호대 : 일체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것도 다 이와 같으매
역부분별시겁수(亦不分別是劫數)하야 : 또한 이 급수를 분별해서
어소공양생피염(於所供養生疲厭)이로다: 내가 이 많은 시간동안 공양 올렸다면 그 공양올린 바에 대해서 피염을 내지 않음이로다. 앞에 있는 아닐 불(不)자를 여기 새긴다.
*
법계광대무변제(法界廣大無邊際)를 : 법계가 광대해서 변제가 없는 것을
보살관찰실명료(菩薩觀察悉明了)하고 :보살관찰실명료한다.
법계가 얼마나 넓은가. 옛날이야 기껏해야 해나 달, 별을 알고, 별이 저렇게 떠있는 것은 은하수려니 하는 정도로 알지만 이제는 천체 망원경이 발달해서 태양보다 몇 백 배 몇 천배 큰 별들이 있고 그 별은 빛도 태양보다도 훨씬 밝다는 것을 안다.
법계에 끝없이 널려 있는 그러한 것들을 보살이 관찰하여 환하게 다 안다. 그런데
이대련화변포중(以大蓮華遍布中)하야 : 그 법계 광대 무변제한 가운데에 큰 연꽃을 펼쳤다. 그것으로써 어떻게 하는가?
시등중생무량불(施等衆生無量佛)이로다 : 중생수와 같은 한량없는 부처님에게 보시하는도다. 말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고 이런 말을 지어낼 수 있었는지 신기하다. 툭 터진 깨달은 부처님으로서는 이런 일이 식은 죽 먹듯이 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런 일을 생각해낼래야 생각해낼 수가 없다.
완전히 깨달은 지혜로는 이런 말을 보통 우리가 농담주고 받듯이 한다. 그 넓고 넓은 광대한 법계에 대연화를 탁 펼친다. 그래서 중생수와 같은 한량없는 부처님에게 보시하는 도다.
*
보화향색개원만(寶華香色皆圓滿)하고 : 그 연꽃은 보배로운 꽃 향기롭고 색깔이 좋은 아름다운 것이 다 원만하고
청정장엄심미묘(淸淨莊嚴甚微妙)하야 : 청정한 장엄이 아주 미묘해서
일체세간무가유(一切世間無可喩)로 : 일체 세간에서 가히 비교할 바가 없다. 그러한 모습을 세상 것으로써는 도저히 비교할 수가 없어서
지이공양인중존(持以供養人中尊)이로다 : 그것을 가져서 인중존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도다.
*
중생수등무량찰(衆生數等無量刹)에 : 중생수등무량찰이, 중생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 이 세상의 주인공은 중생이기 때문이다. 화두도 중생이다. 어떻게 하면 중생의 문제를 해결할까 하는 것이 진정한 불교의 바른 안목이고 화엄경에서는 더 말할 나위 없다. 한 중생이라도 빠뜨리면 안 되기 때문에 숫자도 항상 중생이다. 세계도 중생수와 같은 한량없는 세계에
제묘보개만기중(諸妙寶蓋滿其中)으로 : 모든 아름다운 보배 일산을 그 가운데 가득히 채워서
실이공양일여래(悉以供養一如來)하고 : 다 한 여래에게 공양하고
공일체불개여시(供一切佛皆如是)로다: 일체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이 한다.
*
도향무비최수승(塗香無比最殊勝)이라 : 바르는 향이 비교할 바가 없어서 가장 수승함이라. 나는 티비나 라디오로 법문을 듣고 요즘은 특히 제일 편리하니까 유튜브에서 법문을 듣는다. 거기에서 어떤 법사가 내 이름을 거론하면서 ‘여천(如天) 무비(無比)라, 그 여천 하늘과 같다. 너무 되바라진 이름 아니야?’ 하는 말을 들었다.
한문에 어두우니 여천을 ‘하늘과 같다’라고만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면 의천(義天) 대각국사(大覺國師)의 의천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늘과 의하다라고 해석할 것인가? 의천은 의의 하늘이다. 옳을 의(義)자 진리라는 의, 이치라는 의자다. 여천(如天)도 진여, 여의 하늘이다. 스님들은 꼭 그렇게 아시기 바란다. 하늘과 같다고 하면 안된다. 그건 정말 되바라진 이름이다. 여천이라. 여여한 하늘, 진여의 하늘이다. 하늘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이라는 뜻이다. 진여의 세상, 여여한 세상, 여여한 세상의 무비다 이렇게 되는데 제멋대로 ‘하늘과 같은 무비’ 이렇게 해석한 것이다. 무식해도 보통 무식한 해석법이 아니다. 그 스님이 제발 이 말을 좀 들었으면 좋겠다. 아주 똑똑하고 학위도 몇 개나 가지고 있다. 그대신 아주 날린다. 법문은 괜찮은 내용을 가지고 하는데 잡소리가 많고 겉잡을 수 없이 막 날린다. 그러니까 그렇게 이름을 제대로 이해도 못하면서 ‘하늘과 같은’이라고 한 것이다.
여천은 ‘여(如)의 하늘(天)’ 이렇게 아시기 바란다. 여여, 진여의 하늘, 여여한 하늘, 여여한 세상, 진여의 세상 그 뜻이다. 하늘 천(天)자는 하늘도 되지만 세상이라는 뜻이다.
요즘은 인연만 닿으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바로바로 전해진다. 그 사람이 우연찮게 내 법문을 들을 수가 있다. 인터넷 매체라는 것이 신기하다.
일체세간미증유(一切世間未曾有)어늘 : 일체 세간에 그와 같은 것이 일찍이 없거늘
이차공양천인사(以此供養天人師)호대: 이것으로써 천인사에게 공양올리되
궁진중생수등겁(窮盡衆生數等劫)이로다 : 중생수와 같은 겁동안 다하게 하는 도다. 세월이 다하도록 시간이라는 것이 다할 때까지 그 도향으로써 인천사에게 공양올린다는 말이다.
*
말향소향상묘화(末香燒香上妙華)와 : 말향 소향 상묘화와
중보의복장엄구(衆寶衣服莊嚴具)로 : 온갖 보배로 된 의복과 장엄의 도구로써
여시공양제최승(如是供養諸最勝)호대 : 이와 같이 모든 가장 수승한 분에게 공양 올리되
환희봉사무염족(歡喜奉事無厭足)이로다 : 환희하고 받들어 섬김에 싫어함이 없음이로다.
*
등중생조세등(等衆生數照世燈)이: 중생수와 같은 조세등 세상을 비추는 등불, 역시 부처님이다. 중생수와 같은 조세등이
염념성취대보리(念念成就大菩提)하고 : 염념성취 대보리한다.
‘염념보리심(念念菩提心)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이라고 하는 좋은 말이 있다. 얼마나 근사한 말인가. 염념보리심이면 처처안락국이라. 순간순간 깨어있는 눈, 깨어있는 안목으로 살면 처처안락국이라.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전부 안락국을 누리고 사는 것이다. 염불중에 그 말 같이 좋은 염불이 또 있을까 싶다.
염념에 큰 보리를 성취한다는 염념성취대보리도 ‘염염보리심이면 처처안락국’이라고 하는 그 뜻이다.
역이무변게칭술(亦以無邊偈稱述)하야 : 가없는 게송으로 찬탄하고 설명을 해서
공양인중조어자(供養人中調御者)로다 : 사람 가운데 조어자, 조어사다. 조어사에게 공양올림이로다.
*
여중생수불세존(如衆生數佛世尊)에 : 중생수와 같은, ‘중생수와 같은’이라고 하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 정말 곰곰이 잘 생각해야 될 문제다.
중생수와 같은 불(佛)은 무엇인가? 중생 그대로 부처라는 뜻이다.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공부하면서 중생수와 같은 부처님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왔다. 여중생수 불세존에
개수무상묘공양(皆修無上妙供養)하고 : 다 가장 높은 미묘한 공양을 닦고
여중생수무량겁(如衆生數無量劫)에 : 중생수와 같은 한량없는 겁에
여시찬탄무궁진(如是讚歎無窮盡)이로다 : 이와 같이 찬탄해서 다함이 없도다.
*
여시공양제불시(如是供養諸佛時)에 :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에게 공양할 때
이불신력개주변(以佛神力皆周遍)하야: 부처님의 신력으로써 다 두루두루 해서
실견시방무량불(悉見十方無量佛)하고: 다 시방 한량없는 부처님을 친견하고
안주보현보살행(安住普賢菩薩行)이로다 : 보현보살행에 안주하는 도다. 끝에 가서는 항상 보현보살이다. 우리가 닮아야 할 분은 보현보살이라는 내용이다.
|
첫댓글 고맙습니다 _()()()_
_()()()_
爲法光明調御師...고맙습니다 _()()()_
00000000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화엄경스케치가 올라오면 늘 감동입니다.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