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피서철이 다가온다. 평소에 가고 싶어도 시간을 내기 어려웠던 곳을 가볼 수 있는 기회다. 아름다운 섬을 찾아가 보면 어떨까. 섬은 아무리 짧아도 1박 이상은 해야 여행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곳. 하지만 날씨에 따라 배가 뜨지 않을 수도 있어 평소에는 주말을 이용해서도 나서기가 불안한 곳이기도 하다.
육지를 떠나 바다 가운데로 나가는 섬여행은 일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여행자의 심리를 어느 피서지보다도 만족시킨다. 끝없이 펼져진 바다에 점 하나 같은 섬에서 조용히 지내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될 수 있다. 성수기라 좀 붐빈다 싶어도 그래도 육지의 관광지보다는 한적한 것이 섬의 매력이다. 섬은 역시 여름이 활기차고 바다색도 아름답다. 뛰놀 백사장이 있고 바다낚시, 조개줍기 등 아이들과 함께할 체험거리도 많다. 호텔이나 콘도 등 고급 숙박시설은 갖추어지지 않았지만 백사장에서의 야영도 좋은 추억거리다. 차를 배에 싣고 들어가 섬 곳곳을 둘러 보는 것도 좋은 여행방법이다.
바캉스철에 가볼 만한 섬, 원산도(충남 대천), 무의도(인천), 임자도(전남 신안), 고군산열도(전북 군산), 우이도(전남 신안), 나루도(전남 고흥) 등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날씨변화에 따라 글싣는 순서는 달라질 수 있다.
옛 지명이 고란도(孤蘭島)인 원산도(충남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리)는 충남에서는 안면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섬이지만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수도권에서 가는 길이 쉽고 빨라졌다. 서울에서 대천항까지 넉넉하게 2시간30분 정도, 뱃길은 30분이면 닿는다.
여객선상에서 시원하게 헤치는 물살을 따라 날아드는 갈매기떼를 보다 보면 금세 원산도 부두에 닿는다. 대천항에서 제일 가까운 부두가 저두. 저두는 마을 지형이 멧돼지의 머리모양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마을 초입이다. 대부분 섬은 부두가 닿는 곳에 노점도 있고 북적거리기 마련인데 저두는 조용하다. 미리 예약된 민박손님을 차로 태워가기 위해 민박집 봉고차가 두어대 나와 있을 뿐이다. 예전에는 마을버스가 저두를 거쳐 섬을 다녔지만 요즘에는 수지가 맞지 않아 그나마 운행이 중단되었다. 차 없는 사람은 걸어 다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차를 타고 섬을 지나다 보면 차를 태워 달라는 주민들을 자주 만난다. 차로 30분 정도면 섬 어디나 다 갈 수 있지만 걸어서 가기에는 만만찮은 거리이기 때문이다.
저두에서 섬 안쪽으로 연결된 길은 하나밖에 없다. 차로 10분 정도 작은 구릉 하나를 지나 가면 바닷가쪽으로 넓은 갯벌이 보이고 갯벌을 바라보고 동네가 있다. 동네 안쪽으로 해수욕장 가는 길표시가 보인다. 여기서 다시 10분 정도면 원산도 해수욕장이나 오봉산 해수욕장에 갈 수 있다.
두 해수욕장이 모두 서해안에서는 보기드문 남향의 바닷가다. 백사장이 완만한 경사로 길게 나 있다. 나지막한 산이 해수욕장을 둘러싸고 있는 것도 두 해수욕장이 비슷하다. 해송이 빽빽하게 들어찬 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원산도 해수욕장이 오봉산 해수욕장보다 약간 크지만 유명 해수욕장들에 비하면 작은 편이다. 드넓은 백사장에서 쨍쨍 내리쬐는 햇빛을 피할 곳이 없어 바캉스가 오히려 피곤했던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이런 해수욕장이 아늑하게 느껴질 것이다. 백사장에 누우면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는 해조류 냄새, 산에서 불 때면 솔잎향이 난다.백사장에도끝쪽으로 소나무가 많아 그늘을 만들어 준다.텐트를치기에도알맞은장소다.
모래는 곱고 깨끗하다. 오봉산 해수욕장의 모래는 예전에 인천 모 유리공장에서 재료로 가져 갔을 정도로 품질이 뛰어나다. 당시에는 모래가 산을 이루었다고 한다. 고운 모래가 물을 먹으면 단단해져서 근처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는 모래운동장이 되기도 한다. 모래밭은 언제나 아이들의 놀이터다.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아서인지 자전거를 타고 놀던 아이들은 외지인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면서 반긴다.
바닷물은 파도가 철썩일 때마다 물가쪽으로 뿌연 모래흙이 약간 일어나지만 모래가 가라앉은 물을 보면 바닥이 전부 보일 정도로 맑다. 조금만 깊이 물보라가 일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면 물이 맑고 깨끗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수온도 너무 차지 않아 해수욕하기에 알맞다.
원산도 해수욕장은 긴 백사장 중간쯤에 바위가 바다쪽으로 길게 나있는데 바위 틈새에 새끼 조개, 새끼 소라 등이 깨알처럼 붙어 있다. 조개를 직접 캐볼 수 있는 것도 서해안 바닷가의 재미다. 대천항 부두 입구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조개 캐는 호미를 파는 노점상이 있을 정도로 원산도는 조개, 특히 맛조개가 많다(봄에는 개불이 많다). 하지만 해수욕장 주변은 조개가 많이 없어져 보통 때는 캐기 어렵고 간만의 차가 클 때, 음력 보름이나 그믐께에는 맛조개를 캘 수 있다고 한다. 바캉스철에는 7월 28∼31일에 8월에는 12∼15일이다. 모래에 난 구멍에 소금을 약간 뿌리면 고개를 쑥 내미는 맛조개를 캐는 일은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조개가 많은 곳을 가보고 싶다면 민박집 주인에게 조개 캐는 배를 타도록 알선해 달라고 하면 된다. 섬에 사는 아주머니들이 매일 초두라는 곳의 부두에서 시루도나 군관도 등 인근 무인도로 조개를 캐러 나가는데 너무 많은 사람이 아니면 태워준다. 배삯은 3000원. 하지만 조갯배는 한번 나가면 3∼4시간 걸리므로 이를 감안하고 가야 한다. 조개도 캐고 무인도 이곳 저곳 구경도 하다 보면 금방 시간이 간다.
낚시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해수욕장 인근 갯바위나 선착장이 낚시꾼들의 자리. 1만원 정도면 근처 슈퍼마켓에서 대낚시도구를 살 수 있다. 우럭이나 놀래미가 이쪽에서 잘 잡히는 물고기다.
등산도 할 수 있다. 오봉산 해수욕장은 봉우리가 다섯개인 뒷산 이름을 딴 것이다. 해수욕장 바로 뒤로 등산길이 나 있다(표지판은 서 있지 않아 동네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왕복 1시간 정도로 높지 않은 산이다. 다섯개의 봉우리를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면서 맨끝 봉우리에 가면 옛날 봉수대로 썼던 터를 볼 수 있다.
작은 어촌마을을 둘러보면 작은 갯벌도 구경하고 작은 포구에서 고깃배도 만난다.
기암절벽이 아름답거나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지만 아담하고 편안하게 느껴져 가족끼리 휴식을 취하기는 그만인 섬이다. 원산도=/황종숙기자 jshwang@segye.com
<주변 가볼만한 섬들>
주변에 삽시도, 장고도, 효자도 등 경관 좋은 섬들이 많다. 유람선은 없지만 낚싯배나 조개 캐러 가는 배를 타면 갈 수 있다. 삽시도는 섬모양이 화살을 꽂은 활과 같고 장고도는 장구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효자도는 예부터 효자가 많이 나왔다 한다.
삽시도 바위 틈새에 있는 물망터의 물은 상큼하고 달다는 느낌이 든다. 물망터 북쪽에는 외딴 섬이 하나 있는데 물이 빠지면 자갈길로 삽시도와 연결된다. 오랜 풍상을 견뎌온 바위들과 동굴의 경관이 빼어나다.
장고도는 충남의 제주도로 불릴 만큼 경치가 아름답고 북서쪽에 암석 해안이 발달되어 있다. | |
바다쪽으로 길게 바위가 이어져 있고 이중에 하나만 오똑 서있는 모자바위의 모습이 특이하다. 한산하고 광활한 백사장도 펼쳐져 있다.
효자도에는 섬주변의 조류가 빨라 파도에 씻긴 어린이 손바닥만한 몽돌이 2㎞의 긴 해안선을 따라 쫙 깔려 있는 몽돌자갈밭 해변이 있다. 발끝이 짜릿짜릿한 돌무리를 밟으면 건강에도 좋다. 몽돌해변 뒤쪽으로 울창한 송림이 둘러싸여 야영을 즐길 수도 있다.
시루도나 군관도는 무인도로 섬사람들이 조개를 캐러 가는 곳이다. 떡시루 엎어 놓은 것 같은 시루섬은 조개보다 굴이 많다. 해변 가까이는 큰 굴은 별로 없지만 작은 굴들은 널려 있다. 그 자리에서 까먹는 굴맛은 어디서도 먹어보기 힘든 맛이다. 평소에 굴맛을 잘 몰랐던 사람이라도 굴이 이렇게 맛있었나 할 정도다. 섬 갯바위에는 바늘도 꽂기 어려울 정도로 조개, 굴, 소라새끼 등이 겹겹으로 붙어있고 해벽 가까이는 하얗게 씻긴 굴껍질이 쌓여 있다.
군관도는 일부러 끝을 잘룩하게 눌러 놓은 것 같다. 넓은 모래언덕이 있어 아무도 없는 곳에 하염없이 누워 있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황종숙기자
<여행정보>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대천IC에서 나와 좌회전해 대천항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대천IC에서 대천항까지 7㎞ 정도.
| 대천항에서 원산도까지 하루 5회 여객선이 뜬다. 오전 7시40분, 10시30분과 낮 12시30분, 오후 3시, 오후 7시.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므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천항여객선터미널(041-922-3758). 원산도는 저두와 선촌, 두 곳에 배가 닿는데 어느 곳이나 해수욕장은 가깝다. |
섬내에서는 버스가 없다. 차를 가지고 가든지 민박집에 미리 예약해서 부두에 데리러 나오도록 해야 한다. 민박집 차는 섬일주도 시켜 준다.
차를 배에 싣는 요금은 승용차의 경우 2만200원, 왕복 4만400원이 든다.
■숙소
민박만 있는데 방에 가스레인지와 싱크대를 놓은 콘도식 민박도 있다. 그래도 그릇은 준비돼 있지 않으므로 밥을 해먹을 거라면 코펠을 가지고 가야 한다.
대성콘도민박, 식당(041-936-6382), 오봉산 민박, 식당(041-936-6166), 오봉파크(041-936-6560), 산성콘도민박(041-935-0298).
■낚싯배
복진호(041-936-6424), 제5성복(041-936-6488), 영진호(041-936-6028)
<사진>나지막한 산에 둘러싸여 있는 원산도 해수욕장. 경사가 완만하고 넓은 백사장이 어린이뿐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모래장난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위 사진). 중간 첫번째 사진은 장고도 명장섬 해수욕장. 석양속에 해변을 걷는 연인의 모습이 아름답다. 아래사진은 효자도 녹사지 해안절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