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없는 시민 의식
진 연 숙
바퀴 소리가 돌돌 거린다. 시장바구니 캐리어를 끌고 동네 재래시장에 열무와 얼갈이배추를 사러 가는 길이다. 초봄 한낮 볕은 제법 따갑다. 모자를 썼건만 얼굴에 비쳐 드는 태양을 피하느라 고개 숙여 막아 낸다. 바닥을 보며 걷다가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시멘트 바닥 한쪽에 검은 남자 반지갑이 떨어져 있다. “앗! 지갑이다. 돈이 든 지갑이다.” 반사적으로 허리를 굽히고 손을 뻗었다. 지갑을 주우려다가 동작 그만처럼 그대로 멈추었다.
순간 머릿속에 여러 생각들이 빙글빙글 돈다. 내 마음 속에 흰 마음과 검은 마음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얼른 주워서 파출소에 갖다 줘야겠다. 잃어버린 사람이 얼마나 당황하고 찾느라 애를 쓰고 있을까?’ 흰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아니야! 줍지 마. 요즘은 지갑 주인 찾아 주는 것도 조심해야 해. 괜히 선한 마음으로 했는데 더 곤란해질 수도 있어. 옛말에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는 말이 요즘 많이 있는 일들이야.’ 검은 마음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에 잘못 지갑만 만져도 내 지문이 묻어 책임을 물러 올 것 같아 얼른 편 손을 오므렸다. 살짝 열린 지갑 속에 두 개의 카드를 보며 당연히 분실 신고를 했겠지. 누군가가 주워서 나쁜 의도로 사용하려 해도 못 할 거야라며 스스로 다독여본다. 왜 하필 내 눈에 띄어서 나를 혼란스럽게 하니? 왜 나를 선한 시민 의식이 없이 안위만을 염려하는 비 용감 시민으로 만드니 하며 지갑을 눈을 흘기듯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얼마 전 경찰인 지인 아들이 엄마에게 신신당부한 소리가 생각났다. 요즘은 아무 지갑이나 섣불리 줍지 말라고 했다.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는 수가 있다고. 예를 들며 얼마 전 택시를 타고 가던 경찰이 바닥에 떨어진 지갑을 주워 파출소에 가져다 줬는데 속에 든 돈이 없어졌다고 해서 억울함에 항소를 했다고 한다. 혹시 그럴 경우가 생기면 기사와 대화 내용을 녹음하고 지갑 속 내용물은 확인하지 말고 파출소로 갖다 주라고 알려줬다고 한다. 또 어느 카페에서 지갑을 주운 한 시민은 우체통에 넣었는데 훔칠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절도 피의자로 입건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이 시대가 이렇게 선한 행위에 불필요하고 성가신 책임이 따르는 세상이 되었다.
잘못했다가는 파출소에 이리저리 불려 다니고 번거롭게 엮일 수 있다. 허리를 펴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나보다 더 착한 시민 의식을 가진 사람이 오면 양보하려고. 속내는 책임을 떠넘기려는 얄팍한 술수였다. 마침 저 멀찍이 자전거를 타고 오는 남자가 보인다. 가까이서 보니 할아버지였다. 차마 그 할아버지에게 대신 지갑을 해결해 달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내 앞에서 옆 골목으로 들어간다.
양심과 겁많은 이기심이 대결을 벌였다. 검은 마음이 이겼다. ‘아 참! 나 지금 바쁘다. 김칫거리 사러 가느라 시간이 없어서 파출소를 갈 수가 없는 거야.’ 고개를 돌리고 아무것도 못본척 돌돌이 바구니를 끌고 터벅터벅 시장을 향해 걸어갔다. 뒤통수가 따가웠다. ‘그래! 장을 보고 오는 길에 더 있으면 그때는 해결을 하리라.’
재래시장은 아직 정스럽다. 난전 바닥에 빨간 작은 바구니에 한소끔 올려놓은 냉이가 천원, 나란히 누워 있는 한 줌 골파가 천원이다. 이것저것 구경하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채소 가게 꼬부랑 할머니는 여전히 웃음 띤 얼굴로 단골인 나를 맞이한다. 연초록 색을 띈 연하게 생긴 적당히 길이의 열무 한 상자를 샀다. 통통하고 싱싱한 얼갈이배추도 샀다. 생긴 모양 그대로 길게 담가 척척 흰 쌀밥 위에 걸쳐 먹게 담글 것이다. 자작하고 넉넉하게 빨간색 국물은 새콤하게 익혀 가는 국수를 삶아 물 국수로 말아 먹을 것을 상상하니 입에 군침이 돈다. 이것저것 사고 나니 장바구니가 한가득 찼다.
때마침 점심시간 즈음이라서 배가 출출했다. 채소 가게 옆에 얼큰이 칼국숫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뻘겋지만 맵지 않은 얇고 굵게 쪽 고르지 않은 수타면 칼국수를 한 입 가득 넣고 씹으니 쫄깃쫄깃 탱탱한 식감이 딱 내 입맛에 맞다. 위에 올려 진 고명 쑥갓의 향긋함과 걸쭉한 국물까지 싹 다 들이켜 깨끗해진 빈 그릇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꽉 찬 시장바구니를 끌며 흥얼흥얼 노래를 흥얼거리며 되돌아온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돌돌 바구니를 끌고 철길 다리 밑을 통과해 가다가 문득 발을 멈췄다. 한참 전 지나 온 그 길에 서서 시멘트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어! 지갑이 없어졌다” 누군가 갖고 갔다. “파출소에 갖다 주려고 갖고 갔겠지. 아니면?”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또 상상을 해본다. 흰 마음과 검은 마음이 다시 온다. ‘내가 파출소에 갖다 줄 걸 그랬나? 너무 소심하고 무책임한 행동이었나? 괜히 미안하고 찜찜하네.’ 흰 마음이 말한다. ‘아니야! 주운 사람이 주인을 잘 찾아 줬을 거야. 찜찜해 할 것 없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가자.’ 검은 마음이 말했다.
한발 두발 걷는데 마음이 무거운 건 왜일까? 세상이 변한 것일까? 내 마음이 변한 것일까? 타인들이 하는 말에 끌려 다니는 내 양심이 나약한 것일까? 정리되지 않는 양심과 비양심의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집으로 돌아와서 열무김치와 얼갈이김치를 맛있게 담그면서 그냥 잊기로 했다. 내일도 아닌데 뭐.
며칠 후 작은아들이 카톡을 보내왔다. “엄마, 휴대전화기를 잃어버려서 연락을 컴퓨터로 합니다. 어제 밤 모임하고 택시를 타고 내리다가 바지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기가 빠졌나 봐요. 카드도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들이 실제로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이다. 휴대전화기도 카드도 분실 신고를 했지만 휴대전화기는 찾을 희망이 없어 포기를 했단다. 못 찾을 확률이 100%라고 아들이 말한다. 얼마나 황당하고 암담하고 불안했을까? 만약에 땅바닥에 떨어진 아들 핸드폰을 선량한 시민 누군가가 주워서 용기 있게 핸드폰을 열고 엄마인 나에게 연락을 해 주었거나 파출소에 전달해 주었다면 얼마나 감사하고 감동스러웠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구나라며 도미노처럼 서로 행복한 마음들이 세상으로 번져갔을 것이다. 아름다운 미담으로 퍼져 나갔을 텐데. 결국 아들은 새로운 휴대전화기를 샀다. 나처럼 소심하고 용기 없는 사람들이 흔한 세상인 것 같아서 미안하고 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