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민일보 2023년 11월 21일 화요일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당신이라는 말
나호열
양산 천성산 노전암 능인 스님은
개에게도 말을 놓지 않는다
스무 첩 밥상을 아낌없이 산객에게 내놓듯이
잡수세요 개에게 공손히 말씀하신다
선방에 앉아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고
싸우든 말든 쌍욕 앞에 들어붙은 개에게 어서 잡수세요
강진 주작산 마루턱 칠십 톤이 넘는 흔들바위는
눈곱만한 받침돌 하나 때문에 흔들릴지언정 구르지 않는다
개에게 공손히 공양을 바치는 마음과
무거운 업보를 홀로 견디고 있는
작은 돌멩이의 마음은 무엇이 다른가
그저 말없이 이름 하나를
심장에서 꺼내어 놓는 밤이다
당신
♦ ㅡㅡㅡㅡㅡ 조주무자(趙州無字)는 유명한 선문답이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고 해도 잘못이고, 없다고 해도 잘못이다. 분별심을 갖지 않으면 있다 해도 알아듣고, 없다 해도 긍정하게 된다. 능엄경에 분별심을 내지 않는 것이 부처를 만나는 길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분법적인 사고로 구분하고 판단하여 추론하지 않고 사물과 존재의 본성을 보라는 것이다.
스님이 개에게나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돌멩이까지도 공손히 대하는 것은 모든 존재에 대하여 분별심을 내지 않음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그저 당신이라는 말로 남을 높이는 것이 곧 나를 높이는 것이리니, 남들이야 선방에서 불성을 논하며 싸우든 말든 세상만물에게 공손히 공양을 바치는 스님을 높이 바라보게 하는 이유다.
우리의 마음과 부처의 마음은 무엇이 다른가. ‘너’ ‘자기’ 가 아니라 그저 말없이 심장에서 꺼내어 놓는 이름 하나
‘당신’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