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양간을 나선 송아지처럼]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말라기 4:2)
살다 보면 마음이 자꾸 가라앉는 날들이 있다. 불안이 스며들고, 우울한 감정이 얼굴을 가리며, 근심과 걱정이 몸까지 병들게 하는 날. 용기는 온데간데없고 스트레스와 짜증만 늘어가서, 도무지 행복하다 말할 수 없는 그런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다.
말라기의 이 말씀은 그런 우리에게 조용히 손을 내민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고 다시 일으켜 세우셔서, 마치 오랫동안 갇혀 있던 외양간 문이 열리는 순간 뛰쳐나가는 송아지처럼, 그렇게 기쁘게 뛰게 하시는 분이다. 절망의 자리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게 하시는 것, 요즘 말로 하면 '회복탄력성'이다.
하지만 이 회복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본문을 다시 읽어보면 분명한 전제조건이 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이라는 말씀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야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는 결과가 따라온다. 회복의 역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임하는 것이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고, 돈과 물질이 최고의 가치가 되며, 모든 것을 과학과 이성으로만 설명하려는 이 시대 속에서 말씀은 오히려 단순한 것을 요구한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라는 것.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그분의 존재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인정은 마음속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입술로 고백하고 선포할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하나님, 저는 부족합니다. 오늘 이 일을 감당해야 하는데, 지혜를 허락하시고 안전하게 이끌어 주옵소서." 이렇게 작은 고백을 드릴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다시 세우게 된다.
잠언 3장 6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혼란스러운 인생길과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그저 그분을 인정하고 고백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분이 우리의 길을 가르쳐 주시고, 병든 마음을 치료하시며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역시, 오랜 어둠 끝에 외양간 문을 나선 송아지처럼 다시 기쁨으로 뛰는 삶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