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칼럼] 교육학자 김은혜의 '아하~' 스포츠와 매너 _ <4> 보이지 않는 약속, 불문율(不文律) - 야구편
프로야구에서는 '벤치 클리어링(Bench Clearing)'이 가끔 일어난다. '벤치 클리어링(Bench Clearing)'은 '모든 선수가 그라운드로 뛰쳐나가 벤치가 깨끗이 비워짐(clearing)'을 의미한다. 2014년 4월 8일 넥센 히어로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다. KIA가 15-4로 앞선 상황이다. KIA 김주찬 선수가 도루를 했다. 그 후 9회초 타석에 들어선 그는 넥센 마무리투수의 투구에 왼팔을 맞았다. 양 팀 선수들은 일제히 그라운드로 뛰쳐나와 뒤엉켰다. 이 장면에서 초등학생 때 봤던 야구가 생각났다.
나의 어린 시절은 야구 덕분에 기쁘고 행복했다. 다섯 살에 아빠의 품에 안겨 야구장에 처음으로 갔었다. 그날 '빙그레 이글스' 어린이회원이 되었다. 회원 선물로 받은 '독수리 야구 점퍼'는 친구들에게 자랑거리였다. 주말이면 가족이 모여 TV로 야구 경기를 보았다. 한 경기에서 '방망이를 든 아저씨'가 공으로 머리를 맞았다. 그 때 많은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너무도 무서웠다.
나는 아빠에게 "공 던진 사람이 잘못했어. 얼른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되는데. 그러면 싸움이 멈출 텐데"라고 말했다. 아빠는 "이건 실제 싸우는 것이 아니고 서로 좋게 얘기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때는 이 말을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대학교 시절 다시 '한화 이글스'에 매달리게 된다. 박진감 넘치는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에 열광한다. 재밌는 응원문화는 나를 더 흥분시킨다. 게다가 복잡한 규칙, 수많은 작전 등 야구의 흐름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아빠의 말이 이해되었다.
야구의 많은 규칙은 흥미요소다. 하지만 선수와 감독, 경기 조절자인 심판조차 규칙이 방대하고 까다로워 예기치 못한 오해가 불거지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나 야구는 이런 규정된 규칙 외에도 몇 가지 불문율이 있다. 야구에서 불문율은 규정 어디에도 없지만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룰이다. 상대 팀과 선수에 대한 존중의 차원에서 지켜야 하는 불문율이다.
넥센과 KIA의 경기에서 '벤치 클리어링'은 '도루 불문율'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의 사례다. '큰 점수차로 이기는 팀은 도루를 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다. 이를 어길 경우 상대팀은 보복에 나선다. 한 코치는 "내가 현역 시절에도 승패가 결정난 경기 후반에 도루를 하면 바로 다음 타자에게 빈볼을 던졌다"고 했다.
전직 야구선수와 인터뷰를 했다. 그에게 김주찬 선수의 도루와 불문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물었다. 그는 "대부분의 선수는 그 행동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불문율을 배운다. 머리로 알고 있고, 몸으로도 알고 있다. 선수의 도루 자체만으로 문제를 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도루가 큰 점수 차로 지고 있는 팀에게 사기 저하를 시키는 행동이라면, 다음 타석에서 빈볼을 던지는 것 또한 불문율이다.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난 것은 선수의 행동이 상대 선수를 자극하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야구 불문율에 대한 그의 생각은 "선수들끼리 암묵적인 룰을 지키는 것은 서로를 위한 일이다. 따라서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했다.
야구는 변수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불문율은 규칙과 달리 절대적일 수 없다. 미국의 경우 두 팀의 점수 차이가 클 때 이기고 있는 팀에서 도루나 번트 등으로 상대팀을 자극하면 안 된다. 그러나 일본은 큰 점수 차가 났을 때 이기고 있는 팀이 대충 경기에 임하면 상대를 무시하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경기가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다. 그러나 이 모든 '보이지 않는 약속'은 상대를 위한 배려에서 시작된 것임은 분명하다. 또한 지나친 경쟁의식으로 인한 비신사적 행위에서 선수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1982년 출범한 한국프로야구는 이제 서른 두 살의 어른이 되었다. 한국야구는 세계 최강 수준이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년 WBC 준우승,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등의 성적을 올렸다. 이에 걸맞은 선수보호도 이뤄져야 한다. 한국야구가 한 단계 더 도약하고 질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선에는 불문율 준수도 포함된다. 그것이 진정한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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