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가는구나-영농일기(18)
농사원년 수확의 기쁨과 계획만큼 수확은 나온다는 경험을 하게 한 고추밭
뙤양볕 아래서 잡초를 뽑은 날이 엊그제 같은 데, 어느덧 고추밭을 정리하고
땅에서 나오는 것들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아직도 새끼 고추들이 나오고 있고, 그 고추잎과 고추들을 따서 반찬하려고
한켠에서는 고추를 따고 있습니다. 내년도에는 고추피클을 상품으로 내보내기 위해
다양한 제조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10월부터 외부일이 많아서 밭에서 같이 하는 일이 적었는데, 오늘은 만사제쳐 놓고
고추밭에서 고추대를 뽑는 일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농의 기쁨이란 바로 같이 일하는
기쁨이라는 것을 ......방제 처방하고 살펴보는 일은 잘 하지만 밭 일하는데는 우리 팀원들보다
못합니다. 온 종일 밭에서 사는 우리 팀원들의 일머리를 따라가지 못하니 고추대 뽑을 때도
'그렇게 하면 고추대가 휘어지잖아요.' 팀원들한테는 야단을 맞습니다.
호박 고구마를 200kg 정도 수확했습니다. 고구마가 어찌나 깊이 박혀 있던지 고구마 캐는
일도 요령이 필요합니다. 호미나 삽, 오구로 퍼내기는 하지만 영락없이 고구마는 도구에
찍혀서 나옵니다. 주위의 흙부터 제거하면서 고구마를 캐는 일, 농일이란 어느 것 하나
쉽지 못합니다. 고구마를 캐느라 팀원들의 팔뚝에는 파스를 붙이고 다녔습니다.
내년에 다시 고구마를 한다면 올해보다 덜 힘들게 지을 겁니다. 정식할 때부터 말이죠.
고추밭을 정리하고 점심을 먹으러 내려가고 있습니다.
깊은 가을 햇살이 그들의 등뒤에 내려앉고 나는 그들의 뒤를 따라 트럭을 몰고 가면서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농장에서 이들은 완연한 농부(색부)입니다. 출퇴근시에 보는 이들은 여느 도시 아낙네
들입니다.
한낮에도 추워서 옷을 두툼하게 입습니다. 배추수확만을 남겨두고 생활동에서 내년도
쓸 자재를 만듭니다. 모아둔 계란껍질을 후라이팬에 볶아서 잘게 빻고 현미식초에 희석
합니다. 내년도에 식물에 옆면시비할 칼슘제로 계란 껍질만한 것이 없지요.
후라이팬이 점심 요리 때에도 쓰이고 식물이 먹을 계란칼슘 만드는데도 쓰입니다.
농사란 계란껍질 하나 버리지 않고 이렇게 자재로 쓰이지요.
영화 1도가 내려간 날, 무우를 뽑았습니다. 땅위로 나온 무우가 살짝 얼기는 하였지만
별 무리가 없었습니다. 내다 팔 무우량은 되지 않고 김장김치의 원료로 들어갑니다.
무우의 크기가 천차만별입니다. 큰 무우들은 박스에 담아서 김장김치 원료로 보관해두었고
이렇게 작은 무우들은 동치미와 총각무우를 담기위해 다듬고 있습니다.
무우청은 따로 모아 말리고 있는 중입니다.
무우 한쪽 먹으니 그 어느 무우보다 달고 맛있었습니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땅과 종자의 맛을 그대로 살려줍니다.
두 고랑의 들깨를 수확해서 털고 있습니다. 들깨를 파종할 때 깻잎으로 팔기에는
두 고랑은 많고 들기름 내기에는 평수가 작아서 약간의 실강이를 했었습니다.
학습의 효과를 위해서 반장의 말대로 두 고랑 들깨를 심었습니다.
한 말 정도의 들깨가 나왔습니다. 들기름을 내어서 우리 팀원들이 먹을 예정입니다.
들깨를 터는 일도 힘겨웁습니다. 켜를 잡는 것도 처음입니다.
생전에 처음 해보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옆에서는 콩을 고르고 있습니다. 초겨울 햇살 아래서 오밀조밀 모여 도란도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옆에만 있어도 즐겁습니다.
김장배추에 대한 신경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부터 수확을 시작했습니다. 아직 결구가 되지 않은 것은 남겨두고
결구가 된 것들 차례로 예약받은 곳으로 배달되고 있습니다.
노랑잎이 다 채워지지는 않았지만 배추맛은 기가 막힙니다.
겉의 진갈색 녹잎도 쌈으로 싸먹을 수 있습니다. 배추의 고소한 맛은 우리 것을
따라 갈 주위의 배추는 없습니다.
다음 주부터 배추포기로 또는 절임배추로 또는 김치로 출하됩니다.
2주동안 우리 팀원들 온종일 고생할 것이 눈이 선합니다.
이번 11월에는 3명의 팀원이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케익을 자르고 있는 팀원은 저랑 동갑내기입니다. 과묵한 성격인데 한번 말을
꺼내면 한국 최고의 개그를 합니다. 농담이 그리 맛깔스럽기 그지없고 배꼽을
쥐어짭니다. 건강이 좋지 않은 터라 하필이면 오늘같은 날에 얼굴이 부어있습니다.
가끔 주의를 기울여 얼굴에 화장한 날에는 예쁘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 농장의 안방처럼 쓰이는 컨테이너에 모여 앉아 고추 다듬다가 소쿠리 엎어놓고
케잌대를 만듭니다.

누구 하나 예쁘지 않은 이들이 없습니다.
색부들의 1년 농사가 이렇게 마무리 되어 가고 있습니다.
작업이 끝난 금요일 생활동에서 옹기종기 모여 삼겹살과 소주 한잔 놓고 뒷풀이도 합니다.
난 땅과 농이 있어 행복하고 이들이 있어 그 행복함은 배가됩니다.
첫댓글 배경음악이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