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서 변화되는 사람
존 웨슬리에게 있어서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교리를 아는 지적인 행위가 아니었다. 신앙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삶 전체가 거룩하게 변화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웨슬리의 신학과 목회적 실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성경을 어떻게 읽었으며, 성경읽기를 어떻게 자신의 영적 생활과 연결시켰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웨슬리에게 성경은 단순한 종교적 문헌이 아니었다. 성경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은총의 통로였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기록을 연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이었다.
웨슬리의 디비니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참된 디비니티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형상을 회복하며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삶이다. 따라서 신령한 성경읽기는 웨슬리의 디비니티를 실제 삶 속에서 경험하게 하는 중요한 은총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Ⅰ. 신령한 성경읽기는 하나님을 아는 거룩한 통로이다
웨슬리에게 성경은 신앙생활의 여러 자료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중심적인 기준이었다. 그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인간이 누구인지, 죄가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웨슬리가 성경을 단순한 지식의 대상으로만 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살아 있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단순히 성경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많이 읽으면서도 하나님을 깊이 알지 못할 수 있다. 성경공부를 많이 하면서도 삶은 변화되지 않을 수 있다. 성경의 문장을 정확하게 해석하면서도 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지 않을 수 있다. 웨슬리에게 이러한 성경읽기는 충분하지 않았다.
신령한 성경읽기란 ‘성경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성경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경 자체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이다. 웨슬리의 성경읽기 역시 그리스도 중심적이었다. 말씀을 읽으면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경험하며, 다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신령한 성경읽기의 방향이다.
그러므로 성경읽기는 머리에서 시작하지만 마음으로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마음에서 시작된 말씀은 반드시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웨슬리의 디비니티가 추구했던 것은 ‘말씀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으로 변화된 사람’이었다.
오늘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도 바로 이것이다.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만을 묻기보다, 성경을 읽은 결과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얼마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성경은 우리의 지식을 증가시키기 위해 주어진 책이기 전에 우리의 영혼을 깨우고 거룩하게 하기 위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신령한 성경읽기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꾸어 놓는다.
Ⅱ. 신령한 성경읽기는 성령과 함께 말씀을 듣는 거룩한 만남이다
웨슬리의 성경읽기를 이해할 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성령의 역사이다. 성경은 문자로 기록되어 있지만,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신령한 성경읽기는 인간의 지성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조명하심이 필요하다.
고린도전서 2장 12절은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한다.
성경을 읽을 때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셔야 한다. 같은 본문을 수십 번 읽었는데도 어느 날 갑자기 그 말씀이 새롭게 다가올 때가 있다. 이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한 구절이 어느 날 우리의 마음을 찌르고, 위로하고, 회개하게 하고, 새로운 결단을 하게 만든다. 이것이 말씀과 성령의 만남이다.
웨슬리에게 성경읽기는 기도와 분리될 수 없었다. 그는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성경을 묵상했다. 말씀은 기도의 내용이 되었고, 기도는 말씀을 삶으로 받아들이는 통로가 되었다.
따라서 신령한 성경읽기에는 일정한 영적 태도가 필요하다.
먼저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주님, 제가 말씀을 판단하지 않고 말씀이 저를 판단하게 하소서.” 이러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성령님, 이 말씀을 통하여 제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읽기 전에 드리는 짧은 기도가 성경읽기의 방향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셋째로 우리는 순종할 준비를 해야 한다. “주님, 오늘 이 말씀을 깨달았다면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 질문이 있어야 한다. 성경을 읽고 감동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 한 걸음 움직여야 한다. 용서해야 한다면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면 사랑하고, 내려놓아야 한다면 내려놓고, 회개해야 한다면 회개해야 한다.
웨슬리에게 신앙은 실천 없는 관념이 아니었다. 말씀은 반드시 삶으로 연결되어야 했다. 그래서 신령한 성경읽기는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말씀을 읽고, 성령으로 깨닫고, 순종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성경은 더 이상 낡은 문서가 아니다. 성경은 오늘도 살아서 우리를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이 된다.
목회자에게도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성경을 읽는 것과 자신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 성경을 읽는 것은 다르다.
목회자는 설교자가 되기 전에 말씀 앞에 서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말씀에 붙들려야 한다.
말씀을 연구하는 목회자보다 말씀 앞에서 우는 목회자가 필요하다. 성경을 설명하는 목회자보다 성경에 순종하는 목회자가 필요하다.
웨슬리의 디비니티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바로 이것이다. 말씀을 전하기 전에 말씀에 의해 변화되어야 한다.
Ⅲ. 신령한 성경읽기는 성화와 사랑의 실천으로 완성된다
웨슬리 신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거룩함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구원을 죄 사함에만 한정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며 사랑 안에서 온전하게 하시는 것까지 구원의 범위에 포함시켰다.
이러한 성화의 과정에서 말씀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말씀은 우리의 죄를 보여준다.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비춘다. 말씀은 우리의 잘못된 욕망을 드러낸다. 말씀은 우리가 어디에서 하나님을 떠났는지를 깨닫게 한다.
그러나 말씀은 죄를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말씀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도한다.
로마서 12장 2절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말씀한다. 성경읽기는 바로 이러한 마음의 갱신을 위한 은총의 통로가 된다.
우리가 말씀을 지속적으로 읽고 묵상할 때 우리의 생각이 변화되고, 생각이 변화되면 우리의 가치관이 변화되며, 가치관이 변화되면 삶의 방향이 변화된다. 결국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웨슬리에게 성화는 개인의 내면적인 변화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신령한 성경읽기는 사랑의 실천으로 완성된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다면 그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내야 한다. 말씀을 통하여 용서를 받았다면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했다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
웨슬리가 강조했던 자비의 일과 경건의 일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가난한 사람을 돌보고 병든 사람을 찾아가며 어려운 이웃을 섬기는 일은 하나의 거룩한 삶 안에서 연결된다. 이것이 웨슬리의 디비니티가 가진 실천적 성격이다.
그러므로 신령한 성경읽기의 열매는 ‘성경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많아지는 것’이다.
성경을 읽었는데 교만해진다면 아직 말씀의 깊은 뜻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성경을 읽었는데 다른 사람을 정죄하게 된다면 말씀의 은혜를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성경을 읽었는데 이웃의 아픔에 무관심하다면 말씀을 삶으로 연결하지 못한 것이다.
진정한 성경읽기는 사람을 사랑하게 만든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들고, 교회를 사랑하게 만들며, 가족을 사랑하게 만들고, 이웃을 사랑하게 만든다. 결국 신령한 성경읽기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형성한다.
맺는말 ― 오늘도 말씀 앞에 무릎을 꿇자
존 웨슬리의 디비니티는 머리로만 배우는 신학이 아니었다. 그것은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은총 안에서 변화되며, 사랑으로 세상을 섬기는 살아 있는 신앙이었다.
그 중심에 성경이 있었다. 웨슬리는 성경을 읽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성경에 의해 읽히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말씀을 분석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말씀 앞에서 우리의 영혼을 내어놓는 것이다. “주님, 이 말씀으로 나를 비추어 주옵소서.” “주님, 이 말씀으로 나의 죄를 깨닫게 하옵소서.” “주님, 이 말씀으로 나를 새롭게 하옵소서.” “주님, 이 말씀대로 살아갈 힘을 주옵소서.”
이러한 기도가 신령한 성경읽기의 시작이다.
오늘 우리의 성경책이 책상 위에만 놓여 있지 않은가? 성경 앱은 열어 놓았지만 마음은 닫혀 있지 않은가? 말씀은 많이 알고 있지만 말씀대로 사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 않은가?
이제 다시 성경 앞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침에 말씀을 펼치고, 잠시 침묵하며 하나님을 기다리자. 한 장을 읽더라도 천천히 읽자. 한 구절이라도 마음에 새기자. 그리고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자. “주님, 오늘 이 말씀대로 살게 하소서.” 이것이 웨슬리가 가르쳐 준 신앙의 길이며, 디비니티의 길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준다. 성령은 그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깨닫게 하신다. 그리고 은혜는 우리를 말씀대로 살아가게 한다.
말씀을 읽는 사람에서 말씀으로 변화되는 사람으로. 성경을 아는 사람에서 성경을 살아내는 사람으로. 하나님에 관하여 말하는 사람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으로. 이것이 존 웨슬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신령한 성경읽기의 길이다.
오늘도 말씀을 펼치자. 그리고 그 말씀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자.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으로 새로워지며, 사랑으로 세상을 섬기는 것. 바로 그곳에서 웨슬리의 디비니티는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경기연회 남양지방회 원천교회
곽일석 목사(iskwa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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