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운동화
조혜경
가을운동회날이었다. 그녀는 이어달리기 최종주자였다. 뚝 뒤떨어져 달려오던 주자에게 배턴을 이어받자, 아이들은 “와와” 흥분하기 시작했다. 딸은 몇 발자국 뛰더니, 고함에 놀란 듯 신발을 벗어 던졌다. 모터가 달린 것처럼 날쌔게 회전하는 딸의 두 다리가 강풍 앞의 바람개비를 연상케 했다. 반 바퀴가 뒤처졌던 주자 사이의 간격이 눈 깜짝할 새에 좁아졌다. 트랙을 따라 타원형으로 앉았던 아이들이 벌떡 일어섰다. 동시에 함성도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딸의 발보다 두 치수 큰 신발을 샀었다. 딸은 이 빨간색 운동화를 덥석 반갑게 두 손으로 받았다. 가슴에 꼭 품고는 바로 이것이라는 듯 발그레 볼을 붉혔다. 당시 또래들에게 인기 있는 흑장미 색이라고 가게 주인이 추천하던 것이었다.
운동화는 색깔이 독특했다. 발이 작아 보이는 색이라 했다. 긴 발이 불편했던 딸은 그 말에 다른 것은 살펴볼 마음이 없었나 보다. 앙증맞은 운동화는 끈이 없고 찍찍이로 되어 있어, 신고 벗기가 편했다. 또 발을 살짝 조여주기도 해서, 딸의 긴 발에 잘 어울리는 듯하였다. 135 치수를 사 들고 오면서 딸을 잡은 어미의 손이 떨렸다. 이 얄팍한 어미의 마음을 모르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불안한 귀갓길을 재촉하였다.
“따님의 발 치수가 몇이지요?” 어미는 가게 주인의 물음에 바로 대답을 못 하고 머뭇거렸다. ‘125인데 몇이라 할까?’ 사실 10mm는, 즉 1cm는 네다섯 달이면 자랄 것이다. 석 달 후 학교 가을 운동회가 있지만, 그때는 지금의 낡은 운동화를 잠깐 신으면 될 거로 생각했다. 조금 작았지만. 달리기하는 시간은 몇 초밖에 안 되었다. 그 순간만 잘 넘기면 된다고 스스로 위안했다.
딸은 학급 대표 이어달리기 선수였다. 학교의 같은 학년 내에서도 딸의 단거리 달리기 기록을 따를 아이가 없었다. 이어달리기 때마다 상대 팀과 반 바퀴 이상 거리를 떨쳐내었다. 마른 체형의 날씬한 다리를 가진 딸은 단거리 달리기를 좋아했다. 학교에서는 고학년 선배들과 선생님들까지, 딸을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날렵한 그녀의 발 치수는 신발 가게에만 가면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가게에서는 맞는 크기를 신어보고, 포장할 때는 딸 몰래 두 치수 큰 것으로 바꿨다. 그리고 요리조리 핑계를 대며, 한두 달 더 새 신발의 개시 시점을 미루었다. 사실, 새 신발을 사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앞서 신던 신발이 작아졌을 때였다. 더는 낡은 신발을 신지 못하게 되었을 때, 딸은 펄떡이는 새 신발을 신고 달리기 연습을 했다. 새 신발은 발가락이 헛도는 것 같다고 어색해 했다. 친구가 신발을 빌려주었다는 말로 어미의 속내를 뜨끔하게 하기도 했다. 두 치수나 큰 신발은 찍찍이를 발등 끝까지 조여도 심하게 터덜거렸다. 어미는 딸의 눈치를 살피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입을 삐쭉거리는 그녀를 외면하는 것으로 이 민망한 순간을 모면했다. 어미의 미안한 낯이 붉어졌다.
숨을 죽이고 있던 어미는 고개를 들었다. 청군의 응원석뿐 아니라, 모든 아이가 일어나 팔짝팔짝 뛰었다. 온 학교가 흥분으로 풀썩거렸다. 아이들을 돌보던 선생님들도 덩달아 계주를 응원하느라 얼굴이 상기되었다. 순간 딸은 결승 테이프를 가슴으로 밀어붙였다. 응원하던 아이들의 손에 쥐여 있던 모자와 응원 도구들이 하늘로 치솟았다.
그 날 운동장에 있던 사람들의 열광된 분위기와는 달리 어미의 심장은 유난히 쿵쿵 뛰었다. 그리고 곧 후회로 아려왔다. 아이들이 딸을 헹가래 쳤다. 공중으로 몸이 붕 뜬 짧은 순간에도 그녀는 딸의 발만을 찾았다. 기쁨의 함성 속에 딸의 모습은 묻혀서, 이미 보이지 않았다. 이어달리기는 그해의 가을 운동회에서도 그렇게 절정을 장식했다.
잠시 후 시상식이 이어졌다. 딸은 시상식에 참석하는 것도 잊고 발을 절뚝거리면서 운동장 반대편을 달려갔다. 마침 한 아이가 신발을 주워다 주지 않았더라면 딸이 운동장을 달려간 이유가 모두에게 알려졌을지도 모른다. 뒤꿈치를 꺾은 빨간 운동화를 신고 시상대에 올랐다. 모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역전의 환희를 맘껏 즐기는 아이들과 달리 모처럼 직장에서 조퇴하고 운동회에 참석했던 어미는 승리의 고통에 가쁜 숨을 쉬었다. 오랫동안 잊지 못할 ‘멍’ 하나를 품은 날이었다.
괜스레 올려다본 하늘은 유난히 파랬다. 눈이 시려서인지 새털구름이 금방 하얗게 흩어졌다.
그날 밤, 딸은 잠이 쉬 들지 못하고 몹시 뒤척였다. 제 발보다 큰 신발을 벗어 던지고 달리기를 하느라 발바닥 여기저기에 상처가 난 탓이었다. 어미는 떨리는 손으로 잠든 딸의 발을 닦아 주었다. 군데군데 핏덩어리 맺힌 발의 상처가 그날의 기억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이후 딸의 발바닥 상처는 점점 아물어갔지만, 어미의 가슴 속 멍은 좀처럼 아물지 않았다. 몇 달 후에는 딸의 운동화도 꼭 맞는 제 주인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어미의 마음 흉터는 점점 더 선명해지고 뾰족해졌다.
신발 밑창처럼 억척스러운 엄마의 삶에 대한 억지가 딸에게는 무엇으로 남아있을까? 가난을 이겨내기 위한 아픈 기억만이 딸의 일생을 따라다니는 것은 아닐까? 닳아진 신발을 잘라서 슬리퍼로 신고, 구멍 난 티셔츠로 잠옷을 대신했던 것만을 딸이 알아주길 바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결혼 후에 딸은 가끔 엄마의 예쁜 운동화나 등산화를 사 들고 친정에 왔다. 그러나 옛날 이어달리기 선수였던 학창 시절의 빨간 운동화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헐렁한 신발을 벗어 던지고 달리기를 해야 했던 어린 시절을 잊었을까. 아니면, 딸도 어른이 되어보니 어미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던 것일까.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어미의 궁색함이 드러날까 봐 마음만 졸일 뿐이었다.
어찌 되었건, 딸이 벗어 던진 신발에 대한 기억으로 평생을 헤매지 말았으면 좋겠다. 다친 기억의 통증에서 헤어났으면 한다. 언젠가 엄마는 딸과 함께 발 치수 마음 치수 꼭 맞는 신발을 신고 여행을 나서고 싶다. 스코틀랜드 초원길을 함께 걷고 싶다. 그때 살짝 물어봐야지.
“너, 어릴 때 신었던 빨간색 운동화 기억나니?”
첫댓글 참, 3, 4년을 신으라고 한치도도 아닌 두 세 인치를 크게 사야했던 우리네 가난한 시절들, 나이들어보니 이렇게 살아낼 수 있게 한 가난나이 고맙기도 합니다.
쯧, 난 운동화를 신어보지도 못하고 검정고무신만을 신고 자랐는데~
재밌는 추억의 일화가 재밌고 공감이 갑니다. 감사합니다.
지금은 꼭 맞는 것을 사 주려는 아들과 히핒스타일을 좋아하는 '두 치수 큰 것을 좋아하는 손자'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ㅎ ㅎ
예쁜 운동화인데 어린 딸과 얽힌 사연이 서글픕니다.
서글쁨이 풀어지는 날이 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