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東民傳庚辰
상동민전 경진년 1820, 순조 20. 洪直弼(홍직필)
上東民不知何許人。亦不詳姓氏。상동민불지하허인。역불상성씨。
상동민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거니와 성씨조차 분명치 않다.
居寧越府之上東面。거녕월부지상동면。다만 영월부 상동면에 살았으므로
故以上東民名 或稱勸農 云。고이상동민명 혹칭권농 운。
‘상동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혹은 권농勸農이라고 칭한다]
端廟之巽位于越也。烈焰燔天。단묘지손위우월야。렬염번천。
단종께서 영월에서 왕위를 사양하셨을 때, 맹렬한 화염이 하늘을 태울 듯한 기세로 타올랐다.
人皆惴惴。若及於禍。인개췌췌。약급어화。
사람들은 모두 벌벌 떨면서 마치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처럼 생각했다.
或爲上王心惻。而掉袂不敢近。혹위상왕심측。이도몌불감근。
혹자는 상왕의 처지를 슬퍼하기도 했지만 소매를 저으며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獨有上東民一人。迎勞于淸泠浦。독유상동민일인。영로우청령포。
이때 상동민 한 사람만이 청령포에서 단종을 영접하고 위로했으니,
常具肴蔬時果進之。상구효소시과진지。
항상 고기와 채소, 제철 과일을 준비하여 진헌하였다.
自浦而移御于賓館。자포이이어우빈관。청령포에서 객관으로 거처를 옮기시자,
其人輒走謁于梅竹樓下。기인첩주알우매죽루하。그는 곧장 달려가 매죽루 아래서 단종을 알현하였다.
樓在賓館之東。卽今之子規樓也。루재빈관지동。즉금지자규루야。
매죽루는 객관 동쪽에 있었는데 바로 지금의 자규루다.
每趁市日至。莫之或闕。매진시일지。막지혹궐。그는 저자에 가는 날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죽루에 이르렀다.
一日又向邑。일일우향읍。하루는 여느 때처럼 고을로 향하고 있었는데
到炭釜谷。도탄부곡。탄부곡에 이르렀을 때
或云遭上王于錦江上。혹운조상왕우금강상。
혹자의 말에 의하면 금강 가에서 상왕을 만났기 때문에
故名其地曰聖遭浦。고명기지왈성조포。그곳을 성조포聖遭浦 라 명명했다고 한다.
端廟乘白馬騰蹋而臨。단묘승백마등답이림。단종께서 백마를 타고 치달리듯 올라 오셨다.
其人驚怪。伏謁道傍。기인경괴。복알도방。깜짝 놀란 그는 괴이하게 여기며 길가에 엎드린 채
問官家將向何處。而取路此地乎。문관가장향하처。이취로차지호。
“전하께서 장차 어디로 행차하시기에 이쪽 길로 가십니까?” 라 물었다.
上顧謂曰予向太白山而去。상고위왈여향태백산이거。
단종께서는 그를 돌아보며 “나는 태백산으로 가는 길이다.” 라 대답하셨다.
其人解苞而獻山果。기인해포이헌산과。그가 보따리를 풀어 산과일을 바치자,
上曰今也則不可食。상왈금야칙불가식。“지금은 먹을 수 없구나.”라 말씀 하셨다.
其人拜辭。기인배사。단종께 공손히 하직 인사를 올린 뒤
到德浦始聞上昇遐。도덕포시문상승하。 덕포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단종께서 승하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失聲號痛。如不欲生。실성호통。여불욕생。
그는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듯 목이 메도록 애끓게 통곡하였다.
過十數里。口不絶哭。과십수리。구불절곡。10여 리를 걷는 동안 입에서 곡하는 소리가 끊기지 않았는데
聲氣俱竭而死。성기구갈이사。 목소리와 기운이 모두 소진되자 곧 숨을 거두었다.
卽丁丑十月二十四日也。즉정축십월이십사일야。이날이 바로 정축년(丁丑年 1457, 세조 3) 10월 24일이다.
嗚呼。오호。非斯人之忠。비사인지충。아아! 이 사람의 충정이 아니라면
何能致白日之顯靈乎。하능치백일지현령호。어찌 백주대낮에 단종의 신령께서 그 모습을 드러냈겠는가!
忠者一其心而靡他。충자일기심이미타。충정이라는 것은 그 마음을 전일하게 하여 다른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다.
故乃克感通如此。고내극감통여차。그러므로 이처럼 신령과 감통할 수 있었다.
且不期死事而死。不要殉國而殉。차불기사사이사。불요순국이순。
게다가 임금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바라거나 기약하지도 않았는데,
臣主同日幷命。亦可異焉。신주동일병명。역가이언。
임금과 신하가 같은 날 운명을 함께했으니 참으로 기인한 일이다.
古所云難至而節見者。고소운난지이절견자。옛 말에 환난을 맞닥뜨려야 그 절의를 볼 수 있다고 했는데,
豈若人之謂乎。기약인지위호。어찌 이와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겠는가!
天德山人曰 천덕산인왈 천덕산인天德山人은 말 하노라.
君臣之義。군신지의。군신간의 의리는
天性也。不以親疎貴賤而有所加損。천성야。불이친소귀천이유소가손。
타고난 성품으로 관계의 친소, 신분의 귀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是以野人快炙背美芹子。시이야인쾌자배미근자。
이 때문에 시골 사람이 등에 내리쬐는 햇볕을 상쾌하게 여기고 미나리나물 맛을 아름답게 여기며
而獻之於其君。이헌지어기군。이것을 임금에게 바쳤던 것이다.
故曰雖在畎畒。고왈수재견묘。그러므로 밭도랑 사이에 있더라도
猶不忘君。유불망군。임금을 잊지 않는 것이
惓惓之義也。권권지의야。간절하고 정성스런 의리라고 말한 것이다.
從古殉節之士。종고순절지사。옛날부터 절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비는
不出於世胄華閥。불출어세주화벌。경화세족과 벌열가문에서 나오지 않았다.
而必在於草野疏逖不識何狀之人。이필재어초야소적불식하상지인。
대부분 어떤 자인지도 알 수 없는, 후미지고 궁벽한 시골에 사는 사람이었다.
人性之善。豈係于世類哉。인성지선。기계우세류재。사람의 선한 성품이 가문이나 출신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皇朝壬午之役。황조임오지역。명나라에 임오변란이 일어났을 때
樵夫耘叟葛衣翁補鍋匠之屬。초부운수갈의옹보과장지속。
나무꾼과 농부, 베옷 입은 노인, 솥 땜질 기술자 등의 무리가
或死或生。各自靖獻。혹사혹생。각자정헌。생사를 막론하고 저마다 충성을 바침으로써
與方遜志,鐵鉉,景淸諸公。여방손지,철현,경청제공。방손지方遜志, 철현鐵鉉, ,경청景淸 등과
同歸一揆。而又加難矣。동귀일규。이우가난의。동일한 도리로 회귀했으니 이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今上東民者。卽絶峽之一蚩氓耳。금상동민자。즉절협지일치맹이。
상동민이라는 자는 궁벽한 골짜기에 사는 어리석은 백성일 뿐이다.
天門萬里。莫識君面。천문만리。막식군면。대궐이 만 리나 떨어져 있으므로 임금의 얼굴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及翠華東廵。급취화동순。하지만 단종께서 동쪽으로 거동하셨을 때,
始知爲吾君。시지위오군。바로 그분이 우리 임금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고,
油然生愛戴之心。유연생애대지심。
상동민의 가슴속에는 우리 임금을 떠받들며 존승해야 한다는 마음이 거세게 일었다.
排日薦獻。배일천헌。하루도 빠짐없이 음식을 바치며
自殫純誠。자탄순성。순수한 정성을 다한 것도
斯已奇矣。사이기의。이미 예사롭지 않은 일이거늘,
而及聞變故。이급문변고。승하 소식을 듣자마자
痛心號絶。통심호절。致命而後已。치명이후이。
목메어 통곡하며 목숨이 끊기지 직전까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忠烈秋霜。精貫天日。충렬추상。정관천일。
그 충렬은 가을 서릿발처럼 매섭고 그 정령은 하늘의 태양까지 꿰뚫을 만하니,
可以激淸風而勵薄俗。가이격청풍이려박속。맑은 풍조를 진작시키고 경박한 세속을 독려하기에 충분하다.
於不休哉。어불휴재。아! 아름답지 않은가!
凡明熊魚之取舍者。身歿而名著。범명웅어지취사자。신몰이명저。
무릇 목숨을 버리며 의리를 취한 자는 죽은 뒤에 이름이 드러나는 법인데
不朽于千劫。불후우천겁。그 이름은 천추토록 사라지지 않는다.
以故烈士殉名而不悔。이고렬사순명이불회。
이 때문에 열사는 이름을 위해 생명을 버리면서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斯人也。幷與名姓而無傳。사인야。병여명성이무전。이 사람의 존재와 행적은 그 성명姓名과 함께 인멸되어,
磨滅而不記。마멸이불기。 전하는 기록이 아무것도 없다.
惜哉。석재。어찌 애석하지 않겠는가!
然其死也。卽天理所自然。연기사야。즉천리소자연。그러나 그의 죽음은 천리상 자연스러운 것이지,
非有爲而爲者。비유위이위자。특별한 의도나 목적 때문에 죽은 것은 아니다.
豈欲舍生立命。기욕사생립명。어찌 삶을 버려 천명을 받듦으로써
以施于後世哉。이시우후세재。 후세에 명성을 전하려 했겠는가!
吾事自了。오사자료。내가 해야 할 일이 절로 분명하다면,
何與人之知不知乎。하여인지지불지호。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무슨 상관있겠는가!
彼以名湮滅不稱爲悲者。피이명인멸불칭위비자。
세상에서 (상동민처럼 의리를 지키고도) 이름이 역사 속에 묻혀 사라져 후세에 일컬어지지 못하는 처지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이들은
詎非淺量哉。거비천량재。어찌 (참된 가치를 모르는) 얕은 소견이 아니겠는가!
與明朝之樵夫耘叟。曠世一轍。여명조지초부운수。광세일철。그의 충정은 명나라의 나무꾼, 농부와 매한가지이고
其同歸於泯然無跡者。기동귀어민연무적자。그들과 똑같이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았다.
彌見其爲眞忠也。미견기위진충야。이게 그가 품었던 진실한 충정을 더욱 또렷이 볼 수 있다.
余遊莊陵。여유장릉。나는 장릉을 참배할 때
有老宿年踰九耋者。유로숙년유구질자。아흔 살이 넘은 노승을 만났다.
爲說當日事。위설당일사。그는 나에게 당시 일을 말해주었는데
欷歔煩酲。如不能自勝。희허번정。여불능자승。 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듯이 흐느끼며 번뇌하였다.
(노인은 그 옛날 상동민의 이야기를 꺼내며 목이 메어 눈물을 흘렸고, 가슴속에 맺힌 슬픔과 원통함이 다시 가득 차오르는지 마치 자기 자신조차 그 복받치는 감정을 감당하지 못하는 듯하였다.)
而輒稱端廟謂吾主上。이첩칭단묘위오주상。그리고는 갑자기 단종을 ‘우리 주상[吾主上]’ 이라 칭하였다.
是則未曾納觀風軒一拜者也。시칙미증납관풍헌일배자야。
이 사람은 단 한 번도 관풍헌에 들어가 참배한 적이 없는 자다.
然而猶如此。연이유여차。그런데도 오히려 이와 같았으니
始知端廟至德之沁入人心者。시지단묘지덕지심입인심자。
단종의 지극한 덕이 사람의 마음속에 아주 깊숙이 스며들었음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若斯其深且遠。약사기심차원。이와 같이 그 (슬픔과 충정의 울림이) 깊고도 멀리 가도다!
(의역) "이름 없는 한 백성이 보여준 의리의 자취가 백성들의 가슴속에 이토록 깊이 아로새겨져 있고, 수백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후세에까지 참으로 멀리 전해지고 있구나!“
是孰爲而爲之哉。시숙위이위지재。이것을 과연 누가 시켜서 했으며, 누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단 말인가!
彼賣國賭利。피매국도리。나라를 팔아먹고 이끗을 쫓으며
陷厥辟於淫禍。함궐벽어음화。제 임금을 커다란 재앙에 빠뜨린
然後爲快者。연후위쾌자。연후에야 후련하게 생각하는 저 작자들을
視此兩人何如哉。시차량인하여재。 이 두 사람과 비교해보면 어떠한가!
(이 두 부류의 인간들을 비교해 보면 과연 어떠한가!)
한국문집총간 > 매산집 > 梅山先生文集卷之五十一 > 傳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2
각주
옛 말에 환난을 ~그 절의를 ~했는데 : 『사기』권43,<조세가 趙世家>권13에 “ 또한 바른 신하는 환난이 이르면 그 절의가 드러나고, 충성스런 신하는 우환이 이르면 그 행실이 분명히 나타난다” 가 보인다.
천덕산인(天德山人) : 홍직필 洪直弼의 자호(自號)다. 『매산집』권53, <연보年譜>에 정묘년(丁卯年 1807, 순조 7) 선생의 나이 32세다....8월, 박부인(朴夫人)의 묘소를 양성(陽城) 천덕산(天德山)으로 천장했다. 이때부터 스스로를 ‘천덕산인’이라 일컬었다.
시골사람이 등에 내리쬐는 ~임금에게 바쳤던 것이다. : 통상 겸양의 표현으로 쓰이는데 남에게 주는 하찮은 물건이나 건의, 정성 등을 비유한다.
철현(鐵鉉, 1366~1402) : 연왕(燕王)이 반란을 일으키자 성용(盛庸)과 함께 제남을 수비하면서 누차에 걸쳐 바란군을 무찌르고 병부상서에 올랐는데, 뒤에 반란군에 잡혀 굴복하지 않다가 처형되었다.
경청(景淸) : 고려출신의 명나라 문신, 본관은 태인(泰仁)이고 전라도 부안(扶安)에서 태어났다. 1369년(공민왕 18) 황과(皇科)에 급제한 뒤 명나라 건문제(建文帝)를 섬겨 좌첨도어사(左僉都御使)에 올랐으며 1402년(태종 2) 연왕(燕王)이 무력으로 건문제를 몰아내고 황위를 찬탈하자 복수를 꾀하며 비수를 품고 시측했다가 거사 직전에 발각되어 발치박피(拔齒剝皮)의 악형을 받았다.
임오壬午 변란 : 1402년 명나라 연왕(燕王. 훗날의 영낙제 永樂帝)이 건문제(建文帝)로부터 황위(皇位)를 찬탈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