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내용 |
서울 무교동(武橋洞) 사람이다.이화학당(梨花學堂)을 졸업하였으며, 1919년 3·1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동년 4월에 최숙자(崔淑子) 백성현(白性玄) 경하순(慶河順) 김희옥(金熙玉) 등과 함께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大朝鮮獨立愛國婦人會)를 조직하고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5월에 애국부인회의 특사로 상해에 파견되었으며, 그곳에서 동년 9월에 혈성단(血誠團)과 통합하여 애국부인회가 조직되자 이화숙(李華淑)을 회장에 추대하고 그녀는 부회장이 되었다. 1920년 2월말에는 다시 그녀가 회장에 선출되어 계속 애국부인회를 이끌고 임시 정부를 지원하였다.1920년 11월에는 상해 대한인거류민단(大韓人居留民團)이 조직되자 그녀는 최창식(崔昌植)과 같이 서구(西區)의원에 뽑혀 교민 복지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였다.1922년에 모스크바에서 극동인민대표회의가 열리게 되자 그녀는 권애라와 같이 한국 대표로서 이 회의에 참석하여 각국 대표에게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이어 임시정부 요인인 최창식과 결혼하여 임정의 뒷바라지를 계속하였으며, 1930년대에는 고려공산당의 여자청년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고 한다.정부에서는 그녀의 공훈을 인정하여 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註·판결문(1920. 6. 29 대구지방법원)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65면 사상정세시찰보고집 245면 사상정세시찰보고집(기2) 450면 조선민족운동연감 27 44·94면 고등경찰요사 192 194면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62·399면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33면 ·무장독립운동비사 35면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43 75면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420·439·484면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223면 기려수필 245 246면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25·26·27·152·212·889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738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88·374·451·478 479 480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773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853·856 882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48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06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