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저
-프레데릭 포사이스 소설/랜덤하우스 2007년판
전쟁에 관한 사유와 기억 방식
광활한 시공간을 활용한 방대한 스케일과 그에 반해 치밀하게 엮어진 서사구조, 독자에게 강하게 어필되는 전직 기자 겸 저널리스트의 개성 있는 간결한 문체, 여러 다양한 경험이 소설에 녹아들면서 어쩌면 질릴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 관한 정밀한 지식들, 한 편의 빠른 전개를 펼치는 영화 같은 소설......등등. 이 작품과 작가와 관련해서 전 세계적으로 흘러나오는 찬사들은 끝이 없을 정도다. 이전에 낸 대표적 베스트셀러 <자칼의 날>과 함께 그의 작품들은 전 세계적으로 7천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고 한다.
전쟁에 얽힌 인간들의 더러운 탐욕과 부패의 실상을 픽션(fiction)인 이 작품에서 간접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다. 대의명분 없이 치르는 전쟁은 없다. 하지만 전장에서 멀리 벗어나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쟁의 실상을 알기란 어렵다. 각종 뉴스 매체에서 단발성으로 알려주는 기사에 의존할 정도인데 그나마 일상에 바쁜 사람들은 관심에서 멀어지기도 한다. 평화의 참다운 의미와 그 소중함을 일깨우고 폭력적 전쟁을 멈추게 하는 의지를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오늘날 지구촌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상과 실상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할 필요는 다분히 있어 보인다.
역사와 소설의 다른 점은 이런 부분에서 그 역할이나 효과가 극명히 갈릴 수 있다. 역사는 사실과 자료(유물)에 입각해 인간사의 외적인 부분을 객관적으로 다룬다. 그러다보니 역사 안에는 정작 그 주체인 인간적 감성과 생명활동 등이 유기적으로 파악되지 못하고 망각된다. 대신, 그 역사는 전쟁사, 철학(이데올로기), 정치, 문화, 경제, 문화, 필요하면 심리학, 의료학, 과학, 식품학 등 여러 학문으로 세분화되어 조사되고 연구되어진다. 인간 개개인은 역사에서 소외될 여지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여기서 문학도구로서 소설이 관여하여 그 주체인 사람들에게 역사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폭을 넓혀주게 된다. 특히 인간의 문화와 삶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전쟁이 발생하여 수많은 무고한 양민이 죽음에 이르게 되거나 살아온 터전을 비자발적으로 잃게 되고, 때로는 떠나야 하는 참혹한 양상을 띠게 될 때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뿐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재앙수준까지 치닫게 되는데, 미래를 위한 교훈적인 측면에서 사실적이고도 학문적인 역사뿐만 아니라 인간의 양심과 감성에 입각한 소설문학이 참여할 때 그 영향력은 더욱 지대해질 수 있다.
비록 이 책에서 다루는 전쟁이 미국의 대 베트남전과 아프가니스탄전, 보스니아 내전 등 현대사의 길목에서 벌어진 국지적 전쟁의 일부이긴 하지만, 그 전쟁들의 속속들이 내막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특이한 면모를 소설이라는 간접적인 경험들을 통해서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훌륭한 전쟁 소설인 ‘무기여 잘 있거라’와 ‘카탈로니아의 찬가’ 등과는 또 다른 결의 감상을 가질 수 있다.
추리 소설의 형태를 띠다보니 독자를 향한 ‘흥미와 스릴’ 같은 자극적인 면이 우선하게 되지만, 작가의 오랜 시간에 걸친 자료 조사와 치밀한 구성 덕택에 전쟁의 특수한 이면 안팎을 자세하고도 여과 없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고전적 문학 작품들과 비교해서 또 다른 차별화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전쟁과 관련한 수많은 국가 간에 벌어지는 다양한 정보부들의 첩보전과 추격전, 그리고 세계사에서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이나 응징 등에서 기존의 역사가 주지 못한 명징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책을 읽는 독자들의 전쟁에 관한 사유와 기억 방식일 것이다. 기존의 자료에서 접할 수 없는 전쟁에 관한 기록 혹은 픽션에서, 소설이 주는 흥미와 스릴에 입각한 쾌감을 즐기되 전쟁 본연에 대한 사유나 기억만큼은 또 다른 측면에서 해보는 기회로서 온전히 독자의 몫이라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2024.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