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7일은, 1992년 빈곤 및 기아 퇴치와 인권 신장을 위해 국제연합인 유엔이 정한 세계 빈곤 퇴치의 날이다.
이 날의 시작은 “조셉 레신스키” 신부의 주도 아래, 빈곤으로 인한 희생자 10만 명이 모여 개막행사를 연 것이 시작이 되었다.
경제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우리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난 10.17일 종로 보신각 일원에서. 장애인, 노숙인, 노점상, 전세 사기 피해자 등 400여 명으로 이루어진 시위대의 빈곤퇴치를 요구하는 도심 거리 투쟁이 있었다.
시위대는 “부자 30여 명이 8,000여 채의 집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온전한 나라인가. 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이어서도, ‘너 게으르네. 너 능력 없네. 너 못 배웠네. 너 여자네. 너 나랑 다르네.’ 이게 바로 낙인이자 차별이고 격리이자 감금”이라며 “가난하단 이유로, 못 배웠단 이유로, 장애가 있단 이유로 우리를 공격하는 권력자와 자본가의 모습을 보자. 우리는 함께 바꿀 수 있다. 그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 같이 싸우자”며 목청 높이 외쳤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를 가르는 일이 이상할 수도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제각각 능력을 발휘하여 살아가는데 모두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 외려 생경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공산주의 사회의 공산, 공배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를 무시하자는 게 아니라 공정한 룰에 의한 경쟁 사회로 가자는 것일 뿐이다.
100미터 경주를 하는데, 이미 50미터 앞에서 출발하면서 공정한 사회라고 우겨대는 속 보이는 짓만큼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갖은 부패한 짓거리로 부를 축적하여 목에 힘주고 살면서도 어려운 이웃에게는 소 닭 보듯 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부를 뚝 잘라서 달라는 것이 아니라 부정하게 끌어 모았던 돈의 일부를, 부자들로 인해서 상대적 피해를 보고 있는 빈한한 이들을 위해서 조금씩 양보하자는 말이다. 최소한, 그 정도는 하면서 부를 자랑하던지, 뻐기던지 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뿐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래야 같은 민족이고 동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혹시라도, 가난한 자들과는 동족이라고 여기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빈곤퇴치를 외치는 시위대의 함성이 왠지모르게 공허하게만 들리는 것은 비단 필자뿐일까?
부디, 외출한 양심을 회복하자는 지적을 결어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