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만제 정치건(1825~1875)
-번역: 시인, 수필가 정용하
*출처:회최고(문집)
예로부터 명산과 경치 좋은 사찰이 있으면 그곳에는 신선이 베풀고자 하는 것이 있기에 체험하고 구경하여 왔는터라 어찌 빼어난 붓 대롱을 휴대한 채 향기로운 산모임을 쉽게 거느리며 차지하지 아니 하겠는가. 언덕(山)을 공경하며 자연의 뜻을 계승하는 유람은 모두의 귀에 익숙할 것이다. 유구한 팔공산 즉 우리네 동방의 명승이며 문장을 하는 선비의 수레와 마음을 비운 청허객(淸虛客)이 지팡이를 일상으로 옮겨 찾아 나서는 것을 어렵게 승낙할 것이다.
어둠이 짙어지면 생각을 정리한 후 한가을에 나는 자발적으로 달성(대구)으로 가는 길에 거동하여 이를 마땅히 겪으면서 인연이 분주하여 객지에 묵지 못하고 가랑비를 희롱하다가 번개가 지나가기에 공허한 누각의 달문(月門)을 열고 들어가 물가 정자와 바람 누각으로부터 시(詩)를 빌려 넉넉한 짐을 짊어지니 어렵지 않게 이십 칠(금강경 제27, 무단무멸분)을 담았으나 여래(석가)께서는 여전히 속세에만 골몰하셨다.
절구질(학문 연마)하는 꿈에 영혼이 헛되이 고생만 하던 황룡의 해인 초여름 이십 이일 날 석동마을(영천시 녹전2동)에 투숙하면서 후년에 여러 벗들과 더불어 서쪽(영천에서 팔공산은 서쪽임)을 유람하기로 토의하였던지라 마침내 옛 소매들이 이를 결행을 하게 되었는데 밤이 되면 큰 사찰은 거부하기에 오십 리가량 떨어진 그곳(은해사) 보화각에 올라가 법경(法經)을 두루 살펴보니 그것의 축(기둥)이 되는 모두가 지극히 오묘하고 또한 무한한 경지인지라 한 방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맑은 취지를 깨달아 도달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오랜 세월을 이어온 근본적인 법문의 정교한 도리를 두려운 마음으로 열람하였는데 불이 타고 있다는 설법 그 밑바탕에는 불이 꺼진 적막함의 극치인 것이라 우리네 유학에서는 귀를 가려야 할 처지였다. 제반 법문에 대해 그것을 학습하여 보니 매우 완고하여 마침내 여러 나그네들이 무산(無山)에 정통한 자가 쓴 본보기(모범이 되는 법경)와 그것이 남긴 자취를 매우 장황하고 우회하면서 맑게 닦아보았다. 태고의 고요함에 대하여 사유해 보니 신비스러운 꽃과 색다른 초목은 맑은 여울에서 기이한데, 바위 또한 지키고 이를 보전하여 아무런 탈이 없으니 스물네 번의 경쇠가 후에 울려지도다. 원초적인 설법에 있어 두 가지 마음의 신발은 ‘넘어지고(고통이 수반되는 끈질긴 탐구), 절하는 것(겸손)’을 실천한 까닭에 마침내 산속의 풍속(불교의 풍속)이 오래도록 규율에 빼어났다는 것을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얀 연꽃의 깨달음에 도달하고자 잠시 차(茶)를 마시면서 휴식하였다가 낮 12시30분(丁時)경에 다시 백련(白蓮)의 창성함에 이르고자 하였으나 정신 또한 피곤했고 기운이 지쳐서 한참 동안 중단하였다. 또다시 직지심경의 진리에 몰두하면서 뜬구름을 좇으니 검박(儉朴:검소하고 소박함)함이 곳곳에 있었다. 늙은 몸이라 불편했고, 점심 식사 시간을 모두 흘려보냈기에 서로가 화합하고 정감(情感)을 함께함으로 인하여 지팡이(노인들)를 핍박하며 매우 바쁘게 비단 같은 물이 흐르는 강가에 있는 점포에 도착하여 계명주 술잔을 각각 돌리고 시(詩)를 읊으며 보냈다. 밤에는 신촌마을 민가에서 숙박했으며 아침 식사 후 다시 석동마을에 도착하였으나 비가 지체됨으로 인하여 수일 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성대한 술잔치가 벌어져 시가(詩歌)와 그림을 베풀며 만족하니 종전의 시에 대한 부채인 이십칠(금강경)을 짊어진 짐에 대한 근심은 이미 잊을 수 있었으며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시는 짐을 떠맡지는 않았던 것이다.
조용히 편집하며 굳건하게 새겨보니 이 몸은 신선이 사는 경치에 베풀어준 것이 없고 오히려 향기로운 모임에서 탐한 것이 있어, 도둑질(자연에 대해 베풂은 주지 못하고 오직 시를 지음에 자연을 사용만 했다는 뜻임)을 즐기면서 자연의 뜻을 계승코자 붓대를 거느린 사람이었구나. 이와 관련하여 유람한 사람들은 정유전 공서, 정유승 극옹, 정치건 대중, 손택호 성여, 정치정 정숙, 정희구 구옥, 정유택 여안 등인데 그 운(韻)을 노래한 사람은 성여 손택호이며, 기록한 사람은 대중 정치건이다.
*계명주: 찐 차좁쌀로 담가서 그 다음날 닭이 우는 새벽 무렵에 먹을 수 있게 빚은 술.
*말미에서 "대중(大中)"은 저자 만제 정치건 선조의 자(字)임.
*제목은 “팔공산유람기”이나 주된 내용은 7명의 선비들이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은해사 사찰에서 불교 경전을 탐구했던
과정의 어려움을 서술하고 있음.
《서쪽에 있는 큰 산을 여유롭게 읊다》
-일찍이 은해사를 왕래한 까닭 등등 -
팔공산 책 풍경은 우리가 사는
나라의 동쪽에 있는데
공경스런 칼날 봉, 적막한 허공에는
학설이 가로놓여 있어
쉬는 날 지팡이를 앞세워 구름
그림자 속을 찾아 나서니
하늘 잇닿은 누각은 물소리
한가운데 서 있고
사방세계는 맑게 갠 밤의
푸른 등불이었던가
일만 골짜기가 어둠에 가려
늦바람이 버드나무에 머물고
도를 거부하는 물가의 대문은
이미 땔나무를 계산하는데
세상과 동떨어진 구역의 산 풍경은
옛날과 지금이 같구나.
*작자의 주거지 영천에서 팔공산은 서쪽에 위치함으로 제목에서 ‘서악’이라 명명하였고
1연에서는 우리나라 전체적인 방위로 볼 때는 팔공산이 동쪽에 위치한다는 뜻임.
*4연에서 누각은 사찰을 지칭.
*7연의 의미는 사찰의 나무로 된 대문이 오래되어 낡았음을 묘사.
《석동야화》
진달래꽃이 떨어져 다하니
유혹하는 봄은 꿈이런가
멀리 버들꾀꼬리 감지되니
사람들은 거동을 시작하는데
구름 숲이 시를 품었기에
넉넉한 담화는 고풍스럽고
매화 피는 산에는 거문고 운율 맴돌아
참신함을 보태누나
티끌세상에 통상적인 한을
풍류와 연결시켜 헤아리니
어찌 번번이 글방에서 갖는 성대한
모임을 의심하지 않으랴
글귀를 찾아 잠긴 소리로 시를 읊으니
정신이 파리했건만
밤이 다하도록 야생의 시냇가에서
웃으면서 노래하였네
*석동은 영천시 녹전2동(석동마을)을 지칭.
*5연에서 8연까지의 내용은 여태까지는 시를 읊는 모임을 방안에서 가졌기에 목이 잠기고, 정신이 파리했으나 석동마을 야외 강변에서 가졌더니 즐거웠다는 뜻임.
□遊西岳記(유서악기)□
嘗觀自古名岳勝刹其有仙分者盖多管領居易香山之會坡老承天之遊皆是耳永之八公卽吾東名勝而文章士輿淸虛客笻日常轉尋難可整校粤黑虎秋余以擧子行自達城歸路適歷此而緣忙未得留連霎翫電過磬樓月門水榭風亭詩債夥負居然卄七載如來汨沒塵臼夢魂徒勞歲黃龍肇夏卄二日遂決意舊袂更作西遊討投宿於石洞越明與諸益迨暮扺大寺距家五十里乃登寶華閣徧觀法經幾軸皆玄玄空空莫能曉意轉到一房卲臘姓法細道閱徠㥘火仍說其道滅寂儘吾伩所掩耳處也諸法其習甚頑了無山家樣群客其跡太煩旋涗太古靜惟奇花異艸淸湍恠石尙保得無恙卄四磬後焉二鞋於姓法行有獘僂者故而山俗殊古槩可想也轉至百蓮暫憩飮茶又至百興時丁午矣神且勞矣勢難久留且直指方住雲浮從廉在在老有不便午餉總歇敀笻甚忙因占韻胥和到錦浦店酤酒各巡詩與可遣其夕宿新村民舍朝後又到石洞滯雨留數日觥籌交錯詩歌畵發足以忘勞然前卄七載旣負詩債後至今日又未得從容編觀固覺此身之無分於仙境令窃有羨於香社承天之管領者矣其聯遊者鄭裕戩公緖鄭裕承極翁鄭致建大中孫宅鎬聖與鄭致廷正叔鄭凞球求玉鄭裕宅汝安而唱其韻者聖與也敀而記者大中也
《西岳漫詠(서악만영)》
- 銀海寺曾往來故云云(은해사증왕래고운운) -
八公函勝擅吾東(팔공미승 천오동)/ 老鋒橫經說寂空(노봉횡경 설적공)
暇日笻尋雲影裡(가일공심 운영리)/ 同天樓立水聲中(동천누립 수성중)
十方世界灯淸夜(십방세계 정청야)/ 萬壑蘌陰柳晩風(만학어음 류만풍)
莫道洲門曾閱燼(막도주문 증열신)/ 別區山色古今同(별구산색 고금동)
《石洞夜話(석동야화)》
鵑花落盡夢迷春(견화낙진 몽미춘)/ 遠柳鶯兒嗅起人(원류앵아 후기인)
雲樹詩懷漫說古(운수시회 만설고)/ 梅山琴韻轉添新(매산금운 전첨신)
塵寰每恨聯遊勘(진환매한 연유감)/ 書舍那嫌勝會頻(서사나혐 승회빈)
覓句沈唫神欲瘦(멱구침금 신욕수)/ 終宵听哇野溪濱(종소은규 야계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