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눈 속에 꽃나무를 심다』, 파란, 2020
몸에 핀 개나리
김분홍
봄은 황사와 황달 사이로 찾아온다 요양병원 담벼락에 구름이 걸려 있다
노란 구름이다 구름이 삐악거린다
누군가 당신의 눈 속에 꽃나무를 심는다
온몸에 꽃나무가 뿌리를 내린다 노랗게 꽃이 만개한다 꽃이 만개할수록 당신은 의식을 잃어 가는 횟수가 잦아진다
당신은 서서히 병아리가 되어 간다 어쩌다 당신은 병아리가 되었을까
병아리가 깃털 속에 머리를 묻는다
뭉쳤다 흩어지는 땀에 젖은 깃털
뻣뻣했고 무거웠고 추웠다
병아리가 꿈속까지 따라와 죽음을 달라고 보챘으나
죽음은 순식간에 문을 닫아 버렸다
악몽도 문을 닫았다 나는 부화하는 병아리와 부화하지 못하는 병아리를 바라본다
당신은 오줌을 눈다 오줌발은 짧아졌다가 길어졌다가 졸졸 흐르면서 동시다발적으로 피었다 지고 휘어지면서 헤어진다
사월은 매운 카레 맛
혈관에서 뽑아낸 탁한 피가 당신의 일몰을 재촉한다 나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에 밑줄을 그으며 남은 약봉지의 개수를 헤아리고 있다
당신 떠난 당신이 누워 있는
중환자실
물관에도 체관에도 노란 피가 흐르지 않는다
원피스
저 지우개는 고장 난 시간
저 단추는 자물통의 비밀번호
저 무늬는 빗소리
저 율동은 언덕을 오르는 당나귀
저 주름은 음모가 많은 가방
저 배경은 버려진 우물
저 뒷모습은 봄날의 의자
저 향기는 눈구멍만 뚫린 복면
아지랑이 서체
욕망은 가벼워요 허공을 흔들어 놓고 사라지는 연기처럼 욕망이 피어오르고 있어요 나를 구불구불한 길에 가두고 있어요 나는 불길이 되어 가요
새싹은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 그 속엔 일기장이 펼쳐져 있습니다 고백이 새싹을 펼칩니다 무성해진 새싹으로 나는 봄을 탕진합니다 그리움도 퇴고가 필요한가 봐요 잡념을 솎아 내는 동안 진달래가 피는 언덕에는 풍차가 돌아갑니다
한 방향을 고집하는 풍차와 한 사람만 생각하는 나는 취향이 같습니다 저 풍차는 아찔했던 순간들을 몇 번이고 견뎌 냈겠죠 멈추지 않고 풍경을 돌리고 있는 풍차의 시간은 굴절입니다
첫댓글 교수님! 안녕하세요? 김분홍입니다.
제 시집 속의 시를 카페에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경사대에서 교수님께 시창작강의를 들던 때가 생각납니다. 행복했던 시절이었네요.
설 명절 잘 보내시고 늘 건강하세요.
아, 김분홍 시인,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눈 속에 꽃나무를 심다』는 좋은 작품이 담긴 좋은 시집이라 잘 읽고 있습니다.
설 잘 쇠시고, 문학적으로 좋은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