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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큰믿음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겸손
그리스도인의 권리포기 - 김원호 장로 Report
2005/10/07 15:33
http://blog.naver.com/dualself/120018369550
권리포기
그리스도인의 권 리 포 기
성공회 예수제자훈련학교 (SDTS 4기) 2조 그레고리
글을 시작하며
이 땅에서 하늘의 것을 성취하는 방법 - 당신이 포기할 때 하나님이 시작하신다.
권리포기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의 기본이며, 그분의 제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권리를 포기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권리를 양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내가 가진, 또는 나에게 주어진 권리를 예수님께 드려서
그분이 나의 권리를 가지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리를 드린 삶을 살 때에, 포기할 때 주어지는 영광과 특권을 나타내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2천년 전에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기꺼이 채우기 원하는 이들을 하나님은 여전히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세상과 반대되는 우선순위와 가치를 품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권리를 포기한 바로 그 자리에서
이전에 보지 못한 하나님의 역사를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귀한 특권입니다.
1. 권리포기란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십자가와 믿음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 말씀에 의하면 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것이다. 그렇게 죽은 자에게 무슨 권리가 있는가? 하나님은 바로 이것을 말씀하신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 때문에, 이제부터 나에게는 아무 권리도 없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 사신 것이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시기 때문에 오직 그리스도의 권리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육체를 입고 오늘도 살아가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음성을 듣고, 따르고, 하나님을 신뢰하라
창조주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지금도 우주를 다스리심을 믿는 것이 믿음에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그 다음 믿음에는 필요한 세 가지 조건이 있다. 먼저 믿음은 들음에서부터 오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서 믿음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믿음의 첫 번째 조건은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이렇게 들려주신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고, 그래서 믿음의 두 번째 조건은 들은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세 번째 조건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말씀하셨더라도 그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행하실 것이라는 온전한 신뢰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들은 대로 따르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고, 권리포기이다. 이 결정은 내 의견, 내 주장, 내 욕심, 내 계획, 내 야망대로 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순종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자기 스스로 그냥 포기하는 것은 진정한 포기가 아니다. 자신의 생각과 결정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이 없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들은 후에는 즉시 따르며, 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의 삶이며 이것이 권리포기의 삶이다.
2. 말씀 앞에서 신을 벗으라
신을 벗으면 ‘당신에게 나의 모든 권리를 양도합니다. 나의 소유권을 포기합니다’라는 의미를 갖는 것이 이스라엘 전통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네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시면, 이는 ‘네 권리를 포기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부르심에 대한 모세의 반응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신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로 오기 전에 포기한 권리는 ‘바로 공주의 아들로 사는 것’이다. 그것은 권력과 명예, 정욕과 재물 등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것들을 이미 포기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모세에게 무슨 권리가 남아 있다고, 하나님은 호렙산에서 그를 부르시고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을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면 자신의 능력이나 주위 환경을 바라보면서 계산하지 말고, 그대로 따르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인데 모세는 비록 음성을 들었어도 ‘따르는’것부터 걸려 넘어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몇 번이나 말씀하셔도 계속 핑계를 대며 바로에게 못 간다고 대답하였던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언약까지도 부인하고 싶은 반항의 마음이 모세의 내면에 있었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모세의 힘으로 하라고 하셨는가? 신을 벗으라고 하는 말은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것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하시기 위해 호렙산에서 떨기나무 불을 놓고 모세를 불러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다.
사명을 이루기 위한 여호수아의 선택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말한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왜 여호수아에게 신을 벗으라고 했을까?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여리고 성의 공략에 대하여 큰 부담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다. 여호수아는 이제 이스라엘의 군 사령관으로서, 작전 계획을 세우고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한 전투를 지휘하여 전쟁에서 승리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신을 벗고 맨발로 전쟁을 치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모든 권리를 포기하라는 말씀이다. 아무 권리도 없으므로 작전 계획을 세우고 전투를 지휘할 권리도, 전쟁 승패에 대한 책임을 질 권리도 없다. 모든 권리를 내려놓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데 있어서 치밀한 작전 계획이나 탁월한 전투 지휘 능력이 아니고 오직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온전히 따르는 것을 원하셨다. 자신의 능력으로 도저히 할 수 없어도 말씀하신 하나님이 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서 있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작전 명령을 듣고 그대로 따랐을 때 여리고 성은 무너졌다.
여리고 성을 보고 자신을 보면, 전쟁을 할 수 없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전쟁을 할 수 있다. 강하고 담대해질 수 있다. 하나님은 이것 때문에 여호수아에게 신을 벗으라고 한 것이다.
누가 여호와의 종인가?
모세와 여호수아는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는 삶을 살았고,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이루는 영적 지도자로 영원히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사람도 단 한번씩, 하나님 말씀 앞에 신을 벗지 않고 자기 권리를 행사하는 실수를 범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고 말하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화가 나서 바위를 두 번이나 지팡이로 내려쳤다. 하나님은 모세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 모세가 믿지 않았다는 것을 무엇을 말하는가?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들은 그대로 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인정하였지만 말씀하신 음성 그대로를 따르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모세는 그토록 고대하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에 들어가면 가나안의 모든 족속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하지만 하나님께 묻지 않고 기브온 족속에게 속아서 화친을 맺고 말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 맘대로 했던 여호수아의 단 한번 실수였다.
그러면 누가 여호와의 종인가? 우리는 두 사람의 실수를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바로 하나님 말씀 앞에서 신을 벗고, 들은 대로 따르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여호와의 종’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주님의 종’이라고 불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정말 신을 벗었는가, 벗지 않았는가가 중요하다. 사람들이 뭐라 하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신을 벗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내 종’이라고 부르지 않으신다. 하나님을 주라고 부르고 자신을 종이라고 한다면, 모든 권리를 그분 앞에서 포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신을 벗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하나님은 ‘내 종’이라고 부르신다.
영적 권위는 누구에게 주시는가?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영적 권위를 주실까?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주시는 영적 권위는 절대적인가?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영적 권위에 도전하고 집단적으로 반기를 들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모세는 다만 그들 앞에서 ‘엎드리는 일’ 밖에 하지 않았다. 왜 모세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엎드리기만 했을까?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은 사람은 사람 앞에서도 신을 벗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유익과 명예를 위해 스스로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그저 하나님께 ‘이때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자세를 취한 모세에게 엄청난 영적 권위를 주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영적 지도자로 세워 주셨다. 이러한 지도자에게 하나님은 영적 권위를 부여하신다. 모세의 영적 권위에 도전하고 성공한 백성이나 족장들은 없다. 영적지도자의 성공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신을 벗고 조건 없이 따르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3.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권리 포기라고 하면 다 잃어버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말씀 안에서 순종하는 것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얻는 것이다.
사회적 안정감을 포기하라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신을 벗고, 사회적인 안정감과 정체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자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였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아브라함을 통해 배우게 되는 믿음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사회적 안정감과 정체성을 포함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신을 벗고 순종하는 삶이다.
더 큰 축복의 약속을 위해 포기하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하였다.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는 그대로 따랐다. 하나님이 이삭을 다시 주실 것이라고 신뢰하는 것이다. 약속의 자손을 데려가신 후에는 반드시 회복시키실 하나님을 신뢰한 것이다. 이삭 역시 아버지가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을 때 뿌리치며 도망치지 않았다. 이삭도 부모의 삶을 통해 믿음으로 사는 것을 배운 것이다.
신을 벗은 사람을 통해 원대한 계획을 이 땅 가운데 이루려는 하나님의 마음과 또한 자녀에게 주시는 약속과 축복을 기억해야한다. 모든 권리를 빼앗기 위해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신을 벗은 자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과 약속이 반드시 있다.
스스로 되갚음하는 것을 포기하라
다윗은 사울에 충성을 다했지만, 다윗을 시기한 사울은 오히려 그를 죽이려고 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쫓기는 생활 중에 다윗은 사울에게 복수할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하나님 말씀 앞에 신을 벗고 복수할 권리를 포기하고 말씀에 순종하였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복수할 권리를 포기한 다윗에게는 사울이 원수로 보이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로만 보인다. 이런 다윗에게 엄청난 축복의 말씀이 주어졌다.
4. 예수님의 권리포기(어떻게 여호와의 종이 되는가? )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심과 천국보좌를 포기하고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시고, 우리 모든 사람의 죄 때문에 생명을 포기하셨다. 그리 이 땅에서 계시는 동안 여러 가지 권리를 포기하셨다. 예수님이 왜 이러한 권리포기를 제자들에게 직접 보여주셨을까? 앞으로 예수님을 대신해서 복음을 들고 나갈 때 그 모든 권리를 포기해야 제자의 삶을 살 수 있음을 가르치신 것이다.
세상 풍속을 따르는 권리
예수님은 세상 풍속을 좇는 것을 포기하시고 이 땅에서 사역하셨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항상 깨어있지 못할 때, 우리는 왜곡된 사고와 잘못된 습관의 공격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문화가 아니라 세상 풍속에 젖어 살 수 있다.
자존심을 지키는 권리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인격을 무시당하고 모욕을 받았을 때 감정적으로 말씀하지도 않고 혈기를 부리지도 않으셨다. 예수님의 영적권위에 도전한다고 저주하지도 않으셨다. 그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따라서 그냥 단순하게 반응하셨다. 이것이 자존심을 세우려는 권리를 포기하는 삶이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감사받는 권리
주님은 사랑받고 인정받고 감사받는 권리를 포기하고 이 땅에서 사셨다. 따라서 사람들의 배신을 하셨을 때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행할 때,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기 영광을 취할 권리
예수님은 그분의 모든 사역 속에서 자기의 영광을 취할 권리를 포기하고 언제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역하였다.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칭찬하고 경배하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말하며 영광을 돌리셨다.
왕국을 만들어 군림하는 권리
예수님은 자신의 왕국을 만들어서 군림하고, 새로운 교단을 만들어 총회장이 되고, 신학대학을 만들어 총장이 되는 권리를 포기하고 이 땅에서 사역하셨다. 에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예수님께서 개척교회를 세웠다면, 기존 종교지도자들인 대제사장, 장로, 바리새인들을 능가하며 이스라엘 전국을 휩쓰는 새로운 예수교단을 창설하여 이 새 교단의 총회장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예수님은 몰려오는 군중을 조직화해서 그 위에 군림하지 않으시고 늘 모인 군중을 흩으셨다.
5. 제자들의 권리포기 (어떻게 여호와의 종을 대해야 하는가?)
제자들은 예수님을 섬기는 삶 속에서 어떤 권리를 포기했을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이기 때문에, 열두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섬기고 그분 앞에서 배웠는지 이해하고 배워야한다.
불평불만 하는 권리
예수님의 제자들은 불평 불만하는 권리를 포기하고 주님을 따랐다. 여러 가지로 불평할 상황들이 많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한명도 불평불만을 한 일이 없다.
건의하거나 간섭하는 권리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하여 건의하거나 간섭하지 않았다. 제자들은 배고프고, 공동생활 집도 없고, 머리 둘 곳 없는 예수님을 좋아다니면서도, 예수님이 어떤 사역을 하시든지 건의하거나 간섭하는 권리를 포기하고 그냥 예수님을 섬기기만 하는 삶을 살았다.
비판이나 험담하는 권리
제자들은 비판이나 험담하는 권리를 포기하고 예수님을 섬겼다.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비판하다가 안 되면 그 다음에 험담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제자들은 충분히 비판을 하거나 험담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러한 권리들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섬겼다.
소외되었을 때 반발하는 권리
예수님이 제자 중 누군가를 편애하더라도 반발하지 않고 주님을 섬겼다.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명의 제자들을 특별히 더 사랑하셨다. 하지만 그들 세 명만 사랑하고 자신을 찬밥 취급한다고 반발하는 제자들은 없었다. 제자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예수님께 반발하는 권리를 포기했다.
상처받고 떠나는 권리
제자들은 상처받고 떠나는 권리를 포기하고 예수님을 섬겼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사탄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아마도 정말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좌절감 속에서 등을 돌려 돌아가지 않았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어떤 일에도 반발하고 떠날 권리를 포기하고 주님을 섬겼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었다.
글을 마치며
항상 은혜롭게 찬양을 부른다.
“ 내가 그리스와 함께 십자가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라 ♪♬ ”
찬양을 부를 때는 정말 은혜롭게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할 때는 정말 뜨겁게 기도를 한다.
“ 나의 모든 권리를 주님께 내어드립니다.
저의 모든 자존심과 저의 자아 모두 십자가에 못 박았으니
이제는 겸손한 마음으로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섬기게 하소서 “
하지만, 실제 생활로 돌아오면 난 언제나 부활을 한다.
나의 자존심의 부활, 나의 자아의 부활...
정말 끈질기게 되살아난다.
<권리포기>를 읽을 무렵 나를 둘러싼 좋지 않은 소문들이 돌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 너무 억울해서 변명하고 싶기도 했고, 너무 화가 나서 따지고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 권리포기 >를 읽는 동안에 나의 억울함과 답답함이 모두 죽지 않은 나의 자존심과 자아 때문이라는 알게 되었고 나는 아직 ‘나의 신을 벗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결론을 얻게 되었다.
“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자!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사람들의 평가 때문에,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말 때문에 좌지우지 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서 나의 신을 벗으면 모든 것이 해결 되는 거야. 내가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잖아.. ”
답을 얻으니까 마음이 참 편안하다. ‘권리포기’에 대한 나의 머릿속의 깨달음이 가슴으로 내려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리고 나의 삶으로 옮겨지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이루려고 욕심 부리지도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한걸음이 나아가려한다.
첫댓글 정말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