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돈농가 대기업 예속 ‘신호탄’ 되나
축산대기업인 하림그룹이 경기 안성시에 대규모 축산물 도축·가공시설 설립을 추진하면서 정부가 목표로 하고 있는 ‘대형 패커(축산물 전문 도축·판매·유통회사)’ 사업에 나설 것으로 알려져 축산 농가는 물론 유통·도축 등 축산 관계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들은 대기업의 축산업 진출 제한이 풀린 상황에서 대형 패커시설 설치를 반대할 수만은 없지만, 육계 계열화로 경영기반을 다져 온 하림이 양돈·한우 등까지 국내 축산업을 전체적으로 계열화해 농가를 종속시키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며 크게 우려하고 있다.
본지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하림그룹(회장 김홍국)은 내년 말 건립을 목표로 2,500억원을 들여 경기개발공사가 안성시 미양면과 서운면 일대에 조성중인 안성 제4산업단지에 하루 돼지 3,000마리와 닭 23만마리를 도축·가공할 수 있는 7만3,000㎡(2만2,000평) 규모의 ‘안성식육종합센터’를 연말 착공, 내년 말 준공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센터가 완공될 경우 돼지 연간 도축 규모만도 지난해 전국 최대 물량(68만여마리)인 제주축협 도축장보다 많은 75만마리(250일 작업 기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이미 안성에는 국내 2위 도축시설인 도드람LPC와 하림 계열사인 팜스코가 도축시설을 운영중이고, 농협 축산물공판장의 음성 이전이 연내 완료될 전망이어서 하림의 패커시설이 세워질 경우 과당경쟁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양돈 농가와 축산 관계자들은 이번 계획이 실현될 경우 대기업이 국내 축산업계를 뒤흔드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제만 대전충남양돈농협 조합장은 “대기업의 축산업 진출이 허용될 때부터 이런 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다”면서 “도축물량 확보를 위해서라도 하림측이 양돈 계열화사업 확대를 서두를 것으로 보여 농가의 예속화가 가속화될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진길부 한국양돈기술원장(전 도드람양돈농협 조합장)도 “축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패커 조성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전국 육계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한 하림그룹이 덩치 불리기를 위해 도축시설이 집중된 지역에 또 패커시설을 설립하는 의도를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한양돈협회 등도 상황을 주의 깊게 살피면서 대응책을 구상중이다.
안성시는 고용창출 효과와 공단 분양촉진 등의 효과를 들며 유치를 환영하고 있지만, 지역주민과 도축업계도 과당경쟁과 환경문제 등을 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동재 안성시의회 의장은 “환경오염·가축질병·폐수문제와 함께 도축세 폐지로 세수확대도 기대하기 어려워졌고, 고용창출 효과 역시 따져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림측은 무소음·무악취 도축시설을 설치해 주민의 민원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당초 제4사업단지의 경우 악취나 폐수 대량발생업체를 유치할 수 없도록 설계돼 용도변경이 필요하다. 또 공장이 들어설 경우 심각한 상수도 부족이 우려돼 안성시가 150억원을 부담해 상수도 시설확충을 지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특혜 시비가 일어날 소지도 있다. 전국 도축장 모임인 축산물처리협회도 도축장 구조조정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반발하면서 19일 이사회를 열고 대응안을 결정한 후, 경기도에 항의 방문을 계획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첫댓글 농민신문 2010년 8월 18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