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창 37장 1-8절
설교제목 : 위대한 꿈은 무엇인가
반사회적 인격장애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한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조금은 날씨가 풀려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던 한 주였습니다. 그러나 지난주에 대전의 모초등학교에서 여교사가 휘두른 흉기에 1학년 김하늘양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전하게 보호받고 성장해야 할 학교공간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자행된 것입니다. 명모 교사가 우울증을 앓았다고 보도되었습니다. 그런데 학교 처우에 대한 불만을 약자를 향하여 무자비하게 쏟아내고, 아이를 계획적으로 유인하고 수차례 공격한 것을 보면, 우울증이라기보다 반사회성 인격장애의 특성이 더 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억울함과 힘듦을 힘없는 약자나 불특정 다수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단순한 신경증보다는 인격장애가 있는 사람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한 인간이 얼마나 사나운 짐승이 될 수 있는지 혹은 철면피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부정함으로 국가기강을 흔든 것이 본인 가족이었음에도 문제의 원인은 야당에게 있고, 질서를 바로잡겠다고 위태한 외줄타기 곡예짓을 전혀 반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혼란을 가중시키며 조직적으로 계엄놀이를 했음에도 정당성만을 주장하는 것은 전형적인 인격장애의 특성일 수 있습니다. 진영을 떠나서 정치지도자들이 던지는 선동적 문구에 군중들은 무의식적으로 동조하며 갈등은 더욱 고조됩니다. 건강한 인격을 형성하지 못하고, 인간 사회의 준거틀을 넘어서 폭력성을 유발한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발견하지 못하는 자는 건강한 인격을 형성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투사적 실체를 알아차릴 때 성숙해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기대하는 봄이 어서 속히 찾아와 다시 약동하는 봄의 희망으로 건강한 내일을 꿈꾸었으면 좋겠습니다.
채색옷을 입은 자의 위험
창세기 35장과 36장은 야곱의 네 아내로부터 얻은 아들 명단과 라헬의 죽음, 이삭의 죽음, 그리고 에서의 후손들에 대한 족보를 소개합니다. 그런 후 37장부터는 야곱에게서 요셉으로 중심 인물상이 바뀝니다. 새로운 인물이 역사 전면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37절 1절은 “야곱의 역사는 이러하다”고 마무리되고, 이후부터 야곱의 이름은 ‘이스라엘’이라 불립니다. 집단과 민족의 대표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 이스라엘이 전체 민족의 이름이 됨으로써 하나님의 의식, 신 의식의 담지자가 되고, 종교적 임무가 집단으로 이행됨을 시사합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중심상, 새 영웅이 될 요셉의 특징을 3절과 4절에서 소개합니다.
“이스라엘은 늘그막에 요셉을 얻었으므로, 다른 아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여서, 그에게 화려한 옷을 지어서 입혔다. 형들은 아버지가 그를 자기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서 요셉을 미워하며, 그에게 말 한마디도 다정스럽게 하는 법이 없었다.”
아버지 이스라엘이 다른 형제들과 달리 요셉을 선택하여 특별한 사랑을 주었고, 그에게 화려한 옷을 지어서 입혔습니다. 여기에서 “화려한 옷”이란 관주에 보면 “채색 옷”으로 풀이하고, 다른 번역에 보면, “소매가 긴 코트”, 혹은 “긴 소매의 예복”입니다. 발목과 손목까지 이르는 옷은 특별한 신분이나 구별된 사람을 가리킵니다. 출애굽기나 레위기에 제사장의 의복은 구별됨의 표시로 대부분의 신체 부위를 가립니다. 또한 요셉의 이야기에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은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입니다. 신성한 특권이 열두 아들 모두에게 동등하게 분배된 것이 아니라 요셉에서 특별하게 집중되었습니다. 요셉은 개인의 아버지에게도, 하나님에게도 사랑받았습니다.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개인적인 요소들과 원형적인 요소들이 여기에서 겹쳐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개인과 집단의 운명을 실어나르는 사람이기에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채색 옷은 영광의 옷이자 한껏 자아를 팽창시킬 수 있는 조건입니다. 그 영광의 옷을 아버지가 지어주었음에도 마치 자신의 힘인냥 점유합니다. 자아가 무의식적으로, 혹은 부주의하게 입은 그 채색 옷은 자아를 아버지 혹은 하나님의 반열에 오르게 하고, 아버지나 하나님과 동일시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37장 23절에서 형들에게 그 옷이 벗겨집니다. 그 옷은 반드시 벗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열일곱살 된 소년 요셉이 아버지의 첩들인 빌하와 실바가 낳은 형들과 함께 양을 치는데, 요셉은 형들의 허물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곤 하였다.” 요셉은 어떤 우월함을 가지고 형들의 잘못을 비판하며 고자질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월함과 탁월함에 대한 자아의 동일시입니다. 이런 탁월함과의 자아 동일시는 위험을 초래합니다. 무의식 속에서는 물론이고 외부 환경에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어 개인을 위협합니다. 이런 거센 적개심은 자아의 일방성을 교정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채색 옷을 입은 자, 영광의 옷을 입고 있는 자는 자아 팽장의 위험을 늘 인식해야 합니다. 수많은 권력자들이 그 영광의 옷을 점유하려 했을 때 비참하게 벗겨져야 했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개인도 자신의 우월함을 자신과 동일시하면 할수록 무의식의 거센 반발과 주변으로부터 강력한 저항의 위험을 직면하게 됨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팽창의 징후를 파악할 수 있을 때가 언제일까요? 누군가 팽창되었는지 알려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신경에 거슬리는지 살펴보면 됩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고 있으며 팽창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팽창이 있으면 열등감 혹은 우월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열등감은 베일에 싸인 팽창이어서, 만일 어떤 사람이 열등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진정한 야망입니다. 현재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지금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위대한 꿈은 무엇인가?
그런데 요셉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꿈을 꾸고서 형들에게 말하고, 형들은 그 꿈 이야기를 듣고 더욱 더 미워하였습니다. 요셉의 꿈에서는 형들의 곡식단이 와서 자신의 곡식단에 와서 절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요셉의 열등감을 보상해주는 꿈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형적으로 이 꿈은 요셉이 거둔 수확의 탁월함, 창조적인 결실이 그의 형들보다 우월함을 시사합니다. 이것이 요셉에게 다가올 미래의 그림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얼마 뒤에, 요셉은 또 다른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이야기합니다. 해와 달과 열한 개의 별이 자신에게 절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꿈을 이야기한 요셉을 꾸짖었습니다. 형들은 이 일로 더욱 요셉을 미워했지만,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습니다(37:10-11). 천체가 등장하는 꿈은 원형적인 주제이며, 이것은 큰 꿈입니다. 인생의 전환기에 요셉이 꾼 꿈은 운명의 지도를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순진하게 다른 사람에게 꿈을 이야기하는 요셉을 꾸짖습니다. 이런 꿈을 사사로이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함을 일러줍니다. 꿈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꿈을 공유하는 위험이 여기에 있습니다. 문외한에게 꿈은 한낱 무가치한 개꿈취급받거나 미래를 단지 점치거나 환원적으로 타인에게 적용되는 것으로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꿈은 가치절하되고, 꿈의 숨겨진 의미는 알 수 없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꿈을 이야기할 때 신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천체가 출현한 것은 이전 세대가 지닌 모든 별의 강제력을 넘어서며, 새로운 시대의 우주적 중심 인물임을 표상합니다. 이것은 보상성이지만, 미래에 펼쳐질 운명의 지도임을 드러냅니다. 해와 달, 별들이 절을 할 만큼 그의 존재 의미를 격상시킨 것입니다. 자신이 수행할 운명이 다른 이보다 크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
저는 이런 꿈들을 전환기의 큰 꿈이며, 이런 위대한 꿈들은 다가올 운명의 예고라 할 수 있습니다. 원형상의 출현은 운명을 실어 나릅니다. 고대 세계로부터 꿈은 인간에게 한 개인과 집단의 위대한 비밀을 전수시켜 왔습니다. 인간 의식의 발전 또한 꿈의 작용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위대한 꿈은 무엇일까요? C.G.융은 이렇게 말합니다.
“위대한 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많은 사소한 꿈들과 그것들의 힌트에 겸손과 복종으로 따르는 많은 행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미래이자 새로운 세계에 대한 그림입니다. 우리는 무의식과 그 암시보다 더 잘 알 수 없습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의식 세계에서 헛되이 구하는 것을 찾을 공정한 기회가 있습니다.”[Letters vol2, p586.]
우리들이 꾸는 사소한 꿈들과 그 꿈들의 힌트에 겸손하게 따르는 행위에 위대한 꿈이있으며, 그 꿈은 아직 이해하지 못한 미래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그림임을 우리가 알아차렸으면 좋겠습니다. 요셉에게 꿈을 주시어, 자신의 운명을 실현하게 하셨듯, 우리에게 주시는 꿈들을 잘 알아차리고 다가올 미래의 새로운 세계의 그림을 완성해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