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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마의 수도원 2
스탕달
Stendhal 1783~1842
[15장]
두 시간 후 가엾은 파브리스는 수갑을 차고 작은 마차에 올라 파르마 성체를 향해 출발했다.~~~ 그의 수갑을 벗겨라. ~~헌병들이 수갑을 풀었다. 그들은 파브리스가 산세베리나 공작부인의 조카라는 사실을 이제 막 알게 된 터라, 그에게 아첨 섞인 공손함을 보였다. ~~~
파브리스가 헌병 세 명에게 둘러싸여 사무소 밖으로 나왔다.. 자신에게 배당된 방으로 끌려가는 것이었다. 클렐리아는 마차 문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소녀의 시선과 마주쳤다. ~~~
10시 경 공작부인에게로 친구 한 사람이 다가와서 낮은 소리로 몇 마디 소곤거렸다. 부인은 극도로 창백해졌다. 그러자 클렐리아는 부인의 손을 꼭 잡으며 격려하는 것이었다.
[16장]
공작부인은 견딜 수 없어 비명을 질렀다. 도저히 빠져나올 방법이 없어 보이는 궁지가 상심한 마음을 더욱 괴롭혔다. ~~~대공도 파브리스도 환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는 다시 침대에 쓰러졌다.
[17장]
피브리스의 사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확실한 사실이 되었다.
[18장]
이처럼 공작부인과 수상은 감옥에 갇혀 있는 청년을 위해 모든 정성을 바쳤지만,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감옥에 들어온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19장]
모스카 백작이 수상으로 재임하고 있는 가운데 이와 같은 곤경을 당해 실각 조짐까지 보이자, 파비오 콘티 장군의 야심은 광기에 가까울 만큼 맹렬히 불타올랐다. ~~~그녀가 결혼을 결심하지 않는다면 수녀원에 내팽개쳐서 지쳐 빠지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
어느 날 밤 11시 경, 파브리스는 이런 성채 같은 곳에서는 듣기 흔치 않은 아주 낯선 소리를 들었다. ~~~음악에 취해 있던 파브리스는 마음속에 아름다운 글렐리아를 떠올리며 그녀를 향해 더 이상 억제할 수 없는 사랑의 고백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다음 날 정오, 그는 우수에 젖어 있는 , 몹시도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
사실 보름마다 파르마에는 파브리스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새로운 소문이 퍼져 나갔다. 이런 소문들은 불행한 공작부인을 끝없는 절망 속으로 밀어 넣었다. 백작을 자신과 함께 파멸로 끌어들이지 않으려는 결심을 지켜서, 부인은 그를 한 달에 두 번밖에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가엾은 남자에게 매정하게 대하는 벌로써 그녀 또한 끝없이 이어지는 암담한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
파브리스가 비좁은 감옥에서 새장에 갇힌 새처럼 꼼짝도 못하고 135일을 지낸 어느 목요일이었다. 감옥 부속사제인 사람 좋은 동체사례가 그를 찾아와서 파르네제 탑의 망루 위로 데리고 나갔다. 산책을 허용해 준 것이다.
[20장]
어느 날 밤 새벽 1시경, 파브리스는 창가에 몸을 기대고 차양의 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이 높은 파르네제 탑에서 즐길 수 있는 별들과 끝없는 지평선이 만들어 내는 정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포강 하류와 페라라 방면의 평원을 헤매고 있을 때였다. 아주 작지만 강렬한 불빛이 우연히도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 불빛은 어떤 탑의 꼭대기에서 쏘아 보내는 것 같았다. 저 불빛은 평지에서는 보이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탑의 몸체에 가려 아래쪽에서는 불빛을 볼 수 없을 텐데, 아마 먼 곳에 보내는 신호인가 보다. 불현듯 그는 이 불빛이 아주 짧은 간격으로 켜졌다 꺼졌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아가씨가 이웃 마을 애인에게 이야기하고 있나 보다. 세어 보니 불빛은 연달아 아홉 번 깜박였다. 이것은 알파벳 1군, 아홉 번째 글자니까, 불빛은 조금 쉰 뒤 열네 번 깜박였다. 이번에는 N이다. 그러고는 한 번 더 쉬었다가 불빛이 또 한 번 깜박였다. A로군. INA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렇게 짧은 간격으로 계속되는 신호가 다음과 같은 말임을 마침내 깨달았을 때 그는 얼마나 놀라고 또 기뻤는지. GINA PENSE A TOI(지나는 너를 생각하고 있단다) 그 신호는 분명 지나는 너를 생각하고 있다 라는 뜻이다. 그는 잠시 차양 쪽문을 통해 자신의 램프 불빛을 반짝여 대답했다. FABRICE T AIME!(파브리스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 대화는 동이 틀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날 밤은 붙잡힌지 173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는 불빛이 전하는 말을 통해 벌써 네 달 전부터 매일 밤마다 그를 향해 이 신호가 계속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불빛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고 또 그 의미를 눈치 채기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날 밤 이후로는 암호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주 빠르게 세 번 깜박이면 공작부인을, 네 번은 대공을, 두 번은 모스카 백작을 가리키며, 두 번 천 천히 깜박였다가 이어 빠르게 두 번 더 깜박이면 탈옥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구식 알파벳인 알라 모나카를 쓰기로 했다. ~~~
다음 날 공작부인은 시내에서 1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이 탑으로 달려왔다. 하루에도 몇 번 씩이나 이젠 죽은 것만 같았던 파브리스가 신호를 보내오자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녀는 손수 램프를 깜박여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용기를 내라. 몸조심하고 희망을 가져야 해! 감옥 안에 있더라도 힘을 길러두어라. 팔 힘이 필요할 때가 올 테니.’ 공작부인은 생각했다. 라 파우스타의 음악회 이후로 저 아이를 보지 못했구나. 그때는 사냥꾼의 옷을 입고 거실 문에 나타났었지. 그때만 해도 이런 운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누가 상상했겠는가!
공작부인은 파브리스에게 그가 곧 석방되리라는 내용의 신호를 보냈다. ~~~파브리스를 위해 애쓴 공로로 부인의 집사가 된 루도박이 거듭 권한 끝에 동이 틀 무렵이 되어서야 부인은 겨우 신호를 그만 두었다. 의심의 눈길을 끌지도 몰랐던 것이다. 곧 풀려나리라는 신호를 여러 번 반복해서 받고 파브리스는 아주 낙심했다. 다음 날 그의 우울한 표정을 알아차린 클렐리아가 결국 참지 못하고 이유를 물었다. 나는 공작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야 말 겁니다. 그분이 당신께 무슨 어려운 요구라도 하시던가요? 이렇게 묻는 클렐리아는 궁금함 때문에 침착성마저 잃고 있었다. 그가 대답했다. 고모는 내가 여기서 빠져나가기를 바라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결코 나갈 수 없습니다. 클렐리아는 할 말을 잊었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눈물을 쏟았다. 만약 그가 좀더 가까운 곳에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더라면 어떤 감정의 고백을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껏 그녀로부터 바로 그 감정의 확신을 얻을 수 없어 번번히 깊은 절망에 빠지곤 했었는데 말이다. 그는 너무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클렐리아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신의 삶은 단지 가슴 에이는 슬픔과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일 뿐이라는 사실을. ~~~
이 성체에서 달아난다면 파르마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다. 혹시 대공이 마음이 변해 그를 자유롭게 풀어준다 해도(이렇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알다시피 파브리스는 강력한 모 당파의 입장에서 볼 때 모스카 백작을 실각시킬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두 당파 사이에 존재하는 반목으로 인해 클렐리아와 헤어져 지낼 수밖에 없을텐데. 그렇다면 파르마에서 지내는 생활 역시 얼마나 암담하겠는가? ~~~
파브리스는 클렐리아의 편지 속에서 그녀에게 만나 달라고 조를 구실만 찾고 있었다. 그녀를 만나는 것이 그의 단 하나 변치 않는 욕망이었다. ~~~
앞으로 한 달 동안 너는 방 안에 밧줄을 매어 놓고 오르내리는 연습을 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얼마 후 축제날이 돌아와 성채 주둔 병사들에게 포도주가 특별 배급되는 날, 너는 큰일을 감행하게 되는 것이다. ~~~
다음 날 파브리스를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11시가 되었을 무렵, 그는 창가에 기대 아름다운 경치를 내다보며 클렐리아를 만날 행복한 순간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릴로가 숨이 턱까지 차 방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빨리 서두세요! 나리. 침대에 누워 아픈 척해야 합니다. 재판관 세 사람이 올라오고 있어요. 나리를 심문하러 오는 것입지요. 그러나 대답을 하기 전에 신중히 생각하세요. 그들은 어쨌든 나리를 옭아매는 것이 목적일 태니까요. ~~~
파브리스 델 동고 씨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말을 꺼냈다. ~~~ 모친이신 델 동고 후작부인께서는 서면으로 당신께 이 소식을 전해 오셨습니다. ~~~나는 몸이 불편합니다. 여러분. 몸이 쇠약해져서 일어날 수조차 없으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21장]
이 불행에 앞서, 벌써 1년 전에 일어난 일인데, 공작부인은 어떤 기묘한 인물을 만난 적이 있었다. 이 고장 사람들이 하는 말로 달에 홀린 증세가 부인에게 나타날 때면 부인은 저녁 무렵 문득 기분이 내키는 대로 사카에 있는 자신의 성으로 가곤 했다. 이 성은 콜로르노 너머 포강을 굽어보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이 영지를 아름답게 꾸미는 일을 즐겼다.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자리를 찾아 그 숲 속에 여러 개의 오솔길를 내는 일에 열심이었다. 언젠가 대공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산적들에게 잡혀 갈지도 모릅니다. 아름다운 공작부인. 부인이 산책하신다는 사실이 알려진 숲에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지요. 그러면서 대공은 백작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는 백작의 질투를 불러일으킬 심산이었다.
숲속을 산책할 때도 저는 무섭지 않답니다. 전하. 공작부인은 꾸밈없이 대답했다. ~~~공작부인은 아주 남루한 옷차림을 한 사나이가 숲 건너편 멀리에서 자신을 뒤쫓아 오는 것을 눈치챘다. 문득 대공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부인은 더럭 겁이 났다. ~~~낯선 사내는 냉큼 다가와서 그녀의 발밑에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
저는 사형선고를 받은 페란테 팔라라고 하는 의사입니다. ~~~공작부인은 이 사나이가 몹시도 야위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의 눈은 너무도 아름다웠고 다정하게 빛나고 있었으므로 전혀 죄를 범한 사람이라고는 상상이 안 되었다. ~~~
아이들 어미는 길쌈을 하고 맏딸은 자유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농가에서 양을 쳐 주며 밥을 얻어먹고 있습니다. 저는 피아첸차에서 제노바로 가는 길가에 숨어 있다가 강도짓을 하지요. ~~~부인은 깜짝 놀랐다. 금세기 최고의 시인이라는 그 유명한 파란테 팔라가 바로 당신이라니! ~~
제 불행은 사랑에 빠진 데 있습니다. 제 마음속에 오직 부인만을 품은 지가 거의 두 해가 다 되어 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부인께서 혹시 겁을 내실까 봐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
파브리스가 체포되었을 당시의 상황은 바로 이와 같은 것이었다. 파브리스가 붙잡힌 사흘 뒤, 이윽고 밤이 깊을 무렵 카푸친회 수도사 한 명이 산세베리나 저택 문 앞에 나타났다. 그 수도사는 여주인에게 중요한 비밀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인은 너무나 큰 슬픔에 잠겨 있었던 나머지 조금의 위안이라도 얻을까 해서 그를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 수도사가 페란테였다. ~~~
사랑에 미친 사나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또 한편으로 일개 개인으로 행동할 때, 제가 산세베리나 공작부인께 바칠 것은 제 생명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니 여기 제 생명을 받아 주십시오.
노상강도이자 미치광이라고 해야 할 한 남자의 이런 진실한 헌신에 공작부인은 감동했다. ~~~ 파란테는 이틀 후 다시 찾아왔다. 도시 전체가 파브리스의 처형이 임박했다는 소문으로 술렁이고 있을 때였다.
[22장]
12시 반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얼마 지나서 새방 창문에 작은 램프 불이 보였다. 파브리스는 행동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성호를 그어 잠시 기도한 후 관저가 있는 전망대까지 10미터를 타고 내려갈 작은 밧줄을 침대에 잡아맸다. ~~~아! 사랑하는 고모! 그러고는 또다시 완전히 정신을 잃고 말았다. ~~~공작부인은 파브리스를 다시 보자 완전히 침착성을 잃고 말았다. 그녀는 두 팔로 그를 끌어안았다. ~~~
탈옥 소식은 아침 6시나 되어서야 성체 내에 퍼졌다. 이어서 전전긍긍 끝에 겨우 10시 경에서야 대공에게 보고되었다. ~~~탈출한 죄수는 포강을 건너 40킬로미터쯤 달린 후에야 깨어나 정신을 차렸다. ~~~마침내 저녁 6시쯤 피에몬테 영내에 도착했다. 이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파브리스는 안전해진 것이다. ~~~
감옥에서 빠져 나온 후 일종의 혼수 상태였던 깊은 잠에서 처음으로 깨어난 순간부터 공작부인은 그의 마음속에 무언가 심상찮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가 애써 숨기고 있는 깊은 감정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름 아니라 피브리스는 감옥을 떠나온 것에 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슬픔의 이유를 들키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대답하고 싶지 않은 여러 질문이 쏟아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뭐라고! 공작부인은 파브리스가 침울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23]
파브리스가 달아난 다음 날부터 보잘 것 없는 짧은 시 한 편이 여러 사람 앞으로 배달되었다. 파브리스의 탈옥을 금세기의 가장 빛나는 행위의 하나로 칭송하고, 그를 날개를 펼치며 지상에 내려온 천사에 비유하는 시였다. 그 다음 날 밤에는 파르마 사람들 사이에 또 한 편의 근사한 시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시의 내용은 파브리스가 밧줄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면서 지난날의 갖가지 추억들을 독백하는 것이었다. ~~~파란테 팔라의 문체를 알아보았다. ~~~
파브리스는 사정이 허락하는 한 다시 파르마로 돌아가려고 굳게 마음먹고 있었다. 그는 대주교에게 루도빅을 보내서 긴 편지 한 통을 전했다. ~~~루도빅은 파비아 근처 피에몸테의 마을 나자로산을 떠나 급히 파르마로 돌아갔다. ~~~피트라르카 소네트가 적힌 비단 손수건을 클렐리아 콘티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
어느 날 저녁 공작부인은 후작부인과 그녀의 두 딸과 함께 로카르노의 파브리스에게 와 있었다. 이 지방 수석사제와 주임신부가 이 귀부인들에게 인사하러 찾아왔다. 어떤 상거래에 관계하고 있어서 세상 소식에 밝은 수석사제가 문들 말을 꺼냈다. 파르마 대공께서 서거했다는군요! 공작부인의 안색이 몹시 창백해졌다. 그녀는 겨우 용기를 내 물어보았다.~~
공작부인은 파브리스를 쳐다보았다. 나는 이 아이를 위해 일을 했다. 부인은 생각했다.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더 무서운 짓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아이는 내 앞에서 이다지도 무심하게 다른 여인을 생각하고 있다니! ~~~~그녀는 스무 살이고 나는 근심에 지치고 병약하며, 나이도 두 배나 되다니!~~~마흔 살의 여자는 젊은 시절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의 추억 속에서나 한 가닥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마지막 숨을 내쉬는 그 순간 비로소 파브리스에게 말하리라. 무정한 사람! 이 모든 것이 너를 위한 일이었어! 라고...
[24장]
[25장]
우리 주인공이 성채 감옥으로 들어온 일은 클렐리아를 절망에 빠뜨렸다. 신앙심이 깊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성실한 이 소녀는 자신이 피브리스와 멀리 떨어져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부친의 독살 소동이 있었을 때 부친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 크레센치 후작과 결혼하겠다고 성모 마리아께 맹세했었다. 파브리스를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던 것이다. ~~~
이번에는 파브리스 나리께서도 성채 밖으로 나가실 수 없을 겁니다요. 담을 넘어 나가는 것과 같은 그런 잘못을 다시 범하시지는 않을 거야. 클렐리아가 대답했다. 하지만 무죄 판결이 나면 문으로 당당하게 나가실 수 있을걸. ~~~
방 안에는 파브리스가 저녁 식사가 놓인 작은 탁자를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탁자로 달려들어 그것을 뒤집어 버렸다. 그러고는 파브리스의 팔을 잡으며 외쳤다. 이걸 먹었나요? 이런 가리낌 없는 말투에 파브리스는 너무나 기뻤다. 걱정으로 다급해진 나머지 클렐리아는 처음으로 여자다운 수줍음을 잊고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 보이고 만 것이다. 파브리스는 이 위험한 식사를 막 들려던 참이었다. 돌연히 나타난 클렐리아를 본 그는 그녀를 품에 안고 뜨겁게 입 맞추었다. 이 식사에는 독약이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
그 전날 밤 파브리스가 제 발로 성체 감옥에 들어가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부인이 알기 전, 궁정에서는 또 한 번의 코메디아 델라르테 공연이 있었다. ~~~
파브리스는 대공의 호의에 감사한 후 시립감옥에 들어가기 전 대주교를 만나 보게 해 달라고 청했다. 그때 문득 대공의 어린아이 같은 머릿속에, 독약 이야기가 공작부인의 상상력으로 꾸며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26장]
파브리스가 잠시나마 깊은 슬픔에서 벗어날 때가 있다면 그것은 클렐리아가 숨어 살고 있는 콘타리니 저택 맞은편 자신이 빌린 방 창가에서, 기름종이를 떼고 대신 끼워 넣은 유리 뒤에 몸을 숨기며 보내는 짧은 시간뿐이었다. 성채에서 나온 후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적은 불과 한두 번뿐이었다. ~~~
파브리스에 대한 열정으로 다급한 나머지 과오를 범하고 만 이후, 그녀의 표정에는 기품과 신중함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마치 서른 살이나 되어 보였다. ~~~그녀는 성모님께 했던, 나를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맹세를 지키려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는 거야. 그는 이렇게 짐작했다. 그러나 피브리스가 헤아릴 수 있는 클렐리아의 슬픈 심정은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대공의 노여움을 사서, 자신이 크레센치 후작과 결혼하기 전에는 파르마로 돌아와 궁정 출입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이 이 결혼을 원하고 있다는 편지를 써서 아버지에게 보냈다. 그때 장군은 토리노에 피신해서 화병으로 누워 있었다. ~~~
그녀는 파브리스가 콘타리니 저택 맞은편 창문 너머의 방을 빌렸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파브리스를 불행히도 바라보게 된 것은 단 한 번 뿐이었다. 그때마저도 그녀는 그와 닮은 얼굴과 풍채가 언뜻 눈에 띈 순간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다. ~~~
어느날 어둠이 몰려오자 파브리스는 시골 지주 같은 차림으로 저택 문 앞에 나타났다. 그곳에는 이미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놓은 하인 한 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클렐리아 아씨 부친의 서신을 가지고 토리노에서 온 사람이라고 알렸다. 하인은 이 말을 전하러 가면서, 그를 저택 2층 큰 거실로 올라가게 했다. 파브리스가 이 방에서 보낸 15분가량은 아마도 일생에서 가장 불안에 떨어야 했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하인이 돌아와 클렐리아 콘티 아씨가 만나시겠다고 했음을 알렸다. ~~~
클렐리아는 작은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그녀는 변장한 사람이 파브리스임을 깨닫자마자 도망쳐 거실 안쪽 구석진 곳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어쩌면 이리도 나의 구원을 모르는 체하십니까. 아버지가 독약 때문에 돌아가실 뻔했을 때 내가 성모님께 다시는 당신을 보지 않겠다고 맹세한 사실을 잘 알고 계시면서, 내가 이 맹세를 어긴 적은 그날 밤, 내 일생에서 가장 불행한 그날뿐입니다. 그때는 당신을 죽음에서 구해 내는 일이 급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이 또한 분명 죄가 될 어처구니없는 구실을 만들어 당신의 목소리를 들어 보려 한 것이니 이미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
사랑하는 파브리스 왜 이리도 늦게서야 내게 온 건가요! 지금은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큰 죄가 되니,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없군요. ~~~내 불쌍한 아버지가 비록 당신께 복수하려는 마음을 품긴 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가혹하게 되갚으시다니 당신의 탈옥을 위해 먼저 독살될 뻔 한 사람은 바로 내 아버지가 아니던가요? 당신의 생명을 구하려고 지켜야 할 본분마저 내팽개쳤던 나를 생각해서라도 그렇게까지 해서는 안 되었을 것을! 더구나 당신은 이제 성직에 매인 몸이니, 비록 내가 저 보기 싫은 후작을 피할 방법을 찾아낸다 한들 나와 결혼할 수 없지 않은가요?~~~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수많은 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져나온 이 만남이 빨리 끝날 수야 없었다. 파브리스는 그녀에게 부친이 추방된 정확한 경위를 이야기했다. 공작부인은 콘티 장군이 독약을 쓸 생각을 했다고는 믿지 않았으므로, 이 일에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부인의 짐작에 따르면 이 독살 음모는 모스카 백작을 쫓아내려는 라베르시 후작부인 일파가 꾸며 냈으리라는 것이었다. ~~~
토리노에서 갔다 돌아온 선량한 동체사레가 성실한 마음에서 용기를 내어 공작부인을 만나러 왔다. 그는 부인에게 이제부터 자신이 이야기하는 비밀을 절대 퍼뜨리지 않겠다는 언약을 받은 다음 그의 형이 그릇된 명예욕에 눈이 멀어 있던 차에, 파브리스의 탈옥으로 모욕을 당하고 높은 사람의 신임을 잃었다고 믿었으며, 그래서 복수해야겠다는 마음에 독약을 쓴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
클렐리아는 부친을 뵙기로 마음먹었다. 장군은 토리노 근처 어느 마을에 이름을 바꾸고 숨어 있었는데, 구태여 가명을 쓴 이유는 파르마 궁정이 자신을 재판에 넘기기 위해 토리노 궁정에 자신을 인도하라고 요구하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으로 그녀는 파브리스에게 영원히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이 편지를 받자 파브리스는 파르마에서 157킬로미터 떨어진 산중의 벨레자 수도원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
승계권을 부여받음 보좌주교로서의 의무 때문에 파브리스는 파르마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후견인인 란드리아니 대주교의 정권에 못 이겨 대주교관의 작은 방 하나를 처소로 삼았다. 그러나 그는 신앙상의 근신을 이유로 이 방에서도 계속 은신하겠다고 선언했으며, 단 한 명의 하인만을 데리고 자기 방에 틀어박힌 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가 강건한 성직자라는 대담한 평판이 생겼다. ~~~그가 보인 이 일련의 행동들도 그 절망감을 이기지 못한 결과였으나, 사람들 사이에서는 소박하고도 숭고한 신앙심의 발로라고 칭송되고 있었다. 그런 터라 신앙심 동독한 여인네들은 가장 어리석은 허영심으로 버무려진 그의 가계사 번역서를 마치 교양 책인 양 읽곤 했다. 서적상들은 그의 초상화를 석판으로 인쇄하여 내놓았는데, 그 초상화들은 단 며칠 사이에 날개 돋친 듯이 다 팔려 나갔다. ~~~
[27장]
파브리스는 많은 일을 해야 했다. 란드리아니 대주교는 일흔 두 살이라는 나이를 이기지 못하고 쇠약해져서 대주교관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주교가 수행해야 할 대부분의 업무가 보좌주교에게 주어진 것이다. ~~~
설교는 8시 반에야 있을 거라고 알렸는데도, 벌써 2시에 성당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여러분도 상상할 수 있으리라. 크레센치 가의 고상한 저택이 위엄을 부리고 있는 이 한적한 거리가 별안간 얼마나 소란해졌을지를. 파브리스는 자신이 오늘 밤 ‘자비로운 성모님’을 찬양하기 위해 자비심에 대해 설교할 예정이며, 그 내용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불행한 사람을(비록 그가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불쌍히 여겨야 한다는 내용이 될 것이라고 알려 놓았다.
[28장]
지상에 다시없는 이 최고의 행복을 누리며 3년의 세월을 보낸 후, 파브리스의 심경에는 애정이 지나쳐 변덕이 깃들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모든 것이 변하고 만다. 후작부인에게는 산드리노라는 두 살 난 귀여운 아들이 있었다. 이 아들은 어머니의 귀한 기쁨이었다. 아이는 언제나 어머니와 함께 있거나, 크레센치 후작의 무릎 위에서 놀았다. 그에 반해 파브리스는 이 아이를 거의 볼 수 없었다. 파브리스는 아들이 다른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는 일이 싫었다. 그래서 그는 기억이 뚜렷하게 남기 전에 아이를 빼앗으리라 마음먹었다.
후작부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는 낯 동안의 긴긴 시간에 산드리노를 보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 이유란 그녀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성모님께 바친 맹세에는 충실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독자도 기억하겠지만, 그녀는 결코 파브리스를 보지 않겠습니다라고 성모님과 약속하지 않았던가. 자신이 맹세한 말이 정확히 이러했으므로, 그에 따라 그녀는 밤에만 연인을 맞아들였다. 그리고 방 전체에서 단 한 줄기의 빛까지도 가려 버리곤 했다.
그러나 파브리스는 하룻밤도 빠짐없이 사랑하는 여인 곁에 갈 수 있었다. 놀라운 점은, 호기심과 권태로 부글거리는 궁정 생활 가운데 있으면서도 파브리스의 잘 계산된 신중한 처신 덕분에, 롬마르디아 사람들이 말하는 이런 우정은 전혀 눈치 채이는 일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가 아무 일 없이 평온하기에는 사랑이 너무나 격렬했다. 클렐리아는 늘 질투심을 품어야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언쟁은 거의 언제나 다른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파브리스는 어떤 공식적인 행사를 빌미로 후작부인과 자리를 함께하여 그녀를 바라보려 했고, 그러면 부인은 구실을 대어 얼른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연인을 곁에 오지 못하게 하곤 했던 것이다.
란드리아니 대주교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 파브리스의 종교적 경건함, 모범적인 품행, 그리고 설득력 있는 언변은 곧 그 사람 좋은 대주교를 잊혀지게 했다. 그의 형도 죽었다. 그래서 가문의 전 재산이 그에게 넘겨졌다. 이때부터 그는 파르마 대주교구에서 들어오는 수입인 십 수만 프랑 가량을 매년 관할 교구의 보좌주교며 사제에게 분배해 주었다. ~~~
어느날 그는 클렐리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낮에는 나를 보지 않으려고 하니, 이런 당신의 맹세를 내가 존중하고는 있다 해도 역시 내 삶의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어요. 나는 늘 혼자 있어야만 하고, 일 외에는 마음 붙일 곳이 없는데, 그 일마저도 없군요. 하루 온종일 그 긴긴 시간을 매일같이 나를 엄하게 절제하며 슬픈 심정으로 지내다 보니 어떤 생각이 떠올라 나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반년 전부터 이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애쓰고 있지만 잘되지 않습니다. 내 아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며, 결코 내 이름도 듣지 못하리라는 생각이지요. 크레센치 저택의 부족할 것 없는 호사 속에서 자라나, 나를 혹 보게 된다고 해도 누군지 알려고나 하겠습니까? 몇 번 안 되지만 내가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나는 아이의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내가 바라볼 수 없는 그 천사와 같은 아름다움을 기억 속에 불러일으켜 주는 것이지요. 그는 내 얼굴을 보고 근엄하다고 여길 겁니다. 어린아이들에게 근엄하다는 것은 침울하다는 말과 다를 바 없지요.
아 그렇다면! 하고 후작부인이 겁먹은 듯 말했다. 어떻게 할 생각으로 그런 말씀을 하는 건가요? 나는 두려워요. 내 아들을 되찾아야겠습니다. 그 아이가 나와 함께 살기를 바라요. 매일 그 아이를 보며 그가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마음 놓고 그 아이를 사랑해 주고 싶어요. 다감한 마음을 지닌 수많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그 행복을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기이한 운명으로 인해 빼앗긴 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지 못하고 있으니, 내 마음속에 당신의 모습을 불러일으켜 주고, 조금이라도 당신의 자리를 메울 수 있는 존재나마 내 곁에 두고 싶은 겁니다. 어쩔 수 없이 강요받은 외로움 속에서는 일도 사람도 내게 짐이 됩니다. 바르보네가 내 이름을 죄수 명단에 올리던 그 행복한 순간 이후로, 야심이라는 말이 나에겐 늘 아무 뜻 없는 부질없는 단어였다는 사실을 당신도 아시지요. 당신과 멀리 떨어져 우울할 때면, 오직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들만 갖게 될 뿐, 다른 모든 일은 하찮게 느껴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슬픔이 가엾은 클렐리아의 가슴에 던진 그 고통이란 얼마나 감당키 어려웠던지, 파브리스의 심정을 이해하는 만큼 그녀의 괴로움은 더욱 깊었다. 정말 맹세를 깨뜨려서는 안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기까지 했다. 그렇게 하면 살롱에서 방문객을 맞듯이 하면서 밝은 불빛 아래서 그를 맞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현숙하다는 평판은 너무도 확고해서 그 누구도 이 일을 소문의 꼬투리로 삼지는 못할 것이다. 돈을 많이 헌납해서 그 맹세로부터 자신을 구제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이런 세속적인 방법으로는 자신의 양심이 한충 더 괴로울 거라는 사실을 그녀는 또한 느끼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새로운 죄악에 노여워진 하늘이 벌을 내리리라 생각했다.~~~
파브리스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아이가 병이 난 것처럼 가장해야 하오. 병세가 점점 더 나빠져서, 크레센치 후작이 집을 비우는 동안 마침내 죽은 것으로 꾸미는 겁니다. 클렐리아로서는 이러한 방법이 싫다 못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는 불화가 생겼으나 오래가지는 않았다. 클렐리아는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된다고 간곡히 말했다. 이처럼 사랑스런 아들도 죄악의 소산인데, 더구나 하늘의 노여움을 사게 되면 필경 하나님은 아들을 빼앗아 가고 말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파브리스는 또다시 자신의 유별난 운명을 한탄하는 것이었다. 우연히 올라서게 된 지위 때문에, 그리고 내 가슴속의 사랑 때문에 나는 영원히 고독을 짊어지고 살아야 합니다. ~~~
두 사람 모두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클렐리아는 병이 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원하는 무서운 희생을 완강히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깊이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산드리노는 병이 난 것처럼 꾸며졌다. 후작은 지체 없이 가장 용하다는 의사들을 불러들였다. 이때부터 클렐리아는 예기치 못했던 극심한 당혹감에 빠지고 말았다. 의사들이 처방해 주는 약을 사랑하는 아들에게 먹이지 않도록 막아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필요한 이상으로 침대에 붙들려 있어야 했던 아이는 정말로 병이 나고 말았다. ~~~어느쪽도 포기할 수 없는 애정 사이에서 클렐리아는 거의 미쳐 버릴 것 같았다. ~~~파브리스로서도 사랑하는 여인의 가슴에 자신이 고통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자신의 계획을 단념할 수도 없었다. 매일 밤 그는 어떤 방법이라도 써서 병들어 누운 아이 곁에 숨어들어 왔다. 이 일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또 다른 착찹한 상황이 빚어졌다. ~~~
그는 허물없이 절친한 사이인 모스카 백작에게 도움을 청했다. 수상은 이제는 나이가 많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어렴풋하게 짐작만 하고 있던 이 사랑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했다. 적어도 대엿새 동안은 후작이 집을 비우도록 꾸며 드리지. 언제쯤이 좋을까?~~~이 틀 후 후작이 만토바 근처 그의 영지로부터 말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분명히 무슨 특별한 복수를 하기 위해 고용된 듯한 불한당들이 그를 납치했다. 불한당들은 후작에게 난폭한 짓은 전혀 하지 않았으나, 그를 데려가 나룻배 한 척에 태웠다. 나룻배는 사흘 동안 포강 줄기를 타고 내려가, 예전 파브리스가 질레티 사건 때 겪었던 것과 같은 여행을 했다. 나흘째 되던 날 불한당들은 후작을 포강에 있는 한 황량한 섬에 내려놓고 달아나 버렸다. ~~~후작은 파르마의 저택으로 돌아오는 데 꼬박 이틀을 소비해야 했다. 돌아와 보니 집에는 검은 휘장이 둘러쳐 있고, 사람들은 전부 슬픔에 잠겨 있었다. ~~~
산드리노는 비밀리에 어떤 아름다운 대저택에 옮겨졌고, 후작부인이 거의 매일 아이를 보러 그곳에 왔지만, 몇 달 후에 아이는 죽고 말았다. 클렐리아는 성모님께 바친 맹세를 어겼기 때문에, 응당 받아야 할 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산드리노가 병으로 누워 있는 동안, 자신이 파브리스를 밝은 불빛 아래서 보는 일이 자주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대낮의 환한 불빛 아래서 본 것도 두 번이나 되었고, 그때마다 사랑의 황홀함에 취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사랑하는 아들의 뒤를 따라 불과 몇 달 뒤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품안에서 숨을 거두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파브리스는 자살을 택하기에는 너무나 사랑이 깊었고, 믿음 또한 강했다. 그는 더 좋은 세상에서 클렐리아를 다시 만날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총명했던 만큼, 그 희망을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죄의 대가를 치러야 되리라고 느꼈다.
클렐리아가 죽은 뒤 곧 그는 몇 장의 서류를 만들어 서명했다. 이 서류는 하인 각각에게 1000프랑의 연금을 보장하고, 자기 자신에게도 단지 그만큼의 연금만을 남기는 것이었다. 연수가 거의 10만 리브르에 달하는 영지는 모스카 백작부인에게 남겼으며, 모친인 델 동고 후작부인에게도 동일한 금액을 보냈다. 그리고 부친 재산 중에서 남은 것은 불행한 결혼을 한 누이 한 명에게 주었다. 그 다음 날, 대주교직의 사임과 함께 에르네스트 5세의 홍의와 수상의 우정으로 연달아 얻은 모든 직위에 대한 사직서를 당국에 보낸 뒤, 그는 사카에서 8킬로미터쯤 떨어진 포강 기슭 숲속에 자리 잡은 파르마 수도원으로 은거해 들어갔다.
모스카 백작 부인은 남편이 수상 직위에 복귀하는 것을 그 당시 아주 환영했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결코 에르네스트 5세의 나라로 되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포강 왼편 기슭 카살 마조레에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따라서 오스트리아 영토에 t고하는 비나노에 저택을 마련했다. 백작이 그녀를 위해 세운 이 화려한 비나노의 저택에는 매일 수많은 친구들이 모였으며, 매주 목요일에는 파르마의 상류층 인사들이 빠짐없이 초대되곤 했다. 파브리스도 은거하지 않았더라면 하루도 빠짐없이 이 비냐노에 왔었을 것이다. 간략히 말하자면 백작부인에게는 외견상 행복에 필요한 모든 삶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던 파브리스가 수도원에서 겨우 1년 뒤 저세상으로 가 버리자, 그녀 자신 또한 얼마 더 살지 못했다.
파르마의 감옥은 텅텅 비었고, 백작은 막대한 재산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에르네스트 5세는 신하들로부터 토스카나를 다스린 대공들의 훌륭한 치세에 비유되어 칭송을 받았다.
-소수의 행복한 사람들에게 바친다 To the Happy Few
[Review]
“어느 날 밤 새벽 1시경, 파브리스는 창가에 몸을 기대고 차양의 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이 높은 파르네제 탑에서 즐길 수 있는 별들과 끝없는 지평선이 만들어 내는 정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포강 하류와 페라라 방면의 평원을 헤매고 있을 때였다. 아주 작지만, 강렬한 불빛이 우연히도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 불빛은 어떤 탑의 꼭대기에서 쏘아 보내는 것 같았다.” (본문)
살인죄로 파르네제 탑에 갇힌 파브리스는 외부와 단절된 채 이미 사형의 선고만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뿐만 아니라 정치권력의 암투로 인해 독살의 위협까지 받고 있었다. 그의 석방을 위해 물씬 양면으로 돕고 있는 고모 산세베리나 공작부인은 불빛을 통해 파브리스에게 사랑의 신호를 보내며 밧줄을 들여보내서 그를 구출할 것을 알려주었다. 그 불빛은 절망에 빠진 파브리스에게 새로운 소망이었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승리로 이끈 나폴레옹은 전 유럽까지 그의 영향권 아래 두었으나,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며, 대서양의 외딴섬 세인트헬레나로 유배되어 1821년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이 소설은 나폴레옹의 계몽주의를 따르는 젊은 귀족 출신, 파브리스 델 동고 와 그를 둘러싼 두 여인의 사랑과 정치권력의 이야기다. 철없는 이상주의자 파브리스는 감정에 따라 워털루 전투에 참여했지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잔병들의 무리 속에서 천신만고 끝에 귀향한다. 그러나 그는 나폴레옹을 반대하는 형의 고발로 인해 정치적 재판에 휘말리게 되었다.
이 일로 고모인 산세베리나 공작부인이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에 묘한 사랑의 관계가 시작된다. 공작부인은 권력의 본질을 이해하고, 인간의 허영을 알고 정치적 위험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녀는 자기에게 연정을 품고 접근하는 모스카 백작을 십분 활용하여 파브리스를 위한 구명운동에 적극 나선다.
“나는 조카 파브리스를 도와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여기 왔어요. 옛 친구에게 하는 이야기니까 진실을 조금도 숨김없이 말하지요. 이제 열여섯 살하고 반년밖에 지나지 않은 조카가 가당찮은 바보짓을 저질렀어요.”(본문)
그러나 파브리스는 또 다른 여러 사건에 휘말리면서 점점 더 곤경에 처하게 되고 결국에는 파르네제 탑의 높은 곳에 갇히고 말았다. 그는 그곳에서 탑을 관리하는 파비오 콘티 장군의 딸 ‘클렐리아 콘티’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젊고 아름다운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으로 진전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장군은 정치적 야심을 가진 자로서 그의 딸을 크레센치 후작과 결혼시키려고 그녀를 설득했다.
결국 파브리스는 산세베리나 공작부인의 도움으로 파르네제 탑에서 탈출했고, 이 일로 클렐리아의 부친은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자, 그녀는 아버지가 원하는 결혼을 받아들이기로 성모님께 약속했다.
그 후 파브리스는 대주교의 자리에 올랐고 3년간 평온한 삶을 누리며 살았다. 그의 설교는 인기가 있었고, 그의 형과 부친인 대귀족 델 동고 후작 모두 세상을 떠나자 막대한 유산은 파브리스에게 주어졌다. 그동안 클렐리아는 후작과 결혼하여 아들, 산드리노를 낳았고, 결혼생활은 외견상 행복해 보였다. 한편, 공작부인도 파브리스가 자기보다 젊고 아름다운 클렐리아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되자 슬픈 이별을 하고 모스카 백작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지막 숨을 내쉬는 그 순간 비로소 파브리스에게 말하리라. 무정한 사람! 이 모든 것이 너를 위한 일이었어! ”(본문)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비극적이다. 파브리스는 대주교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이미 결혼한 클렐리아와의 계속적인 만남을 이어갔으며, 아들 산드리노는 모스카 백작이 아닌 파브리스의 아들이었다. 더 나아가 파브리스는 그 아들 산드리노를 차지하려는 무서운 계획을 세운다. 클렐리아와 짜고 모스카 백작이 오랫동안 집을 비우도록 한 후 아들을 빼내온 다음 백작에게는 그가 병으로 죽은 것으로 속이는 일이었다.
계획대로 산드리노는 비밀리에 파브리스의 아름다운 대저택에 옮겨졌고, 클렐리아는 남편 몰래 거의 매일 아이를 보러 그곳에 왔지만, 몇 달 후에 아이는 죽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 역시 몇 달 뒤 아들의 뒤를 따라 숨을 거두었다. 그러자 파브리스 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주변에 나누어주고 대주교의 자리에서 물러나 조용한 숲속에 자리한 파르마 수도원에 은거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 되었다.
스탕달이 말년에 구술로 펴낸 이 작품은 당시 세속화 되어가는 종교적 분위기와 정치권력 투쟁을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소설의 주인공 파브리스에 대한 인물 설정이 약간 모호한 점도 있다. 델 동고 후작의 아들이지만 형제간의 갈등과 고모와의 사랑의 관계에서 보이는 묘한 분위기가 독자에게 실제 아들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모든 일에 앞뒤를 가리지 않는 순진한 청년 파브리스에 비해 계산적이고 치밀한 공작부인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묘사도 눈여겨 볼만하다. 700쪽이 넘는 분량으로 당시에는 유럽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냈으며, 정치권력과 사랑을 테마로 한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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