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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4-17
육의 눈과 영의 눈 / 조용기 목사
안개는 항공, 항해, 육상 교통에 큰 장애가 됩니다. 안개낀 공항에서는 활주로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비행기의 이착륙이 불가능합니다. 안개낀 항구에서는 앞이 안보여 선박의 충돌이 자주 일어납니다. 더욱이 고속도로에 안개가 끼면 앞이 보이지 않아 차량들이 연쇄 충돌을 하기도 합니다. 인생항로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육의 눈만으로는 안개낀 항해나 비행이나 고속도로 주행과 같습니다. 바로 눈 앞 외에는 앞길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종종 희망을 잃고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1. 도단성을 둘러싼 아람의 군대
옛날에 이스라엘과 아람은 적대관계에 있었습니다. 아람 왕이 대군대를 준비해서 이스라엘 변경을 침공하면 그 때마다 이스라엘은 군대를 준비해 숨어있다가 역습을 하곤 했습니다. 아람 군대는 늘 패전했습니다. 이에 아람 왕이 가슴을 치며 “이 어찌된 일인가, 어찌하여 우리가 계획한대로 군대를 보내면 그 때마다 이스라엘의 왕이 군대를 미리 보내어 길을 막고 있는가, 이는 필경 우리 가운데 스파이가 있기 때문이다”라며 크게 진노했습니다.
아람 왕은 내각을 소집하여 이스라엘과 내통하는 스파이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 때 그의 신복 중 한 사람이 “왕이여 이스라엘에는 선지자 엘리사라는 사람이 있어 그는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엘리사가 있어, 그는 육의 눈만 가지고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의 눈을 열어 주셨으므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만 리 밖에 있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아람 왕이 계획하는 모든 것을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여 미리 군대를 동원해서 막도록 했습니다. 아람 왕은 신하에게 엘리사를 잡아오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때 부하 중 한 사람이 왕에게 지금 엘리사가 도단성에서 수종 드는 사람과 묵을 것이라는 정보를 알렸습니다. 아람 왕은 최정예 군대를 총동원하여 도단성을 첩첩이 둘러싸 아침이 되면 습격하여 엘리사를 잡으려 했습니다.
아침 일찍 엘리사의 수종 드는 사람이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문 밖을 내다보다가 그만 기겁을 했습니다. 밖에는 성 전체를 아람군대가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람 군대의 깃발과 창검이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떨며 안으로 들어와 이 사실을 엘리사에게 전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엘리사는 두려움에 떠는 사환의 얼굴을 보고 웃으면서 “두려워 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 아람군대보다 많다”라고 말하며 사환이 영의 눈으로 그 사실을 볼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환의 눈을 열어 주시자 그는 불말과 불병거가 아람 군대를 에워싸고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보호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람 왕은 군대를 총동원하여 도단성을 포위했지만 결국 엘리사를 잡지 못하고 오히려 포로가 되어서 사마리아까지 끌려갔습니다.
시편 91편 11절에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를 경외하는 자를 위해서 하늘의 천군과 천사를 동원해서 지키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육의 눈으로는 이를 볼 수 없습니다.
이는 아직 영의 눈이 열리지 않았던 엘리사의 사환과 같습니다. 그에게는 현실밖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영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의 눈을 열어 주셔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 소련의 우주 비행사 티토브는 우주 여행에서 돌아온 뒤 기자회견에서 “나는 우주에서 하나님을 찾아 보려고 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볼 수 없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육의 눈을 가지고 우주에 나가 살펴본들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똑같이 우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미국의 우주 비행사 맥디브는 “나는 우주의 신비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분명히 계시다는 것을 확실하게 영안으로 보고 느끼게 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신령한 눈이 아니면 볼 수 없습니다. 이들은 모두 우주 비행사인데 한 사람은 예수님을 잘 믿고 거듭나서 영안이 열린 사람이라, 그 눈으로 우주에 나가서 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같은 우주를 보아도 육의 눈으로 보는 사람과 영의 눈으로 보는 사람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도단성을 에워싼 하나님의 군대가 엘리사에게는 보였지만 그의 사환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를 둘러싼 원수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만 본다면 우리가 사는 이곳은 너무나 불안하고 초조한 상황으로 좌절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거듭나서 영의 눈을 뜬 사람,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육신의 환경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환경과 우리 사이에 둘러 진치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군대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2. 우리를 둘러싼 원수들과 아군
우리의 환경을 육신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 천지는 죄로 꽉들어찼습니다. 우리가 매일 보고 듣고, 체험하는 모든 것들이 죄악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이처럼 죄 많은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어떻게 의롭게 살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의 눈을 떠서 보면 이처럼 죄악된 세상과 우리 사이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군대가 둘러 진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보혈의 권세가 죄악 세상 가운데 있는 우리들을 감싸 보호하며 그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어 하나님의 영광과 평안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4절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육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은 마귀와 탐욕, 추함의 군대들로 꽉 차있습니다. 이처럼 죄악된 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거룩하게 살 수 있을까요?
이 세상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으로 채워져 더럽고 추하기만 합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우리 혼자 거룩하게 지낼 수 있을까요?
그러나 이 역시 우리가 영의 눈으로 보면 우리와 이 세상 사이에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군대가 둘러 진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은혜의 군대란 바로 하나님 성령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오셔서 늘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거하시어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으로 우리가 세상의 모든 추함을 이기고 승리하도록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둘러 진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영의 눈을 열어서 은혜의 군대인 성령을 바라보고 세상의 정욕과 탐욕, 더러움의 마귀 군대를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육의 눈에 보이는 병이란 마귀군대가 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의학적으로 고칠 수 없는 흉악한 병이 많습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종류의 암이 사람들을 도둑질하고 멸망시키고 있습니다. 암 외에도 고혈압, 당뇨병 등의 각종 성인병들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육의 눈으로 이 병들을 바라보면 위축되고 불안하며 초조합니다. 그리고 과연 이 병을 이기고 살아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러나 영의 눈으로 보면 병이라는 마귀 군대와 우리 사이에는 치료의 군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에는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약속의 군대들이 우리를 둘러 진치고 있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부여잡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마귀의 군대인 병의 군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예수님은 세상보다 강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의 눈을 떠서 이러한 사실을 볼 수 있다면 그 어떠한 것이라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육의 눈으로 보이는 저주의 군대는 모두가 헐벗고 굶주리고, 직장을 잃고 사업이 무너져 살기가 어렵습니다. 온천지는 고통과 가난이라는 저주의 군대 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의 눈을 통해서 보면 또 다른 세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주의 군대와 우리 사이에 하나님의 영의 세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의 세계는 축복의 세계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주가 우리에게 물러가도록, 하나님의 속량하신 축복의 은혜가 우리를 둘러 진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바울 선생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부요케 하는 은혜의 군대가 우리를 둘러 진치고 있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은혜의 군대를 바라보고 마음에 신념을 가지고 두려워 하지 않으며 담대한 믿음으로 기도하면, 모든 저주와 가난은 물러나고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이 우리를 둘러싸게 됩니다.
또한 육의 눈에는 사망과 음부의 군대가 둘러 진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사람이 한 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이고, 죽음이 다가오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며 두려워 합니다. 그러나 죽음과 우리 사이에는 영생과 천국과 영광의 은혜가 둘러 진치고 있습니다. 사망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를 지옥으로 데려갈 수 없는 것은 사망과 우리 사이에 그리스도 은혜의 군대 즉,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영광이 우리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10절에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죽음이 우리를 둘러 진치고 있어도 우리를 죽일 수 없는 것은 죽음과 우리 사이에는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의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부활과 영생과 천국이 우리를 둘러 진치고 있으므로 우리 는 예수 그리스도 품에 안겨서 영원한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부흥사였던 길선주 목사님은 임종시 그를 둘러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하늘에서 전보가 왔으니 이제 가봐야 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음 앞에서 목사님은 슬퍼하지 않으시고 떠나셨습니다.
위대한 부흥사 디엘 무디는 임종시 눈물을 흘리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땅이 물러간다 천국이 열리고 내게 다가온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구나 내가 너희들 보다 먼저 가겠다”라고 말씀하시며 눈을 감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절망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향한 아름다운 여행이었습니다.
구세군 창시자 윌리암 부스의 아내였던 캐더린 부스는 임종시에 “죽는다기 보다는 오히려 더 나은 생애가 시작되는 것이 눈에 보이는구나 이제와서 보니 죽음이야말로 아름답고도 귀한 것이구나”라고 말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영의 눈으로 부활과 영생과 천국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함께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밖에 있는 원수들보다 많다는 것을 영의 눈으로는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서 모든 삶 가운데의 고통과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는 염려와 근심, 불안과 초조, 절망으로 인하여 사방에서 우겨쌈을 당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방에서 우리 목을 조여오는 이러한 근심과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우리는 그에 갇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보다 우리를 지키고 있는 군대가 더욱 강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나라면 우리는 바로 천국의 지상국경으로서 우리는 하늘나라의 최일선에 서 있는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군천사들이 천국의 지상국경인 우리 각 개인을 지키기 위해서 총동원해 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서 예수님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1절에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하늘나라가 임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권이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권이 임해 있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내시어 함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엘리사가 말한 것과 같이 우리와 함께 계신이가 저 세상에 있는 사람들보다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7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을 통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이에 굴하지 않았고, IMF라는 경제위기로 나라가 위태로울 때에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만일 우리 대한민국 속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는 이미 공산화 되었거나, 경제위기 앞에서 국가는 부도나고 수출입이 중단되어 기름을 수입하지 못하므로 모든 산업기관과 교통체제가 마비되는 커다란 국가적 위기에 직면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며 우리 사회는 살인과 강도가 빈번하며 무시무시한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한국은 지옥과 같이 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는 우리나라에 대해 외국 사람들은 ‘참으로 한국이라는 나라는 신기하다. 꼭 망할 것 같은데도 망하지 않고, 넘어질 것 같은데 안넘어지니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며 놀라워합니다. 그러한 위기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밖에 있는 원수들보다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육의 눈으로 보면 절망이지만, 영안을 떠서 보면 우리는 결코 절망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에는 참으로 답답한 일이 많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사람은 자식으로 인해 얼마나 답답한 일을 많이 당합니까?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 때문에, 직장인들은 요즘같은 불경기에 언제 퇴직 당하게 될까하는 불안감으로 답답하기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육의 눈으로만 보면 우리 인간 만큼 약하고 불안한 존재는 없습니다. 그러나 영안을 열고 살펴보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참으로 귀한 존재입니다. 우리 각 개인은 예수님이 흘린 보혈로 값주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도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데, 하물며 하나님 아들의 보혈을 무슨 값으로 계산할 수 있을까요?
요한계시록 5장 9절에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귀한 존재입니다. 게다가 예수님 부활 이후 우리에게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 각 개인을 성령으로 인치시어 우리의 구원을 보증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22절에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확실하게 하나님의 소유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소유물이며, 성령으로 인치신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돌보아주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서 바울 선생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손에 있으므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어둠이 다가오면 하나님께서 빛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죽음이 다가오면 생명으로, 추함이 다가오면 아름다움으로, 고통이 다가오면 오히려 축복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현재의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영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결국 선으로 이루어집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답답한 일을 당해도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아무리 우리가 핍박을 받아도 우리는 버린바 되지 않습니다. 핍박의 원수들이 우리를 둘러 진쳐도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는 하나님께서 늘 우리 안에 계시므로 바깥에서 아무리 우리를 핍박해도 버린바 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더 굳세게 우리를 품에 품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어떠한 외부의 핍박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1∼ 34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3장 5∼6절에 는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진짜로 우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무엇보다도 크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그어떤 핍박의 군대가 많이 우리를 위협할지라도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므로 주님과 함께 천국을 상속으로 받을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우리를 아무리 핍박해도 소용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온 세상 사람이 너희를 온갖 거짓말로 욕하고 핍박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뛰고 춤추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거꾸러뜨린다는 것은 죽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우리가 죽임을 당해도 없어지거나 지옥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천국으로 인도함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한 천국의 후사이므로 하늘나라를 상속으로 받기 위해서 언제나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3∼18절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후사가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늘나라는 영광의 하나님, 우주와 만물의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모든 세계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그 하늘나라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에게 상속으로 주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죽음은 겁나고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육의 몸을 버리면 영의 몸으로 영원한 천국에 들어 가서 상속자로서 아버지 앞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디도서 3장 7절에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부자의 후사가 되는 것도 대단한데, 하늘나라의 후사가 된 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장막집을 벗게 될 때, 그 때가 비로소 우리는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아름다운 하늘 천국에서 천군천사들이 우리를 환영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1∼39절에는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 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우리들은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아야만 합니다. 하늘 시민인 우리는 영의 눈으로 이 세상 나라에 하늘나라가 들어와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영의 눈으로 보면 세상의 원수들이 우리를 둘러 진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와 원수들 사이에 하늘나라 은혜의 군대가 첩첩이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또한 성령과 더불어 우리 안에 와계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 알고 믿음으로 바라보고 담대하게 입으로 시인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믿음으로 전진하게 될 것입니다.
[기 도]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육신의 눈만 뜨고 보면 우리는 외롭고 절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영의 눈을 뜨고 보면 세상보다 크신 분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주의 천사들이 우리를 둘러 진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육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영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도와 주옵소서. 그리하여 신령한 은혜를 가슴에 안고 믿음으로 사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