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제사장
멜기세덱은 행위의 제사장이 아닌 믿음의 제사장에게
주신 새이름 이다.
멜기세덱의 새이름을 받은 동방의 제사장은 믿음이 없어 행위의 이스마엘 만이 낳을수 밖에 없고 약속의 아들 이삭을 절대 낳을수 없는 서방의 아브라함에게 14년간 믿음을 세워준 믿음의 스승이요. 하늘로 부터 받은 믿음의 의의 전달자이다.
믿음의 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믿음의 제사장들이 되려면 하늘로
부터 내려오는 믿음의 의를
막는 장애물이 제거 되어야
한다.
바다를 덮을 만한 하늘로
부터 받은 지혜로 말미암은
많은 지식을 가진 솔로몬이
결국 자기의 의를 세움을
따라 감으로 그의 나라가 두동강이 나고 패망함과 같이 자기 의를 세우는 결과가 이러하다.
하늘로 부터 내려오는 믿음의
영생하는 의를 받지 못함은 부자 청년과 같이 자기 선함을 세우려는 자기의 의가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이어져 회복되지 못하고 끊어질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은 지음 받을때 텅비어 있는 빈 그릇과 같은 존재로
지어져 하나님의 선한 의를
받아 담으면 선한 그릇이 되고 자기 선을 세워 스스로 하나님 되려는 마귀의
악한 의를 받아 담으면 악한 그릇이 된다.
땅에 나오는 자기를 세우려는 의는 하나님 없이 스스로 선을 쌓고 쌓아 하늘 까지 치솟아 오르려는 바벨탑과 같다
선악 열매의 후휴증으로 인하여 자기 자신의 들보(선한 자기 의)를 보는 마음의 눈은 어둡게 되고 남의 티(선한 자기 의)를 세우려 하는 것은 마음의 눈이 밝아 졌기에 교만하다 판단하여 미워하여 멀리 한다.
아무리 넓고 깊은 성경 지식이 있어도 이러한 자기 의(선)가 세워질수록 막는 큰
장애물 되어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믿음의 의를 받지 못하기에 그 큰 지식과 믿음이 서로 화합할수 없도다.
자기 의를 세우는 매개체는
높은 "상석"의 자리나 가진 "재물"이나 육신의 "행위"이다.
부자 청년이 어려서 부터 돈이 많았기에 조금씩 기부하는 매개체인 재물로
자기의 선한 의를 쌓아 하나님의 의를 막는 장애물이
되었기에 더는 자기 선을 세울수 없도록 거지가 되어
나를 따르면 하늘의 의를 알고 영생하는 그 믿음의 의를 받을수 있다는 것이다.
욥의 생명 만을 빼고 그가
선을 쌓아 자기 의를 세우는
모든 매개체와 육신의 행위 까지 못하도록 마귀를 보내
쳤어도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이 소경이라 하나님의 의를
막는 장애물을 보지 못하다가
결국 엘리후 선지자의 증거하는 말을 통하여 그 하늘 턱밑 까지 올라온 악한 자기 의를 알고 그 의의 바벨탑이 단번에 허물어져
하늘의 의와 이어진 의의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복을
입었다.
애굽에서 쌓는 의는 돈이란
물질이고 광야에서 쌓는 의는
육신의 행위로 몸 밖에 보이는 것들 이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 서면(영적 신앙)
여리고성과 같은 나의 의가
장벽으로 하나님의 의와
이어지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장대한 골리앗이 다윗의 진리의 작은 물 멧돌에 허물어 지듯이 자기 안에 세워진 여리고성 장벽과 같은 선을 쌓아 이룬 자기의 의를 스스로 무너트릴수 없다.
욥의 여리고성 보다도 비교
할수 없는 자기 선함의 의를
엘리후의 계속 되는 입나팔
소리에 허물어지고 여리고성과 같이 높고 튼튼한
장벽이 하나님을 앞에 세우고 그 성을 일곱번 돌며 계속하여 불어대는 나팔 소리에 순간에 허물어 진것과
같이 우리 속에 하나님의 믿음의 의를 막는 자기 선함을 믿고 세우는 의도
이와 같이 계속 반복되는
복음의 나팔소리에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허물어져
버린다.
땅으로 부터 올라온 나의 의가 허물어 지는 순간 하늘로 부터 내려 오는 수직 믿음의 의와 저절로
이어진다.
이어진 그 믿음의 의는 사람과 사람의 수평으로 흘러
그 내려온 하늘의 의가 수직과 수평을 이룬 "의의 흰 십자가"를 내 안에 이루어 자게 한다.
하얀 순결의 의의 십자가가 죽음후 반드시 있는 첫째 사망의 심판대를 유월하여 영생 천국에 직행으로 들어 가는 "천국행 표"이다.
하늘의 의와 이어진 새 생명으로 태어나 새 이름 받은 아브라함, 베드로, 바울같이 멜기세덱을 따라 새이름 받아 그의 반차를 따르는 "왕"이며 복음을 증거하는 "선지자"요. 믿음의 "제사장"으로 기름(그리스도)이 부어지는 영광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