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방유취 권1 / 《간이방(簡易方)》 네 가지 대오에 대한 이론〔四大奧論〕
나는 여러 의가(醫家)의 처방과 이론을 두루 섭렵하면서 의학의 묘리(妙理)를 탐구하였다. 반복해서 불교 서적〔佛書〕을 읽으면서 불경(佛經) 중에서 상당수가 의료를 인용하여 비유한 것을 보았다. 의료는 훌륭한 수단〔方便〕이며 모든 사람을 널리 구원한다. 따라서 치료하는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임을 알게 된다. 치료하는 와중에 의사의 마음이 부처의 마음인 이유를 밝히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대체로 사람은 태어날 때 우주 내에 자기 형상을 의탁하되, 사대(四大)를 빌리고 결합시켜 몸을 만든다. 사대란 무엇인가? 지(地 흙의 기운)ㆍ수(水 물의 기운)ㆍ화(火 불의 기운)ㆍ풍(風 바람의 기운)이다. 태어날 때는 이것들을 통해 몸을 이루고, 죽을 때는 이것들을 통해 소멸하니, 본래부터 몸이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죽고 삶이 여기에 달려있으므로, 의인(醫人)이 된 사람은 마땅히 죽고 사는 이치를 밝힘으로써 그 질병 고통의 원인을 탐구해야 할 것이다.
무릇 머리카락〔髮〕ㆍ털〔毛〕ㆍ손발톱〔爪〕ㆍ치아〔齒〕ㆍ피부〔皮〕ㆍ살〔肉〕ㆍ근육〔筋〕ㆍ뼈〔骨〕ㆍ골수〔髓〕ㆍ뇌(腦)ㆍ때〔垢〕ㆍ혈색〔色〕은 모두 지(地)에 속한다. 만약 사대(四大) 중에 지대(地大)가 조화롭지 못하다면 머리카락이 시들고, 털은 뽑히며, 손발톱이 메마르고, 치아가 건조해지며, 피부는 처지고, 살은 떨어져나가며, 근육이 위축되고, 뼈가 저리며, 골수는 소진되고, 뇌가 흔들리며, 얼굴에는 때가 끼고, 혈색은 나빠진다. 이러한 질병들은 지대(地大)에서 기인한 것이다.
침〔唾〕ㆍ콧물〔涕〕ㆍ고름〔膿〕ㆍ피〔血〕ㆍ진액(津液)ㆍ거품침〔涎沫〕ㆍ가래〔痰〕ㆍ눈물〔淚〕ㆍ정액〔精〕ㆍ기운〔氣〕ㆍ대변과 소변〔大小便利〕은 모두 수(水)에 속한다. 만약 사대(四大) 중의 수대(水大)가 조화롭지 못하다면 침이 늘어나고, 코가 막히면서 콧물이 나며, 고름이 쏟아져 나오고〔 濃潰〕, 피가 넘치며, 진액이 조절되지 못하고, 거품침이 입 밖으로 흘러나오며, 가래가 끓고, 눈물이 넘치며, 정액이 멋대로 나가고, 기운은 새며, 불결한 대변과 소변이 몸 밖으로 흘러넘친다. 이러한 질병들은 수대(水大)에서 기인한 것이다.
사람의 온기는 사대(四大) 가운데 화대(火大)로 귀결되고, 동작은 풍대(風大)로 귀결된다. 만약 화대가 조화롭지 못하다면 답답하거나, 열이 나거나, 목이 몹시 마르거나, 악창〔癰 痬〕이 생기거나, 미쳐서 날뛰거나, 몸을 주체하지 못하게 된다. 만약 풍대가 조화롭지 못하다면 몸의 반쪽이 마르면서 움직일 수가 없거나, 사지가 마비되거나, 입과 눈이 한쪽으로 틀어지거나, 근맥(筋脈)에 경련이 일어나거나, 가렵거나, 아프거나, 마비되거나, 손발이 저리게 된다. 화대와 풍대는 그 질병이 각각 다르다.
이 네 가지가 서로 화합하면 몸이 편안하다. 하나라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항상 질병에 걸릴 수 있는데, 하물며 이것들이 다 떨어져나가는 경우에 있어서랴. 또한 이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몸은 사람들이 누구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각하지 못한 것인데, 의학을 깨달은 성사(聖師)들조차 이 사실을 비밀로 감추고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오직 불교 서적에서만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대체로 부처만이 대의왕(大醫王)이 되어 생사의 이치를 통달하였으므로 이 이치를 꿰뚫어 밝힐 수가 있었다. 나는 불경에서 말하는 의설(醫說)〔說〕을 배운 덕분에 의학을 일관(一貫)하게 되었다. 후대의 사람들은 내 말을 우활(迂闊)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내 말을 우활하다고 여긴다면, 이것은 또한 부처를 우활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주-C001] 간이방(簡易方) : 《간이방(簡易方)》으로 약칭하는 의서로는 《여거사간이방(黎居士簡易方)》과 《왕씨간이방(王氏簡易方)》 외에 우리나라의 《향약간이방(鄕藥簡易方)》이 있다. 하지만 《의방유취》의 인용 의서들 목록에는 《여거사간이방》만 제시되어 있으므로, 본문의 《간이방》은 《여거사간이방》이라고 판단된다. 《여거사간이방》은 13세기 후반의 중국 남송대(南宋代)에 여민수(黎民壽)가 쓴 의서이다. 불교에 귀의한 여민수는 자신의 호(號)를 여거사(黎居士)라고 하였다.
[주-D001] 대오(大奧) : 우주와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의 네 가지 근본 요소를 가리킨다. 본문에 나오는 사대(四大)도 동일한 내용을 의미한다.
[주-D002] 농(濃) : 원문은 ‘농(濃)’이지만 문맥상 ‘농(膿)’의 오각(誤刻)으로 판단된다.[주-D003] 역(痬) : 원문은 ‘역(痬)’이지만 문맥상 ‘양(瘍)’의 오각(誤刻)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