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티스 '붉은색의 조화', 1908,
작년 롯데백화점에서 열린 나탈리 레테 전시회에 간 적이 있다. 원색적이고 강렬한 배경이 귀여운 캐릭터들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알록달록한 그림들 한가운데 있자니 자연스레 같은 그녀와 같은 프랑스 출신의 화가 마티스가 떠올랐다. 그는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우연히 재능을 꽃피웠지만 피카소가 ‘뱃속에 태양이 들어있다’며 극찬한 색채감각의 보유자였다.
법률사무소의 서기로 일하던 마티스는 21살에 급성 맹장염에 걸려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몇 개월이나 침대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 아들을 위해 그의 어머니가 물감과 그림 그리는 방법이 담긴 책을 선물해 주었다. 이때를 계기로 그의 예술혼이 깨어났다.
변호사가 되기를 포기하고 모로의 제자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웠는데 이때부터 특이한 색채감각이 돋보여 스승인 모로가 그의 성공을 예견했을 정도였다. 스승의 안목은 정확했다. 그로부터 1년 후 마티스는 국립미술협회가 주최한 살롱에 그림 4점을 출품하며 화가로서의 첫 발을 순조롭게 내딛었다.

▲ 마티스 '마티스 부인의 초상', 1905
그 후 블랑뱅크, 마르케와 함께 연 합동 전시회에서 구사한 거침없는 색채에 평론가 복셀이 ‘야수들’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면서 포비즘, 즉 야수파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아카데미즘에 대항하며 인상파 이후의 새로운 시각과 기법을 추진하기 위해 순색(純色)을 구사하고 빨강·노랑·초록·파랑 등의 원색을 병렬적으로 화면에 펼쳐 대담한 개성의 해방을 시도하였다.
대기나 나무에도 붉은색을 사용하는 등 전통 사실주의의 색채 체계를 완전히 파괴했으며 명암·양감 등도 뒤섞어 놓았다. 이때 특성이 잘 드러난 마티스의 대표작으로는 <마티스 부인의 초상>이 있다.

▲ 마티스 '루마니아풍의 블라우스', 1940
<붉은색의 조화> 역시 마티스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대표작 중 하나로, 창 너머로 숲이 보이는 평범한 프랑스 가정의 식탁을 그렸다. 식탁보부터 벽까지 이어진 붉은 색 배경과 아라베스크 무늬가 차분한 분위기의 여인과 대조를 이루며 활기를 불어넣었다. 창밖 배경은 녹색 위주로 구성해 실내의 붉은색과 대비된다. 또한 여인의 무채색 옷과 실내의 원색도 일종의 대비로 볼 수 있다.
<붉은색의 조화>와 <붉은색 실내>의 화려한 장식과 무늬가 가득한 인테리어, <루마니아풍의 블라우스> 등 개성 넘치는 의상을 입은 여인들의 초상화로 마티스의 그림은 지금까지도 각종 광고나 디자인에 영감의 원천이 되며 그 화려한 색채를 잃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