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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전등록 제4권
제31조 도신道信 대사에서 방계로 나온 법손
[法嗣]은 9세世 로서 모두 76인임. 명본明本의 목록인데
지금의 목록과는 다른 점이 있으므로 앞에 싣는다.
금릉金陵 우두산牛頭山 6세의 조종祖宗
제1세 법융法融 선사禪師
제2세 지암智巖 선사
제3세 혜방慧方 선사
제4세 법지法持 선사
제5세 지위智威 선사
제6세 혜충慧忠 선사
[이상 6인은 기록에 보임]
앞의 6세 조종祖宗의 법손은 모두 70인임.
법융法融 선사 밑의 3세世에서 방계로 나온 12인
금릉金陵 종산鍾山 담최曇璀 선사
[1인은 기록에 보임]
형주荊州 대소大素 선사
유서幽棲 월공月空 선사
백마白馬 도연道演 선사
신안新安 정장定莊 선사
팽성彭城 지차智瑳 선사
광주廣州 도수道樹 선사
호주湖州 지상智爽 선사
신주新州 두묵杜黙 선사
상원上元 지성智誠 선사
정진定眞 선사[지성智誠 선사에서 나옴]
여도如度 선사[정진定眞 선사에서 나옴]
[이상 11인은 기연機緣할 어구語句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지암智巖 선사 밑에서 방계로 나온 8인
동도東都 경담鏡潭 선사
양주襄州 지장志長 선사
호주湖州 의진義眞 선사
익주益州 단복端伏 선사
용광龍光 구인龜仁 선사
양양襄陽 변재辯才 선사
한남漢南 법준法俊 선사
서주西州 민고敏古 선사
[이상 8인은 기연機緣할 어구語句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법지法持 선사 밑에서 방계로 나온 2인
우두산牛頭山 현소玄素 선사
천주天柱 홍인弘仁 선사
[이상 2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지위智威 선사 밑의 4세世에서 방계로 나온 12인
선주宣州 안국사安國寺 현정玄挺 대사[지위智威 선사에서 나온 3인]
윤주潤州 학림鶴林 현소玄素 선사
서주舒州 천주산天柱山 숭혜崇慧 선사
항주杭州 경산徑山 도흠道欽 선사[현소玄素 선사에서 나옴]
항주杭州 조과鳥窠 도림道林 선사[도흠道欽 선사에서 나옴]
항주 초현사招賢寺 회통會通 선사[조과鳥窠 선사에서 나옴]
[이상 6인은 기록에 보임]
영암靈巖 보관寶觀 선사[지위智威 선사에서 나옴]
금화산金華山 담익曇益 선사[현소玄素 선사에서 나온 2인]
오문吳門 원경圓鏡 선사
목저산木渚山 오悟 선사[경산徑山 도흠道欽 선사의 방계에서 나온 3 인]
청양靑陽 광부廣敷 선사
항주杭州 건자산巾子山 숭혜崇慧 선사
[이상 6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이상은, 구본舊本에 기록된 세대와 차례[世次]가 불분명하므로 여기서는 본장本章의 내용을 따라 법손[法嗣]을 첨주添注하여서, 모두 4세世로 하였다.
혜충慧忠 선사 밑의 두 대[兩世]에서 방계로 나온 36인[천태산天 台山 운거雲居 지智 선사와 윤주潤州 서하사棲霞寺의 청원淸源 선사 2인 을 제외한 나머지 선사는 모두 충忠 선사에서 나옴]
천태산天台山 불굴암佛窟巖 유칙惟則 선사
천태산 운거雲居 지智 선사[유칙惟則 선사에서 나옴]
[이상 2인은 기록에 보임]
우두산牛頭山 도성道性 선사
강녕江寧 지등智燈 선사
해현解縣 회신懷信 선사
학림鶴林 전全 선사
북산北山 회고懷古 선사
명주明州 관종觀宗 선사
우두산牛頭山 대지大智 선사
백마白馬 선도善道 선사
우두산牛頭山 지진智眞 선사
우두산牛頭山 담옹譚顒 선사
우두산牛頭山 운도雲韜 선사
우두산牛頭山 응凝 선사
우두산牛頭山 법량法粱 선사
강녕江寧 행응行應 선사
우두산牛頭山 혜량惠良 선사
흥선興善 도융道融 선사
장산蔣山 조명照明 선사
우두산牛頭山 법등法燈 선사
우두산牛頭山 정공定空 선사
우두산牛頭山 혜섭慧涉 선사
유서幽棲 도우道遇 선사
우두산牛頭山 응공凝空 선사
장산蔣山 도초道初 선사
유서幽棲 장藏 선사
우두산牛頭山 영휘靈暉 선사
유서幽棲 도영道穎 선사
우두산牛頭山 거영巨英 선사
석산釋山 법상法常 선사
용문龍門 응적凝寂 선사
장엄莊嚴 원遠 선사
양주襄州 도견道堅 선사
이명오尼明悟
거사居士 은정이殷淨已
윤주潤州 서하사棲霞寺 청원淸源 선사[혜섭慧涉 선사에서 나옴]
[이상 34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32조 홍인弘忍 대사大師의 5세에서 방계로 나온 107인
제1세 13인
북종北宗 신수神秀 선사
숭악嵩嶽 혜안慧安 국사
원주袁州 몽산蒙山 도명道明 선사
[이상 3인은 기록에 보임]
양주楊州 봉법사奉法寺 담광曇光 선사
수주隋州 선조禪慥 선사
금주金州 법지法持 선사
자주資州 지선智侁 선사
서주舒州 법조法照 선사
월주越州 의방義方 선사
지강枝江 도준道俊 선사
상주常州 현색玄賾 선사
월주越州 승달僧達 선사
백송산白松山 유劉 주부主簿
[이상 10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2세 37인
북종北宗 신수神秀 선사의 법손 19인
오대산五臺山 거방巨方 선사
하중부河中府 중조산中條山 지봉智封 선사
연주兗州 항마降魔 장藏 선사
수주壽州 도수道樹 선사
회남도淮南都 양산梁山 전식全植 선사
[이상 5인은 기록에 보임]
형주荊州 사랑辭朗 선사
숭산嵩山 보적普寂 선사
대불산大佛山 향육香育 선사
서경西京 의복義福 선사
홀뢰忽雷 징澄 선사
동경東京 일日 선사
태원太原 변정遍淨 선사
남악南嶽 원관元觀 선사
여남汝南 두杜 선사
숭산嵩山 경敬 선사
경조京兆 소복小福 선사
진주晋州 곽산霍山 관觀 선사
윤주潤州 모산茅山 숭규崇珪 선사
안육安陸 회공懷空 선사
[이상 14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앞의 숭악嵩嶽 혜안慧安 국사 등의 법손 18인
낙경洛京 복선사福先寺의 인검仁儉 선사[혜안慧安 국사에서 나온 6 인] 낙경洛京 복선사福先寺의 인검仁儉 선사禪師에서 서경西京 도량道亮 선사까지의 6인을 말한다.
숭악嵩嶽 파조타破竈墮 화상和尙
숭악嵩嶽 원규元珪 선사
[이상 3인은 기록에 보임]
상산常山 탄연坦然 선사
업도鄴都 원적圓寂 선사
서경西京 도량道亮 선사
양주楊州 대총관大總管 이효일李孝逸[도량道亮 선사에서 방계로 나 온 5인]
공부상서工部尙書 장석張錫
국자좨주國子祭酒 최융崔融
비서감祕書監 하지장賀知章
목주睦州 자사刺史 강선康詵
정수正壽 선사[수주隋州 신조神慥 선사에서 나옴]
홍주洪州 숭적崇寂 선사[몽산蒙山 도명道明 선사에서 나온 3인]
강서江西 괴瓌 선사
무주撫州 신정神貞 선사
자주資州 처적處寂 선사[자주資州 지선智詵 선사에서 나옴]
의흥義興 신비神斐 선사[현색玄賾 선사에서 나온 2인]
호주湖州 창暢 선사
[이상 15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3세 49인
앞의 형주荊州 사랑辭朗 선사의 법손 3인
자금紫金 현종玄宗 선사
명주明州 대매산大梅山 차車 선사
전계塼界 신휘愼徽 선사
[이상 3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앞의 숭산嵩山 보적普寂 선사 등의 법손 46인
종남산終南山 유정惟政 선사[보적 선사에서 나온 24인. 1인은 기록 에 보임.]
광복廣福 혜공慧空 선사
상월常越 선사
양주襄州 협석산夾石山 사思 선사
명찬明瓚 선사
경애사敬愛寺 진眞 선사
연주兗州 수현守賢 선사
정주定州 석장石藏 선사
남악南嶽 징심澄心 선사
남악南嶽 일조日照 선사
낙경洛京 동덕사同德寺 간幹 선사
소주蘇州 진량眞亮 선사
와관사瓦棺寺 준濬 선사
익양弋陽 법융法融 선사
광릉廣陵 연演 선사
협주陜州 혜공慧空 선사
낙경洛京 진량眞亮 선사
택주澤州 긍월亘月 선사
박주亳州 담진曇眞 선사
도량산都粱山 숭연崇演 선사
경조京兆 장경사章敬寺 징澄 선사
숭양사嵩陽寺 일행一行 선사
경조산京兆山 북사北寺 융融 선사
조주曹州 정도定陶 정丁 거사居士
대웅大雄 맹猛 선사[서경西京 의복義福 선사에서 나온 8인]
서경西京 대진동大震動 선사
신비神斐 선사
서경西京 대비광大悲光 선사
서경西京 대은大隱 선사
정경定境 선사
도파道播 선사
현증玄證 선사
서경西京 적만寂滿 선사[항마降魔 장藏 선사에서 나온 3인]
서경西京 정장定莊 선사
남악南嶽 혜은慧隱 선사
신조神照 선사[남악南嶽 원관元觀 선사에서 나옴]
경조京兆 남전藍田 심적深寂 선사[소복小福 선사에서 나온 3인]
태백산太白山 일몰日沒 운雲 선사
동백산東白山 법초法超 선사
현산峴山 유幽 선사[곽산霍山 관觀 선사에서 나옴]
익주益州 무상無相 선사[자주資州 처적處寂 선사에서 나온 4인]
익주益州 장송산長松山 마馬 선사
초超 선사
재주梓州 효료曉了 선사
서경西京 지유智游 선사[의흥義興 비斐 선사에서 나온 2인]
동도東都 지심智深 선사
[이상 45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4세 7인
앞의 흥선興善 유정惟政 선사의 법손 2인
형주衡州 정심定心 선사
경애사敬愛寺 지진志眞 선사
[이상 2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앞의 익주益州 무상無相 선사 등의 법손 5인
익주益州 보당사保唐寺 무주無住 선사[무상無相 선사에서 나온 4인. 1인이 기록에 보임.]
형주荊州 명월산明月山 융融 선사
한주漢州 운정산雲頂山 왕王 두타頭陀
익주益州 정중사淨衆寺 신회神會 선사
무계武誡 선사[전계塼界 신휘愼徽 선사에서 나옴]
[이상 4명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5세 1인
앞의 경애사敬愛寺 지진志眞 선사의 법손 1인
숭산嵩山 조照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31조 도신道信 대사 휘하에서 나온 법손 총183인과 그 방 계 76인 이는 명본明本의 목록目錄이다.
금릉金陵 우두산牛頭山 6세世 조종祖宗은 기록에 나타남.
제1세 법융法融 선사
제2세 지암智巖 선사
제3세 혜방慧方 선사
제4세 법지法持 선사
제5세 지위智威 선사
제6세 혜충慧忠 선사
앞의 6세 조종의 법손은 모두 80인 제4권 도입부에는 같은 제목의 조사 숫자가 70인으로 되어 있고, 현 본문에는 80인으로 되어 있는데, 제목으로 비추어 볼 때 6인의 조사와 법손[法嗣] 70인이 되어야 총 76인의 조사 숫자가 나오므로 본문의 80인은 70이어야 맞을 듯하다.
이다.
법융法融 선사 밑의 3세에서 방계로 나온 12인[1인은 기록에 보 임]
금릉金陵 종산鍾山 담최曇璀 선사 이 한 사람만이 기록에 보인다.
형주荊州 대소大素 선사
유서幽棲 월공月空 선사
백마白馬 도연道演 선사
신안新安 정장定莊 선사
팽성彭城 지차智瑳 선사
광주廣州 도수道樹 선사
호주湖州 지상智爽 선사
신주新州 두묵杜黙 선사
상원上元 지성智誠 선사
지성智誠 선사에서 나온 1인 - 정진定眞 선사
정진定眞 선사에서 나온 1인 - 여도如度 선사
[이상 1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지암智巖 선사 밑에서 방계로 나옴.
동도東都 경담鏡潭 선사
양주襄州 지장志長 선사
호주湖州 의진義眞 선사
익주益州 단복端伏 선사
용광龍光 구인龜仁 선사
양양襄陽 변재辯才 선사
한남漢南 법준法俊 선사
서주西州 신수대장경 원문에는 ‘서천西川’으로 되어 있는데, ‘서주西州’로 해야 맞다.
민고敏古 선사
[이상 8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법지法持 선사 밑에서 방계로 나옴.
우두산牛頭山 현소玄素 선사
천주天柱 홍인弘仁 선사
[이상 2명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지위智威 선사 밑의 3세世에서 방계로 나온 12인[6인은 기록에 보임]
선주宣州 안국사安國寺 현정玄挺 대사
윤주潤州 학림사鶴林寺 현소玄素 선사
서주舒州 천주산天柱山 숭혜崇慧 선사
항주杭州 경산徑山 도흠道欽 선사
항주杭州 조과鳥窠 도림道林 선사
항주杭州 초현사招賢寺 회통會通 선사
현소玄素 선사에서 다시 2인이 나옴.
① 금화金華 담익曇益 선사
② 오문吳門 원경圓鏡 선사
도흠道欽 선사에서 다시 3인이 나옴.
① 목저산木渚山 오悟 선사
② 청양靑陽 광부廣敷 선사
③ 항주杭州 중자산中子山 숭혜崇慧 선사
도림道林 선사에서 다시 1인이 나옴.
영암靈巖 보관寶觀 선사
[이상 6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혜충慧忠 선사 밑의 두 대[兩世]에서 방계로 나온 36인[2인은 기 록에 보임]
천태산天台山 불굴암佛窟巖 유칙惟則 선사[천태산天台山 운거雲居가 방계로 나옴]
천태산天台山 운거雲居 지智 선사
우두산牛頭山 도성道性 선사
강녕江寧 지등智燈 선사
해현解縣 회신懷信 선사
학림鶴林 전全 선사
북산北山 회고懷古 선사
명주明州 관종觀宗 선사
우두산牛頭山 대지大智 선사
백마白馬 선도善道 선사
우두산牛頭山 지진智眞 선사
우두산牛頭山 담옹譚顒 선사
우두산牛頭山 운도雲韜 선사
우두산牛頭山 응凝 선사
우두산牛頭山 법량法梁 선사
강녕江寧 행응行應 선사
우두산牛頭山 혜량惠良 선사
흥선興善 도융道融 선사
장산蔣山 조명照明 선사
우두산牛頭山 법등法燈 선사
우두산牛頭山 정공定空 선사
우두산牛頭山 혜섭慧涉 선사
유서幽棲 도우道遇 선사
우두산牛頭山 응공凝空 선사
장산蔣山 도초道初 선사
유서幽棲 장藏 선사
우두산牛頭山 영휘靈暉 선사
유서幽棲 도영道穎 선사
우두산牛頭山 거영巨英 선사
석산釋山 법상法常 선사
용문龍門 응적凝寂 선사
장엄莊嚴 원遠 선사
양주襄州 도견道堅 선사
이명오尼明悟
거사居士 은정이殷淨已
앞의 혜섭慧涉 선사에서 다시 1인이 나옴.
윤주潤州 서하사棲霞寺 청원淸源 선사
[이상 34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32조 홍인弘忍 대사의 5세에서 방계로 나온 107인
제1세 13인
북종北宗 신수神秀 선사
숭악嵩嶽 혜안慧安 국사
원주袁州 몽산蒙山 도명道明 선사
[이상 3인은 기록에 보임]
양주揚州 봉법사奉法寺 담광曇光 선사
수주隨州 선조禪慥 선사
금주金州 법지法持 선사
자주資州 지선智侁 선사
서주舒州 법조法照 선사
월주越州 의방義方 선사
지강枝江 도준道俊 선사
상주常州 현색玄賾 선사
월주越州 승달僧達 선사
백송산白松山 유劉 주부主簿
[이상 10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2세 37인
북종北宗 신수神秀 선사의 법손 19인
오대산五臺山 거방巨方 선사
하중부河中府 중조산中條山 지봉智封 선사
연주兗州 항마降魔 장藏 선사
수주壽州 도수道樹 선사
회남도淮南都 양산梁山 전식全植 선사
[이상 5인은 기록에 보임]
형주荊州 사랑辭朗 선사
숭산嵩山 보적普寂 선사
대불산大佛山 향육香育 선사
서경西京 의복義福 선사
홀뢰忽雷 징澄 선사
동경東京 일日 선사
대원大原 변정遍淨 선사
남악南嶽 원관元觀 선사
여남汝南 두杜 선사
숭산嵩山 경敬 선사
경조京兆 소복小福 선사
진주晋州 곽산霍山 관觀 선사
윤주潤州 모산茅山 숭규崇珪 선사
안육安陸 회공懷空 선사
[이상 14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앞의 숭악嵩嶽 혜안慧安 국사 등의 법손 18인
낙경洛京 복선사福先寺 인검仁儉 선사
숭악嵩嶽 파조타破竈墮 화상和尙
숭악嵩嶽 원규元珪 선사
[이상 3인은 기록에 보임]
상산常山 탄연坦然 선사
업도鄴都 원적圓寂 선사
서경西京 도량道亮 선사
도량道亮 선사에서 다시 5인이 나옴.
① 양주揚州 대총관大總管 이효일李孝逸
② 공부상서工部尙書 장석張錫
③ 국자좨주國子祭酒 최융崔融
④ 비서감袐書監 하지장賀知章
⑤ 목주睦州 자사刺史 강선康詵
앞의 수주隨州 신조神慥 선사에서 다시 1인이 나옴.
정수正壽 선사
앞의 몽산蒙山 도명道明 선사에서 다시 3인이 나옴.
① 홍주洪州 숭적崇寂 선사
② 강서江西 괴瓌 선사
③ 무주撫州 신정神貞 선사
앞의 자주資州 지신智侁 선사에서 다시 1인이 나옴.
자주資州 처적處寂 선사
앞의 현색玄賾 선사에서 다시 2인이 나옴.
① 의흥義興 신비神斐 선사
② 호주湖州 창暢 선사
[이상 15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3세 49인
앞의 형주荊州 사랑辭朗 선사의 법손
자금紫金 현종玄宗 선사
명주明州 대매산大梅山 상常 선사
전계塼界 신휘愼徽 선사
[이상 3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앞의 숭산嵩山 보적普寂 선사 등의 법손 46인[1인은 기록에 보임]
종남산終南山 유정惟政 선사
광복廣福 혜공慧空 선사
상월常越 선사
양주襄州 협석산夾石山 사思 선사
명찬明瓚 선사
경애사敬愛寺 진眞 선사
연주兗州 수현守賢 선사
정주定州 석장石藏 선사
남악南嶽 징심澄心 선사
남악南嶽 일조日照 선사
낙경洛京 동덕사同德寺 간幹 선사
소주蘇州 진량眞亮 선사
와관사瓦棺寺 준濬 선사
익양弋陽 법융法融 선사
광릉廣陵 연演 선사
협주陜州 혜공慧空 선사
낙경洛京 진량眞亮 선사
택주澤州 긍월亘月 선사
박주亳州 담진曇眞 선사
도량산都梁山 숭연崇演 선사
경조京兆 장경사章敬寺 징澄 선사
숭양사嵩陽寺 일행一行 선사
경조산京兆山 북사北寺 융融 선사
진주晋州 정도定陶 정丁 거사
앞의 서경西京 의복義福 선사에서 다시 8인이 나옴.
대웅大雄 맹猛 선사
서경西京 대진동大震動 선사
신비神斐 선사
서경西京 대비광大悲光 선사
서경西京 대은大隱 선사
정경定境 선사
도파道播 선사
현증玄證 선사
앞의 항마降魔 장藏 선사에서 다시 3인이 나옴.
서경西京 적만寂滿 선사
서경西京 정장定莊 선사
남악南嶽 혜은慧隱 선사
앞의 남악南嶽 원관元觀 선사에서 다시 1인이 나옴.
신조神照 선사
앞의 소복小福 선사에서 다시 3인이 나옴.
경조京兆 남전藍田 심적深寂 선사
태백산太白山 일몰日沒 운雲 선사
동백산東白山 법초法超 선사
앞의 곽산霍山 관觀 선사에서 다시 1인이 나옴.
현산峴山 유幽 선사
앞의 자주資州 처적處寂 선사에서 다시 4인이 나옴.
익주益州 무상無相 선사
익주益州 장송산長松山 마馬 선사
초超 선사
재주梓州 효료曉了 선사
앞의 의흥義興 비斐 선사에서 다시 2인이 나옴.
서경西京 지유智游 선사
동도東都 지심智深 선사
[이상 45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4세 7인
앞의 흥선興善 유정惟政 선사의 법손
형주衡州 정심定心 선사
경애사敬愛寺 지진志眞 선사
[이상 2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앞의 익주益州 무상無相 선사 등의 법손 5인[1인은 기록에 보임]
익주益州 보당사保唐寺 무주無住 선사
형주荊州 명월산明月山 융融 선사
한주漢州 운정산雲頂山 왕王 두타頭陀
익주益州 정중사淨衆寺 신회神會 선사
앞의 전계塼界 신휘愼徽 선사에서 다시 1인이 나옴.
무계武誡 선사
[이상 4명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5세 1인
앞의 경애사敬愛寺 지진志眞 선사의 법손
숭산嵩山 조照 선사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31조 도신道信 대사 휘하에서 방계로 나온 법 손[法嗣]
금릉金陵 우두산牛頭山 6세의 조종祖宗
제1세 법융法融 선사
그는 윤주潤州 연릉延陵 사람으로서 성은 위韋씨이다. 나이 19살에 경사經史를 두루 배우고, 대부반야大部般若를 열람하다가 진공眞空을 밝게 통달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홀연히 탄식하였다.
“유도儒道는 세간의 경전으로서 궁극의 법이 아니고, 반야의 바른 관[正觀]이야말로 세간을 벗어난 배[舟航]로다.”
그는 드디어 모산茅山에 은둔해서 스승에게 귀의하여 머리를 깎았다. 나중에 우두산牛頭山에 있는 유서사幽棲寺 북쪽의 바위굴로 들어갔는데, 온갖 새들이 꽃을 물어오는 이적異蹟이 있었다.
당唐나라 정관貞觀 때에 4조가 멀리서 기상氣象을 관찰하고는 그 산에 기이한 사람이 있음을 알고 몸소 찾아가서 그 절의 스님에게 물었다.
“여기에 도인이 있는가?”
그 스님이 대답했다.
“출가한 사람치고 도인이 아닌 자가 있습니까?”
조사가 다시 물었다.
“누가 도인인가?”
그 스님이 대답하지 못하자, 다른 스님이 말했다.
“여기서 산 속으로 10리쯤 들어가면 게으름뱅이가 하나 있는데, 사람을 보아도 일어나지 않고 합장도 하지 않습니다. 그가 도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도신道信 조사가 산으로 들어갔는데, 그는 도신을 보고도 태연자약하게 단정히 앉아서 돌아보지도 않았다. 조사가 물었다.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대사가 대답했다.
“마음을 관觀합니다.”
“관하는 것은 누구이며, 마음은 어떤 물건인가?”
대사가 대답하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서 절을 하고 말했다.
“대덕께서는 어디에 계시는 어른이신지오?”
조사가 대답했다.
“빈도貧道는 일정하게 사는 곳이 없이 동東으로 서西로 다니오.”
“그렇다면 도신 선사를 아십니까?”
“어째서 그를 물으시오?”
“오랫동안 그 덕에 대해 들었으므로 한번 뵈옵기를 바랍니다.”
“도신 선사는 바로 빈도요.”
“어떻게 여기까지 강림하셨습니까?”
“특별히 방문하러 왔소. 편하게 쉴 만한 곳이 또 없소?”
법융法融이 뒤쪽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따로 작은 암자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조사를 이끌고 암자로 가니, 암자 주위에는 오직 호랑이와 이리와 같은 짐승만이 있었다. 조사가 두 손을 들면서 두려워하는 몸짓을 하자, 법융이 물었다.
“아직도 그런 것이 남았습니까?”
조사가 되물었다.
“지금 무엇을 보았는가?”
대사가 대답하지 못했다. 조금 있다가 조사가 대사의 참선하는 돌 위에다 부처 불佛자 하나를 쓰자, 대사가 이를 보고 송구하게 생각하였다. 조사가 물었다.
“아직도 그런 것이 남았는가?”
대사가 깨닫지 못하고 머리를 숙이면서 참다운 요체를 설해 주기를 청했다.
조사가 대답했다.
“무릇 백천 가지 법문이 똑같이 마음[方寸]으로 돌아가고,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묘한 공덕이 몽땅 마음 근원[心源]에 있다. 일체의 계율․선정․지혜․신통변화가 모두 스스로 구족해서 그대의 마음을 여의지 않으며, 일체의 번뇌와 업장이 본래 공적하고 일체의 인과가 모두 꿈이나 허깨비 같으니, 삼계를 벗어날 것도 없고 보리를 구할 것도 없다.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이 성품과 형상에서 평등하며, 대도大道는 텅 비어서 사려가 끊어졌으니, 이러한 법을 지금 그대는 이미 얻었다. 조금도 모자람이 없으니 부처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다시 다른 법이 없으니, 그대는 그저 마음에 맡겨 자재自在하라. 관행觀行을 짓지도 말고, 마음을 깨끗이 하고자 하지도 말고, 탐욕과 성냄을 일으키지도 말고, 근심과 걱정을 품지도 말고, 탕탕蕩蕩하게 걸림 없이 뜻대로 종횡縱橫하면서 선善을 짓지도 말고 악惡을 짓지도 말라. 다니고 멈추고 앉고 누우며[行住坐臥] 눈에 부딪치고 만나는 연緣이 모두 부처의 묘한 작용으로서 즐거워 근심이 없나니, 그런 까닭에 이름하여 부처라 하는 것이다.”
대사가 물었다.
“마음에 이미 구족되어 있다면, 어떤 것이 부처이며, 어떤 것이 마음입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마음이 아니면 부처를 묻지 못하고, 부처를 묻는 것은 마음 아님이 없다.”
“관행을 짓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경계가 일어날 때에 어떻게 대치해야 하겠습니까?”
“경계의 연緣은 좋고 나쁨이 없고 좋고 나쁨은 마음에서 일어나니, 마음이 억지로 이름을 짓지 않는다면 망정忘情이 어디로부터 일어나겠는가? 망정이 이미 일어나지 않으면 참 마음[眞心]이 두루 아나니, 그대는 다만 마음 따라 자재할 뿐 더 이상 대치하지 않으면, 그것을 이름하여 변함없는 상주법신常住法身이라고 하니 변이變異가 없다. 내가 승찬 대사에게 받은 돈교법문頓敎法門 마음을 깨치면 곧 부처라 하는 교리.
을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나니, 그대는 지금 내 말을 잘 듣고 오직 이 산에만 머물라. 앞으로 다섯 사람의 달자達者가 나타나서 그대의 현묘한 덕화[玄化]를 계승하리라.”[규봉圭峰이 이를 민절무기종泯絶無寄宗이라 단정하고 파상교破相敎의 학설을 인용하여 증명했다. 어떤 스님이 남전南泉에게 묻기를 “우두牛頭가 4조祖를 만나기 전에 어찌하여 새들이 꽃과 과일을 물어다 공양했는가?” 하니, 남전이 대답하기를 “다만 그가 걸음마다 부처 되는 길을 밟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동산洞山은 대답하기를 “손바닥의 구슬을 보는 것같이 잠시도 마음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 스님이 다시 묻기를 “만난 뒤에 어찌하여 새들이 오지 않았습니까?”라고 하니, 남전이 대답하기를 “설사 오지 않았더라도 왕王 노사老師의 한 줄기 도만은 드러냈느니라”고 하였다. 동산은 대답하기를 “온몸이 갔느니라<通身去也>”고 하였다. 또 어떤 존숙尊宿이 위 두 물음을 합쳐 대답하기를 “도적은 가난한 집 아이를 때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존숙에게 묻기를 “우두가 4조를 만나기 전에는 어떠합니까?”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실로써 잎사귀를 꿰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 스님이 다시 묻기를 “만난 뒤에는 어떠합니까?”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가을밤이 뒤숭숭하구나”라고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이 오월吳越의 영명사永明寺 잠潛 선사에게 묻기를 “우두가 4조를 만나기 전에는 어떠합니까?”라고 하니, 잠이 대답하기를 “우두였지”라고 하였다. 또 묻기를 “만난 뒤에는 어떠합니까?”라고 하니, 잠이 대답하기를 “우두였지”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제방諸方에서 거양擧揚한 일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다.]
조사는 법을 전한 뒤에 다시 쌍봉산雙峰山으로 돌아가서 생애를 마쳤다.
대사는 이때부터 법석法席이 크게 번성하였는데, 당唐의 영휘永徽 때에 대중들이 먹을 양식이 떨어지자, 대사는 단양丹陽에 가서 시주를 받았다. 산길 80리를 쌀 한 섬 여덟 말을 직접 지고서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와 3백 명의 두 때 공양을 빠트리지 않기를 3년을 계속했다.
당시 고을의 수령인 소원선蕭元善이 건초사建初寺에서 대반야경大般若經을 강하기를 청하니, 듣는 이가 구름같이 모였다. 「멸정품滅靜品」에 이르렀을 때에는 땅이 진동하였기 때문에 강의를 그만두고 산으로 돌아갔다.
박릉왕博陵王이 대사에게 물었다.
“경계가 색色을 반연하여 발할 때에 색을 반연하여 일어난다고 말하지 않거늘, 어떻게 연緣임을 알아서 그 일어남을 쉬게 할 수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경계와 색이 처음 발할 때에 색과 경계의 두 성품이 공하니, 본래 연緣을 아는 자가 없다. 마음의 헤아림[心量]은 앎[知]과 더불어 똑같으니, 본래 발함이 아닌 줄 비추면, 이때는 일어남이 스스로 쉰다. 어둠을 안으며 연緣을 자각하는 마음을 낳을 때도 연緣은 쫓지를 않으니, 마치 낳기 전과 같게 되어서 색色과 마음이 양육한 것이 아니다. 공空으로부터는 본래 생각[念]이 없고 표상작용[想]과 느낌[受]이 생각을 낳는다고 말하지만, 일어나는 법은 일찍이 일어난 적이 없으니, 어찌 부처님의 가르침[敎令]이 필요하겠는가?”
박릉왕이 물었다.
“눈을 감으면 색色이 보이지 않아도 경계의 사념思念은 더욱 많아집니다. 색色이 이미 마음과 관계하지 않는다면, 경계는 어느 곳으로부터 발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눈을 감으면 색色이 보이지 않으나 내심內心의 움직이는 사념이 많으니, 이는 허깨비 같은 의식이 거짓으로 작용을 이루는 것이라서 명칭을 일으켜도 끝내 허물이 아니다. 색色을 아는 것이 마음과 관련되지 않고, 마음 또한 사람과 관계하지 않으니, 행을 따라 모습[相]을 굴림이 있는 것은 마치 새가 허공을 날아간 자취와 같다.”
박릉왕이 물었다.
“경계의 발發함은 처소가 없고, 인연의 자각은 낳음[生]을 요달해 아는 것입니다. 경계가 물러가도 자각은 도리어 구르면서 그 자각이 곧 경계로 변합니다. 만일 마음으로 마음을 이끌면 도리어 자각할 대상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니, 그 자각을 따름을 좇으면서 따라가게 되면 생멸의 경계[際]를 여의지 못합니다.”
대사가 대답했다.
“색과 마음의 앞과 뒤와 중간에도 진실로 연기緣起의 경계가 없으니, 한 생각[一念]이 스스로 응결하여 잊으면, 누가 움직임과 고요함을 능히 헤아리겠는가? 이 앎은 스스로 앎이 없어서 앎과 앎의 연緣이 만나지 못하니, 마땅히 스스로 본래의 형상을 단속할 뿐 어찌 역외域外에서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 눈앞의 경계[前境]는 변하여 물러가는 것이 아니고, 뒤 생각[後念]도 지금 도래한 것이 아니니, 달을 찾는 이가 달의 그림자에 집착하고 날아간 새를 쫓는 이가 자취를 더듬는 것과 같다. 마음의 본 성품을 알고자 하면 마치 꿈속을 보는 것과 같나니, 비유하면 6월의 얼음처럼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허공[空]을 피하려고 해도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허공을 구하려 해도 다시 이루어지지 않으니, 시험 삼아 묻나니 거울 속의 그림자인 마음이 어디로부터 생기겠는가?”
박릉왕이 다시 물었다.
“딱 맞게 마음을 쓸 때는 안온하고 좋다고 하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딱 맞게 마음을 쓸 때는 딱 맞게 무심無心을 쓰는 것이니, 구구 절절한 담론은 명상名相만이 수고로울 뿐이지만, 곧바로 설하는 것은 번거로움이 없다. 무심을 딱 맞게 쓰는 것은 항상 딱 맞게 무無를 쓰는 것이니, 이제 무심을 설하는 처소는 유심有心과 더불어 다르지 않다.”
박릉왕이 다시 물었다.
“지혜로운 이가 묘한 말을 인용하니 마음과 서로 회통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말이 마음 길[心路]과 다르니, 이를 합하려고 하면 만 배나 어긋납니다.”
대사가 대답했다.
“방편으로 묘한 말을 하는 것이 병病을 타파하는 대승大乘의 길이기는 하지만, 본래의 성품에 관계된 이야기는 아니고 도리어 공空의 변화로부터 이루어진 것이다. 무념無念이라야 참되고 항상해서 끝내 마음의 길[心路]을 끊으니, 생각을 여읜 성품이 움직이지 않으면 생멸生滅의 어그러짐이 없다. 산골짜기의 메아리에는 먼저 소리가 있는 것이며, 거울에 비친 모습은 돌아서서 볼 수 없는 것이다.”
박릉왕이 다시 물었다.
“수행자가 경계가 있음을 체현하다가 자각으로 인해 경계의 허망함을 압니다. 그렇다면 앞의 자각과 뒤의 자각과 경계를 합하여서 세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대사가 대답했다.
“경계의 작용은 바탕의 자각[體覺]이 아니니, 자각을 파하면 사유하지 못한다. 자각을 인하여 경계의 허망함을 알고, 자각할 때에는 경계가 일어나지 않으니, 앞의 자각과 뒤의 자각과 경계가 합쳐서 세 가지 더딤[遲]이 있다.”
박릉왕이 다시 물었다.
“선정에 머물러서 함께 구르지 않음을 올바른 삼매라고 하나니, 모든 업이 능히 끌어당기지 못하지만 미세한 무명이 천천히 그 뒤를 밟는 줄 알지 못합니다.”
대사가 대답했다.
“다시 듣건대, 어떤 사람이 허망한 집착으로 마음의 헤아림을 일으켜서 세 가지 가운데의 일[事]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구르지 못함[不轉]이 도리어 허망하다. 마음이 삼매에 속박된 채 그것으로 업장業障을 맑게 한다고 하지만, 마음 티끌의 만 분의 일이라도 무명을 요달하여 설하지 못하면 미세한 습기의 인因이 일어나면서 천천히 이름과 모습이 생긴다.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일어나고 고요히 하고자 하면 물이 안정되어야 하나니, 다시 앞길을 말하고 싶지만 뒤의 마음이 놀랄까 두렵다. 무념無念은 큰 짐승의 울부짖음이요, 성품의 공함은 서리가 내림이니, 별이 흩어지고 잡초가 꺾이고, 이리저리 나는 새가 떨어진다. 다섯 길[五道]의 어지러움이 안정되고, 네 가지 악마도 틈을 노리지 못하리니, 마치 사나운 불길이 타오르는 것과 같고 또한 날카로운 칼로 쪼개는 것과 같다.”
박릉왕이 다시 물었다.
“자각에 의지해서 만법을 알면, 만법이 본래 그러합니다. 만일 비추어 쓰는 마음을 빌면, 단지 비추어 쓰는 마음을 얻을 뿐이지 마땅히 마음속의 일은 아닙니다.”
대사가 대답했다.
“자각에 의지해서 만법을 알면, 만법은 끝내 의지함이 없다. 만약 비추어 쓰는 마음을 빌면, 마땅히 마음 밖에는 있지 않다.”
박릉왕이 다시 물었다.
“따르고 따르면서 간택함이 없어도 밝은 마음이 나타나지 않으면 다시 사념의 마음으로 어두워집니다. 마음에 공功을 들이는 행이 있으면, 지혜의 장애는 제거하기 더욱 어렵습니다.”
대사가 대답했다.
“이것이 있다고 하나 있다고 할 수 없고, 이것을 찾지만 찾을 수가 없으니, 간택하지 않음이 곧 진정한 간택이다. 그러나 어둠을 벗어나 밝은 마음을 얻고자 한다면, 사려思慮하는 자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마음을 간직하고 공행功行에 의탁하게 되니, 어찌 지혜를 장애하는 어려움을 논하겠는가? 설사 부처에 이르러도 병이 되는 것이다.”
박릉왕이 다시 물었다.
“중도를 꺾은 소식消息의 사이는 진실로 안온하기 어려우니, 스스로 행行을 쓰는 사람이 아니면 이 어려움은 끝내 보기 어렵습니다.”
대사가 대답했다.
“중도를 꺾음으로써 소식을 바라지만, 소식은 쉬움도 어려움도 아니다. 먼저 마음자리[心處]의 마음을 관찰하고, 다음에는 지혜 속의 지혜를 추구하고, 셋째는 추구하는 이를 비추고, 넷째는 무기無記를 통달하고, 다섯째는 이름을 해탈하고, 여섯째는 참과 거짓에 평등하고, 일곱째는 법의 근본을 알고, 여덟째는 무위無爲를 사랑하고, 아홉째는 공空의 음덕陰德을 두루하게 하고, 열째는 운우雲雨를 받는다. 끝까지 다하여 저 자각마저 없으면 무명에서 본래의 지혜가 나나니, 거울의 영상에 세 가지 업이 나타나고 요술쟁이[幻人]가 네거리에서 교화를 한다. 공변空邊의 다함에도 머물지 말고 마땅히 있음 속의 없음을 비추어야 한다. 공空과 유有의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공과 유의 함께함도 거느리지 않으니, 이를 이름하여 중도를 꺾었다[折中]고 한다. 중도를 꺾음은 언설이 아니며, 편안하고 고요함은 처소가 없는 편안함이니, 행을 쓰는 것으로 어찌 능히 결정할 수 있겠는가?”
박릉왕이 다시 물었다.
“따로 한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그들은 ‘공의 무상無相을 잘 이해해서 입으로는 선정과 산란이 동일하다’고 하며, 다시 ‘있음 속의 없음’을 말합니다. 즉 계합하여 증명하면 작용하면서도 항상 적멸하고, 알고 지각하면 적멸하면서도 항상 작용하니, 마음을 써서 참된 이치를 회통하고는 다시 작용[用]이 작용 없는 것[無用]이라고 말합니다. 지혜와 방편이 많으면 말이 이치와 합하는데, 여여如如한 이치는 본래 그러할 뿐 식심識心을 말미암아 회통하는 것이 아니니, 이미 마음으로 회통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면 마음과 마음은 그 모습이 없어집니다. 이와 같이 알기 어려운 법은 영겁토록 알 수 없으리니, 이와 동일하게 마음을 쓰는 사람은 법으로는 교화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사가 대답했다.
“따로 공을 증득하는 자가 있다는 것은 앞의 게송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 공을 수행하여 적멸을 지키면 식견識見이 잠시 뒤집어지지만, 참됨을 회통한 것이 마음의 헤아림이라서 끝내 근원을 요달하지 못했음을 알리라. 또 마음의 작용을 쉬라고 설하는 것도 지혜가 많은 것이 아마 서로 비슷할 뿐 진실하게 성품을 밝히지 못하였기 때문에 공을 구하여도 수고로울 뿐이다. 영겁토록 깊은 의식[幽識] 속에 머물러서 모습을 감싸고 있음을 도무지 모르니, 광명을 놓아서 문득 땅을 움직인들 그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박릉왕이 다시 물었다.
“앞에서 말한 바 마음을 보는 이에게도 얇은 비단의 두께와 같은 어려움이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마음을 본다 함은 비단의 두께와 같은 것이 있음이니, 허깨비 같은 마음이 어찌 보기를 기대하겠는가? 하물며 허깨비 같은 마음이란 것도 없으니, 종용從容해서 입을 대기 어렵다.”
박릉왕이 다시 물었다.
“오래도록 커다란 기업基業을 갖고 있었지만, 마음의 길이 어긋나서 간격이 생겼으니, 미세한 장애를 깨달으면 즉시 진제眞際를 통달할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솜씨 좋은 스승이 아니면, 이 이치를 능히 터주지 못하리니, 바라옵건대 대사께서 저에게 요체의 문을 열어 주셔서 마음 쓰는 자들을 인도하여 바른 길을 잃지 않게 하소서.”
대사가 대답했다.
“법성法性은 본래 기업基業인지라 꿈의 경계에서 어긋남이 이루어지며, 실상實相의 미세한 몸은 색色이나 마음으로는 영원토록 깨닫지 못한다. 홀연히 만난 혼돈의 선비[混沌士]는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셔서 의심에 의탁하여 널리 물음을 시설하니, 이치를 감싸서 안으로 항상 밝게 하고, 생사의 그윽한 길을 환히 사무치게 하고, 칭찬과 비방에 요동치 않게 한다. 야로(野老:자기 스스로를 일컬음)는 분명히 드러내서 대답하나니, 법상法相은 부끄러운 의례儀禮로서 중생의 몽매함을 일깨우는 약이지만 도리어 색色의 성품일 따름이다.”
현경顯慶 원년에 고을 수령인 소원선蕭元善이 산에서 내려와 건초사建初寺에 살기를 거듭 청하였다. 대사는 사양하다가 마지못하여 마침내 상수上首 제자인 지암智巖을 방에 들라고 명해서 법인法印을 부촉한 뒤에 대대로 전수하도록 당부하였다.
그리하여 산을 떠나려 할 때에 대중에게 말했다.
“나는 다시 이 산을 밟지 않을 것이다.”
당시 새와 짐승들이 슬피 울기를 한 달이 넘도록 그치지 않았고, 암자 앞에 큰 오동나무 네 그루가 있었는데 한 여름이건만 홀연히 스스로 시들었다.
그 이듬해 정사년丁巳年 윤정월閏正月 23일 건초사에서 임종하니, 수명은 64세이고 법랍法臘은 41세였다. 그 달 27일 계롱산雞籠山에 무덤을 만드니, 전송하는 이가 1만여 명이나 되었다. 그 우두산牛頭山의 옛터에 금원金源, 호포천虎咆泉, 석장천錫杖泉, 금구金龜 등의 연못과 좌선하던 석실石室이 지금도 모두 남아 있다.
제2세 지암智巖 선사
그는 곡아曲阿 사람으로서 성은 화華씨이다. 약관의 나이에 지혜와 용맹이 남보다 뛰어났고, 키는 7척尺 6치[寸]나 되었다.
수隋의 대업大業 때에 낭장郎將이 되어서 항상 활 끝에다 물 거르는 주머니 하나를 달고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물을 떠먹었고, 누차 대장을 따라 토벌을 나가서 공을 세웠다.
당唐의 무덕武德 때에 나이 40세가 되자, 마침내 출가를 원하였다. 그리하여 서주舒州 완공산皖公山에 들어가 보월寶月 선사의 제자가 되었다.
그 뒤 어느 날 좌선을 하다가 키가 10척이 넘는 기이한 스님이 보였는데, 모습이 훤칠하고 말소리가 낭랑하였다. 그가 대사에게 말했다.
“그대는 80생을 출가했으니 마땅히 더욱 정진하라.”
말을 마치고는 이내 사라졌다.
어느 날 골짜기에서 선정에 들었는데, 갑자기 골짜기의 물이 넘쳤으나 대사가 태연히 흔들리지 않자 물이 저절로 물러갔다. 이때에 어떤 사냥꾼이 지나다가 이를 보고는, 허물을 고치고 선행을 닦았다.
또 옛날에 함께 군대에 종사하던 두 친구가 있었는데, 대사가 은둔했다는 말을 듣자, 함께 산에 들어가서 대사를 찾았다. 이윽고 대사를 만나게 되자 말했다.
“낭장은 미쳤는가? 왜 여기에 계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나는 광증狂症에서 깨어나려고 하는데, 그대의 광증은 제대로 일어나고 있구나. 무릇 색을 즐기고, 소리에 빠지고, 영화로움을 탐하고, 은총을 바라면 생사生死를 떠돌게 될 뿐이니, 어찌 이로부터 벗어나겠는가?”
두 사람은 깊이 감동하여 탄식하고는 물러갔다.
대사는 정관貞觀 17년에 건업建業으로 돌아가서 우두산牛頭山에 들어가 우두牛頭 법융法融 선사를 뵙고는 큰 일[大事]을 밝혔다.
선사가 대사에게 말했다.
“내가 도신道信 대사大師의 진결眞訣을 받으니 얻은 바가 몽땅 없어졌다. 설사 열반보다 수승한 어떤 법이 있다고 하여도 나는 또한 꿈과 허깨비 같다고 말하겠노라. 무릇 하나의 티끌이 날아서 허공을 가리고, 하나의 겨자씨가 떨어져서 땅을 덮는다. 그대는 지금 이런 소견을 이미 초월했으니, 내가 다시 무엇을 말하겠는가. 산문山門을 교화하고 인도할 일을 이제 그대에게 맡기노라.”
대사는 명命을 받고 제2세가 되었다. 뒤에 다시 정법을 혜방慧方 선사에게 전하고는, 백마사白馬寺와 서현사棲玄寺에 있다가 다시 석두성石頭城으로 옮겨 머물렀다.
의봉儀鳳 2년 정월 10일에 입멸하였는데, 얼굴빛이 변하지 않고 몸의 굴신屈伸이 살았을 때와 같았으며, 방 안에 이상한 향기가 가득하여 열흘이 지나도 가시지 않았다. 유언에 따라 수장水葬을 지내니, 수명은 78세이고, 법랍法臘은 39세였다.
제3세 혜방慧方 선사
그는 윤주潤州 연릉延陵 사람으로서 성은 복濮씨이다. 개선사開善寺로 출가하였는데, 구족계를 받을 무렵에는 경․율․논을 환하게 밝혔다.
뒤에 우두산에 들어가서 지암智巖 선사를 뵙고는 비의秘義의 요체를 물었는데, 지암은 그의 근기가 정법을 감당할 만한 그릇임을 보고는 마침내 심인心印을 보여주니, 대사는 활연히 깨달았다. 그로부터 숲 밖을 나가지 않기를 10년이 넘게 하니, 사방에서 배우는 자가 구름처럼 모였다.
대사가 하루는 대중에게 말했다.
“나는 다른 곳으로 가서 근기에 따라 중생을 제도할 생각이니, 너희들은 잘 있어라.”
그리하여 정법안장을 법지法持 선사에게 부촉하고는, 마침내 모산茅山으로 돌아갔다. 몇 해 있다가 열반에 들려고 하는데, 5백 명쯤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머리칼을 뒤로 드리워서 보살같이 꾸미고는 제각기 번을 들고 와서 “법사님께 강의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또 산신이 큰 구렁이의 몸으로 변하여 뜰 앞에 와서 울며 이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대사가 시자侍者인 홍도洪道에게 말했다.
“나는 떠나야겠다. 너는 지금 문인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려라.”
문인들이 달려왔을 때 대사는 이미 열반에 들었으니, 때는 당나라 천책天冊 원년 8월 1일이었다. 산의 나무들이 흰빛으로 변하고 계곡의 물이 7일 동안 흐르지 않았으며, 도인과 속인이 슬프게 앙모하면서 우니 그 소리가 산골짜기를 진동하였다. 수명은 67세이고, 법랍은 40세였다.
제4세 법지法持 선사
그는 윤주潤州 강녕江寧 사람으로서 성은 장張씨이다. 어릴 때에 출가하여 30세가 되었을 때 황매산黃梅山의 홍인弘忍 대사大師 회상에 가서 법을 듣다가 마음이 열렸고, 뒤에 다시 혜방 선사를 만나 인가를 받고서 그의 산문山門을 계승하여 우두종牛頭宗의 조사가 되었다. 그래서 황매[弘忍] 대사大師가 세상을 하직할 때에 그의 제자인 현색玄賾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후대에 나의 법을 전할 자가 열 사람쯤 되리니, 금릉金陵의 법지法持도 그 중의 하나이니라.”
나중에 법안法眼을 지위智威 선사에게 부촉하고, 당나라 장안長安 2년 9월 5일에 금릉金陵 연조사延祚寺의 무상원無常院에서 임종하면서 유언하였다.
“사체는 소나무 밑에 드러내 놓아 새와 짐승들이 먹게 하라.”
해가 솟는 아침 공중에서 신령한 번幡이 서쪽으로부터 와서 산을 몇 차례 돌았고, 그가 살던 옛집의 대숲은 흰빛으로 변했다가 7일이 지나서야 그쳤다. 수명은 68세이고, 법랍은 41세였다.
제5세 지위智威 선사
그는 강녕江寧 사람으로 성은 진陳씨이다. 영청산迎靑山에서 머물렀다. 열 살 되었을 때 어느 날 홀연히 집을 나갔는데, 어디를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부모가 이리저리 찾다가 만났을 때에는 이미 천보사天寶寺의 통統 법사法師에 의하여 출가한 뒤였다.
스무 살에 구족계를 받은 뒤에 법지法持 선사가 세상에 나셨다는 말을 듣고는 찾아가 뵙고서 정법을 전해 받았다. 그로부터 강남[江左]의 배우는 무리들이 모두 대사의 문하로 달려왔는데, 그 중에서 혜충慧忠이라는 이가 법기法器로 지목되었다. 대사는 일찍이 그에게 게송을 제시해 주었다.
생각 생각[念念]에 얽매이지 말라.
생사生死의 강물을 이루게 되면
여섯 길[六趣]의 바다에서 헤매면서
끝없는 파도를 벗어나지 못하리.
莫繫念念 成生死河
輪迴六趣海 無見出長波
혜충이 게송으로 화답하였다.
생각의 상想은 허깨비로부터 일어나고
성품은 본래 끝과 시작이 없네.
만일 이 속의 뜻을 깨닫는다면
생사의 긴 물결은 저절로 멈추리라.
念想由來幻 性自無終始
若得此中意 長波當自止
대사가 다시 게송으로 보여 주었다.
나의 본래 성품은 비고 없지만
허망함을 반연하여 남과 내가 생기네.
어찌해야 허망한 정情을 쉬어 버리고
공처空處에 돌아가 앉을 수 있겠는가.
余本性虛無 緣妄生人我
如何息妄情 還歸空處坐
혜충이 또 게송으로 대답했다.
비고 없음이 바로 실다운 바탕[實體]이거늘
남과 내가 어디에 존재하리오.
허망한 정을 쉬려 하지 않는 것이
바로 반야선般若船을 타는 것일세.
虛無是實體 人我何所存
妄情不須息 卽汎般若船
대사는 그가 깨달았음을 알고는 곧 산문山門을 부촉하였다. 그리고는 마침내 인연을 따라 교화하는 길을 떠났다.
당나라 개원開元 17년 2월 18일에 연조사延祚寺에서 임종했는데, 열반에 들려고 할 때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일렀다.
“숲 속에다 사체를 놓아서 새나 짐승들에게 보시하라.”
수명은 77세였다.
제6세 혜충慧忠 선사
그는 윤주潤州 상원上元 사람으로서 성은 왕王씨이다. 나이 스물세 살에 장엄사莊嚴寺에서 업을 닦다가 나중에 지위智威 선사가 세상에 나왔다는 말을 듣고는 가서 뵈었다. 지위 선사가 흘깃 보면서 말하였다.
“산의 임자[山主]가 왔군.”
대사가 이 말에 감응하여 미묘한 지취旨趣를 깨달았다. 마침내 좌우에서 모시다가 나중에는 그 곁을 하직하고 여러 곳으로 순례巡禮를 떠났다.
지위 선사가 구계원具戒院 앞에 능소등(凌霄虅:덩굴나무)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여름이 되어도 시들어 있었다. 이에 사람들이 베어 버리려고 하자, 말했다.
“베지 말라. 혜충이 돌아올 때에는 이 등나무가 다시 살아나리라.”
대사가 돌아오는 날 과연 그 말처럼 되니, 지위 선사는 산문을 그에게 맡기고 연조사延祚寺에 가서 살았다.
대사는 평생에 옷 한 벌로 살면서 바꾸지 않았고, 그릇은 오직 쇠솥[鐺] 하나만을 사용했다. 일찍이 누가 스님에게 곡식 두 창고를 공양했는데, 도적이 엿보자 호랑이를 시켜서 지키게 하였다. 이때 현령縣令 장손長遜이라는 이가 산 정상까지 왔다가 대사를 뵙고는 물었다.
“제자가 몇이나 되십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서넛 되오.”
“좀 볼 수 있겠습니까?”
대사가 선상禪床을 탁탁 치자 호랑이 세 마리가 으르렁거리면서 나오니, 장손이 겁이 나서 달아났다.
뒤에 대중이 청해서 성에 들어가 옛 장엄사莊嚴寺에 머물렀다. 대사는 전殿의 동쪽에다가 따로 법당 하나를 짓고자 하였는데, 그곳에 먼저 있던 고목 위에는 까치들이 집을 짓고 있었다. 목수들이 나무를 베려고 할 때에 대사가 까치들에게 말하였다.
“여기다 법당을 지으려고 하는데, 너희들은 왜 빨리 물러가지 않느냐?”
말을 마치자, 까치들은 곧 다른 나무로 옮겨가서 둥지를 틀었다.
처음 기초를 쌓을 때에 두 신인神人이 와서 네 귀퉁이를 정해 주었고, 다시 밤에도 몰래 와서 일을 도왔기 때문에 공사는 며칠도 되지 않아서 끝났다. 그리하여 사방의 학도學徒들이 구름처럼 법좌에 모여들었는데, 법을 얻은 이만도 34명으로서 제각기 한 곳에 거점을 두고 많은 대중을 교화하였다. 대사가 일찍이 안심게安心偈를 지어서 대중에게 보였다.
사람과 법이 쌍으로 맑고
선함과 악함을 모두 잊었다.
진심眞心의 참되고 실다움이
바로 보리의 도량道場이로다.
人法雙淨 善惡兩忘
眞心眞實 菩提道場
당나라 대력大歷 3년에 석실 앞에다 쇠솥을 걸고 나무에다 옷을 거니, 등나무가 갑자기 한여름인데도 말라죽었다.
대력 4년 6월 15일에 스님들을 모아서 포살布薩을 마친 뒤에 시자에게 명하여 머리를 감기고 몸을 씻기게 하였는데, 그날 밤에 상서로운 구름이 그 정사精舍를 덮고 공중에서 다시 하늘 음악 소리가 들리더니, 새벽이 되자 편안히 열반에 들었다. 그때 갑자기 비바람이 사납게 치면서 숲속의 나무를 부러뜨리고, 또 흰 무지개가 바위와 골짜기를 꿰뚫었다. 5년 봄에 다비를 거행하였는데, 셀 수 없이 많은 사리를 얻었다. 수명은 87세였다.
앞의 법융法融 선사 휘하 3세의 방계로 나온 법손
금릉金陵 종산鍾山의 담최曇璀 선사
그는 오군吳郡 사람으로서 성은 고顧씨이다. 처음에 우두牛頭 법융法融 대사를 뵈었는데, 대사가 첫눈에 기특하게 여겨서 그에게 일러 주었다.
“빛깔과 소리는 생긴 적이 없는 독약[鴆毒]이요, 느낌과 상념은 지인至人의 함정[坑阱]이니, 그대는 알겠는가?”
대사는 묵묵히 살펴서 현묘한 종지를 크게 깨달았다. 이어서 종산鍾山에 자취를 감춘 지 여러 해 동안 띠집[茅庵]에서 질그릇을 쓰며 일생을 마쳤으니, 당나라 천수天授 3년 2월 6일에 평온하게 선정에 들어서 7일 만에 열반에 들었다. 수명은 62세였다.
앞의 지위智威 선사 휘하 3세의 방계로 나온 법손
선주宣州 안국사安國寺 현정玄挺 선사
그는 어느 곳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일찍이 어느 날 장안에서 화엄경을 강의하던 스님이 오조(五祖:智威)에게 와서 물었다.
“진성연기眞性緣起라고 하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오조가 잠자코 있자, 그때 대사(현정)가 모시고 서 있다가 말했다.
“대덕께서 한 생각[一念]을 올바로 일으켜서 물을 때가 바로 진성眞性 속의 연기입니다.”
그 스님이 그 말끝에 크게 깨달았다.
또 어떤 이가 물었다.
“남종南宗은 누구로부터 세워진 것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마음의 종지[心宗]는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다.”
윤주潤州 학림鶴林 현소玄素 선사
그는 윤주潤州 연릉延陵 사람으로서 성은 마馬씨이다. 당나라 여의如意 시절에 강녕江寧 장수사長壽寺에서 수업을 하다가 늦게 지위智威 선사를 참례해서 마침내 참된 종지를 깨달았다.
나중에 경구京口의 학림사鶴林寺에 거주했는데, 하루는 어떤 백정이 와서 알현하고는 자기 집에 와서 공양 받기를 원했다. 대사가 흔쾌히 승낙하고서 가자 대중들이 모두 의아하게 여겼다. 대사가 그들에게 말했다.
“불성佛性은 평등하여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가 같다. 제도할 수 있는 이라면 즉시 가서 제도할 뿐이니, 다시 무슨 차별을 두겠는가?”
또 어떤 스님이 와서 물었다.
“무엇이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대사가 대답하였다.
“이해하는[會] 것이 곧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요, 의심하는 것이 곧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다시 말했다.
“이해함이 없으면 의심함이 없을 것이요, 의심함이 없으면 이해함도 없을 것이다.”
또 어떤 스님이 와서 문을 두드리자 대사가 물었다.
“누구요?”
스님이 대답했다.
“중입니다.”
“중만이 아니라 부처가 온다 해도 들어오지 못한다.”
“부처가 왔는데도 어찌하여 들어가지 못합니까?”
“그대가 머물 곳은 없다.”
천보天寶 11년 11월 11일 밤중에 병 없이 열반에 드니, 수명은 85세였다. 황학산黃鶴山에 탑을 세우니, 대진 선사 대화보항의 탑[大津禪師大和寶航之塔]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서주舒州 천주산天柱山 숭혜崇慧 선사
그는 팽주彭州 사람으로서 성은 진陳씨이다. 당나라 건원乾元 초에 서주 천주산天柱山에 가서 절을 창건하니, 황제가 영태永泰 원년元年에 천주사天柱寺라는 명호를 내렸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천주天柱의 경계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주박산主薄山은 높아서 해[日]를 보기 어렵고, 옥경봉玉鏡峰 앞에서는 사람을 알아보기 쉽다.”
“달마가 이 땅에 오기 전에도 불법이 있었습니까?”
“오기 전은 문제 삼지 말고, 바로 지금 일은 어떠한가?”
“저는 이해하지 못하니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만고萬古의 긴 허공에 하루아침의 풍월風月이다.”
양구良久하다가 다시 말했다.
“사리(闍黎:상대방을 가리키는 말)여, 이해하겠는가? 자기 일은 어찌하고서, 달마가 왔는가, 오지 않았는가를 간섭하는가? 그가 온 것은 마치 점쟁이와 같을 뿐이니, 그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자 그대를 위해 괘를 뽑아 보고 길하다 흉하다고 말하지만, 모두가 그대의 분수에 매여 있을 뿐이다. 일체를 스스로 살펴보라.”
“어떤 것이 점을 풀이하는 사람입니까?”
“그대가 문을 나설 때는 문득 맞지 않는다.”
“어떤 것이 천주天柱의 가풍家風입니까?”
“때때로 백운白雲이 와서 문을 막을 뿐, 다시 풍월風月이 사방의 산으로 흐르는 일은 없다.”
“죽은 스님은 천화遷化하여 어디로 갔습니까?”
“심악봉灊嶽峰은 높아서 길이 푸름을 쌓아가고, 서강舒江의 밝은 달은 빛깔이 찬란하다.”
“어떤 것이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입니까?”
“광겁曠劫 이래로 일찍이 막히거나 걸린 적이 없으면, 대통지승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찌하여 부처님의 법이 현전하지 않는 것입니까?”
“다만 그대가 회통하지 못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전하지 않게 된 것일 뿐이다. 만일 그대가 회통하였다면, 이룰 만한 불도佛道도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흰 구름이 청산을 덮고, 벌과 새가 뜰에 핀 꽃 위를 걷는다.”
“예로부터의 성인들은 어떤 말씀을 하였습니까?”
“그대는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한다고 보는가?”
“종문(宗門:祖師의 家門)의 도리에서 화상이 제창해 주기를 청합니다.”
“돌소[石牛]가 길게 부르짖으니 진공眞空의 밖이요, 나무말[木馬]이 울 때에 달은 산 너머로 숨는다.”
“어떤 것이 화상께서 사람을 이롭게 하는 곳입니까?”
“한 줄기의 빗발이 두루 뿌리니, 1천 봉우리의 산색山色이 수려하다.”
“어떤 것이 천주산 속의 사람입니까?”
“홀로 1천 봉우리의 정상을 거닐고, 아홉 굽이의 샘물에서 노니느니라.”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흰 원숭이가 새끼를 안고 푸른 봉우리에 오고, 벌과 나비는 초록빛 꽃술 사이로 꽃을 물어온다.”
대사가 산에 살면서 도를 연설한 지 22년째인 대력大歷 14년 7월 22일에 열반에 들었다. 절 북쪽에다 탑을 세웠는데, 진신眞身이 아직도 존재한다.
앞의 윤주潤州 학림사鶴林寺 현소玄素 선사의 법손
항주杭州 경산徑山 도흠道欽 선사
그는 소주蘇州 곤산崑山 사람으로서 성은 주朱씨이다. 처음에는 유교儒敎를 따랐는데, 28세 때 현소玄素 선사가 그를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신기神氣가 온화하고 순수한 것을 보아 하니, 참된 법보法寶로다.”
대사가 감동을 받아 깨우친 바가 있어서 바로 제자가 되기를 원하니, 현소는 몸소 머리를 깎아 주면서 당부하는 말을 하였다.
“그대는 물을 따라 내려가다가, 경徑이란 곳을 만나거든 멈추어라.”
마침내 대사가 남쪽으로 가다가 임안臨安에 닿았을 때 동북쪽에 있는 산을 보고는 나무꾼을 찾아서 물었는데, 나무꾼이 경산徑山이라고 대답하자 그곳에 머물렀다[駐錫].
어떤 스님이 대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산 위에 잉어가 있고, 물 밑바닥에 먼지가 있다.”
마조馬祖가 사람을 시켜서 편지를 보냈는데, 편지에는 원상圓相 하나를 그렸었다. 대사는 편지를 받고 개봉한 뒤에 원상 안에다 한 획劃을 긋고 다시 봉해서 돌려보냈다.[혜충慧忠 국사가 이 말을 듣고 “도흠은 아직도 마조의 속임수에 빠졌다”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으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의 물음이 마땅치 않다.”
“어찌해야 마땅하겠습니까?”
“내가 열반에 든 뒤에야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
마조가 문인門人인 지장智藏을 보내서 물었다.
“12시時 가운데 무엇으로 경계를 삼습니까?”
“그대가 돌아갈 때에야 전갈을 하겠다.”
지장이 말했다.
“지금 바로 돌아가겠습니다.”
“조계曹谿에게 물어보라고 말을 전하라.”
당나라 대력大歷 3년에 대종代宗이 조칙을 내려서 대사를 궁궐로 부르고는, 친히 예를 갖추어서 뵈었다. 어느 날 대사가 대궐 안 뜰에 있다가 황제를 보고 일어나 섰다. 황제가 물었다.
“대사는 왜 일어나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단월檀越께서는 어찌하여 네 가지 위의威儀 가운데서 빈도賓道를 보셨습니까?”
황제가 기뻐하면서 혜충慧忠 국사國師에게 말했다.
“도흠道欽 대사에게 이름 하나를 하사하려고 하오.”
혜충 국사가 흔연히 조칙을 받고 물러나서 국일國一이라고 지어 바치니, 황제가 하사하였다.
나중에 궁궐을 하직하고 본산으로 돌아왔다가 정원貞元 8년 12월에 병환에 걸린 모습을 보이고는 법을 설하고 나서 열반하니, 수명은 79세이고 시호는 대각大覺 선사였다.
앞의 항주杭州 경산徑山 도흠道欽 선사의 법손
항주杭州 조과鳥窠 도림道林 선사
그는 본군本郡의 부양富陽 사람으로서 성은 반潘씨이다. 어머니 주朱씨는 입으로 태양이 들어오는 꿈을 꾸고는 태기가 있었다. 탄생할 때에는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였으므로 향광香光이라고 이름하였다.
9세에 출가하여 21세에는 형주荊州의 과원사果願寺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나중에 장안 서명사西明寺에 있는 복례復禮 법사에게 가서 화엄경華嚴經과 기신론起信論을 배웠다. 복례가 진망송眞妄頌을 보이면서 선나禪那를 닦으라 하자, 대사가 물었다.
“처음에 어떻게 관찰하며,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합니까?”
복례가 오래도록 말이 없자, 대사는 세 번 절하고서 물러갔다.
때마침 당의 대종이 경산徑山 국일國一 선사를 대궐로 초청했는데, 대사가 가서 선사를 뵙고 마침내 정법을 전해 받았다. 그리고는 남쪽으로 돌아왔는데, 이보다 먼저 고산孤山의 영복사永福寺에는 벽지불辟支佛의 탑이 있어서 당시의 도속道俗들이 함께 법회를 하고 있었다.
대사가 석장을 흔들면서 들어가니, 영은사靈隱寺의 도광韜光 법사가 물었다.
“여기는 법회를 하는 곳인데, 어찌하여 소리를 내는가?”
대사가 대답했다.
“소리가 없으면 누가 이 법회를 알겠는가?”
훗날 진망산秦望山에 낙락장송落落長松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가지와 잎이 무성하면서도 그 모양이 마치 일산 같아서 마침내 그 위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그를 조과鳥窠 선사라 하였다. 또 까치가 그 곁에 둥지를 짓고 자연히 길들여져 가까이했으므로 작소鵲巢 화상和尙이라고도 하였다.
회통會通이라는 시자侍者가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떠나려고 하직을 하자, 대사가 물었다.
“너는 지금 어디로 가려는가?”
회통이 대답했다.
“회통은 법을 알기 위해 출가하였지만, 화상의 자비로운 가르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 곳을 다니면서 불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그런 불법쯤이라면 나에게도 약간은 있다.”
“어떤 것이 화상의 불법입니까?”
대사가 즉시 몸에서 실오라기[布毛] 하나를 뽑아서 불어 날리니, 회통이 마침내 현묘한 종지를 깨달았다.
원화元和 시기에 백거이白居易가 이 고을의 군수로 왔는데, 이 산에 들른 길에 대사를 알현하고서 물었다.
“선사께서 머무는 곳이 너무나 위태합니다.”
대사가 대답했다.
“태수의 위험은 더욱 심하오.”
“제자는 지위가 강산江山을 진압하고 있는데, 무슨 위험이 있겠습니까?”
“장작과 불이 서로 사귀듯이 식識의 성품이 멈추질 않으니, 위험치 않겠는가?”
또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모든 악은 짓지 말고, 뭇 선행은 받들어 행하라.”
“세 살짜리 아기도 그런 것은 알겠습니다.”
“세 살짜리 아기도 말은 할 수 있으나, 80살 노인도 행하지 못한다.”
백거이가 드디어 절을 하였다.
선사가 장경長慶 4년 2월 10일에 시자에게 말했다.
“나는 이제 과보가 다했다.”
말을 마치고는 앉은 채로 열반에 드니, 수명은 84세이고, 법랍은 63세였다.[어떤 이가 말하기를 “대사의 이름이 원수圓修이다”라고 하였는데, 시호諡號가 아닌가 한다.]
앞의 항주杭州 조과鳥窠 도림道林 선사의 법손
항주杭州 초현사招賢寺 회통會通 선사
그는 본군(本郡:항주) 사람으로서 성은 오吳씨이고, 본래 이름은 원경元卿이다. 형상이 단정하면서도 준엄하고 어릴 때부터 총명하였다.
당나라 덕종德宗 때에 육궁사(六宮使:관직 이름)가 되니, 왕족들이 모두 좋아하였다. 봄이 되어 소양궁昭陽宮 뜰에서 꽃들이 번성한 것을 보고는 오래도록 구경하고 있었는데, 홀연히 공중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허망한 허깨비의 모습이 피었다 떨어지기를 그치지 않으면서 선근善根을 파괴하거늘, 그대는 어찌 그것을 즐기는가?”
대사가 자세히 반성해 보니 젊은 나이에 벼슬을 숭상한 것이 지극히 싫어졌다. 하루는 황제가 궁전에서 노닐다가 대사에게 물었다.
“경卿은 어찌하여 즐거워하지 않소?”
대사가 대답했다.
“신臣은 어릴 때부터 누린 것을 먹지 않으면서 스님이 되기를 소원하였습니다.”
“짐朕은 그대를 형제처럼 여기고 있어서, 부귀가 남보다 뛰어나고자 한다면 그대의 뜻을 따라 줄 것이지만, 출가만은 허락하지 못하오.”
열흘이 지났을 때 황제는 그의 얼굴이 초췌한 것을 보자, 왕빈王賓을 불러 상相을 보게 하였다. 왕빈이 아뢰었다.
“이 사람은 삼보를 계승해야 합니다.”
황제가 대사에게 말했다.
“경의 소원대로 하겠으니, 마음대로 날짜를 받아서 곧 알려 주오.”
대사가 황제의 승낙을 받고 감사를 드렸다. 이때 고향에서 어머니가 병환이 났다는 소식이 왔다. 곧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문안하기를 청원하니, 황제는 하사품을 후하게 주고 유사有司에게 분부하여 길을 안내케 하여 집으로 보냈다.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도광韜光 법사法師의 권면勸勉으로 조과鳥窠 도림道林 선사를 만나 그의 단월(檀越:시주)이 되어 암자와 절을 지어 주었다. 절이 낙성되는 날 이렇게 여쭈었다.
“제자는 7살 때부터 채식을 하였고, 11살에 5계를 받았고, 지금 22살에는 스님이 되기 위하여 관직을 그만두었습니다. 바라건대 화상께서는 스님을 만들어 주십시오.”
도림이 대답했다.
“요즈음 스님이 되는 사람은 정성껏 고행하는 이가 드물어서 그 행실이 대체로 들뜨거나 넘친다.”
대사가 말했다.
“본래의 청정함[本淨]은 갈고 닦아서 이루는 것이 아니며, 원래의 밝음[元明]은 연緣에 따라 비추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가 만약 청정한 지혜가 묘하게 원만하고 그 체體가 스스로 공적한 것을 요달한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출가이니 어찌 외적인 모습을 빌리겠는가. 그대는 마땅히 재가在家의 보살이 되어 보시와 계율을 함께 닦음으로서 사령운謝靈運의 무리처럼 되어라.”
“그러나 이(理:이치)로는 비록 그렇더라도 사(事:현상)에서는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만일 자비를 드리워서 거두어 주시면, 맹세코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이와 같이 세 번 청했으나 모두 허락되지 않았다. 이때 도광 법사도 강력히 조과 스님께 여쭈었다.
“궁사(宮使:관직의 명칭, 회통을 가리킴)가 장가를 들지도 않았고 시녀侍女도 두지 않았는데, 선사께서 거두어 주시지 않으면 누가 제도하겠습니까?”
이에 조과는 곧 머리를 깎고 구족계를 주었다. 대사는 항상 묘재卯齋 묘시卯時에 먹는 재식齋食을 뜻한다.
를 지키면서 밤낮으로 정진하였으며, 대승 경전을 외우고 안반삼매(安般三昧:수식관)를 익혔다. 이윽고 굳이 사양하고 딴 곳으로 가려는데, 조과가 실오라기[布毛]를 불어 보이자, 현묘한 종지를 깨달았기 때문에 당시 포모布毛 시자侍者라는 별명이 있었다.[앞의 조과 장鳥窠章에서 언급하였다.] 조과 선사가 열반에 든 지 20년 만에 무종武宗이 그 절을 폐하는 법난法難을 만났는데, 대사는 뭇 스님들과 함께 신령한 탑에 하직 인사를 하고 떠나니, 그의 남은 생애는 알 수 없다.
앞의 혜충慧忠 선사의 두 세대의 방계 법손
천태산天台山 불굴암佛窟巖 유칙惟則 선사
그는 경조京兆 사람으로서 성은 장손長孫씨이다. 처음에 우두牛頭의 충忠 선사를 뵙고서 현묘한 종지를 크게 깨닫고, 나중에 천태폭포天台瀑布의 서쪽 바위 밑에 은둔했다.
당나라 원화元和 때에 법석法席이 점차 번창하였는데, 이때부터 이 바위를 불굴佛窟이라 하였다. 하루는 대중에게 이런 법문을 하였다.
“천지天地도 본래 없는 물건이요, 나도 없는 물건이다. 그러면서도 일찍이 물건이 없던 적이 없다. 이렇게 성인은 그림자와 같고 백 년은 꿈과 같은 것이니, 누가 태어나고 죽겠는가? 지극한 사람[至人]이 이로써 홀로 비추면 능히 만물의 주인이 되리니, 나는 이것을 아는데 그대들도 아는가?”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나라연(那羅延:金剛)의 화살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과녁을 맞추었다.”
하루는 홀연히 문인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이제 스스로 힘써야 할 것이니,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 뒤 이튿날 밤에 단정히 앉아서 열반에 드니, 수명은 80세이고 법랍은 58세였다.
앞의 천태산天台山 불굴암佛窟巖 유칙惟則 화상和尙의 법손
천태산天台山 운거雲居 지智 선사
일찍이 화엄원華嚴院의 스님 계종繼宗이 물었다.
“성품을 보아서 부처를 이룬다[見性成佛]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청정한 성품은 본래부터 담연湛然하여 동요가 없으니, 유무有無․정예淨穢ㆍ장단長短ㆍ취사取捨에 속하지 않고 체體 스스로가 그러하다. 이와 같이 분명히 보면 성품을 보았다 하나니, 성품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성품이므로 성품을 보아서 부처를 이룬다고 하는 것이다.”
“성품이 이미 청정해서 유무有無에 속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인因하여 보는 일이 있습니까?”
“보아도 보는 대상이 없느니라.”
“보는 대상이 없다면, 무엇을 인하여 다시 보는 일이 있습니까?”
“보는 것도 또한 없느니라.”
“이렇게 볼 때는 누가 보는 것입니까?”
“보는 주체도 있지 않다.”
“궁극의 이치는 무엇입니까?”
“그대는 알지 못하는가? 허망한 계교로 있다고 하면, 곧 주체[能]와 대상[所]이 있게 되어서 미혹했다는 명칭을 얻게 된다. 보는 데 따라서 견해를 내면 문득 생사에 떨어지지만, 밝게 보는 이는 그렇지 않아서 종일 보아도 본 적이 없고 본 곳을 구해도 그 체體와 모습[相]을 얻을 수 없어서 능能과 소所를 함께 끊으니, 이를 이름하여 성품을 보았다고 한다.”
“이 성품이 일체의 처소에 두루합니까?”
“두루하지 않은 곳이 없다.”
“범부에게도 갖추어 있습니까?”
“위에서 말하기를 두루하지 않은 곳이 없다 하였거늘, 어찌 범부인들 갖추지 않았겠는가?”
“어찌하여 부처님과 보살들은 생사에 구속되지 않고 범부들만이 이 고통에 얽매입니까? 그러니 어찌 두루했다고 하겠습니까?”
“범부들은 청정한 성품 가운데서 능과 소가 있다고 계교하므로 곧 생사에 떨어지지만, 부처님과 보살들은 청정한 성품은 유무에 속하지 않음을 잘 알아서 능과 소를 세우지 않느니라.”
“만약 그렇게 설하신다면, 깨친 이와 깨치지 못한 사람이 있겠습니다.”
“깨달음이란 대상이 본래 없거늘, 어찌 깨달음의 주체가 있을 수 있겠는가?”
“지극한 이치[至理]는 어떠합니까?”
“내가 요점을 말하리니, 그대는 마땅히 기억해 두라. 청정한 성품에는 범부와 성인도 없고, 깨달은 이와 깨닫지 못한 사람도 없다. 범부와 성인은 둘 다 같은 이름이니, 만약 이름을 따라 소견을 내면 곧 생사에 빠지지만, 만약 방편으로 세운 이름이 실체가 아님을 알면 이름에 해당하는 자가 없다.”
또 말하였다.
“이는 가장 궁극적인 경지이니, 만일 나는 능히 깨달았고 다른 사람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고 말한다면, 이는 큰 병이다. 청정함과 더러움[淨穢], 범부와 성인[凡聖]이 있다고 보는 것도 큰 병이고, 또 범부와 성인이 모두 없다는 소견을 내어도 인과를 무시하는 것이고, 청정한 성품은 의지해 머물 수 있다고 보아도 큰 병이고, 의지해 머물지 못한다는 견해를 지어도 큰 병이다. 그러나 청정한 성품에 동요는 없지만 파괴되지 않는 방편의 감응 작용과 아울러 자비를 일으켜 운행함을 갖추느니라. 이와 같이 자비를 일으켜 운행하는 곳이 바로 청정한 성품을 내는 것이니, 이를 일러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見性成佛]고 하느니라.”
계종은 뛸 듯이 기뻐하면서 절을 하고 물러갔다.
앞의 제32조 홍인弘忍 대사大師의 제1세 방계 법 손[제1세]
북종北宗 신수神秀 선사[야사삼장지耶舍三藏誌에 말하 기를 “양지良地에서 현묘한 도리가 나온다 했으니, 높고 낮음에 통하는 것은 역시 높은 것이다. 39족族에 비견해 도 족하일모분足下一毛分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개봉開封 위씨현尉氏縣 사람으로 성은 이李씨이다. 어릴 때에 유가儒家를 가까이해서 널리 섭렵하여 많이 배웠는데, 얼마 있다가 출가하여 스승을 찾고 도를 찾았다. 기주蘄州 쌍봉雙峰에 있는 동산사東山寺에 가서 5조 홍인 대사를 만나 좌선에 힘쓰다가 이윽고 탄복해서 말했다.
“이 분은 진실로 나의 스승이로다.”
그리고는 고행하기를 마음속으로 서원한 후 스스로 나무하기와 물 긷기를 하면서 도를 구하였다. 홍인이 묵묵히 이를 알고 더욱 소중히 여기면서 말했다.
“내가 제도한 사람이 많으나 오해悟解에 있어서는 그대를 따를 자가 없다.”
홍인이 열반에 든 뒤에 신수가 강릉江陵의 당양산當陽山에 머물렀는데, 당의 측천무후則天武后가 듣고 수도로 불러서 궁내의 도량에서 공양하며 더욱 공경스럽게 예를 베풀었다. 그리고는 옛 산에 도문사度門寺를 두도록 명령하여 그의 공덕을 기렸다. 이때에 왕王․공公․사士․서庶가 모두 그가 있는 곳을 향하여 배례하였고, 중종中宗이 즉위하고 나서는 더욱 정중히 여겼다.
대신大臣 장열張說이 제자의 예로써 법의 요체를 묻자, 대사가 게송으로써 대답했다.
일체의 불법佛法은
스스로의 마음에 본래 있거늘
마음을 가지고 밖으로 구하면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하는 것이네.
一切佛法 自心本有
將心外求 捨父逃走
신룡神龍 2년에 동도東都의 천궁사天宮寺에서 열반에 드니, 대통大通 선사라 시호를 내리고는 우의(羽儀:儀裝)와 법물法物을 갖추어 용문龍門에 빈소를 차리게 하였는데, 황제는 다리[橋]까지 전송하였고, 왕․공․사․서는 모두 장지葬地까지 참석하였다. 장열張說과 징사徵士인 노홍일盧鴻一이 제각기 비碑에 제사하였다. 문인인 보적普寂과 의복義福 등은 모두가 조야朝野의 존경을 받았다.
숭악嵩嶽 혜안慧安 국사國師[야사삼장지耶舍三藏誌에서 말하기를 “아홉 여인은 부모를 버리고 떠났고, 여덟 여인 은 혼인婚姻을 포기하고서 썩은 상에 여섯 다리를 붙여 가면서 마음으로 무리 가운데 으뜸이신 혜안 스님에게 귀 의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형주荊州의 지강枝江 사람으로 성은 위衛씨이다.
수隋나라 문제文帝 개황開皇 17년에 천하에 널린 사도승니(私度僧尼:度牒 없이 제멋대로 된 스님)를 총괄하여 심사하게 하였는데, 대사가 말하기를 “나는 자격이 없다” 하고는 산골에 숨었다.
대업大業 때에 장정을 많이 뽑아 운하를 개통할 때 굶주려 죽은 시체가 즐비하자, 대사는 걸식을 해서 그들을 구제하였다. 이때 구제를 받은 이가 매우 많았다.
양제煬帝가 대사를 불러도 나아가지 않고 태화산太和山에 몰래 들어갔다. 황제가 강도江都에 행차함으로써 천하가 소란해지자, 주장자를 떨치고 떠나 형악사衡嶽寺로 가서 두타행頭陀行을 하였다.
당나라의 정관貞觀 때에 황매산黃梅山에 가서 홍인 대사를 뵙고는 마음의 요체를 전해 받았으며, 인덕麟德 원년에 종남산終南山 석벽石壁을 지나다가 거기서 눌러 살았다. 고종高宗이 또 대사를 부른 적이 있지만, 조칙을 받들지 않고 명소名所를 두루 다니다가 숭산嵩山의 소림少林에 이르러서 말하였다.
“여기가 내 생명을 마칠 곳이다.”
이때부터 참선하는 이가 많이 모였는데, 탄연坦然과 회양懷讓 두 사람이 와서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어찌하여 자기自己의 뜻은 묻지 않는가?”
“어떤 것이 자기의 뜻입니까?”
“마땅히 비밀한 작용을 관찰해야 한다.”
“어떤 것이 비밀한 작용입니까?”
대사가 눈을 떴다 감았다 해서 보이니, 탄연히 그 말끝에 돌아갈 곳을 알고는, 다시는 딴 곳으로 가지 않았다. 그러나 회양은 기연機緣이 맞지 않아서 하직하고 조계曹谿로 갔다.
측천무후가 수도로 불러들여 스승의 예로 대우하면서 신수神秀 선사와 똑같이 매우 존중하였다. 측천무후가 일찍이 대사의 나이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측천무후가 다시 물었다.
“어찌하여 기억하지 못하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생사生死의 몸은 마치 돌고 도는 고리와 같으니, 고리는 시작도 끝도 없거늘 기억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하물며 이 마음이 흘러 들어가는 중간中間은 틈이 없거늘[無間] 거품이 일어났다 꺼졌다 함을 보는 것은 망상일 뿐입니다. 처음의 식識으로부터 움직이는 형상이 사라질 때까지도 다만 이러할 뿐이거늘, 어찌 연월일을 기억하겠습니까?”
측천무후가 듣고 머리를 조아려서 신봉하였다. 이윽고 신룡神龍 2년에 중종中宗이 자색紫色 가사를 하사하고 제자 14인을 출가시켰으며, 이어서 궁중으로 맞이하여서 공양하였다.
신룡 3년에는 또 마납摩衲 가사 한 벌을 하사하자, 대사는 사양하고 숭악嵩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그해 3월 3일에 문인에게 이렇게 부촉하였다.
“내가 죽거든 시체를 숲 속에 놓아 두어 들불에 타도록 하라.”
얼마 있다가 만회공萬廻公이 와서 뵙자, 대사는 미친 듯이 손을 잡고 이야기를 하는데 곁에서 모신 이가 귀를 기울이고 자세히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8일째가 되자 문을 닫고 누워서 입적하니 춘추는 128세였다.[수隋의 개황開皇 2년 임인년壬寅年에 태어나, 당의 경룡景龍 3년 기유년己酉年에 멸하였다. 그때 노안老安 국사國師라 칭하였다.] 문인들이 유언에 따라 시체를 메다 숲 속에 놓으니, 과연 들불이 나서 저절로 화장을 하여 80개의 사리를 얻었는데, 그 중 다섯 개는 붉은 자주색으로서 궁중에 남겨 두었다. 선천先天 2년이 되자 문인들이 부도를 세웠다.
원주袁州 몽산蒙山 도명道明 선사
그는 파양鄱陽 사람으로 진陳나라 선제宣帝의 후손이었다. 나라가 멸망하자 평민이 되었는데, 왕손인 까닭에 일찍이 직위[署]를 받았으므로 장군이라는 칭호가 있었다.
어릴 때에 영창사永昌寺에서 출가하였는데, 도를 흠모함이 지극히 간절하였으므로 5조祖의 법회에 가서 극진한 뜻[極意]을 연구하였다. 처음에는 이해하거나 깨달은 것이 없었는데, 5조가 노盧 행자行者에게 비밀히 옷과 발우를 전했다는 말을 듣고는 동지들 수십 명을 거느리고 뒤를 쫓아서 대유령大庾嶺까지 이르렀다. 대사가 가장 먼저 보았고 다른 이는 아직 오지 못했는데, 노盧 행자는 대사가 오는 것을 보자 의발衣鉢을 반석 위에다 던지면서 말했다.
“이 옷은 믿음을 표시하는 것이거늘 힘으로 다툴 수 있겠는가? 마음대로 가져가라.”
대사가 옷을 들으려고 했으나 산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주저하다가 겁이 나서 말했다.
“제가 온 것은 법을 구하기 위한 것이지 옷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바라건대 행자께서는 저에게 열어 보여 주십시오.”
조사가 대답했다.
“선善도 생각지 말고 악惡도 생각지 말지니, 바로 이럴 때 어떤 것이 도명道明 상좌上座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인가?”
대사가 즉각 크게 깨닫고는 온몸에 땀을 흘리면서 눈물을 흘리며 몇 차례 절하고는 물었다.
“위에서 보이신 비밀한 말과 비밀한 뜻 이외에 따로 뜻이 있으십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 말한 것은 비밀이 아니다. 그대가 자신의 본래면목을 반조返照하면, 비밀은 문득 그대 곁에 있다.”
“제가 비록 황매산에서 대중을 따랐으나, 실제로는 아직 자신의 면목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이제 들어갈 곳을 가르쳐 주심을 받으니,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실 때 차고 더운 것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행자께서 저의 스승이십니다.”
“그대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대와 내가 함께 황매黃梅를 스승으로 섬겼기 때문이니, 잘 보호해서 지녀라.”
“저는 이후에 어디로 가오리까?”
“원袁을 만나면 멈추고, 몽蒙을 만나면 살아라.”
대사가 절하고 하직한 뒤에 급히 고개 밑으로 돌아가서 다른 동지들에게 말하기를 “앞산이 까마득하여 아무리 멀리 바라보아도 아득할 뿐 종적이 없다. 딴 길로 찾아보자”라고 하자, 모두가 그 말을 믿고 따랐다.
대사는 돌아온 뒤에 홀로 여산廬山의 포수대布水臺에 가서 3년을 살다가 비로소 원주袁州의 몽산蒙山으로 가서 현묘한 교화를 크게 퍼뜨렸다. 처음에는 이름을 혜명慧明이라고 하였으나, 혜능 조사의 앞 글자를 피하기 위하여 도명道明이라고 이름하였다. 제자들은 모두 남쪽으로 보내서 6조를 참문하게 하였다.
앞의 북종北宗 신수神秀 선사의 법손[홍인 대사의 제2 세 법손]
오대산五臺山 거현巨玄 선사
그는 안륙安陸 사람으로서 성은 조曹씨이다. 어릴 때에 명복원明福院 낭朗 선사에게 수학하였는데, 처음에는 경론經論을 강의하다가 나중에는 선회禪會에 참석하였다. 그리하여 북종北宗을 찾아갔을 때에 신수神秀가 물었다.
“백운白雲이 흩어진 곳은 어떠한가?”
대사가 대답했다.
“어둡지 않습니다.”
“여기에 이른 뒤에는 어떠한가?”
“한 가지에서 다섯 잎이 난 것을 똑바로 보았습니다.”
신수가 잠자코 허락하므로 방에 들어가 모시면서 대하니 거의 어긋남이 없었다. 뒤이어 상당上黨의 한령寒嶺에 가서 사니, 몇 해 사이에 수천 명의 무리가 모였다. 나중에 오대산五臺山에서 교화를 시작하여 20여 년 만에 열반에 드니 향년 81세였다. 당의 개원開元 15년 9월 3일에 전신을 그대로 탑에 모셨다.
하중부河中府 중조산中條山 지봉智封 선사
그의 성은 오吳씨이다. 처음에 유식론唯識論을 강의했지만 이름과 형상[名相]에 막혀서 선지식의 꾸지람을 받자, 격분한 나머지 강의를 그치고 길을 떠났다.
무당산武當山에 올라가 신수 선사를 보고는 의심이 단박에 풀렸지만, 성태聖胎를 기를 것을 생각해서 신수를 하직하고는 포진蒲津의 안봉산安峰山에 가서 살았다. 10년 동안을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나무 열매와 샘물을 마시고 살았다. 때마침 그 고을의 목사牧使 위문승衛文昇이 성안으로 들어오기를 청하면서 신안국원新安國院을 지어 주자 그곳에서 살기 시작했는데, 승속이 끊임없이 귀의하였다.
목사가 물었다.
“제가 오늘 이후에 어떠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해가 몽범(濛氾:해가 지는 곳)으로부터 떠서 나무를 비추니 전혀 그림자가 없다.”
목사가 처음에는 깨닫지 못해서 읍을 하며 물러났다. 잠시 있다가 밝게 열리면서 의심이 풀려 스스로 깨달았다.
대사가 중조산中條山을 20여 년 동안 왕래했는데, 그 도를 얻은 자가 헤아릴 수 없었다. 열반에 든 뒤에 문인들이 고을의 성 북쪽에다 탑을 세웠다.
연주兗州 항마降魔 장藏 선사
그는 조군趙郡 사람으로서 성은 왕王씨인데, 아버지는 고을의 아전이었다.
대사는 7세에 출가하였는데, 그때는 들에 요귀妖鬼가 많아서 사람들을 홀렸다. 대사는 단신으로 가서 그들을 항복시키되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으므로 항마降魔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는 바로 광복원廣福院의 명찬明讚 선사에 의해 출가해서 부지런히 시봉하여 법을 받았다.
나중에 북종(北宗:神秀의 宗派)이 아주 크게 교화가 번성하게 되자, 힘써 노력하기를 서원하니, 신수가 물었다.
“네 이름을 항마降魔라고 하나, 여기에는 산의 정령이나 나무의 요괴가 없으니, 네가 도리어 마魔가 되겠느냐?”
대사가 대답했다.
“부처가 있으니 마도 있습니다.”
“네가 만일 마라면 반드시 부사의不思議의 경계에 머물 것이다.”
“이 부처라는 것도 본래 공하거늘 무슨 경계가 있겠습니까?”
신수가 예언을 해주었다.
“너는 소호(少皥:小昊로 神話時代 皇帝의 이름)의 터에 인연이 있다.”
이에 대사가 태산泰山을 찾아 들어가니, 몇 해 사이에 학자가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어느 날 문인들에게 고하였다.
“나는 이제 늙었다. 사물이 극에 이르면 근원으로 돌아가는 법이다.”
말을 마치고 나서 입적하니, 수명은 91세였다.
수주壽州 도수道樹 선사
그는 당주唐州 사람으로서 성은 문聞씨이다. 어릴 때부터 여러 경서를 탐독하다가 나이 50세가 되자 어떤 고승의 권유로 출가하기를 서원하고는 본부本部 명월산明月山에 있는 혜문慧文에게 절하고 스승으로 모셨다.
대사는 나이 많아서 법法을 구하느라 무척 더딘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다니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중에 동락東洛으로 돌아와 신수神秀 선사를 만나고 나서야 말끝에 미묘한 이치를 깨닫고 만년에 법기法器를 이루었다.
이윽고 수주壽州의 삼봉산三峰山을 택하여 초가를 짓고 살았다. 일찍이 어떤 촌사람[野人]이 있었는데, 옷과 겉치장은 소박했으나 말하는 것이 궤이詭異하였다. 말하고 웃는 때 이외에는 부처님 보살ㆍ아라한ㆍ하늘ㆍ선인 등의 형상을 짓기도 하고, 혹은 신령한 광명을 놓기도 하고, 혹은 소리를 내기도 했다. 대사의 제자들은 이를 보았지만 아무도 헤아리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10년을 거친 뒤에 적적히 자취를 감추었다.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촌사람이 갖가지 재주를 부려서 사람들을 미혹했지만, 오직 불 꺼진 노승老僧만은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았을 뿐이다. 그의 재주는 다함이 있지만, 나의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음은 다함이 없다.”
당의 보력寶歷 원년에 병이 나서 입적하니 수명은 92세였다. 이듬해 정월에 탑을 세웠다.
회남도淮南都 양산梁山 전식全植 선사
그는 광주光州 사람으로서 성은 예芮씨이다. 처음에 암자 하나를 지어서 살았는데, 태수太守인 위문경衛文卿이 본주本州의 장수사長壽寺에 머물도록 하였으므로, 법문을 열어 무리를 모았다. 위문경이 물었다.
“장차 불법의 흥망이 어떠하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참되고 실다운 물건은 옛날도 이제도 없고 또한 궤촉(軌躅:法則)도 없지만, 유위有爲의 법은 네 가지 형상으로 변천한다. 법이 장차 액난厄難을 당하리니, 그대는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사는 93세로써 일생을 마쳤고, 당의 회창會昌 4년 갑자甲子 9월 7일에 탑을 세워 안치하였다.
앞의 숭악嵩嶽 혜안慧安 국사의 법손
낙경洛京 복선사福先寺 인검仁儉 선사
그는 숭산嵩山에서 물음을 파罷한 뒤에 들과 장터로 걸림 없이 다니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등등騰騰 화상이라고 하였다.
당나라 천책天冊 만세萬歲 시절, 측천무후가 불러서 대궐에 들어갔는데, 측천무후를 우러러본 채 양구良久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시겠습니까?”
측천무후가 대답했다.
“모르겠소.”
“노승은 말하지 않는 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곧 물러갔다. 이튿날 단가短歌 19수를 지어서 바치니, 측천무후가 살펴보고서 가상히 여겼다. 그래서 후한 선물로 사례를 하였는데, 대사는 전혀 받지 않았다.
또 가사歌辭를 필사해서 천하에 퍼뜨리게 하였는데, 그 가사는 진리를 펼침으로써 당시의 풍속을 경책한 것이었다. 오직 요원가了元歌 1수만이 세상에 성대히 유행하였다.
숭악嵩嶽 파조타破竈墮 화상
그의 이름과 성씨는 알 수 없다. 말과 행실은 헤아리기 어려웠으며, 숭악嵩嶽에 은둔해 살았다.
산 중턱에 매우 영험하다는 제당[廟] 하나가 있었는데, 그 안에 조왕신竈王神 하나만을 모셔 놓고 원근遠近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제사를 지내면서 산목숨을 매우 많이 삶아 죽였다. 대사가 하루는 시봉하는 스님을 데리고 제당에 들어가서 지팡이로 조왕신을 세 번 때리고 나서 말했다.
“쯧쯧, 이 조왕신은 단지 진흙과 기와로 이루어졌거늘, 성스러움이 어디로부터 왔고 영험함은 어디로부터 일어났기에 이렇듯이 산목숨을 삶아 죽이는가?”
그리고는 다시 세 번을 치니 조왕신이 넘어지면서 깨졌다.[안安 국사國師가 파조타破竈墮라고 불렀다.] 조금 있다가 어떤 사람이 푸른 옷을 입고 높은 관을 쓰고서 홀연히 대사에게 절을 하니, 대사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그가 대답했다.
“저는 본래 이 제당의 조왕신이었는데, 오랫동안 업보를 받다가 오늘에야 화상께서 설하신 무생법문無生法門을 듣고서 이곳을 벗어나 하늘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사례하러 왔습니다.”
“이는 그대가 본래 가지고 있는 성품이지, 내가 억지로 말한 것이 아니다.”
조왕신은 다시 절하고는 이내 사라졌다. 조금 있다가 시봉하는 스님들이 대사에게 물었다.
“저희들은 오랫동안 스님을 곁에서 모시고 있었지만, 아직도 스님께서 애써서 저희들에게 직접 일러 주시는 말씀을 듣지 못하였는데, 조왕신은 어떤 지름길을 얻었기에 하늘에 태어나게 되었습니까?”
“나는 다만 그에게 ‘본래 진흙과 기와가 합친 것’이라고 말했을 뿐 그를 위해 별다른 도리를 말한 것은 없다.”
시봉하던 스님들이 선 채로 말이 없자, 대사가 다시 말했다.
“알겠는가?”
주사(主事:직책의 이름)가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본래 가지고 있는 성품인데, 어찌하여 알지 못하는가?”
시봉하던 스님들이 이내 절을 하자, 대사가 말했다.
“떨어졌다, 떨어졌다. 깨졌다, 깨졌어.”
나중에 의풍義豊 선사라는 이가 안安 국사國師에게 모든 일을 아뢰니, 안 국사가 탄복하였다.
“이 사람이 물아일여物我一如를 몽땅 알아 버렸으니, ‘밝은 달이 허공에 있는 것과 같아서 보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의 말의 본뜻을 바로 알기 어려우리라.”
의풍 선사가 머리를 숙이고 합장한 채 물었다.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사람이 그의 어맥을 바로 알겠습니까?”
“알지 못하는 자이다.”
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사물마다 형상이 없을 때는 어떠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절을 하면 오직 그대일 뿐 내가 아니며, 절을 하지 않으면 오직 나일 뿐 그대가 아니다.” 그 스님이 절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대답이다.
그 스님이 절을 하고 물러가자, 대사가 말했다.
“본래 있는 물건은 물건이면서 물건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능히 사물을 굴리는 것이 바로 여래와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선행善行을 닦는 사람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창을 들고 갑옷을 입은 사람이니라.”
“어떤 것이 악을 행하는 사람입니까?”
“선禪을 닦아서 정定에 든 사람이니라.”
“저는 근기가 얕으니, 스님께서 곧바로 가르쳐 주소서.”
“그대가 나에게 악을 물으나 악은 선을 쫓지 않고, 그대가 나에게 선을 물으나 선은 악을 쫓지 않는다.”
양구良久하고는 다시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악한 사람은 착한 생각이 없고, 착한 사람은 악한 마음이 없다. 그러므로 선과 악은 모두 뜬구름과 같아서 둘 다 일어나거나 사라지는 곳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스님이 이 말끝에 크게 깨달았다.
또 어떤 스님이 우두산牛頭山에서 왔는데, 대사가 물었다.
“누구의 법회法會에서 오는가?”
그 스님이 다가와서 합장한 채 대사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나서 나가자, 대사가 말했다.
“우두의 회상에는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없다.”
스님이 대사 주위를 돌다가 위쪽에서 합장하고 서 있자, 대사가 말했다.
“과연이로다, 과연이야.”
스님이 불쑥 물었다.
“사물을 감응하매 타자他者를 말미암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사물에 감응한다 함은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을 이루는 것이요, 그를 말미암지 않는다 함은 주인공을 말미암지 않는다는 말이니, 수행을 부정하는 뜻이다.
“어떻게 타자를 말미암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것이 바로 정正을 따라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근원에 돌아가는데 무엇을 따르겠는가?”
“화상의 지시가 아니었다면 허물에 떨어질 뻔하였습니다.”
“아직 4조 때의 도리는 보지 못했으니, 본 뒤에 다시 소식을 통해 오라.”
그 스님이 불쑥 대사를 한번 돌고 나가자, 대사가 말했다.
“정正을 따르는 도는 예나 지금이나 그러하다.”
그 스님이 절을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이 오랫동안 모시고 서 있자, 대사가 곧 입을 열었다.
“조사와 부처들은 오직 사람 그대로의 본성本性과 본심本心을 말했을 뿐이다. 따로 도리는 없으니, 알아 차려라, 알아 차려라.”
그 스님이 절하고 물러가려고 하자, 대사가 불자拂子로 때리면서 말했다.
“한 곳이 이러하니, 천 곳이 모두 그러하구나.”
그 스님이 합장한 채 가까이 다가와서 “네”라고 소리를 지르자, 대사가 말했다.
“다시는 믿지 않겠다. 다시는 믿지 않아.”
그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대천제(大闡提:善根이 없는 무리)인 인간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예배를 존중하는 자이다.”
“어떤 것이 크게 정진하는 사람입니까?”
“욕하고 성내는 것이다.”
그 뒤에는 어찌 되었는지 그의 행적을 모른다.
숭악嵩嶽 원규元珪 선사
그는 이궐伊闕 사람으로서 성은 이李씨이다. 어릴 때에 출가하여 당나라 영순永淳 2년에 구족계를 받고, 한거사閑居寺에서 계율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중에 혜안慧安 국사國師를 뵈었을 때, 참된 종지로써 인가하자 현묘한 이치를 단박에 깨달았다. 마침내 숭악의 방오龐塢에다 터를 잡고 살았다.
하루는 아관(峨冠:職名) 차림을 한 이인異人이 따르는 자를 아주 많이 데리고 가벼운 걸음으로 점잖게 걸으면서 대사에게 문안을 드렸다. 대사가 그의 용모를 보니 특이한 것이 예사 사람이 아니었다. 대사가 말하였다.
“어서 오시오. 무슨 일로 오셨소?”
그가 대답했다.
“스님께서 저를 어찌 아시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나는 부처와 중생을 동등하게 본다. 나는 한 눈으로 보거늘 어찌 분별하겠는가.”
“나는 이 숭악의 산신山神으로서 능히 사람들을 살리고 죽게 하거늘, 대사께서 어찌 한 눈으로 저를 보십니까?”
“나는 본래 나지도 않았거늘 어찌 그대가 죽게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몸과 허공이 동등한 것으로 보고, 나와 그대가 동등한 것으로 본다. 그대는 능히 허공과 그대를 무너뜨릴 수 있는가? 설사 허공을 무너뜨리고 그대를 무너뜨릴 수 있다 하여도, 나는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 그대는 오히려 이와 같이 할 수도 없을 터인데, 어찌하여 나를 나고 죽게 하겠는가?”
산신이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다.
“저도 다른 신보다는 총명하고 정직하다고 여겼는데, 어찌 스님같이 광대한 지혜와 변재를 가진 이가 있을 줄이야 알았겠습니까? 바라건대 바른 계戒를 주셔서 저로 하여금 이 세상을 건너게 해주십시오.”
“그대가 계를 달라는 것이 곧 계이다. 왜냐하면 계율 밖에 계율이 없기 때문이니, 달리 무슨 계가 또 있겠는가?”
“그 이치는 저로서는 막막하게 들릴 뿐입니다. 오직 스님의 계를 구할 뿐이니, 저를 문중의 제자로 삼아주십시오.”
대사는 곧 그를 위해 자리를 펴고 향로[鑪]를 잡고 책상을 반듯이 놓고 말했다.
“그대에게 5계戒를 주겠으니, 받들어 지닐 수 있다면 즉시 ‘능히 지키겠소’라고 대답하라. 만일 지닐 수 없다면 ‘못하겠소’라고 대답하라.”
산신이 말했다.
“삼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대사가 계를 주었다.
“그대는 음행을 하지 않겠는가?”
“장가는 들어야겠습니다.”
“그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색욕을 부리지 않음을 말한다.”
“그것은 능히 지키겠습니다.”
“그대는 도적질을 하지 않겠는가?”
“제가 무엇이 부족해서 도적질을 하겠습니까?”
“그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중생들이 흠향歆饗하면 복을 준다고 하고, 공양하지 않으면 재앙을 준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능히 지키겠습니다.”
“그대는 살생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그 권한을 지니고 있거늘, 어찌 죽이지 않는다고 하겠습니까?”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남용하거나 잘못 알고서 죽이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능히 지키겠습니다.”
“그대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는가?”
“저는 정직하거늘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앞과 뒤가 천심天心에 맞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능히 지키겠습니다.”
“그대는 능히 술로 인한 낭패를 당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능히 지키겠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이 부처님의 계이다. 또한 마음으로 받들어 지니되 마음에 장애나 집착이 없어야 하고, 있음의 마음으로 남을 위해도 나와 남이라는 생각이 없어야 하나니, 능히 이와 같이 하면 천지보다 앞서 태어났어도 정령이 되지 않고, 천지보다 뒤에 죽어도 늙지 않는다. 종일토록 변화하여도 움직인 적이 없고, 끝내 다 적멸하여도 쉬는 적은 없으니, 이 이치를 깨달으면 비록 장가를 들어도 아내가 있다고 여기지 않고, 비록 흠향을 받아도 취하는 것이 아니요, 비록 권한을 가져도 권세를 부리지 않고, 비록 작용함이 있어도 의도적이지 않고, 비록 술에 취해도 혼미하지 않게 된다. 만일 만물에 대하여 무심할 수 있다면 색욕을 부려도 음행이 아니고, 복을 주고 재앙을 주어도 도적질이 아니고, 남용과 착오와 의심으로 죽여도 살생이 아니고, 앞뒤가 천리를 어겨도 거짓말이 아니고, 혼미하여 뒤바뀌어도 취한 것이 아니니, 이것을 무심無心이라 한다. 무심이면 계가 없고 계가 없으면 무심이라서,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고 너도 없고 나도 없으니, 네가 없다면 누가 계를 지키는가?”
산신이 말했다.
“저의 신통이 부처님 버금갑니다.”
“그대의 신통은 열 구절[十句]에서 다섯 가지는 능해도 다섯 가지는 능하지 못하고, 부처님이라면 열 구절에서 일곱 가지는 능해도 세 가지는 능하지 못하다.”
산신이 두려워서 자리를 고쳐 앉으면서 물었다.
“그 내용을 알려 주십시오.”
“그대가 상제上帝를 거역하고 동쪽 하늘로 가면서 서쪽으로 일곱 가지 광채를 비출 수 있는가?”
“못합니다.”
“그대가 지기地祇를 윽박지르고 오악五嶽을 뭉개고 사해四海를 묶어둘 수 있겠는가?”
“못합니다.”
“이것을 다섯 가지 능하지 못함이라고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온갖 형상의 공空함을 깨달아서 만법의 지혜를 이루셨으나 결정된 업을 즉시 없애지는 못하고, 부처님께서는 뭇 중생의 성품을 다 아시고 억만 겁의 일을 기억하시나 인연 없는 중생을 제도하지는 못하고, 부처님께서는 한량없는 유정有情을 제도하시나 중생 세계를 다하게 하지는 못하나니, 이것을 세 가지 능하지 못함이라고 말한다. 결정된 업이라도 영원한 것은 아니고, 인연이 없다 함도 일기一期를 말한 것이고, 중생세계도 본래 증감增減이 없는 것이라서 한 사람도 유법有法을 능히 주재하는 자가 없다. 유법에 주재자가 없는 것을 무법無法이라 하고, 무법에 주재자가 없는 것을 무심無心이라 한다. 가령 내가 이해하기로는 부처님은 본래 신통이 있는 것이 아니요, 다만 무심으로써 온갖 법을 통달했을 뿐이다.”
“저는 진실로 우매해서 공空의 이치를 아직 들은 적이 없지만, 대사께서 주신 계는 잘 받들어 행하겠습니다. 이제 인자하신 덕에 보답하고 싶어서 저의 능력을 바치겠습니다.”
“내가 몸을 관찰하건대 물질이 아니고, 법을 관찰하건대 무상하거늘, 공연히 다시 무슨 욕망이 있겠는가?”
“대사께서 필경 저에게 세간 일을 하도록 명령하시면, 저의 조그마한 신통을 부려서 이미 발심한 이와 처음으로 발심하는 이와 아직 발심하지 않은 이와 신심이 없는 이와 신심이 굳은 이 등의 다섯 무리로 하여금 제 신통의 자취를 보게 함으로써, 부처가 있고 신통이 있고 능함이 있고 능하지 못함이 있고 자연自然이 있고 비자연非自然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겠습니다.”
“그러지 말라. 그러지 말라.”
“부처님께서도 신장에게 불법을 옹호하게 하셨는데, 스님께서는 어찌 부처님의 말씀을 어기십니까? 바라건대 잘 가르쳐 주십시오.”
대사는 마지못하여 대답했다.
“동암사東巖寺 둘레는 삭막해서 나무가 없고, 북쪽 산봉우리[北岫]에는 숲이 있지만 거의[皆][구본에는 배背로 되어 있다.] 의지가 되지 않는다. 그대가 북쪽 산봉우리의 나무를 옮겨다 동암사 쪽에 심어 주겠는가?”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밤중에 반드시 소란한 움직임이 있을 것이니, 놀라지 마십시오.”
그리고는 곧 절을 하고 물러갔다. 대사가 문까지 전송하고서 보니 그 위의의 성대함이 왕과도 같았다. 바람․안개․연기․노을이 어지러이 뒤섞이고, 당기와 번기와 고리와 패물이 하늘을 찌를 듯이 넘실거렸다. 그날 저녁에 과연 폭풍이 울부짖으면서 구름이 몰려오고 번개가 쳤는데, 집이 흔들리고 자던 새들이 놀라서 울었다.
대사가 대중에게 일렀다.
“놀라지 말라. 산신이 나에게 약속한 일이 있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북쪽 산봉우리의 솔밭이 몽땅 동암사 쪽으로 옮겨졌는데, 첩첩이 줄지어서 심어져 있었다.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죽은 뒤에라도 행여 이 일에 대해 입 밖에 내지 말라. 만일 말을 만들길 좋아하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나를 요망하다 하리라.”
개원開元 4년 병진년丙辰年에 문인들에게 유언을 했다.
“내가 처음에는 절 동쪽 마루턱에 살았는데, 내가 죽거든 너희들은 반드시 거기에다 내 뼈를 묻어라.”
이 말을 마치고는 태연히 열반하니[委蛻], 춘추는 73세였다. 문인들이 그곳에 탑을 세웠다.
앞의 숭산嵩山 보적普寂 선사의 법손[홍인 대사의 제3세]
종남산終南山 유정惟政 선사
그는 평원平原 사람으로서 성은 주周씨이다. 처음에는 고향의 연화사延和寺 전징詮澄 법사에게서 공부를 하다가 숭산嵩山 보적普寂 선사에게서 법을 받았다. 참 이치[眞詮]를 깨닫고 나서는, 곧 태일산太一山으로 들어갔는데, 배우는 자들이 도량에 가득하였다.
당나라 대화大和 때에 문종文宗이 조개[蛤蜊]를 좋아하자 해안의 관리들이 앞을 다투어 진상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피로하였다. 하루는 수랏상에 껍질이 벌어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임금이 이상하게 여겨서 즉시 향을 피우고 기도를 하자, 잠깐 만에 보살의 형상으로 변했는데 범상梵相이 구족하였다.
즉시 금속단金粟檀으로 된 향합(香合:香盒)에 넣고 아름다운 비단으로 덮어서 흥선사興善寺에 하사하여 스님들로 하여금 섬기게 하였다. 그리고는 여러 신하들에게 이 무슨 상서로움이냐고 물었다.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말하기를 태일산에 있는 유정惟政 선사가 불법에 깊이 밝고 지식이 한이 없다고 하였다. 황제는 곧 그를 불러서 이 일에 대해 물으니, 대사가 대답했다.
“신臣이 듣건대, 사물은 공연히 나타나는 일이 없다고 했으니, 이는 바로 폐하의 신심信心을 열어 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경契經에서 말하기를 ‘이러 이러한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곧 이러이러한 몸을 나타내서 법을 설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황제가 말했다.
“보살께서 이미 몸을 나타내셨지만 설법은 아직 듣지 못했소.”
대사가 말했다.
“폐하께서는 이 일을 보시고 예삿일이라 여기십니까, 아니면 예삿일이 아니라 여기십니까? 믿으십니까, 믿지 않으십니까?”
“드물고 기이한 일이니, 짐은 깊이 믿는 바이오.”
“그러면 폐하께서는 이미 설법을 들으셨습니다.”
그때 황제는 일찍이 없었던 기쁨을 느끼고서 천하의 사원에 명하여 각기 관음상觀音像을 모시게 함으로써 특별한 조짐[休]에 보답하였다. 그리고 이로 인해 대사를 내도량內道場에 머무르게 하였지만 누차 사양하고 산으로 들어갔다. 다시 조서를 내려서 성수사聖壽寺에 머무르게 하였는데, 무종武宗이 즉위하자 대사는 홀연히 종남산終南山으로 들어가 은거하였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원수를 피해서 왔다.”
나중에 산간의 초막에서 임종하니 나이는 87세였으며, 화장을 한 뒤에 사리 49개를 얻었는데 회창會昌 3년 9월 4일에 탑에 모셨다.
익주益州 무상無相 선사 법손[홍인 대사의 제4세]
익주益州 보당사保唐寺 무주無住 선사
그는 처음에 무상無相 대사에게 법을 얻었다. 뒤에는 남양南陽 백애산白崖山에서 참선[宴寂]에 오로지 힘쓰기를 여러 해 동안 하였는데, 배우는 자들이 차츰 차츰 모여와서 간곡히 청해 마지않았다. 이때부터 가르침을 내렸는데, 비록 널리 언교言敎를 연설하여도 오직 무념無念으로써 종지를 삼았다.
당나라의 정승[相國] 두홍점杜鴻漸이 이 지방의 안무사로 왔는데, 대사의 명성을 듣고 한번 뵙기를 바라더니, 대력大歷 원년 9월에 사자使者를 산으로 보내어 청했다. 이때 절도사節度使 최녕崔寧 또한 각 절의 스님들에게 명령하여 멀리 나와서 마중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10월 1일에 공혜사空慧寺에 이르렀다.
그때 두공杜公과 융수(戎帥:최녕)가 3학學의 석덕碩德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놓고 절을 한 뒤에 두공이 물었다.
“전에 듣건대 대사께서 일찍이 여기에 머무르셨다는데, 그 뒤 어찌하여 떠나셨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일정하게 머무는 곳 없으니, 본래 성품이 거칠고 털털하여 산간에 있기를 좋아합니다. 하란산賀蘭山과 오대산五臺山을 비롯하여 훌륭한 경관을 두루 다니다가 상공의 관내에 있는 대자사大慈寺에서 나의 스승[先師]께서 최상승의 법을 연설하신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멀리 와서 뵈었습니다. 그리고 외람되이 법을 받은 뒤에는 백애산白崖山에 머무른 지 여러 해가 지났는데, 이제 상공께서 부르시니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두공이 말했다.
“제자가 듣건대, 오늘날 스님께서는 ‘기억하지 말라[無憶], 생각하지 말라[無念], 망상하지 말라[莫妄]’는 세 구절의 법문을 설하신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세 구절은 하나입니까, 셋입니까?”
“기억하지 말라 함은 계戒요, 생각하지 말라 함은 선정[定]이요, 망상하지 말라 함은 지혜[慧]이나, 한 마음이라도 생겨남이 없으면 계와 선정과 지혜를 갖추는 것이니, 하나도 아니고 셋도 아닙니다.”
“마지막 구절의 망妄자는 마음 심心을 쓰는 잊을 망忘자가 아닙니까?”
“아닙니다. 계집 녀女를 쓴 망妄자입니다.”
“근거가 있습니까?”
“법구경法句經에 말하기를 ‘정진한다는 마음을 일으키면 망상이지 정진이 아니다. 만일 마음이 망령되지 않으면 그 정진은 한량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두공이 듣고 나서 의심이 확연히 풀리자, 다시 물었다.
“대사께서는 앞으로 세 구절의 법문으로 사람들을 제도하시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초심학인初心學人에게는 생각을 쉬어서 의식의 물결을 그치게 하면 마치 물이 맑아져서 그림자가 드러나듯 하겠지만, 생각[念]의 체體가 없음을 깨달아서 적멸이 현전하면 무념 또한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때 뜰 앞의 나무 위에서 까마귀가 울었는데, 두공이 물었다.
“대사께서는 들으셨습니까?”
“들었소.”
조금 있다가 까마귀가 날아갔는데 두공이 다시 물었다.
“대사께서는 들으셨습니까?”
“들었습니다.”
“까마귀가 날아가서 소리가 나지 않거늘, 어찌하여 듣는다고 말하십니까?”
그러자 대사가 널리 대중을 향해 말하였다.
“부처님의 세상은 만나기 어렵고 바른 법은 듣기 어려우니, 모두가 자세히 들어라. 들으면서도 들음이 있지 않으니 들음의 성품과는 관련되지 않는다. 본래 나지도 않거늘 어찌 멸한 적이 있겠는가. 소리가 있을 때는 소리의 경계[聲塵]가 스스로 생겨나고, 소리가 없을 때는 소리의 경계가 저절로 멸하지만, 그러나 이 들음의 성품은 소리를 따라 나지도 않고 소리를 따라 멸하지도 않는다. 이 들음의 성품을 깨달으면 소리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으니, 들음은 생겨남과 멸함이 없고 들음은 가고 옴이 없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두공과 권속과 대중이 모두 머리를 조아리고는 또 물었다.
“무엇을 제일의제第一義諦라 이름하며, 제일의제는 어떤 차제次第를 따라서 들어갈 수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제일의제에는 차제가 없고 또한 출입出入도 없습니다. 세속제(世俗諦:세속적인 견해)에는 일체가 있지만 제일의제에는 없으니, 모든 법의 성품 없는 성품을 제일의제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유법有法은 세속제이고, 성품 없음이 제일의제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 열어 보여 주신 바는 실로 불가사의합니다.”
그리고는 두공이 다시 물었다.
“제자는 본래 성품과 식견이 미천하지만, 지난날 공무의 틈을 타서 기신론장소起信論章疏 2권을 지어 보았습니다. 이는 불법佛法에 맞는 것입니까?”
“무릇 장소章疏를 짓는 것은 모두 식심識心으로 사량思量하고 분별한 것이라서 유위有爲이고 유작有作이니,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여야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기신론의 글에 근거하면 이렇습니다.
‘온갖 법은 본래부터 언설言說의 모습을 여의고, 명자名字의 모습을 여의고, 마음으로 반연하는 모습을 여의어서 끝끝내 평등하여 변함이 없고 오직 일심一心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에 이름하여 진여眞如라고 한다.’
이제 상공은 언설의 모습에 집착하고, 명자의 모습에 집착하고, 마음으로 반연하는 모습에 집착하여, 이미 갖가지 모습에 집착하고 있으니, 어찌 불법이라고 하겠습니까?”
두공이 일어나서 절을 하며 말했다.
“제자가 일찍이 여러 공봉대덕(供奉大德:스님을 높여 부름)들에게도 이 일을 물은 적이 있는데, 모두 제자를 칭찬하면서 불가사의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인정人情에 끌렸음을 알았으니, 대사야말로 이제 이치에 맞추어 설명해서 심지心地의 법에 합하였습니다. 진실로 이 참다운 이치야말로 불가사의합니다.”
두공이 다시 물었다.
“무엇을 불생不生이라 하고, 무엇을 불멸不滅이라 합니까? 그리고 어찌하여야 해탈을 얻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경계를 보아도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불생이라 하는데, 불생이면 곧 불멸입니다. 그리고 이미 생멸이 없다면 눈앞의 경계에 속박되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해탈합니다. 불생을 이름하여 무념無念이라 하고, 무념이면 곧 멸함이 없으니, 무념이면 곧 속박이 없고 무념이면 곧 해탈도 없습니다. 요점을 들어서 말하건대, 마음을 알아채면 곧 염念을 여의고, 성품을 보면 곧 해탈입니다. 식심識心을 여의고 성품을 보는[見性] 이외에 다시 위없는 보리를 증득하는 법문이 있다고 하면 옳지 못합니다.”
두공이 다시 물었다.
“무엇을 마음을 알아채고 성품을 본다고 합니까?”
“온갖 도를 배우는 사람이 생각을 따라 유전流轉하는 것은 대체로 참 마음[眞心]을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참 마음이라 함은 생각[念]이 날 때에도 따라 나지 않고, 생각이 멸할 때에도 그에 따라 잠잠해지지 않습니다.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며, 안정되지도 않고 어지럽지도 않으며, 취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으며, 들뜨지도 않고 침체하지도 않으며, 함이 없고 모습도 없지만 펄떡이는 잉어처럼 활발해서 평상平常에 자재自在합니다. 이 마음의 체體는 끝끝내 얻을 수 없고 지각할 수 없지만, 눈에 닿는 것이 모두 진여[如]라서 견성見性 아님이 없습니다.”
두공과 대중이 절을 하고 찬탄과 기쁨을 표시하면서 물러갔다. 무주 선사는 나중에 보당사保唐寺에 살다가 임종했다.
경덕전등록 제5권
제33조 혜능慧能 대사
제33조 혜능 대사의 법손[法嗣] 43인
서인도西印度 굴다堀多 삼장三藏
소주韶州 법해法海 선사
길주吉州 지성志誠 선사
변첨산匾檐山 효료曉了 선사
하북河北 지황智隍 선사
홍주洪州 법달法達 선사
수주壽州 지통智通 선사
강서江西 지철志徹 선사
신주信州 지상智常 선사
광주廣州 지도志道 선사
광주廣州 법성사法性寺 인종印宗 화상
길주吉州 청원산靑原山 행사行思 선사
남악南嶽 회양懷讓 선사
온주溫州 영가永嘉 현각玄覺 선사
사공산司空山 본정本淨 선사
무주婺州 현책玄策 선사
조계曹谿 영도令韜 선사
서경西京 광택사光宅寺 혜충慧忠 선사
서경西京 하택사荷澤寺 신회神會 선사
[이상 19인은 기록에 보임]
소주韶州 기타祇陀 선사
무주撫州 정안淨安 선사
숭산嵩山 심尋 선사
나부산羅浮山 정진定眞 선사
남악南嶽 견고堅固 선사
제공산制空山 도진道進 선사
선쾌善快 선사
소산韶山 연소緣素 선사
종일宗一 선사
회계會稽 진망산秦望山 선현善現 선사
남악南嶽 범행梵行 선사
병주幷州 자재自在 선사
서경西京 함공咸空 선사
협산峽山 태상泰祥 선사
광주光州 법정法淨 선사
청량산淸凉山 변재辯才 선사
광주廣州 오吳 두타頭陀
도영道英 선사
지본智本 선사
광주廣州 청원淸苑 법진法眞 선사
현해玄楷 선사
담최曇璀 선사
소주韶州 자사刺史 위거韋據
의흥義興 손孫 보살菩薩
[이상 24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33조 혜능慧能 대사
속성은 노盧씨이다. 그의 선조는 범양范陽 사람이었는데, 아버지 행도行瑫가 무덕武德 때에 좌천을 당해 남해의 신주新州로 와서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다.
세 살 때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가 수절을 하면서 길렀다. 점점 자라면서 가세가 더욱 기울어 궁핍해졌으므로, 대사가 나무를 팔아서 살아갔다. 하루는 나무를 지고 저자에 갔다가 어떤 나그네가 금강경金剛經 읽는 소리를 들었는데, 전율을 느끼면서 그 나그네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법이며, 누구에게 얻었소?”
나그네가 대답했다.
“이는 금강경이라는 것인데, 황매黃梅의 홍인 대사에게 얻었소.”
대사는 급히 어머니에게 법을 위해 스승을 찾겠다는 뜻을 말씀드리고 나서, 바로 소주韶州로 가다가 유지략劉志略이라는 거사를 만나 사귀게 되었다. 당시 유지략의 고모인 무진장無盡藏이라는 비구니가 있었는데, 항상 열반경涅槃經을 읽고 있었다. 대사가 잠시 듣고서 그 뜻을 해설해 주니, 비구니는 드디어 책을 들고 와서 글자를 물었다. 대사가 말했다.
“글자는 모르니 뜻이나 물으시오.”
비구니가 말했다.
“글자도 모르면서 어찌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모든 부처의 묘한 이치는 문자에 매여 있지 않소.”
비구니가 깜짝 놀라 마을의 어른들에게 말했다.
“혜능은 도가 있는 사람이니, 초청해서 공양하시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와서 절하고 공경하였다. 그 근처에 보림사寶林寺의 옛터가 있었다. 사람들이 집을 지어서 대사를 살게 하자고 논의하니, 사방에서 대중들이 구름처럼 모여서 잠깐 사이에 좋은 집이 이루어졌다. 대사는 어느 날 문득 스스로 생각했다.
“내가 큰 법을 구하러 나왔는데 어찌 중도에서 그치겠는가?”
그리하여 이튿날 길을 떠나 창락현昌樂縣 서산西山에 있는 석실石室에 이르러서 지원智遠 선사를 만났다. 대사가 법을 물으니, 지원이 대답했다.
“그대의 신령한 자태를 살피건대 예사 사람보다 뛰어난 바가 있다. 내가 들으니 서역에서 온 보리달마菩提達磨가 황매黃梅에게 심인心印을 전했다고 하니, 그대는 그곳에 가서 의심을 풀라.”
대사는 하직하고 나서 곧바로 황매의 동선東禪에 이르니, 때는 당나라 함형咸亨 2년이었다. 홍인 대사는 한 번 보더니 (그가 법기法器임을) 묵묵히 알아보았다. 나중에 의발과 법을 전해 주면서 회懷ㆍ집集이 맞닿는 지역에 숨어 있게 하였다.
의봉儀鳳 원년 병자년丙子年 정월 8일에 남해南海에 이르렀을 때 인종印宗 법사를 만나 법성사法性寺에서 열반경涅槃經을 강했다. 대사가 낭무廊廡 바깥 복도를 말한다.
에 머물고 있는데, 그날 밤 바람이 불어서 깃대 위의 깃발이 나부꼈다. 때마침 두 스님이 다투는데, 한 명은 ‘깃발이 움직인다’고 하고, 한 명은 ‘바람이 움직인다’고 하였으나, 주고받는 수작이 전혀 이치에 맞지 않았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점잖은 토론에 속된 무리가 참견해도 좋겠는가? 다만 바람과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움직일 뿐이오.”
인종印宗이 이 말을 몰래 듣고는 온몸의 털과 뼈[毛骨]가 오싹해지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튿날 대사를 방으로 불러들여서 바람과 깃발의 뜻을 묻자, 대사가 이치를 갖추어서 고하니 인종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서 말했다.
“행자는 결단코 예사 사람이 아닌데, 스승은 누구이시오?”
대사가 하나도 숨기지 않고 법을 얻은 연유를 자세히 말하니, 인종이 제자의 예를 갖추어 선의 요체를 물었다. 그리고는 바로 사부대중에게 고했다.
“인종은 구족한 범부로서 이제 육신肉身 보살을 만났다.”
그리고는 곧 옆자리의 노 거사(盧居士:혜능)를 가리키면서 “바로 이 분이오”라 하고, 전해 받은 신표인 법의를 보여 달라고 해서 모두가 절하고 공경케 하였다.
정월 15일에 모인 여러 대덕들에게 머리를 깎았고, 2월 8일에 법성사法性寺에 가서 지광智光 율사律師에게 구족계를 받으니, 그 계단戒壇은 바로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삼장三藏이 설치한 것이었다. 구나발타라가 예언하기를 “뒤에 육신 보살(혜능)이 이 계단에서 계를 받으리라”고 하였고, 양梁나라 말기에 진제眞諦 삼장三藏은 계단 옆에다 보리수 두 포기를 심으면서 대중에게 말하기를 “이후 120년 뒤에 큰 보살[大開士]이 이 나무 밑에서 무상승無上乘을 연설하여 한량없는 무리를 제도하리라”고 하였는데, 대사가 계를 갖춘 뒤에 이 나무 밑에서 동산법문東山法門 5조祖가 동산에 살았던 데서 기인한 말이다.
을 개설하니, 옛 예언과 완전히 부합하였다.
이듬해 2월 8일에 홀연히 대중에게 말하였다.
“나는 여기에 살고 싶지 않으니, 옛집으로 돌아가야겠다.”
그리하여 인종 법사와 스님과 속인 1천여 명이 전송하는 가운데 대사는 보림사寶林寺로 돌아가게 되었다.
소주韶州 자사刺史 위거韋據가 대범사大梵寺에서 묘한 법륜을 굴리기를 청하였고, 아울러 자기도 무상심지계無相心地戒를 받았는데, 문인이 기록해서 단경壇經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전하였다. 그리고 나서 조계曹谿로 돌아와 크나큰 법비[法雨]를 뿌리니, 배우는 자들이 1천 명 이하로 내려가는 일이 없었다.
중종中宗이 신룡神龍 원년에 조칙을 내렸다.
“짐이 혜안慧安과 신수神秀, 두 대사를 궁중으로 청해서 공양하고, 수많은 업무 속에 틈을 내서 늘 1승乘을 연구하였는데, 두 대사는 매양 미루고 사양하면서 남방에 있는 혜능 선사가 홍인 대사의 의발과 법을 비밀리에 받았으니 그에게 가서 물으라고 하였소. 이제 내시內侍인 설간薛簡을 보내서 대사를 부르는 터이니, 바라건대 대사는 자비로운 생각으로 속히 서울로 오십시오.”
그러나 대사는 병을 핑계로 사양하는 표表를 올려 숲 속에서 일생을 마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러자 설간이 말하였다.
“서울에 있는 선덕禪德들은 모두 말하기를 ‘도를 알고자 하면 반드시 좌선을 하면서 선정을 익혀야 한다. 선정을 익히지 않고 해탈을 얻는 법은 있지 않다’고 하는데, 스님께서 설하시는 법은 어떤 것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도는 마음을 말미암아 깨닫는 것이니, 어찌 앉는 데 있으랴? 경에 말하기를 ‘만일 여래가 앉거나 눕거나 한다고 보면, 그는 삿된 도를 행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여래는 온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만일 생멸이 없으면 그것이 여래의 청정한 선정[淸淨禪]이요, 모든 법이 공적하면 그것이 여래의 청정한 앉음[淸淨坐]이니, 끝끝내 증득할 것이 없거늘 하물며 앉을 것이 있겠는가?”
“제자가 돌아가면 반드시 주상主上께서 물으실 것이니, 바라옵건대 화상께서 자비로 마음의 요체를 가리켜 나타내 주소서.”
“도는 밝음도 어두움도 없다. 밝음과 어두움은 서로 바뀌어 상대되는 뜻이므로 밝고 밝아서 다함이 없다 하여도 또한 다함이 있는 것이다.”
“밝음은 지혜에 비유하고 어두움은 번뇌에 비유하는데, 수도하는 사람이 지혜로써 번뇌를 비추어 깨뜨리지 않으면 비롯함이 없는 생사를 어디에 의지해서 벗어나겠습니까?”
“지혜로써 번뇌를 비추는 것이라면 이는 2승乘인 양이나 염소 수레를 찾는 어린애의 근기이다. 높은 지혜의 큰 근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어떤 것이 대승大乘의 견해입니까?”
“밝음[明]과 밝지 않음[無明]은 그 성품이 둘이 아니다. 둘이 아닌 성품은 곧 진실한 성품이니, 진실한 성품이란 범부에 처해서도 줄지 않고 성현에 있어서도 늘지 않으며, 번뇌에 머물러도 어지럽지 않고 선정에 거하면서도 고요하지 않다. 단멸斷滅하지도 않고 항상하지도 않으며,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며, 중간에도 있지 않고 안팎에도 있지 않으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성품과 모습이 여여如如하여 항상 머물러 변천하지 않으니, 이를 이름하여 도道라 말한다.”
“대사께서 불생불멸不生不滅을 말씀하시니, 어찌 외도와 다르겠습니까?”
“외도가 말하는 불생불멸은 멸함을 갖고 생겨남을 그치고 생겨남으로써 멸함을 드러내니, 멸함도 멸함이 아니고 생겨남도 생겨남이 없음을 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설하는 불생불멸은 본래 스스로 생겨남이 없어서 지금도 멸하지 않으니, 그 까닭에 외도와는 같지 않다. 그대가 만일 마음의 요체를 알고 싶다면, 다만 일체의 선악에 대해서 모두 생각하거나 분별하지 말라. 그러면 자연히 청정한 마음의 체體에 들어가게 되어서 담연히 항상 고요하면서도 묘한 작용이 항하의 모래처럼 많으리라.”
설간이 가르침을 받고는 활연히 크게 깨달았다. 그리하여 하직 인사를 드리고 궁궐로 돌아가서 대사의 말대로 아뢰니, 황제는 조칙을 내려서 대사에게 사례하고 아울러 마납磨衲 가사 한 벌과 비단 5백 필과 발우 한 벌을 하사했다.
12월 19일에 조서를 내려서 옛 보림사를 중흥사中興寺로 고치고, 3년 11월 18일에 다시 소주韶州 자사刺史에게 조서를 내려서 더욱 융성한 대접을 하사하고 법천사法泉寺라는 편액[額]을 하사했다.
대사는 신주新州의 옛 거처인 국은사國恩寺에서 어느 날 대중에게 말했다.
“여러 선지식이여, 그대들은 제각기 마음을 청정히 해서 나의 설법을 들어라. 그대들 모든 사람들의 자심自心이 곧 부처이니 더 이상 의심하지 말라. 마음 밖으로는 한 물건도 건립할 수 없는 것이니, 모두가 이 본래의 마음이 온갖 종류의 법을 낳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 말하기를 ‘마음이 나면 갖가지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갖가지 법이 멸한다’고 하였다. 만일 종자 지혜[種智]를 이루고자 하면, 모름지기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를 통달하라.
만일 온갖 곳에서 형상에 머무르지 않고, 그 형상에 대해 미움이나 애착을 내지 않으며, 취하고 버리는 일도 없고, 이익과 성괴成壞 따위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편안하고 고요하고 한가롭고 담담해서 허융담박虛融澹泊하면 이것이 일상삼매요, 만약 온갖 곳에서 다니고 멈추고 앉고 누울 때 순일하고 곧은 마음으로 도량을 움직이지 않아서 참으로 정토淨土를 이룬 것을 이름하여 일행삼매라고 한다.
가령 이 두 가지 삼매를 갖춘 사람이 있다면, 마치 땅에 있는 종자가 자라서 열매를 맺을 힘을 안에 갖추고 있는 것과 같나니, 일상一相과 일행一行에서도 또한 그러하다. 내가 지금 하는 설법은 마치 때에 맞게 비가 내려서 대지를 널리 적시는 것과 같다. 그대들의 불성도 온갖 종자에 비유할 수 있으니, 이 비에 적셔지면 모두가 싹이 틀 것이다. 나의 종지를 받는 자는 결단코 보리菩提를 얻을 것이요, 나의 행에 의거하는 자는 반드시 묘한 과위[妙果]를 얻을 것이다.”
선천先天 원년에 모든 대중들에게 말했다.
“내가 외람되이 홍인 대사의 의발과 법을 전해 받았다. 그러나 이제 그대들에게는 법만을 설할 뿐 의발은 부촉하지 않나니, 그대들의 신근信根이 순수하게 성숙하여 결코 의심이 없어서 큰일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게송을 들어라.”
마음 땅[心地]은 온갖 종자 머금었으니
두루 내린 비에 모두가 싹이 트네.
꽃의 본성을 단박에 깨닫고 나면
보리의 열매가 스스로 이루어지리라.
心地含諸種 普雨悉皆生
頓悟華情已 菩提果自成
대사가 게송을 마치고 나서 다시 말했다.
“그 법은 둘이 없고, 그 마음도 마찬가지다. 그 도는 청정하고 또한 온갖 모습도 없다. 그대들은 행여 청정함[淨]을 관찰하거나 그 마음을 비우려 하지 말라. 이 마음은 본래 청정하여 취하거나 버릴 수가 없으니, 제각기 스스로 노력해서 인연 따라 떠나라.”
대사가 설법으로 중생을 제도하기 40년이 되는 해 7월 6일에 제자에게 명하여 신주新州 국은사國恩寺에 가서 보은탑報恩塔을 세우게 했는데, 공사를 다른 것보다 갑절이나 잘 하라고 하였다. 이때 촉승蜀僧 방변方辯이라는 이가 와서 인사를 하고는 조각에 능하다고 하니, 대사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내 형상을 조각해 보라.”
방변이 그 뜻을 알지 못하고 대사의 진영眞影을 조각하니, 높이가 일곱 치[寸]가량으로서 교묘한 솜씨를 다하였다. 대사가 이를 보고 말했다.
“그대가 조각의 성품[塑性]은 잘 알지만, 불성佛性에는 능숙하지 못하구나.”
그리고는 옷과 물건으로 삯을 주니, 그 스님이 받고 나서 절하고 물러갔다.
선천先天 2년 7월 1일에 문인들에게 말했다.
“나는 신주로 돌아가고자 하니, 그대들은 속히 배를 손질하라.”
당시 대중이 슬피 울면서 좀더 머무시기를 청하자, 대사가 대답했다.
“부처님들께서 세상에 나타나신 것은 열반을 나타내기 위함이니, 온 것은 반드시 가게 마련이다. 이치가 늘 그러한 것이니, 나의 이 몸도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
대중이 말했다.
“스님께서 지금 가시면 조만간 돌아오십니까?”
“잎사귀가 떨어져서 뿌리로 돌아가니, 다시 올 날을 말할 수 없다.”
“스님의 법안法眼은 누구에게 전하십니까?”
“도 있는 자[有道者]는 얻고, 마음이 없는 자[無心者]는 통한다.”
“뒤에 환난은 없겠습니까?”
“내가 죽은 지 5, 6년 후에 어떤 사람이 와서 내 머리를 끊어 가리라. 나의 예언을 들어라.”
머리 위에 어버이를 봉양하기 위함이고
입안에 밥을 넣기 위함이라네.
만滿의 환난을 만나면
양楊씨와 유柳씨가 관리이리라.
頭上養親 口裏須餐
遇滿之難 楊柳爲官
또 말했다.
“내가 간 지 70년쯤에 두 보살이 동쪽에서 올 텐데, 하나는 재가자在家者이고, 또 하나는 출가자이다. 두 사람은 동시에 교화를 펴서 나의 종지를 건립하고 가람伽藍을 잘 꾸며서 법손이 번창하리라.”
말을 마치자 신주의 국은사로 가서 목욕한 뒤에 가부좌를 한 채 천화遷化하니, 기이한 향기가 사람을 엄습하고 흰 무지개가 땅에서 뻗쳤다. 때는 곧 그 해 8월 3일이었다.
당시 소주와 신주의 두 자사가 각각 신령한 탑을 세우려 하자, 스님과 속인이 따라야 할 곳을 결정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두 고을의 자사가 같이 향을 피워 축원하기를 “향 연기가 끌리는 쪽이 대사께서 돌아가시려는 곳이다”고 하였다. 이때 향로가 하늘로 곧게 솟아올라서 조계曹谿로 날아가니, 11월 13일 탑에 안치하였다. 수명은 76세였다.
이때에 소주 자사 위거韋據가 비문을 찬술하였고, 문인들은 머리를 취한다는 예언을 기억해서 먼저 철엽칠포鐵葉漆布 인도에서 생산되는 베이다.
로써 대사의 목을 견고히 보호하였다. 탑 속에는 달마가 전한 신표인 법의[서역西域의 굴현포屈眴布이다. 목면木綿으로 짠 것이며, 후인이 푸른 비단으로 안을 대었다.]를 넣었고, 중종中宗이 하사한 마납 가사와 보배 발우 및 방변方辯이 조각한 동상과 도구들은 탑을 관리하는 시자가 맡았다.
개원開元 10년 임술壬戌 8월 3일 밤중에 갑자기 탑에서 쇠사슬이 끌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스님들이 놀라서 일어나 보니, 어떤 효자孝子가 탑에서 달아나고 있었다. 이내 살펴보니, 대사의 목에 상처가 있었다. 그리하여 도적이 들어온 사실을 자세하게 고을에 알리니, 군수 양간楊侃과 자사 유무첨柳無忝이 보고를 받고 체포에 박차를 가했다. 5일 만에 석각촌石角村에서 도적을 붙들었는데, 소주韶州로 보내서 국문鞠問을 하니, 장정만張淨滿이라는 자로서 여주汝州의 양현梁縣 사람이었다. 홍주洪州의 개원사開元寺에서 신라新羅의 스님 김대비金大悲에게 돈 2만 냥을 받고 6조 대사의 머리를 끊어 오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이는 해동海東으로 가지고 가서 공양하려고 한 것이었다.
유柳 자사는 보고를 받은 뒤에 곧바로 형벌을 내리지 않고 몸소 조계에 가서 대사의 상족(上足:맏제자)인 영도令韜에게 물었다.
“어떻게 처단해야 하겠습니까?”
영도가 대답했다.
“만일 국법으로 따진다면 마땅히 죽여야 하지만, 불교의 자비는 원수와 친족이 평등합니다. 하물며 그는 모셔다가 공양하려고 한 것이니, 그 죄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 자사가 가상히 여기면서 찬탄했다.
“비로소 불문佛門의 광대함을 알겠습니다.”
마침내 그를 놓아 주었다.[그 뒤에 유명한 이가 저술한 행장과 신도들이 공양한 일에 진기한 일이 많으나, 번거로워서 기록하지 않는다.]
상원上元 원년에 숙종肅宗이 사자를 보내서 대사의 의발을 내도량으로 모셔다가 공양했는데, 영태永泰 원년 5월 5일에 대종代宗의 꿈에 6조 대사가 자기의 의발을 청하므로, 7일에 자사刺史인 양함楊瑊에게 조서를 내렸다.
“짐이 혜능 선사의 꿈을 꾸었는데, 법을 전해 받은 가사를 다시 조계로 돌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제 진국대장군鎭國大將軍 유숭경劉崇景을 시켜서 받들어 모시고 가게 하노라. 짐은 이를 나라의 보배라 생각하나니, 경들은 법식에 따라서 본사本寺에 봉안하고, 여러 스님들 가운데 종지를 잘 받드는 이로 하여금 엄숙히 수호하여 실수가 없도록 하라.”
나중에 혹 도적을 맞더라도 모두 멀리 가기 전에 붙들었는데, 이렇게 하기를 네 차례나 거듭하였다.
헌종憲宗이 대감大鑒 선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호는 원화영조元和靈照라고 하였다.
송宋나라 개보開寶 초기에 왕사王師가 남해南海를 평정할 때에 유劉씨의 패잔병[殘兵]이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대사의 탑과 절이 쓰러지고 불탔으나, 대사의 유해는 탑을 지키는 스님에 의해서 하나도 손상되지 않았다. 이윽고 다시 짓는 일이 시작되었는데, 공사가 끝나기 전에 태종太宗이 즉위하게 되었다. 그는 선문禪門에 마음을 두었기 때문에 훨씬 더 장엄하게 꾸몄다.
대사가 당나라 선천先天 2년 계축癸丑에 입멸하신 이래 지금의 경덕景德 원년 갑진년甲辰年에 이르기까지가 무릇 292년이다. 법을 받은 이는 인종印宗 법사 등 33인을 제외하고도 각기 한 지방을 교화하면서 정통 후계자를 표방했으며, 그밖에 이름을 숨기고 자취를 감춘 이는 헤아릴 수 없다. 여기서는 여러 사람들의 전기 가운데 그 내용을 간략하게 추려서 열 명만을 기록하여, 방계로 나왔다고 말한 것이다.
제33조 혜능 대사의 법손[法嗣] 43인
서역西域 굴다堀多 삼장三藏
그는 천축 사람이었는데, 동쪽으로 소양韶陽까지 왔다가 6조를 만나 언하言下에 깨달았다.
나중에 오대산五臺山을 돌아보고 다시 정양현定襄縣으로 가는 도중에 마을을 지나다가, 어떤 스님이 암자를 짓고서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그대는 외로이 앉아서 무엇을 하는가?”
그 스님이 대답했다.
“고요함을 관찰합니다.”
“관찰하는 이는 누구이며, 고요함이란 어떤 물건인가?”
그 스님이 새삼 절을 하고서 물었다.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삼장이 대답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스스로 관찰하고 스스로 고요하지 못하는가?”
그 스님은 멍한 채 대답할 줄을 모르자, 삼장이 다시 말했다.
“그대는 누구의 제자인가?”
“신수 대사의 제자입니다.”
“나는 서역 한 외도로서 가장 낮은 근기의 사람이지만, 그런 소견에는 빠지지 않았다. 공연히 꼿꼿하게 앉아 있는 것이 도에 무슨 이익이 있으랴?”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누구를 스승으로 섬기셨습니까?”
“나의 스승은 6조 대사이다. 그대는 어찌하여 빨리 조계로 가서 참된 요체를 결단하지 않는가?”
그 스님은 즉시 암자를 버리고 6조에게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말씀드렸는데, 6조가 가르침을 주는 것이 삼장의 말과 부합하므로 그 스님은 깊이 믿게 되었다. 그 뒤에 삼장은 어찌 되었는지 모른다.
소주韶州 법해法海 선사
그는 곡강曲江 사람이다. 처음에 6조를 보고서 이렇게 물었다.
“마음이 곧 부처라 하는데, 바라건대 가르침을 내려 주소서.”
조사가 대답했다.
“앞생각[前念]이 나지 않음이 곧 마음이요, 뒷생각[後念]이 멸하지 않음이 곧 부처이며, 일체의 모습을 이룸이 곧 마음이요, 일체의 모습을 여읨이 곧 부처이다. 내가 구족하게 말하자면 몇 겁이 지나도 다하지 못하나니, 나의 게송을 들어라.”
마음 그대로[卽心]를 이름하여 지혜라 하고
부처 그대로[卽佛]가 바로 선정이니
선정과 지혜를 균등히 지니면
의중意中이 청정하리라.
卽心名慧 卽佛乃定
定慧等持 意中淸淨
이 법문을 깨닫는 것은
그대의 습성習性을 말미암고
본래의 무생無生을 쓰는 것이니
이렇게 함께 닦는 것이 올바름이네.
悟此法門 由汝習性
用本無生 雙修是正
법해法海가 믿고 받아들이면서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마음 그대로가 원래 부처이거늘
이를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굽혔구나.
선정과 지혜의 인因을 함께 닦아야
모든 사물을 여읜다는 것을 나는 알았네.
卽心元是佛 不悟而自屈
我知定慧因 雙修離諸物
[육조단경에서 말하기를 “법해法海라고 하는 문인門人은 곧 선사禪師이다”라고 하였다.]
길주吉州 지성志誠 선사
그는 길주吉州의 태화太和 사람이다. 어릴 때 형남荊南의 당양산當陽山 옥천사玉泉寺에서 신수神秀 선사를 섬겼는데, 나중에 두 종파 6조의 남종南宗, 신수의 북종北宗을 말한다.
가 성대히 교화를 펴게 되자, 신수의 무리들이 왕왕히 남종南宗을 비방하기 시작했다.
“혜능慧能 대사大師는 글자 하나도 모르거늘, 무슨 장점이 있겠는가?”
신수가 타일렀다.
“그는 스승 없이도 깨닫는 지혜를 얻어서 최상승의 도리를 깊이 깨달았으니, 나는 그만 못하다. 또 나의 스승인 5조께서 친히 의발과 법을 전해주셨으니, 어찌 예사로운 일이겠는가? 다만 한스러운 것은 멀리 떨어져 가까이하질 못한 채 헛되이 국가의 은혜를 받는 일이다. 그대들은 여기에 막혀 있지 말고 빨리 조계로 가서 의심을 풀라. 훗날 돌아오거든 다시 나에게 그의 설법을 설해다오.”
대사[志誠]가 이 말을 듣고는 절하고 물러갔다. 그리하여 소양韶陽에 이르자 대중이 청해 묻는 뒤를 따라 들어가면서 온 곳을 말하지 않았다.
이때 6조가 대중들에게 말했다.
“지금 법을 훔치러 온 이가 이 회상에 몰래 숨어들었다.”
대사가 앞으로 나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말하자 6조가 말했다.
“그대의 스승은 어떻게 대중에게 보이는가?”
“항상 대중에게 당부하시기를 ‘마음을 머물러서 고요함을 관찰하고, 오래 앉아서 눕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조사가 말했다.
“마음을 머물러서 고요함을 관찰하는 것은 병이지 선정이 아니며, 오래 앉아서 몸을 구속하는 것은 진리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나의 게송을 들어라.”
태어난 후로는 앉아서 눕지 않고
죽고 나서는 누워서 앉지 못하니
원래 냄새나는 뼈 무더기이거늘
무슨 공과 허물이 있겠는가?
生來坐不臥 死去臥不坐
元是臭骨頭 何爲立功過
대사가 물었다.
“대사께서는 어떤 법으로 사람을 가르치십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내가 어떤 법을 남에게 준다고 하면 이는 그대를 속이는 것이다. 다만 방향에 따라 속박을 푸는 것을 가명삼매假名三昧라고 한다. 나의 게송을 들어라.”
일체에 무심함이 자성의 계戒요
일체에 걸림 없음이 자성의 혜慧요
늘어나지도 않고 물러나지도 않음이 스스로의 금강이요
몸이 가건 몸이 오건 본래 삼매로다.
一切無心自性戒 一切無礙自性慧
不增不退自金剛 身去身來本三昧
대사가 게송을 듣고는 곧 뉘우치고 감사하면서 귀의를 서원했다. 그리고는 하나의 게송을 바쳤다.
5온蘊은 허깨비의 몸이니
허깨비가 어찌 궁극의 경지이겠는가.
진여를 돌이켜서 향한다면
법은 도리어 청정치 못하네.
五蘊幻身 幻何究竟
迴趣眞如 法還不淨
조사가 그렇다고 여기니, 이에 대사는 옥천사玉泉寺로 돌아갔다.
변첨산匾檐山 효료曉了 선사
그의 전기는 전하지 않는다. 오직 북종北宗의 문인인 홀뢰忽雷 징澄이 찬술한 비명碑銘만이 세상에 성대히 유행하고 있으니, 대략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대사는 변첨산匾檐山에 살았고, 법호는 효료曉了이며, 6조의 맏제자[嫡嗣]이다. 대사는 무심無心의 마음을 얻었고 모습 없는 모습을 요달했으니, 모습 없음이라 함은 삼라만상이 눈앞에 어지러운 것이요, 무심이라 함은 분별이 치성한 것이다. 한마디의 말이나 한마디의 메아리도 끊어져서 메아리를 전할 수 없거늘 전해서 행했고, 말로 궁구할 수 없으므로 궁구하면 잘못이다. 대사는 스스로 없음조차 없는 없음을 얻었으나 없음에서 없지 않고, 나는 이제 있음이 있는 있음이지만 있음에서 있지는 않다. 있지 않는 있음은 오고 가도 늘어나지 않고, 없음 아닌 없음은 열반에도 줄지 않는다. 아, 대사께서 세상에 계시자 조계가 밝았고, 대사께서 열반에 드시자 법의 배[法舟:佛法]가 기울었다. 대사가 무설無說을 담론하자 우주에 가득했고, 대사께서 미혹한 무리에게 보이시니 요의了義의 대승이로다. 변첨산의 빛깔이 검은빛을 드리우니, 빈 골짜기에는 오히려 효료의 이름이 남았네.”
하북河北 지황智隍 선사
그는 처음에 5조의 법석法席에 참석했었다. 비록 진작부터 의심을 물어서 결단했으나, 여전히 점수의 수행[漸行]에서 맴돌고 있다가, 나중에 하북河北에 가서 암자를 짓고 20여 년 동안이나 계속 앉아 수행하며 잠시도 게을리 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다가 6조의 문인인 책策 선사가 그 지방을 지나면서 부지런히 법의 요체[法要]를 구하라고 격려하자, 마침내 대사는 암자를 버리고 6조를 찾아가 뵈었다. 6조는 멀리서 온 것을 가엾이 여겨서 문득 깨우쳐 주니[開抉], 대사는 그 말끝에 활연히 깨달았는데 전에 20년 동안 얻은 마음이 자취도 없이 싹 제거되었다. 그날 밤에 하북의 단월인 여러 거사들은 홀연히 공중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황隍 선사가 오늘 도를 얻었다.”
나중에 하북으로 돌아가서 사부대중을 교화했다.
홍주洪州 법달法達 선사
그는 홍주 풍성豊城 사람으로서 7세에 출가하여 법화경法華經을 읽었다. 구족계를 받은 뒤에 조사(6조)에게 가서 절을 하는데 머리가 땅에 닿지 않았다. 조사가 꾸짖었다.
“땅에 닿지 않게 절을 하려면 절을 하지 않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그대의 마음속에 반드시 한 물건이 있으니, 어떤 일을 쌓아 익혔는가?”
대사가 대답했다.
“법화경法華經을 염송念誦하기를 이미 3천 번에 이르렀습니다.”
“그대가 1만 번을 염송해서 경의 뜻을 얻더라도 그 일이 훌륭하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나와 더불어 행할 수 있다. 그대는 지금 이 사업事業을 짊어지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허물이 되는 줄은 모르고 있구나. 나의 게송을 들어라.”
절은 본래 아만의 깃발을 꺾는 것
어찌하여 머리가 땅에 닿지 않는가?
나[我]가 있으면 죄가 곧 생기고
공명심이 없으면 복은 비할 바 없네.
禮本折慢幢 頭奚不至地
有我罪卽生 亡功福無比
조사가 또 말했다.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
대사가 대답했다.
“법달法達입니다.”
“그대의 이름이 법달이라 하지만, 어찌 법을 통달한 적이 있겠는가? 다시 게송을 들어라.”
그대는 지금 이름이 법달이건만
부지런히 염송하면서 쉬지를 않는구나.
헛되이 염송하면 소리만을 따르는 것
마음을 밝혀야만 보살이라 칭한다네.
汝今名法達 勤誦未休歇
空誦但循聲 明心號菩薩
그대와는 인연이 있기 때문에
내가 지금 그대에게 설해 주나니
다만 부처님이 말씀 본래 없었음을 믿는다면
연꽃이 입에서 피어나리라.
汝今有緣故 吾今爲汝說
但信佛無言 蓮華從口發
대사가 게송을 듣고 허물을 뉘우치면서 말했다.
“지금부터는 온갖 일에 겸양하고 공손하겠으니, 바라건대 화상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경전 속의 뜻과 이치를 말씀해 주십시오.”
“그대가 이 경을 읽었다 하니, 무엇으로 종취宗趣를 삼고 있는가?”
“학인學人이 어리석어서 처음부터 글자만을 읽었으니, 어찌 종취를 알겠습니까?”
“그렇다면 내 앞에서 한 번 외워 보라. 내가 설명해 주리라.”
대사가 곧 큰 소리로 경전을 외워서 「방편품方便品」까지 이르렀을 때에 조사가 말했다.
“그만두라. 이 경은 원래 인연으로 세상에 출현하심을 종지로 삼았으니, 아무리 갖가지 비유를 많이 말했다 하여도 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어떤 인연인가? 오직 하나의 큰 일[一大事]이다. 하나의 큰 일이라 함은 곧 부처의 지견知見이니, 그대는 행여 경의 뜻을 잘못 이해하지 말라.
그(경)를 보고 말하기를 열고 보이고 깨닫고 들어가게 하는 것은 바로 부처의 지견이고,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이와 같은 견해를 짓는다면, 이는 경을 비방하고 부처를 헐뜯는 짓이다. 부처님은 이미 부처가 되어서 온갖 지견을 구족했거늘 어찌 다시 열어 보일 필요가 있으랴. 그대는 이제 반드시 믿어야 한다. 부처의 지견이라 함은 오로지 그대 스스로의 마음[自心]일 뿐이며, 다시 별다른 체體는 없다.
그러나 모든 중생이 스스로 광명을 가린 채 탐욕과 애욕의 티끌 경계가 밖에서 반연하고 안에서 요동을 치면서 밖을 향해 달림[驅馳]을 기꺼이 받으므로, 부처님께서 수고롭게 삼매에서 일어나 입이 쓰도록 쉬라고 하면서 부처와 더불어 둘이 아니니 밖을 향해 구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니, 이 때문에 ‘부처의 지견을 열어 준다’고 한 것이다. 그대들은 오로지 온갖 수고를 다해 염念에 집착하는 것을 공부가 된다고 여기니, 이것이 어찌 이우犂牛가 꼬리를 아끼다가 죽는 것과 다르겠느냐?”
“그렇다면 오직 이치만을 이해해야지 수고롭게 경을 읽을 필요는 없는 것입니까?”
“경에 무슨 허물이 있기에 그대의 생각에 장애를 주리오? 다만 미혹과 깨달음은 사람에게 있고 손해와 이익은 그대를 말미암을 뿐이다. 나의 게송을 들어라.”
마음이 미혹하니 법화法華가 구르고
마음을 깨달으니 법화를 굴린다.
오래 염송해도 마음을 밝히지 못한다면
이치[義]와는 영원히 원수가 되리라.
心迷法華轉 心悟轉法華
誦久不明己 與義作讎家
생각 없는 생각이 곧 올바름이고
생각 있는 생각은 삿됨을 이루나니
있음ㆍ없음을 모두 헤아려 알지 않으면
영원히 백우거白牛車를 타리라.
無念念卽正 有念念成邪
有無俱不計 長御白牛車
대사가 게송을 듣고 다시 물었다.
“경에 말하기를 ‘여러 대성문大聲聞들로부터 보살에 이르기까지 모두 생각하고 헤아려도 부처의 지혜를 측량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제 범부들도 하여금 스스로의 마음을 깨닫기만 하면 곧 부처의 지견이라 하시니, 상근上根의 무리가 아니면 의심과 비방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또 경에서 세 수레[三車]를 말하였는데, 큰 소大牛의 수레와 흰 소 수레가 어떻게 다릅니까? 바라옵건대 화상께서 다시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경의 뜻이 분명하거늘 그대 스스로가 미혹하여 등지는구나. 3승乘의 사람들이 부처님의 지혜를 능히 측량하지 못하는 까닭은 헤아리고 따지기 때문이다. 가령 너희들이 머리를 모아 함께 생각하고 추측하더라도 더욱 멀어질 뿐이다. 부처님은 본래 범부를 위해 설했지 부처를 위해 설하시지 않았다. 이 이치를 기꺼이 믿지 못하겠거든 마음대로 물러가거라. 문득 흰 소 수레에 앉을 줄은 전혀 모르고 다시 문밖에서 세 수레를 찾는구나. 더구나 경문에 분명히 그대를 향해 ‘2승도 없고 3승도 없다’고 하였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살피지 않는가? 세 수레는 가짜인 것이니 지난날[昔時]이 되기 때문이며, 1승은 실다운 것이니 지금[今時]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대로 하여금 가짜를 버리고 실다움으로 돌아가게 할 뿐이니, 실다움으로 돌아간 뒤에는 실다움 또한 이름이 없는 것이다.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소유한 진귀한 재물은 모두 그대에게 속하는 것이라서 그대의 수용受用을 말미암는 것이다. 다시는 아버지라는 상념도 짓지 말고, 아들이라는 상념도 짓지 말고, 또한 상념을 쓰지도 말지니, 이것을 이름하여 법화경을 지닌 것이라 하는데, 겁에서 겁에 이르기까지 손에서 경을 놓지 않고, 낮에서 밤에 이르기까지 생각하지 않는 때가 없는 것이다.”
대사는 조사의 깨우침을 받자 뛸 듯이 기뻐하면서 게송으로 찬탄했다.
경전을 3천 번이나 외웠지만
조계의 1구句에 없어졌네.
출세간의 종지를 밝히지 못하면
어찌 여러 생의 광증狂症을 쉬겠는가?
經誦三千部 曹谿一句亡
未明出世旨 寧歇累生狂
양과 사슴과 소를 방편으로 시설해서
처음과 중간과 나중에도 잘 선양했으나
누가 알았겠는가? 불난 집 속이
원래 법 중의 왕이라는 것을.
羊鹿牛權設 初中後善揚
誰知火宅內 元是法中王
조사가 말했다.
“그대는 이제부터 비로소 경전을 염念하는 스님이라 부를 수 있겠구나.”
대사는 이로부터 현묘한 이치를 깨닫고, 또한 경 외우기를 쉬지 않았다.
수주壽州 지통智通 선사
그는 수주壽州의 안풍安豊 사람이다. 처음에 능가경楞伽經을 약 1천 번이나 읽었으나, 3신身 부처님의 몸이 다양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상징하는 말로서,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을 말한다.
ㆍ4지智 불교의 유식학파唯識學派에서 말하는 여래如來의 네 가지 지혜로, 대원경지大圓鏡智․평등성지平等性智․묘관찰지妙觀察智․성소작지成所作智를 말한다.
의 이치를 알지 못하여 조사에게 절하고 그 이치를 해석해 달라고 하니, 조사가 말했다.
“3신이라 함은 청정법신淸淨法身은 그대의 성품이요, 원만보신圓滿報身은 그대의 지혜요,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은 그대의 행이다. 만약 본래의 성품을 여의고 따로 3신을 말한다면, 이를 몸은 있으나 지혜가 없다고 이름하며, 만약 3신에 자체의 성품이 없음을 깨닫는다면, 이를 4지智의 보리菩提라 이름한다. 나의 게송을 들어라.”
스스로의 성품에 3신을 갖추고
광명을 발하여 4지를 성취하나니
보고 듣는 인연을 여의지 않고
초연히 부처 지위에 오르네.
自性具三身 發明成四智
不離見聞緣 超然登佛地
내가 이제 그대를 위해 설하나니
삼가 믿으면 영원히 미혹이 없으리.
밖으로 달리면서 구하는 이를 배우지 말지니
종일토록 보리를 설명할 뿐이다.
吾今爲汝說 諦信永無迷
莫學馳求者 終日說菩提
대사가 물었다.
“4지의 이치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이미 3신을 회통하면 문득 4지가 밝아질 것이니, 어찌 다시 물을 필요가 있으랴? 만일 3신을 여읜 채 따로 4지를 담론한다면, 이는 지혜는 있으나 몸은 없다고 이름하는 것이니, 이 지혜 있음에 나아가다 도리어 지혜 없음을 이루게 된다. 다시 게송을 들어라.”
대원경지大圓鏡智는 성품이 청정한 것이고
평등성지平等性智는 마음에 병이 없는 것이고
묘관찰지妙觀察智는 보아도 공을 들이지 않고
성소작지成所作智는 대원경大圓鏡과 같다.
大圓鏡智性淸淨 平等性智心無病
妙觀察智見非功 成所作智同圓鏡
5식ㆍ8식ㆍ6식ㆍ7식이 결과와 원인으로 굴러가나
단지 명언名言을 쓸 뿐 실다운 성품은 없네.
만일 구르는 곳에서 정情을 남겨두지 않으면
번거로이 일어나도 영원히 나가정那伽定에 처하리.
五八六七果因轉 但用名者無實性
若於轉處不留情 繁興永處那伽定
[식識을 바꾸어서 지혜를 이룬다 함은 전오식前五識을 바꾸어 성소작지成所作智를 이루고, 제6식을 바꾸어 묘관찰지妙觀察智를 이루고, 제7식을 바꾸어 평등성지平等性智를 이루고, 제8식을 바꾸어 대원경지大圓鏡智를 이루는 것이다. 이와 같이 6식과 7식은 원인 안에서 움직이고, 5식과 8식은 결과 위에서 바뀌나, 다만 이름만이 움직일 뿐 그 본체는 움직이지 않는다.]
대사가 감사의 절을 하면서 게송으로 찬탄했다.
3신은 원래 나의 본체[體]요
4지는 본래 마음의 광명이니
몸과 지혜가 원융하여 걸림 없으면
사물에 감응하여 자유롭게 형상을 따르네.
三身元我體 四智本心明
身智融無礙 應物任隨形
일으키고 닦는 것 모두가 망령된 움직임이요
지키고 머무는 것도 참다운 정精은 아니네.
묘한 종지를 스승으로 인하여 밝히니
끝내 더럽게 물든 이름은 없어졌도다.
起修皆妄動 守住匪眞精
妙言因師曉 終亡汚染名
강서江西 지철志徹 선사
그는 강서江西 사람이니, 성은 장張씨이고 이름은 행창行昌이다. 젊은 시절에는 협객俠客이었다.
남북의 종파로 갈라진 뒤부터 비록 두 종주宗主는 너와 내가 없었지만, 그들의 문도들은 서로 미움과 사랑으로 대립하였다. 당시 북종의 문인들이 스스로 신수神秀 대사를 옹립하여 6조로 삼고, 혜능慧能 대사가 의발을 전해 받았다는 말이 천하에 퍼진 것을 시기하였다. 그러나 조사[慧能]는 보살이라서 미리 그런 일을 알고 돈 10냥을 방장方丈에 놓아두었다.
이때 행창이 북종 문인들의 촉탁을 받고서 칼을 품고 조실祖室에 들어가 해치려고 했다. 조사가 목을 길게 늘이고 나서자 행창이 세 번 칼을 휘둘렀으나, 도무지 다치게 하지를 못했다. 조사가 타일렀다.
“올바른 칼은 삿되지 않고, 삿된 칼은 올바르지 않다. 다만 너에게 돈을 빚졌을지언정 목숨을 빚진 일은 없다.”
행창이 놀라 까무러쳤다가 한참 만에 깨어나서 애절히 뉘우치며 출가할 뜻을 말하니, 조사는 마침내 돈을 주면서 말했다.
“그대는 떠나라. 무리들이 오히려 너를 해칠까 걱정이다. 훗날 모습을 바꾸어서 오라. 마땅히 너를 받아 주리라.”
행창이 분부를 받고 밤중에 도망을 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어떤 스님의 제자가 되어 계를 받고 부지런히 정진하였다. 하루는 조사의 말을 기억하고 멀리 와서 뵙자, 조사가 말했다.
“내가 오랫동안 그대를 생각했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늦게 왔는가?”
“전에 화상께서 용서해 주심을 받았습니다. 이제 비록 출가하여 고행하긴 해도 끝내 깊은 은혜를 보답하기 어려우니, 오로지 법을 전해 중생을 제도하는 일뿐입니다. 제자가 일찍이 열반경을 본 적이 있는데, 항상함과 무상함의 뜻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바라옵건대 화상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설명해 주십시오.”
조사가 대답했다.
“무상함이란 곧 불성佛性이요, 항상함이란 착하고 악한 온갖 법을 분별하는 마음이니라.”
“화상께서 말씀하신 바는 경문과 크게 어긋납니다.”
“나는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전해 받았거늘 어찌 감히 부처님의 경전을 어기리오?”
“경에서 늘 말하기를 ‘불성은 항상하다’고 했지만 화상께서는 도리어 ‘무상하다’고 하셨고, 선하거나 악한 온갖 법과 나아가 보리의 마음까지 모두가 무상하다고 했지만 화상께서는 도리어 ‘항상하다’고 하시니, 이것은 곧 서로 엇갈리는 것이라서 저희들로 하여금 더욱 의혹을 일으키게 합니다.”
“열반경은 내가 전에 무진장無盡藏 비구니가 한 번 읽는 것을 듣고 즉석에서 강의해 주었는데, 한 글자 한 구절도 경문에 합치하지 않음이 없었고, 나아가 그대에게도 결코 어긋난 말을 하지 않았느니라.”
“학인의 식견이 얕고 우매하니, 화상께서 더 자세히 열어 보여 주십시오.”
“그대가 알겠는가? 불성이 항상하다면, 어찌 다시 착하거나 악한 모든 법들을 말하겠는가? 이 겁이 다하도록 한 사람도 보리의 마음을 낼 자가 없으리라. 그러므로 내가 무상이라고 설하는 것이니, 바로 이것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진상(眞常:참된 항상함)의 도리이다.
또 일체의 모든 법이 무상하다면, 곧 사물마다 자체의 성품에 생사를 받아들임이 있으므로 참된 항상함의 성품이 두루하지 않은 곳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항상하다고 말한 것은 바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참된 무상함의 뜻이다. 부처님께서는 범부나 외도들이 삿된 항상함에 집착하고, 모든 2승의 사람들이 항상함을 무상하다고 계교함으로써, 공통적으로 여덟 가지 뒤바뀜[八倒]을 이루기 때문에 열반경의 요의了義 법문에서 그러한 치우친 소견을 타파하면서 ‘참된 항상함[眞常]’․‘참된 나[眞我]’․‘참된 청정함[眞淨]’을 드러내어 말씀하셨는데, 그대는 지금 말에 의지하느라 이치를 등지게 되어서 단멸斷滅의 무상과 확정된 사상死常을 갖고 부처님의 원만하고 묘한 최후의 미묘한 말씀을 잘못 해석하고 있으니, 설사 천 번을 읽는다 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행창이 홀연히 술에서 깨어난 듯이 깨달았다. 그리고는 게송을 말했다.
무상의 마음을 고수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항상함이 있는 성품을 연설했으니
방편이란 것을 알지 못하는 이는
봄의 연못에서 돌멩이만 만지는 것과 같네.
因守無常心 佛演有常性
不知方便者 猶春池執礫
나는 이제 애를 쓰지 않고도
불성이 눈앞에 버젓이 나타났으니
스승께서 주신 바도 아니며
나 또한 얻은 바가 없다네.
我今不施功 佛性而見前
非師相授與 我亦無所得
조사가 말하였다.
“너는 이제 꿰뚫었으니, 마땅히 이름을 지철志徹이라 하라.”
그러자 대사는 절을 하고서 물러갔다.
신주信州 지상智常 선사
그는 본주(本州:信州)의 귀계貴谿 사람이다. 더벅머리 시절에 스님이 되어서 견성見性하기를 구하였다. 하루는 6조를 뵈러 갔는데, 조사가 물었다.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구하고자 하는가?”
대사가 대답했다.
“학인學人은 근래에 홍주洪州 건창현建昌縣의 백봉산白峰山에 가서 대통(大通:신수) 화상을 뵈었습니다. 그 분은 견성해서 성불하는 이치를 보여 주었지만, 아직도 저는 여우 같은 의심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길주吉州로 가는 길에 사람을 만났는데, 저의 미혹함을 지적하면서 화상께 귀의하라고 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자비로써 거두어 주십시오.”
조사가 말했다.
“그(신수)가 무슨 말을 하던가? 한번 내 앞에서 말해 보라. 그대에게 증명해 주리라.”
“처음 그곳에 간 지 석 달 동안은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법을 위하는 마음이 간절했으므로 한밤중에 홀로 방장에 들어가 절하면서 간절히 청하였습니다. 대통 화상은 그제야 말했습니다.
‘너는 허공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네가 본 허공은 어떤 모양인가?’
‘허공은 형상도 없거늘 무슨 모양이 있겠습니까?’
‘너의 본래 성품이 마치 허공과 같으니, 제 성품을 돌이켜 관찰해서 한 물건도 볼 만한 것이 없음을 요달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바르게 본다[正見]고 한다. 또 한 물건도 알 만한 것이 없음을 요달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진지眞知라고 하느니라. 푸르고 누름ㆍ길고 짧음이 없고 다만 본원本源의 청정함과 각체覺體의 원명圓明함을 본다면, 이를 이름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하고, 또는 극락세계極樂世界라 하고, 또는 여래의 지견知見이라 한다.’
학인이 이런 설법을 들었으나 아직도 석연치 못하오니, 화상께서 잘 설명해 주시어 막힘이 없게 하여 주십시오.”
조사가 말했다.
“그 대사의 말은 아직도 소견과 앎[見知]이 남아 있으므로 그대로 하여금 깨닫게 하지 못한다. 내가 이제 그대에게 하나의 게송을 들려주겠다.”
한 법도 보지 않아도 보지 않음을 간직하면
마치 뜬구름이 해를 가린 것과 같고
한 법도 알지 못해도 공空한 앎을 지키면
오히려 태허太虛에 번개가 번득이는 것과 같네.
不見一法存無見 大似浮雲遮日面
不知一法守空知 還如太虛生閃電
이러한 지견知見이 별안간 일어나면
잘못 오인한 것이니 어찌 방편을 이해했으랴.
그대가 당장의 일념一念도 스스로 아니라고 알았다면
자기의 신령한 광명이 항상 드러나리라.
此之知見瞥然興 錯認何曾解方便
汝當一念自知非 自己靈光常顯見
대사는 게송을 듣자, 마음이 탁 트여져서 게송 하나를 읊었다.
까닭 없이 알음알이[知解]를 일으켜
모습에 집착해서 보리를 구했구나.
정情을 둔 채 일념을 깨달은들
옛날의 미혹함을 어떻게 초월하리오.
無端起知解 著相求菩提
情存一念悟 寧越昔時迷
자기 성품인 자각의 근원체根源體가
비춤에 따라 굽히면서 천류遷流했나니
조사의 방장에 들지 않았더라면
아득히 두 갈래에서 갈팡질팡했으리.
自性覺源體 隨照枉遷流
不入祖師室 茫然趣兩頭
광주廣州 지도志道 선사
그는 남해南海 사람인데, 처음 6조의 회상에 와서 말했다.
“학인學人이 처음 출가한 이래로 열반경涅槃經을 10여 년이나 읽었지만, 아직도 대의를 밝히지 못하였습니다. 바라건대 화상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조사[六祖]가 대답했다.
“그대는 어느 부분을 아직 모르는가?”
“‘모든 행行은 무상하니, 이는 생멸生滅의 법이다. 생멸마저 멸해 버리고 나면, 적멸寂滅함이 즐거움이 된다’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의혹이 있습니다.”
“어떤 의심이 드는가?”
“일체 중생은 모두 두 가지 몸이 있는데, 하나는 색신色身이고 또 하나는 법신法身입니다. 색신은 무상하여 생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지만, 법신은 항상해서 앎도 없고 깨달음도 없습니다. 그런데 경에서 말하기를 ‘생멸마저 멸하고 나면 적멸함이 즐거움이 된다’고 하였으니, 어느 몸이 적멸하며 어느 몸이 즐거움을 받습니까? 가령 색신이라면 그 색신이 멸할 때에 4대(大:땅ㆍ물ㆍ불ㆍ바람)로 흩어지니, 이는 전적으로 괴롭고 괴로운 것이라서 즐겁다 하지 못할 것이고, 가령 법신이 적멸하다면 곧 초목이나 기와나 돌과 같으리니, 누가 즐거움을 받겠습니까?
또 법성은 생멸의 본체[體]이고 5온蘊은 생멸의 작용[用]이니, 한 본체 위의 다섯 가지 작용으로 생멸이 항상합니다. 생生이라면 본체로부터 작용을 일으킨 것이요, 멸滅이라면 작용을 거두어서 본체로 돌아간 것인데, 만일 다시 난다는 말을 긍정하면 유정의 종류들은 끊이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을 것이요, 만약 다시 난다는 말을 긍정치 않으면 곧 영원히 적멸로 돌아가서 무정물無情物과 같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온갖 법은 모두가 열반에 굴복되어서 오히려 나지도 못하거늘, 무슨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그대는 스님이면서도 어찌하여 외도의 단멸과 항상이라는 삿된 소견을 익혀 가지고 최상승最上乘의 법을 따지려 하는가? 그대의 소견에 따르자면, 육신 밖에 따로 법신이 있고, 생멸을 여의고 적멸을 구하는 것이로구나. 또 열반의 영원한 즐거움을 추론해서 몸으로 받는 자가 있다고 말하니, 이는 곧 생사에 집착하고 세상의 쾌락을 탐하는 짓이다.
그대는 이제 잘 알아야 한다. 온갖 미혹한 사람들이 5온의 화합을 자기의 체상體相으로 잘못 여기고, 온갖 법을 분별하여 바깥 진상塵相이라 여기고,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여 생각 생각마다 천류遷流하고, 꿈 같고 허깨비 같아 허망하고 가짜인 것을 알지 못해서 헛되이 윤회를 받고, 항상 즐거움인 열반을 도리어 괴로움이라 여겨서 종일토록 밖으로 구하므로, 부처님께서는 이를 가엾이 여겨서 열반의 진정한 즐거움을 보인 것이다. 그리하여 찰나에도 생겨나는 모습[生相]이 없고 찰나에도 멸하는 모습[滅相]이 없어서 없앨 만한 생멸도 없으니, 이것이 바로 적멸이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게 앞에 나타날 때에 또한 앞에 나타나는 한계[量]가 없으니, 이를 일러서 항상된 즐거움이라 한다. 이 즐거움은 본래 받는 자도 없고 받지 않는 자도 없거늘, 어찌 하나의 본체에 다섯 가지 작용이라는 이름이 있겠는가. 더구나 열반이 모든 법령法令을 굴복시켜서 영원히 나지 못하게 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부처를 비방하고 법을 헐뜯는 것이로다. 나의 게송을 들어라.”
위없는 위대한 열반이여,
뚜렷이 밝아서 항상 고요히 비추니
어리석은 범부는 이를 죽음이라 말하고
외도들은 집착해서 단멸斷滅이라고 여기네.
無上大涅槃 圓明常寂照
凡愚謂之死 外道執爲斷
온갖 2승을 구하는 사람들은
작용이 없다고 지목하지만
모두가 망정으로 헤아리는 데 속하니
62가지 견해의 근본이 되네.
諸求二乘人 目以無爲作
盡屬情所計 六十二見本
망령되게 헛되고 가짜인 이름을 세운 것을
어찌하여 진실한 이치라고 하겠는가?
오로지 헤아림[量]을 초월한 사람이라야
통달을 해서 취하고 버림이 없다네.
妄立虛假名 何爲眞實義
唯有過量人 通達無取捨
5온의 법을 알고
5온 속의 나도 앎으로써
밖으로 뭇 색상色象을 나타내고
낱낱의 음성의 모습도 나타내지만
以知五蘊法 及以蘊中我
外現衆色象 一一音聲相
이것을 모두 꿈이나 허깨비와 같이 여기고
범부와 성인의 견해를 내지 않으며
열반이란 견해도 짓지 않으면
두 변[二邊]과 3제際가 끊어지리라.
平等如夢幻 不起凡聖見
不作涅槃解 二邊三際斷
항상 모든 감관에 응하여 작용하나
작용한다는 상념을 일으키지 않고
온갖 법을 분별해 따지지만
분별한다는 상념을 일으키지 말라.
常應諸根用 而不起用想
分別一切法 不起分別想
겁의 불이 바다 밑까지 태우고
바람이 산봉우리를 두드려대도
참되고 항상한 적멸의 즐거움인
열반의 모습은 여전히 이러하리라.
劫火燒海底 風鼓山相擊
眞常寂滅樂 涅槃相如是
내가 이제 억지로 설명을 해서
그대로 하여금 삿된 소견 버리게 하니
그대는 말에 따라서 이해하지 않으면
그대가 약간은 알았다고 허락하리라.
吾今彊言說 令汝捨邪見
汝勿隨言解 許汝知少分
대사가 게송을 듣고 기뻐 뛰면서 절하고 물러갔다.
광주廣州 법성사法性寺 인종印宗 화상
그는 오군吳郡 사람으로서 성은 인印씨이다. 스승을 따라 출가한 뒤에는 열반대부涅槃大部에 정통하였다. 당나라 함형咸亨 원년에 수도에 갔을 때 대경애사大敬愛寺에 살라는 조칙이 있었으나, 굳이 사양하고 기춘蘄春으로 가서 홍인 대사를 뵈었다.
나중에 광주廣州 법성사法性寺에서 열반경을 강의하다가 6조 혜능 대사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현묘한 이치를 깨닫고는 혜능을 법을 전한 스승으로 삼았다. 또 양梁나라로부터 당唐나라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선지식[達者]의 어록을 모아 심요집心要集을 저술하였는데 세상에 널리 성행하고 있다.
선천先天 2년 2월 21일에 회계산會稽山 묘희사妙喜寺에서 임종하니, 수명은 87세였다. 회계의 왕인 사건師乾이 탑의 명銘을 세웠다.
길주吉州 청원산靑原山 행사行思 선사
그는 본주(本州:吉州)의 안성安城 사람으로서 성은 유劉씨이다. 어릴 때에 출가하였는데, 매양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면 대사만은 잠자코 있었다.
나중에 조계의 법석法席이 번성하다는 말을 듣고 가서 절하고 물었다.
“마땅히 무엇에 힘써야 계급階級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조사가 도리어 물었다.
“그대는 일찍이 무엇을 했었는가?”
“성제聖諦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계급에 떨어졌었는가?”
“성제도 하지 않거늘 무슨 계급이 있겠습니까?”
조사가 그를 법기로 여겨서 회상의 무리가 아무리 많아도 언제나 대사를 제일 윗자리에 있게 하니, 마치 2조가 말을 하지 않아도 소림(少林:達磨 大師)이 말하기를 나의 골수를 얻었다고 한 것과 같았다.
하루는 조사가 대사에게 말했다.
“예로부터 옷과 법을 합쳐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전했으니, 옷은 믿음을 표시하고 법은 마음을 인가한 것이다. 나는 이제 사람을 얻었으니, 어찌 믿지 않을 것을 걱정하겠는가. 나도 옷을 전해 받은 뒤로 오늘까지 이렇듯 많은 환난을 당했는데, 하물며 후대의 자손들이겠는가. 반드시 많은 싸움이 일어나리니, 옷은 산문(山門:절)에 남겨 두고 그대는 한 지방을 나누어 교화하면서 끊이지 않게 하라.”
대사가 법을 얻은 뒤에 길주吉州 청원산靑原山 정거사靜居寺에 살았다.
6조가 열반에 들려고 할 때에 희천希遷[곧 남악南嶽의 석두石頭 화상이다.]이라는 사미沙彌가 와서 6조께 물었다.
“화상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희천은 누구에게 의지하리까?”
6조가 대답했다.
“생각 사思자를 찾아가라.”
조사가 세상을 떠난 뒤에 희천은 매양 조용한 곳에 단정히 앉아서 죽은 듯이 고요하니, 제1 수좌가 물었다.
“그대의 스승은 이미 가셨는데, 공연히 앉아서 무엇을 하는가?”
“나는 유언을 받았는데 생각 사思자를 찾으라고 하였소.”
“그대의 사형師兄 가운데 행사行思 화상이란 분이 계시는데, 지금 길주에 사신다. 그대의 인연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조사의 말씀은 매우 정직했거늘 그대 스스로가 미혹했을 뿐이다.”
희천이 이 말을 듣고, 곧 조사의 탑에 절하고 물러나서 곧바로 정거사로 갔다. 대사[行思]가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오는가?”
희천이 대답했다.
“조계에서 왔습니다.”
“무엇을 얻으러 왔는가?”
“조계에 가기 전에도 잃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조계에는 무엇 하러 갔는가?”
“조계에 가지 않았던들 어찌 잃지 않은 줄 알았겠습니까?”
희천이 다시 물었다.
“조계 대사께서도 화상을 아셨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지금 나를 아는가?”
“아는데 어찌 또 알아보겠습니까?”
“온갖 짐승의 뿔이 많으나 기린의 뿔 하나로 만족한다.”
희천이 다시 물었다.
“화상은 스스로 조계를 떠나서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
“나는 모르겠다. 그대는 언제 조계를 떠났는가?”
“희천은 조계에서 오지 않았습니다.”
“나 또한 그대의 온 곳을 알고 있다.”
“화상은 다행히 대인大人이시니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다른 날 대사가 다시 희천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다고 했지?”
“조계에서 왔습니다.”
대사가 불자拂子를 번쩍 들면서 물었다.
“조계에도 이런 것이 있던가?”
“조계뿐이 아니라 인도[西天]에도 없습니다.”
“자네는 인도에 다녀온 것이 아닌가?”
“갔었다면 곧 있는 것입니다.”
“맞지 않으니, 다시 말하라.”
“화상께서도 하나의 반[一半]을 취한 것을 말씀하셔야 합니다. 전적으로 학인만을 속이지는 마십시오.”
“그대에게 말하기는 사양치 않으나 뒷사람이 알아듣지 못할까 걱정이다.”
대사가 희천에게 편지를 주어 남악南岳 회양懷讓에게 전하게 하면서 말했다.
“이 글을 전하고는 속히 돌아오라. 나에게 묵은 도끼 하나가 있는데, 그대에게 주어서 산에 살게 하리라.”
희천이 남악에 가서 채 글을 바치기 전에 문득 물었다.
“여러 성인들을 사모하지 않고, 자기의 영靈도 소중히 여기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회양이 대답했다.
“그대의 질문이 너무 도도하다. 어찌하여 아래를 향해 묻지 않는가?”
희천이 말했다.
“차라리 영겁토록 윤회를 받아들일지언정 여러 성인들로부터 해탈을 구하지는 않겠습니다.”
회양이 문득 그만두었다.
희천이 정거사로 돌아오자, 대사가 물었다.
“그대가 떠난 지 오래지 않았는데, 글은 전달했는가?”
“소식도 통하지 못했고, 글도 전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는가?”
희천이 앞의 말을 자세히 보고하고는 이어 말했다.
“떠날 때에 화상께서 무딘 도끼를 준다고 하셨는데 지금 주십시오.”
대사가 발 하나를 쭉 뻗으니, 희천이 절을 하였다. 그리고는 하직하고 남악으로 갔다.[현사玄沙가 말하기를 “가엾은 석두石頭 화상이 회양에게 덜미를 잡혀 쓰러지듯이 아직도 일어나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하택荷澤 신회神會 선사가 와서 절하고 도를 물으니, 대사[行思]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신회가 대답했다.
“조계에서 왔습니다.”
“조계의 뜻하는 바가 어떻던가?”
신회가 몸을 흔들기만 하니, 대사가 말했다.
“아직도 기와와 자갈로 막혀 있구나.”
“화상께서는 요사이 진금眞金을 사람들에게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설사 그대에게 주었다 한들 어디에 부치겠는가?”[현사玄沙가 말하기를 “과연果然이다”라고 하였다. 운거雲居 석錫은 말하기를 “현사가 과연이라 한 것이 진금인가, 기왓장인가?”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여릉廬陵 지방의 쌀값이 어떤가?”
대사는 석두 희천에게 법을 전하고, 당나라 개원開元 28년 경진庚辰 12월 13일에 법당에 올라 대중에게 고한 뒤에 가부좌를 맺은 채 열반에 들었다. 희종僖宗이 홍제弘濟 선사 귀진歸眞의 탑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남악南嶽 회양懷讓 선사
그는 두杜씨로서 금주金州 사람이다. 15세에 형주荊州 옥천사玉泉寺에 가서 홍경弘景 율사律師에 의지하여 출가하였다.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뒤에 율장[毘尼藏]을 익혔는데, 하루는 스스로 탄식하기를 “무릇 출가한 자라면 무위無爲의 법을 배워야 하는데, 천상과 인간에 수승한 곳이 없구나”라고 하였다.
이때 동학同學인 탄연坦然이 대사의 고매한 뜻을 알고서 숭산嵩山의 혜안慧安 화상을 함께 뵙자고 권유했다. 혜안의 가르침[啓發]을 받고 나서는, 다시 곧바로 조계로 가서 6조를 참배하였다. 6조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회양이 대답했다.
“숭산嵩山에서 왔습니다.”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
“닦아서 증득할 수 있는가?”
“닦아 증득함은 없지 않지만, 더러움에 물들게 되지는 않습니다.”
“바로 이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이 모든 부처님들이 호념護念하는 바이다. 그대도 이미 그러하고 나도 또한 그러하다. 서천西天의 반야다라般若多羅 삼장三藏이 예언하기를, 그대의 제자 가운데 망아지 하나가 나와서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인다고 했으니, 모두 그대 마음속에만 간직해 두고 너무 급히 말하지 말라.”
대사가 활연히 계합하여 곁에서 15년을 시봉하였다. 그리고 선천先天 2년에야 비로소 형악衡嶽으로 가서 반야사般若寺에 살았다.
개원開元 때에 도일道一[즉 마조馬祖 대사大師를 말한다.]이라는 사문이 전법원傳法院에 머물면서 매일 좌선을 하고 있었다. 대사는 그가 법기法器임을 알아보고서 곁에 가서 물었다.
“대덕大德은 좌선을 해서 무엇을 도모하는가?”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대사는 바로 벽돌 하나를 잡아서 절 앞의 바위 위에다 갈았다. 도일이 이를 보고서 물었다.
“무엇 때문에 벽돌을 갑니까?”
“거울을 만들려고 하네.”
“벽돌을 간다고 어찌 거울이 되겠습니까?”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지 못하거늘, 어찌 좌선을 하여 부처를 이루겠는가?”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소가 수레를 몰고 가는 것과 같으니, 수레가 가지 않으면 수레를 때려야 옳은가, 소를 때려야 옳은가?”
도일이 대답이 없자, 대사가 다시 말했다.
“그대는 좌선坐禪을 배우는 것인가, 앉은뱅이 부처[坐佛]를 배우는 것인가? 만일 좌선을 배운다면 선禪은 앉고 눕는 데 있지 않고, 만일 앉은뱅이 부처를 배운다면 부처는 정해진 모습이 아니다. 머무름이 없는 법[無住法]에서 취하거나 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대가 만일 앉은뱅이 부처라면 곧 부처를 죽이는 일이니, 만약 앉는 모습에 집착한다면 그 이치를 통달한 것이 아니다.”
도일이 대사의 가르침을 받자, 마치 제호醍醐를 마신 것 같아서 절을 하며 물었다.
“어떻게 마음을 써야 무상삼매無相三昧에 합일하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가 심지법문心地法門을 배우는 것은 종자를 뿌리는 것과 같고, 내가 법의 요체를 연설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하늘에서 비를 뿌리는 것과 같으니, 그대의 인연이 맞았으므로 마땅히 그 도를 보리라.”
“도는 빛깔이나 형상이 아니거늘 어떻게 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심지心地의 법안法眼은 도를 능히 보나니, 무상삼매의 경우도 그렇다.”
“이루어짐과 무너짐이 있습니까?”
“만일 이루어짐ㆍ무너짐ㆍ모임ㆍ흩어짐 따위로써 도를 보는 자는 도를 본 것이 아니다. 나의 게송을 들어라.”
마음 땅[心地]은 온갖 종자를 품었으니
비를 만나면 모두 다 싹을 틔우네.
삼매의 꽃은 모습이 없거늘
무엇이 무너지고 무엇을 이루겠는가.
心地含諸種 遇澤悉皆萌
三昧華無相 何壞復何成
도일은 깨우침을 받고 심의心意가 초연해져서 10년을 시봉하였는데, 나날이 그의 경지는 현묘하고 오묘해졌다.
대사에게는 입실入室한 제자가 모두 여섯 명이었는데, 그들 각자에게 인가하는 말을 해주었다.
“그대들 여섯 사람이 똑같이 내 몸을 증득해서 각기 한 길[一路]에 계합하였다. 한 사람은 나의 눈썹을 얻어서 위의威儀가 훌륭하고[상호常浩], 한 사람은 나의 눈을 얻어서 돌아봄에 능숙하고[지달智達], 한 사람은 나의 귀를 얻어서 이치를 듣는 데 능숙하고[탄연坦然], 한 사람은 나의 코를 얻어서 기氣를 아는 데 능숙하고[신조神照], 한 사람은 나의 혀를 얻어서 담론에 능숙하고[엄준嚴峻], 한 사람은 나의 마음을 얻어서 고금古今에 능숙하다[도일道一].”
또 말하였다.
“일체법은 모두 마음으로부터 생겨나지만, 마음은 본래 생겨난 바가 없어서 법이 머물 수가 없다. 만일에 이 마음 바탕[心地]을 통달하면 하는 일마다 걸림이 없나니, 상근上根의 무리를 만나기 전에는 마땅히 말을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어떤 대덕이 물었다.
“가령 거울이 물상物像을 비추어내는데, 물상이 이루어진 뒤에는 거울의 밝음은 어디로 갑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대덕의 동자童子 때 모습은 어디에 있는가?”[법안法眼은 다르게 말하기를 “어떤 것이 대덕이 부어서 만든 물상인가?”라고 하였다.]
“다만 물상이 이루어진 뒤에는 어찌하여 비추지 못하는가 했을 뿐입니다.”
“비록 비추지 못한다 하여도 티끌만큼도 속이지는 못한다.”
나중에 마조馬祖 대사大師가 강서江西에서 교화를 펴고 있었는데, 대사(회양)가 대중에게 말했다.
“도일이 대중에게 법을 설하는가?”
대중이 대답했다.
“벌써부터 설법을 합니다.”
“아무도 소식을 전해 오는 이가 없구나.”
대중이 잠자코 있었다. 대사는 스님 하나를 보내면서 말하였다.
“그가 법상에 오르기를 기다렸다가 그저 ‘어떠하십니까?’라고 묻고는, 그가 대답하는 말을 낱낱이 기억해 오라.”
그 스님은 모든 것을 지시대로 하고 돌아와서 대사에게 말했다.
“마 대사가 말하기를 ‘오랑캐의 난리를 겪은 이래로 30년 동안 한 번도 염장鹽醬을 빠트린 적이 없다’고 합니다.”
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보天寶 3년 8월 11일에 형악衡嶽에서 열반에 드니, 칙령으로 대혜大慧 선사 최승륜最勝輪의 탑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온주溫州 영가永嘉 현각玄覺 선사
그는 영가 사람으로서 성은 대戴씨이다. 어릴 때에 출가하여 삼장을 두루 탐구하였다. 특히 천태天台 지관止觀의 원묘圓妙 법문에 정통해서 네 가지 위의威儀 가운데 항상 선관禪觀에 그윽이 합치했는데, 나중에 좌계左谿 현랑玄朗 선사의 격려를 받고서, 동양東陽의 책策 선사와 함께 조계로 갔다.
처음에 조계에 이르러서는 주장자와 병을 들고 조사(6조)를 세 번 돌고 나서 우뚝 섰다. 조사가 말했다.
“무릇 사문이란 모름지기 3천 가지 위의威儀와 8만 가지 세행細行을 갖추어야 하는데, 대덕은 어디서 왔기에 도도한 아만을 부리는가?”
대사[永嘉]가 대답했다.
“생사의 일은 중대하고 무상無常이 신속迅速하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무생無生을 체득해서 신속함이 없는 도리를 요달하지 않는가?”
“체體가 곧 무생이고, 요달에는 본래 신속함이 없습니다.”
“그렇다. 참으로 그렇다.”
이때에 대중이 모두 깜짝 놀랐다. 대사는 그때야 비로소 위의를 갖추어 절을 하고는 이내 하직을 고하였다. 조사가 말했다.
“돌아감이 너무 빠르지 않은가?”
대사가 대답했다.
“본래 스스로 움직이지 않거늘, 어찌 빠름이 있겠습니까?”
“누가 움직이지 않음을 아는가?”
“당신이 스스로 분별을 내었습니다.”
“그대는 무생無生의 뜻을 매우 잘 터득하였구나.”
“무생에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
“뜻이 없다면 누가 분별하는가?”
“분별도 또한 뜻이 아닙니다.”
조사가 탄복하면서 말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하룻밤 쉬어가라.”
그리하여 그때 사람들이 그를 일러 일숙각一宿覺이라 하였다. 책공策公도 대사를 만류하므로, 다음날 산을 내려와 온강溫江으로 돌아가니, 배우는 자들이 밀물처럼 모여들었다.
호는 진각眞覺 대사라 한다. 증도가證道歌 한 수를 지었고, 선종의 깨달음과 수행의 원만한 종지를 얕은 경지로부터 깊은 곳까지 자세히 저술했다. 경주慶州 자사刺史 위정魏靖이 모아서 서문을 내고, 10편으로 묶어서 영가집永嘉集이라 하니, 모두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1. 도를 사모하고 위의에 뜻을 두라[慕道志儀]
도를 닦고자 하면, 먼저 뜻을 세우고 의칙儀則을 본받아서 궤칙軌則을 밝혀야 한다. 그러므로 도를 사모하고 위의에 뜻을 둠을 첫 번째로 밝힌다.
2. 교만과 사치한 뜻을 경계하라[戒憍奢意]
처음에 비록 뜻을 세워서 도를 닦고 궤칙도 잘 인식했지만, 3업業이 교만하면 망령된 마음이 요동하나니, 어찌 선정을 얻을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두 번째 순서로 교만과 사치한 뜻을 경계함을 밝힌다.
3. 3업을 깨끗이 닦아라[淨修三業]
앞에서 교만과 사치를 경계한 것은 강요綱要만을 대략 표시한 것이니, 이제 더 자세히 단속해서 허물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세 번째의 순서로 3업을 깨끗이 닦아서 몸과 입과 뜻을 경계함을 밝힌다.
4. 사마타奢摩他의 게송
이미 몸과 입을 단속하여 거친 허물이 생기지 않게 하였으니, 다음에는 모름지기 입문入門이어야 한다. 도를 닦는 점진적인 차례는 정혜定慧와 다섯 가지로 일으키는 마음과 여섯 가지로 간추리는 법[料簡]에서 벗어나지 않나니, 그러므로 네 번째의 순서로 사마타의 게송을 밝힌다.
5. 비바사나毘婆舍那의 게송
계戒가 아니면 선禪이 못되고, 선이 아니면 혜慧가 못된다. 위에서 이미 선정을 닦았는데, 선정이 오래되면 지혜가 밝아진다. 그러므로 다섯 번째의 순서는 비바사나의 게송을 밝힌다.
6. 우필차(優畢叉:中道)의 게송
선정만을 치우쳐 닦을 경우 선정이 오래되면 침체되고, 지혜만을 치우쳐 배울 경우 지혜가 많으면 마음이 요동한다. 그러므로 여섯 번째의 순서로 우필차의 게송을 밝힌 것이니, 선정과 지혜를 평등히 해서 침체하거나 요동치지 않게 하고, 선정과 지혜를 균등하게 함으로써 두 가지 치우침을 버리게 한다.
7. 3승乘의 점차漸次
선정과 지혜가 이미 균등하면 고요하면서도 항상 비추고 세 관법觀法이 한마음이리니, 어찌 의심을 버리지 못할 것이며, 어찌 비춤이 원만하지 않겠는가? 스스로의 이해는 비록 밝더라도, 남을 가엾이 여기는 일은 아직 깨닫지 못했으니, 깨달음에 깊고 얕음이 있다. 그러므로 일곱 번째 순서로 3승乘의 점차를 밝힌다.
8. 현실[事]과 진리[理]는 둘이 아니다
3승이 깨닫는 진리는 그 진리가 끝이 없나니, 진리를 궁구하는 것은 현실에 있고, 현실을 깨달으면 그것이 곧 진리이다. 그러므로 여덟 번째로 현실과 진리가 둘이 아님을 밝힌 것이니, 현실 그대로가 진리임을 알아 뒤바뀐 소견을 버리게 한다.
9. 벗에게 권유하는 글[勸友人書]
사事와 이理가 이미 원융하여 속마음이 저절로 밝지만, 다시 배움을 멀리해서 헛되이 세월을 보내는 것을 가엾이 여긴다. 그러므로 아홉 번째 순서로 벗을 권유하는 글을 밝힌다.
10. 발원문發願文
벗을 권고함이 비록 남을 가엾이 여기는 일이기는 하나, 마음을 오로지 한 곳에만 두면 정情이 오히려 두루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열 번째의 순서로 발원문을 밝혀서 온갖 유정을 제도할 것을 서원한 것이다.
또 다음은 마음을 관찰하는 열 가지 문이니, 제1은 그 법이 본래 그러함을 말한 것이고, 제2는 그 관찰의 체體를 드러낸 것이고, 제3은 상응相應함을 말한 것이고, 제4는 교만함을 경계한 것이고, 제5는 게으름을 경계한 것이고, 제6은 관찰의 체體를 거듭 드러낸 것이고, 제7은 시비를 밝힌 것이고, 제8은 표현된 종지[詮旨]를 간추린 것이고, 제9는 어디서나 관법을 이루는 것이고, 제10은 현묘한 근원에 묘하게 부합하는 것이다.
제1. 법이 본래 그러함을 말하다
무릇 심성心性은 비고 통하여 움직임과 고요함의 근원과 둘이 아니며, 진여는 사려[慮]가 끊어졌지만 헤아림을 반연하는 염念과 다르지 않다. 미혹한 소견이 어지럽게 일어나지만, 그것을 추궁하면 오직 하나의 고요함뿐이요, 심령의 근원은 모양을 그릴 수 없지만, 그것을 조감照鑒하면 천차만별이다. 천차만별로 같지 않으므로 법안法眼이라는 이름이 저절로 성립되고, 하나의 고요함에는 차이가 없으므로 혜안慧眼이라는 명칭이 엄연히 존재하고, 이치[如理智]와 한량[如量智]이 둘 다 사라지므로 불안佛眼의 공덕이 뚜렷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3제諦 우주만유를 관찰하는데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은 세 가지 말씀이란 뜻이니 공제空諦․가제假諦․중제中諦 또는 제일의제第一義諦이라고 하고, 혹은 무無․유有․중中의 셋을 말하기도 한다. 첫째 공제 또는 무제는 현실이 있다고 굳게 집착하는 이를 위해 눈에 보이는 현실을 공한 것이요, 없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말씀이요, 둘째 가제, 혹은 유제는 위의 말을 듣고 끝끝내 없으리라고 집착하는 이에게 현실은 허무한 것이요, 없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거짓 벌어진 현상은 엄연히 존재하여 온갖 차별을 형성한다고 가르치는 말씀이요, 셋째 중제 또는 제일의제는 공제와 가제, 무제와 유제를 융합하여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절대한 경지를 가르치는 말씀이다.
가 한 경계여서 법신의 이치가 항상 청정하고, 3지智 여량지如量智․여리지如理知․제일의지第一義智를 말한다.
가 한마음이어서 반야의 광명이 항상 비추며, 경계와 지혜가 묘하게 부합하니 해탈의 감응이 기틀을 따르고, 세로도 아니고 가로도 아니면서 원이圓伊 둥글고 가로 세로가 아닌 형상이다.
의 도가 현묘하게 회통한다. 그러므로 3덕德 반야般若․법신法身․해탈解脫을 말한다.
의 묘한 성품이 완연히 한마음을 어기지 않은 줄 아는 것이니, 깊고 넓어서 헤아릴 수 없지만 어디로 나간들 길이 아니겠는가? 이런 까닭에 마음으로 도를 삼는 것은 흐름을 더듬어 근원을 찾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제2. 관찰의 체體를 드러내다
다만 한 생각[一念]이 곧 공空이면서도 공이 아니고 공이 아니면서도 공 아님도 아닌 줄을 아는 것이다.
제3. 상응함을 말하다
마음과 공이 상응하면, 헐뜯거나 칭찬을 받은들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기뻐하겠는가? 몸과 공이 상응하면, 칼로 베이거나 향을 바른들 무엇을 괴로워하고 무엇을 즐거워하겠는가? 의보依報 중생이 의지하는 과보이다.
와 공이 상응하면, 베풀거나 빼앗긴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겠는가? 마음과 공이면서도 공 아님이 상응하면, 애착의 소견은 모두 잊고 자비로 두루 구원한다. 몸과 공이면서도 공 아님이 상응하면, 안으로는 마른나무와 같으나 겉으로는 위의를 나타낸다. 의보와 공이면서도 공 아님이 상응하면, 탐욕을 영원히 끊어서 재물로써 구제를 베풀리라. 마음과 공이면서도 공이 아니고 공이 아니면서도 공 아님도 아님이 상응하면, 실상(實相:진리)이 비로소 밝아지면서 부처의 지견을 열리라. 몸과 공이면서도 공이 아니고 공이 아니면서도 공 아님도 아님이 상응하면, 한 티끌에서 삼매[正受]에 들어가고 온갖 티끌의 삼매는 일어나리라. 의보와 공이면서도 공이 아니고 공이 아니면서도 공 아님도 아님이 상응하면, 향기로운 대궐과 보배 누각으로 장엄한 국토에 태어나리라.
제4. 교만함을 경계하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5. 게으름을 경계하다
바다를 건너려면 반드시 배를 타야 하나니, 배가 아니면 어찌 건널 수 있겠는가? 마음을 닦으려면 반드시 관觀에 들어가야 하나니, 관이 아니면 어찌 마음을 밝힐 수 있겠는가? 마음도 오히려 밝히지 못한다면, 어느 날에 상응하겠는가? 잘 생각해서 스스로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제6. 관법의 체體를 거듭 드러내다
다만 한 생각[一念]이 공이기도 하고 공이 아니기도 하며, 있음도 아니요, 없음도 아닌 줄만 알 뿐이요, 생각 그대로가 공이기도 하고 공이 아니기도 하며, 있음이 아닌 것도 아니요, 없음이 아닌 것도 아닌 줄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7. 시비를 밝히다
마음은 있음도 아니고 마음은 없음도 아니며, 마음은 있지 않음도 아니고 없지 않음도 아니니,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면 긍정[是]에 빠지고,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하면 부정[非]에 빠진다. 이처럼 다만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하는 것을 부정할 뿐이지, 옳음을 부정하고 그름을 부정하는 긍정은 아닌 것이다. 이제 둘 다 부정[雙非]함으로써 양쪽을 깨뜨리니, 긍정을 긍정해서 부정을 타파하니 긍정이 오히려 부정이다. 또 둘 다 부정함으로써 양쪽을 타파하니, 부정을 부정해서 부정을 타파하니 부정이 곧 긍정이다. 이처럼 다만 옳음을 부정하고 그름을 부정한 긍정일 뿐이지, 부정도 아니고 부정 아님도 아니며, 긍정도 아니고 긍정 아님도 아닌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시비(긍정과 부정)의 미혹이 미세하여 가려내기 어려우니, 정신을 맑게 하고 생각을 고요히 해서 세밀히 연구해 보라.
제8. 표현된 종지를 간추리다
지극한 이치는 말이 없으나 글과 말을 빌려서 그 종지를 밝히고, 종지는 관법이 아니나 관법을 닦는 것을 빌려서 그 종지를 회통한다. 만약 종지가 아직 분명하지 못하다면 말이 적확하지 않기 때문이요, 만약 종지를 아직 회통하지 못했다면 관찰이 아직 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깊이 관찰하면 이내 그 종지를 회통하게 되고, 적확한 말은 반드시 그 종지를 밝히게 되나니, 종지가 이미 밝아지고 회통되었다면, 관법이 어찌 더 이상 존속하랴.
제9. 어디서나 관법을 이루다
무릇 언사言辭를 다시 연설해서 관법의 체體를 거듭 표방한 것은, 종지宗旨는 다름이 없으나 말과 관법[言觀]은 상황에 따라 바뀜이 있음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상황에 따라 바뀌면 말과 이치 사이에 어긋남이 없고, 어긋남이 없으면 관법과 종지가 다르지 않나니, 다르지 않은 종지가 곧 진리요, 어긋남이 없는 이치가 곧 종지이다. 종지는 하나이나 이름은 둘이니, 관법과 말로 그 악보[弄胤]를 밝혔을 뿐이다.
제10. 현묘한 근원에 묘하게 계합하다
마음을 깨달은 자가 어찌 관법에 집착하여 종지를 헷갈려 할 것이며, 교리에 통달한 사람이 어찌 말에 걸려서 이치를 알지 못하겠는가? 이치가 밝으면 언어의 길이 끊어지니[言語道斷] 어떤 말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며, 종지를 회통하면 마음 가는 곳이 소멸하니[心行處滅] 어떤 관법으로 능히 사고할 수 있으랴? 마음과 말로써 논의하고 생각할 수 없다면 그 핵심[寰中]에 묘하게 계합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대사는 선천先天 2년 10월 17일에 편안히 앉아서 열반에 드니, 11월 13일에 서산西山의 양지에 탑을 세웠다. 무상無相 대사라는 시호를 조서로 하사하고, 탑호는 정광淨光이라고 하였다. 송나라 황조皇朝 순화淳化 때에 태종太宗 황제가 본주本州에 명령하여 감탑(龕塔:塔室)을 중수重修하였다.
사공산司空山 본정本淨 선사
그는 강주絳州 사람으로서 성은 장張씨이다. 어릴 때에 스님이 되어 조계에서 수기授記를 받았고, 사공산司空山 무상사無相寺에 승적을 두었다.
당의 천보天寶 3년에 현종玄宗이 중사中使인 양광정楊光庭을 산으로 보내서 상춘등常春藤을 캐오라고 했는데, 지나는 길에 방장方丈으로 들어와서 절하고는 물었다.
“제자는 도를 사모한 지 오래입니다. 바라건대 화상께서는 자비로써 가르쳐 주십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천하 선종의 석학碩學들이 모두 수도로 모이니, 천사天使께서 조정으로 돌아가시면 물을 수 있을 것이오. 나[貧道]는 산수에 의지할 뿐 마음을 쓰는 바가 없소.”
광정光庭이 울면서 절을 하자, 선사가 말했다.
“나에게 절을 하지 마시오. 천사天使는 부처를 구하는가요, 아니면 도를 구하는가요?”
“제자는 지혜가 우매합니다. 모르겠습니다만, 부처와 도는 어떻게 다릅니까?”
“만약 부처를 구하고 싶다면 마음이 바로 부처이고, 만약 도를 이해하고 싶다면 무심이 곧 도라오.”
“어찌하여 마음이 바로 부처입니까?”
“부처는 마음을 인因하여 깨닫고, 마음은 부처로써 드러나는 것이니, 만일 무심을 깨달으면 부처도 있지 않다오.”
“어찌하여 무심이 곧 도입니까?”
“도는 본래 마음이 없어서 무심을 도라 이름하나니, 만일 무심을 요달하면 무심이 곧 도라오.”
광정이 절을 하고는 믿고 받아들였다.
대궐에 돌아온 뒤에 산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아뢰니, 곧 광정에게 선사를 불러들이라는 칙령을 내렸다. 12월 13일에 수도에 이르자 백련사白蓮寺에 머물라는 조칙을 내렸고, 이듬해 정월 15일에 양가兩街 좌가와 우가이니, 좌가는 선종禪宗이고 우가는 교종敎宗이다.
의 명승과 석학을 내도량內道場으로 불러서 선사와 더불어 부처의 진리를 드날리게 하였다.
당시 원遠 선사라는 이가 소리를 높여서 선사에게 말했다.
“이제 황제의 앞에서 종지를 비교하고 헤아리고 있으니, 마땅히 곧바로 묻고 곧바로 대답해야지 번거롭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선사가 보는 바로는 무엇을 도라 여기고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무심無心이 도입니다.”
원 선사가 다시 말했다.
“도는 마음을 인하여 있거늘 어찌 무심을 도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도는 본래 이름이 없지만 마음을 인하여 도라 이름하오. 마음이란 이름이 만약 있는 것이라면 도는 헛되지 않을 것이지만, 마음을 궁구하면 본래 있지 않은 것이거늘 도가 무엇을 의지하여 이루어지리오. 두 가지 모두가 허망한 것이니, 임시로 세운 이름일 뿐이오.”
“선사에게는 몸과 마음이 있음을 보는 것이 도입니까?”
“산승에게는 몸과 마음이 본래 도라오.”
“아까는 무심이 도라 하시더니, 이제는 몸과 마음이 본래 도라 하시니, 어찌 서로 어긋나는 것이 아닙니까?”
“무심이 도이면 마음이 없어질 때 도도 없어지는 것이니, 마음과 도가 하나와 같기 때문에 무심이 도라 하였고, 몸과 마음이 본래 도라 함은 도도 본래 몸과 마음이니, 몸과 마음이 본래 공했으므로 도 역시 근원을 궁구하면 있지 않은 것이오.”
“선사의 몸을 보건대 몹시 왜소한 데도 이런 이치를 아시는군요.”
“대덕大德은 다만 나의 모습만을 볼 뿐 나의 모습 없음은 보지 못하는구려. 모습을 보는 것은 대덕의 소견일 뿐이오. 경에 말하기를 ‘무릇 모습이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니, 만일 모든 모습이 모습 아닌 줄을 보면, 즉시 그 도를 깨닫는다’고 하였으니, 만약 모습을 진실이라 여긴다면 겁이 다하더라도 도를 깨닫지는 못할 것이오.”
“이제 바라건대, 선사께서는 모습 위에서 모습 없음을 설해 주십시오.”
“정명경淨名經에 말하기를 ‘4대大에 주재자가 없고, 몸 또한 나[我]도 없고 내 것[我所]이라는 소견도 없어야 도와 더불어 상응한다’고 하였는데, 대덕이 만일 4대에 주재자가 있다고 여기면 이는 내가 있음이요, 만일 나라는 소견이 있으면 겁이 다하여도 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오.”
원 선사가 이 말을 듣고 어쩔 줄을 모르면서 미적미적 자리를 피하니, 선사가 게송을 말해 주었다.
4대에 주재자가 없으니 마치 물과 같아서
곧은 것을 만나든 굽은 것을 만나든 피차彼此가 없고
더럽고 깨끗함이라는 두 마음을 내지 않으니
어찌 막히고 트인다는 두 가지 뜻이 있었겠는가.
경계에 닿아서 그저 물같이 무심하기만 하면
세상을 아무리 종횡한들 무슨 일이 있으랴.
四大無主復如水 遇曲逢直無彼此
淨穢兩處不生心 壅決何曾有二意
觸境但似水無心 在世縱橫有何事
다시 말했다.
“4대 가운데 어느 하나가 그러면 나머지 4대도 그러하니, 만약 4대에 주재자가 없음을 밝히면 곧 무심을 깨닫고, 만약 무심을 요달하면 자연히 도에 계합할 것이오.”
또 지명志明 선사라는 이가 물었다.
“만일 무심이 도라 하면, 기왓장이나 자갈도 무심이니 도이어야 합니다. 만일 몸과 마음이 본래 도라면, 4생生․10류類도 모두 몸과 마음이 있으니 역시 도이어야 합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대덕이 만일 보고 듣고 깨닫고 안다는 견해를 지으면 도와는 아주 멀어지나니, 즉 보고 듣고 깨닫고 알기를 구하는 자는 도를 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경에 말하기를 ‘눈ㆍ귀ㆍ코ㆍ혀ㆍ몸․뜻이 없다’고 하였으니, 여섯 감관[六根]도 없거늘 보고 듣고 깨닫고 앎이 무엇을 의지하여 이루어지겠습니까? 이처럼 근본을 추궁하면 본래 있는 것이 않으니 어느 곳에 마음을 간직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초목이나 기왓장, 자갈과 같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명이 말이 막혀서 물러갔다. 선사는 또 게송을 말했다.
보고 듣고 깨닫고 앎에 장애가 없고
소리ㆍ향기ㆍ맛ㆍ감촉이 항상 삼매라
마치 새가 허공 속에서 다만 저렇게 날듯이
취할 것ㆍ버릴 것과 미움도 고움도 모두 없네.
감응하는 곳마다 본래 무심임을 이해하면
비로소 관자재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見聞覺知無障礙 聲香味觸常三昧
如鳥空中只麽飛 無取無捨無憎愛
若會應處本無心 始得名爲觀自在
또 진眞 선사라는 이가 물었다.
“도가 이미 무심이라면 부처는 마음이 있습니까? 부처와 도는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오.”
“부처가 중생을 제도하는 것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요, 도가 사람을 제도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오. 하나는 제도하고 하나는 제도하지 못하니, 어찌 둘이 없다 하리오?”
“만일 부처는 중생을 제도하는데 도는 중생을 제도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이는 대덕께서 허망하게 두 가지 소견을 내었을 뿐입니다. 저로서는 그렇게 여기지 않나니, 부처도 헛된 이름이고 도 역시 허망하게 세워진 것이니, 두 가지가 다 실답지 않아서 모두 거짓 이름일 뿐입니다. 하나의 거짓 가운데서 어떻게 둘을 나누겠습니까?”
“부처와 도가 종래로 거짓 이름이라고는 하나, 이름을 세울 때에는 누가 세웠겠소? 만약 세운 자가 있다면 어찌 없다고 하겠소?”
“부처와 도는 마음을 인하여 세워진 것인데, 세운 마음을 추궁하면 그 마음도 없습니다. 마음이 이미 없다면 둘 다 모두 진실하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요, 마치 꿈 같고 허깨비 같음을 알았다면 곧 본래의 공[本空]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나 억지로 부처와 도의 두 이름을 세웠나니, 이는 2승 사람의 견해일 따름입니다.”
선사는 이어서 닦을 것도 없고 지을 것도 없음을 게송으로 말하였다.
도를 본다면 닦는다고 하겠지만
보이지 않거늘 다시 무엇을 닦으랴.
도의 성품은 마치 허공과 같으니
허공을 어떻게 닦으랴.
見道方修道 不見復何修
道性如虛空 虛空何所修
수도하는 이를 두루 보건대
불을 헤치면서 거품을 찾는구나.
다만 꼭두각시 놀리는 것만을 볼지니
선이 끊어지면 일시에 쉬어 버리리.
遍觀修道者 撥火覓浮漚
但看弄傀儡 線斷一時休
또 법공法空 선사라는 이가 물었다.
“부처와 도가 둘 다 거짓 이름이면, 12분교分敎도 마땅히 진실하지 않을 것인데, 어찌하여 예전부터의 존숙尊宿들은 모두 도를 닦는 것을 말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대덕이 경전의 뜻을 잘못 이해했소. 도는 본래 닦을 것이 없거늘 대덕은 억지로 닦고, 도는 본래 지을 것이 없거늘 대덕은 억지로 짓고, 도는 본래 일이 없거늘 대덕은 억지로 많은 일을 내고, 도는 본래 앎이 없거늘 그 가운데서 억지로 앎을 내나니, 이러한 견해들은 도와 더불어 서로 어긋나는 것이오. 예전의 존숙들은 마땅히 그렇지 않았는데, 다만 대덕이 잘못 알았을 뿐이오. 잘 생각해 보시오.”
선사는 또 게송을 말했다.
도의 본체는 본래 닦을 것 없나니
닦지 않아도 저절로 도에 합하네.
만약 도를 닦는 마음을 일으키면
이 사람은 도를 이해하지 못하리라.
道體本無修 不修自合道
若起修道心 此人不會道
하나의 참 성품[眞性]을 버리고
도리어 시끄러움에 드는 것이니
홀연히 수도하는 사람을 만나거든
무엇보다도 도를 향하지 말라고 하라.
棄却一眞性 却入鬧浩浩
忽逢修道人 第一莫向道
또 안安 선사라는 이가 물었다.
“도가 이미 거짓 이름이라면 부처란 말도 허망하게 세운 것이고, 12분교도 사물을 제접[接]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으로서 일체가 허망한 것이 되니, 무엇을 참[眞]으로 삼겠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허망함이 있기 때문에 참을 가지고 허망함을 대치한 것이지만, 허망함의 본성을 추궁하건대 본래 공하니, 참인들 어찌 연고가 있겠소? 그러므로 참과 허망은 모두 거짓 이름이니, 두 가지 일을 대치하건대 도무지 실체가 없고, 근본을 추궁하건대 일체가 모두 공할 뿐이오.”
“이미 일체가 허망하다고 말했다면 허망함도 참과 똑같아서 참과 허망함이 다르지 않으리니, 그것을 어떤 물건이라 합니까?”
“만일 어떤 물건이라고 말하면 어떤 물건 또한 허망할 뿐이오. 경에 말하기를 ‘닮은 것도 없고 견줄 수도 없으니,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새가 허공을 나는 것 같다’고 하였소.”
안 선사는 부끄러워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선사가 또 게송을 말했다.
참을 추궁하니 참은 모습이 없고
허망을 추궁하니 허망은 형상이 없네.
추궁하는 마음을 돌이켜 관찰하면
마음도 거짓 이름임을 알게 되리라.
도를 이해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
이르는 곳마다 다만 편안할 뿐이네.
推眞眞無相 窮妄妄無形
返觀推窮心 知心亦假名
會道亦如此 到頭亦只寧
또 달성達性 선사라는 이가 물었다.
“선禪은 지극히 묘하고 지극히 은미隱微해서 참과 허망이 쌍으로 소멸하고, 부처와 도가 둘 다 멸진하며, 수행의 성품이 공하고 이름과 형상이 진실하지 않으며, 세계가 허깨비 같아서 일체가 거짓 이름이라 하는데, 이런 견해를 지을 때라도 중생의 선과 악이라는 두 근본은 끊을 수 없습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선과 악의 두 근본은 모두 마음을 인하여 있을 뿐이오. 마음을 추궁해서 있는 것이라면 근본도 허망하지 않겠지만, 마음을 추궁해서 이미 없다면 근본이 무엇을 인하여 성립하겠소? 경에 말하기를 ‘선한 법과 선하지 않은 법이 마음으로부터 화하여 생긴다’고 하였으니, 선과 악의 업연業緣은 본래 실다움이 있는 것은 아니라오.”
선사가 다시 게송을 말했다.
선善이 이미 마음에서 생겼다면
악惡인들 어찌 마음을 여의고 있으랴.
선과 악은 밖의 인연일 뿐
마음에 실제로 있는 것은 아니네.
善旣從心生 惡豈離心有
善惡是外緣 於心實不有
악을 버린들 어디로 보낼 것이며
선을 취한들 누구에게 지키게 하랴.
애달프다. 두 소견을 가진 사람은
양쪽을 반연하느라 분주하구나.
만약 본래부터 무심인 줄 깨닫는다면
비로소 예전부터의 잘못을 뉘우치리라.
捨惡送何處 取善令誰守
傷嗟二見人 攀緣兩頭走
若悟本無心 始悔從前咎
또 어떤 임금의 측근 신하가 물었다.
“이 몸은 어디서 왔다가 백 년 뒤에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가령 사람이 꿈을 꿀 때에는 그 꿈이 어디서 왔다가 잠깬 뒤에는 어디로 갑니까?”
“꿈을 꿀 때는 없다고 할 수 없고, 깬 뒤에는 있다고 할 수 없으니, 비록 있고 없음이 있으나 가고 오는 바는 없습니다.”
“나[貧道]의 이 몸도 바로 그 꿈과 같습니다.”
또 게송을 말했다.
삶[生]을 꿈속처럼 보나니
꿈속에서는 진실로 어지럽다가
홀연히 깨고 보면 만사萬事를 쉬어서
도리어 잠들었던 때를 깨닫는 것과 같네.
視生如在夢 夢裏實是鬧
忽覺萬事休 還同睡時悟
지혜로운 이는 꿈을 깨는 것을 알지만
미혹한 이는 꿈속의 소란함을 믿나니
꿈이 두 가닥[兩般] 깨달았다 미혹했다 하는 것을 말한다.
과 같은 줄 알면
한 번 깨달음에 별다른 깨달음은 없네.
부귀와 빈천도
또한 다른 길이 아니로다.
智者會悟夢 迷人信夢鬧
會夢如兩般 一悟無別悟
富貴與貧賤 更亦無別路
상원上元 2년 5월 5일에 열반에 드니, 대효大曉 선사라 시호를 내렸다.
무주婺州 현책玄策 선사
그는 무주의 금화金華 사람이다.
출가하여 온갖 곳을 다니다가 하삭河朔에 이르니, 지황智隍 선사라는 이가 일찍이 황매산黃梅山의 5조(홍인)를 뵙고 20년 동안 암자에 살면서 스스로 선정에 든다[正受]고 여기고 있었다. 대사(현책)는 지황 선사의 얻은 바가 아직 참되지 못함을 알고는, 그에게 가서 물었다.
“그대는 여기 앉아서 무엇을 하는 것이오?”
지황이 대답했다.
“선정에 듭니다.”
“그대가 선정에 든다고 말하니, 마음이 있는 것이오, 마음이 없는 것이오? 만약 마음이 있다면 온갖 꿈틀거리는 종류가 모두 선정을 얻어야 할 것이요, 만약 마음이 없다면 온갖 초목의 종류들도 또한 선정을 얻어야 할 것이오.”
“내가 선정에 바로 들어갈 때에는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마음을 보지 못합니다.”
“이미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마음을 보지 못한다면 바로 항상한 선정이니, 어찌 들어가고 나감이 있겠소? 만약 들어가고 나감이 있다면 큰 선정[大定]이 아닐 것이오.”
지황이 말없이 한참 있다가 누구를 스승으로 섬겼느냐고 물으니, 선사가 대답했다.
“나의 스승은 조계의 6조라오.”
지황이 물었다.
“6조는 무엇으로 선정을 삼습니까?”
“우리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묘하고 맑고 원만하고 적멸해서 본체와 작용이 여여如如하고, 5음陰이 본래 공하고 6진塵이 있는 것이 아니니, 나가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않으며 정해지지도 않고 어지럽지도 않다. 선禪의 성품은 머무름이 없고, 머무름을 여의면 선의 적멸이다. 선의 성품은 생겨남이 없고, 생겨남을 여의면 선의 상想이다. 마음은 허공과 같지만, 또한 허공의 양量도 없다’고 하셨소.”
지황이 이 말을 듣고서도 끝내 의문이 쉬지를 않자, 마침내 조계에 가서 의심을 풀어달라고 청하였다. 그리하여 조사의 뜻과 선사의 뜻이 그윽이 부합하면서 지황이 비로소 깨달았다.
선사는 그 뒤에 금화로 돌아가서 법석法席을 크게 열었다.
조계曹谿 영도令韜 선사
그는 길주吉州 사람으로서 성은 장張씨이다. 6조에 의해 출가하였는데,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시봉을 하였다. 조사가 열반에 든 뒤에 옷과 탑을 맡은 주인이 되었다.
당의 개원開元 4년에 현종玄宗이 그의 덕풍德風을 듣고 대궐로 불렀으나, 선사는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상원上元 원년에 숙종肅宗이 사자를 시켜 법을 전한 옷을 대궐로 들여다 공양하려고 하면서 대사(영도)도 함께 대궐로 들라 하였는데, 역시 병을 핑계로 사양하였다. 조계산에서 생애를 마쳤으니, 수명은 95세이고, 시호는 대효大曉 선사라 하였다.
서경西京 광택사光宅寺 혜충慧忠 선사
그는 월주越州의 저기諸曁 사람으로서 성은 염冉씨이다. 심인心印을 받고 나서 남양南陽 백애산白崖山의 당자곡黨子谷에 살기 시작하여 40여 년을 산에서 내려가지 않으니 덕행이 대궐까지 퍼졌다.
당나라 숙종肅宗 상원上元 2년에 중사中使인 손조진孫朝進에게 칙령을 내려서 서울로 맞아들여 스승의 예로써 대우하니, 처음에는 천복사千福寺의 서선원西禪院에 머물다. 그 후 대종代宗이 즉위하자 다시 광택사光宅寺로 맞이하니, 16년 동안 중생의 근기를 따라서 설법하였다.
당시 서천西天의 대이大耳 삼장三藏이란 이가 수도에 왔는데 타심통他心通의 혜안慧眼을 얻었다고 하였다. 황제가 국사로 하여금 시험케 했는데, 삼장이 국사를 보자 얼른 절을 하고 오른쪽 옆에 섰다. 국사가 물었다.
“그대가 타심통을 얻었는가?”
삼장이 대답했다.
“외람됩니다.”
“그대의 도(타심통)로 볼 때 지금 노승(老僧:나)이 어디에 있다고 말하겠는가?”
“화상은 한 나라의 스승인데, 어찌하여 서천西川에 가서 경도(競渡:뱃놀이, 배로 하는 경주)놀이를 구경하십니까?”
그러자 국사가 재차 물었다.
“그러면 그대의 도로 볼 때 노승老僧은 지금은 어디에 있다고 말하겠는가?”
“화상은 한 나라의 스승인데, 어찌하여 천진교天津橋 위에서 원숭이 놀리는 것을 구경하십니까?”
국사가 세 번째도 위와 같이 물었는데, 삼장이 한참 동안 어쩔 줄 몰라 하자, 국사가 꾸짖었다.
“이 들여우 귀신같은 놈아, 타심통이 어디에 있느냐?”
삼장이 아무 대답도 못했다.[어떤 스님이 앙산仰山에게 묻기를 “대이大耳 삼장이 세 번째는 왜 국사를 보지 못했는가?”라고 하니, 앙산이 대답하기를 “앞의 두 차례는 경계에 끄달린 마음이요, 나중에는 자수용삼매自受用三昧에 들었다. 그러므로 보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이 앞의 이야기를 현사玄沙에게 물으니, 현사가 대답하기를 “그대는 앞의 두 차례에 국사를 보았다고 여기는가?”라고 하였고, 현각玄覺은 말하기를 “앞의 두 차례에 보았다면 뒤에는 왜 보지 못했는가? 그렇다면 이해利害가 어디에 걸려 있는가?”라고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에게 묻기를 “대이大耳 삼장이 세 번째에는 국사를 보지 못했다 하니 국사는 어디에 계셨습니까?”라고 하니, 조주가 대답하기를 “삼장의 코끝에 있었다”라고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이 현사에게 묻기를 “코끝에 있었다면 왜 보지 못했습니까?”라고 하니, 현사가 대답하기를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하루는 시자侍者를 부르자, 시자가 대답하였다. 이렇게 세 번 불렀는데 세 번 모두 대답하자, 국사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를 배신[孤負]한다고 여겼는데, 도리어 네가 나를 배신하는구나.”[스님이 현사玄沙에게 묻기를 “국사가 시자를 부르는 뜻이 무엇일까요?”라고 하니, 현사가 대답하기를 “그는 시자가 알 것이다”라고 하였다. 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시자가 알았겠는가? 못 알았겠는가? 알았다 하려 하나 국사가 말하기를 ‘네가 나를 배신한다’라고 했고, 몰랐다 하려 하나 현사가 말하기를 ‘시자가 안다’라고 하였으니, 어떻게 따져야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또 현각玄覺 징徵이 어떤 스님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시자가 알아들은 것이겠는가?”라고 하니, 그 스님이 대답하기를 “알지 못했다면 어찌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그러자 현각이 다시 말하기를 “그대는 알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만일 이 즈음에서 잘 헤아리면 현사玄沙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이 법안法眼에게 묻기를 “국사가 시자를 부른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하니, 법안이 대답하기를 “가 있다가 다음 날 오라”고 하였다. 운거 석이 말하기를 “법안이 그렇게 말한 것이 국사의 뜻을 밝힌 것인가, 밝히지 못한 것인가?”라고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묻기를 “국사가 시자를 부른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하니, 조주가 대답하기를 “어떤 사람이 어둠 속에서 글씨를 쓰면 글자는 이루어지지 않으나 글 자국<文彩>은 이미 이루어진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남전南泉이 와서 뵙자, 국사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남전이 대답했다.
“강서江西에서 왔습니다.”
“마조馬祖의 진면목을 얻어 왔겠지?”
“다만 이것일 뿐입니다.”
“네 배후를 드러내어라.”
남전이 문득 그만두었다.[장경長慶 능稜이 말하기를 “아마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라고 하였다. 보복保福 전展이 말하기를 “하마터면 화상이 이 근처에 이르지 못할 뻔했다고 했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운거 석이 말하기를 “이 두 존자가 모두 등 뒤를 붙들었는데 남전이 그만둔 것은 앞을 붙든 것인가, 뒤를 붙든 것인가?”라고 하였다.]
마곡麻谷이 와서 뵙고는 선상禪床을 세 번 돈 뒤에 국사 앞에 석장錫杖을 구르며 서 있자, 국사가 말했다.
“이미 그렇다면, 무엇 하러 다시 나를 볼 필요가 있겠는가?”
마곡이 다시 석장을 구르자, 국사가 꾸짖었다.
“이 들여우 귀신 같은 놈아, 썩 물러가라.”
국사는 늘 대중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선종을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부처님 말씀 가운데 1승의 요의법了義法을 따라서 자기 마음의 근원에 계합해야 한다. 불요의법不了義法을 배우는 자는 서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마치 사자 몸속의 기생충과 같다. 무릇 남의 스승 된 자가 명리名利에 간섭하거나 따로 이단異端의 소견을 내면, 자기와 남에게 무슨 이익을 주겠는가? 마치 세간의 위대한 장인匠人의 연장은 주인의 손을 다치게 하지 않고, 큰 코끼리가 짊어진 것은 노새로서는 감당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어떤 스님이 와서 물었다.
“어찌하여야 부처가 되겠습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부처와 중생을 일시에 놓아 버리면, 그 당처當處가 해탈이다.”
“어찌해야 상응을 하겠습니까?”
“선과 악을 생각하지 않으면 저절로 불성佛性을 보게 되리라.”
“어찌하여야 법신法身을 증득하겠습니까?”
“비로자나불의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
“청정법신淸淨法身은 어찌하여야 얻습니까?”
“부처를 구하는 데 집착하지 않을 뿐이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마음 그대로가 부처니라.”
“마음에 번뇌가 있습니까?”
“번뇌의 성품은 저절로 여의느니라.”
“그렇다면 어찌하여 끊지 못합니까?”
“번뇌를 끊으면 2승이라 하고, 번뇌가 생겨나지 않으면 위대한 열반이라 하느니라.”
“좌선하면서 고요함을 관찰하는 일은 또한 어떻습니까?”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거늘, 어찌 억지로 마음을 일으켜서 청정한 모습[淨相]을 관찰할 필요가 있겠는가?”
“선사께서는 시방 허공이 법신이라고 보고 계십니까?”
“상념想念의 마음으로 취하면 이는 뒤바뀐 소견이니라.”
“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라면 무엇 하러 다시 만행萬行을 닦습니까?”
“여러 성인들은 모두가 두 가지 장엄[二嚴:福․慧]을 갖추셨는데, 그대는 어찌 인과가 없다고 배척하는가? 또 내가 이제 그대의 말에 대답을 하자면 겁이 다해도 끝이 없으니, 말이 많으면 도道와는 멀어진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법을 설함에 얻는 바가 있으면 이는 여우의 울음이요, 법을 설함에 얻는 바가 없으면 이는 사자의 울부짖음이라’ 하느니라.”
남양南陽의 장분張濆이라는 행자가 와서 물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건대, 화상께서는 무정설법無情說法을 하신다고 하는데, 저는 그 일을 아직 체득하지 못했습니다. 바라옵건대 화상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가르쳐 주십시오.”
국사가 대답했다.
“그대가 무정설법을 물으려면 다른 무정無情을 이해해야만 비로소 나의 설법을 들을 수 있으리니, 그대는 다만 무정설법을 들어 두기만 하라.”
“단지 지금과 같은 유정有情의 방편 중에서 잡는다면, 어떤 것이 무정의 인연입니까?”
“지금과 같은 일체의 움직임과 작용 속에서 범부와 성인의 두 무리가 도무지 약간이라도 일어나거나 멸함이 없는 것이니, 문득 의식을 벗어나는 것이며 유有와 무無에 속하지 않는 것이어서, 비록 치성하게 보고 지각하고 단지 듣지만, 그 정식情識의 얽매임이나 집착은 없다. 그러므로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섯 감관이 경계를 대하여 분별하는 것은 식識이 아니다’라고 하신 것이다.”
어떤 스님이 와서 뵙고 절을 하자, 국사가 물었다.
“무슨 업을 쌓았는가?”
“금강경을 강의하였습니다.”
“맨 처음의 두 글자가 무엇이던가?”
“여시如是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어떤 것이 해탈입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모든 법이 서로 이르지 못하는 그 당처當處가 해탈이니라.”
“그렇다면 아주 끊어 버린[斷] 것입니까?”
“그대에게 말하기를 ‘모든 법이 서로 이르지 못하는 곳’이라 하였거늘, 무엇을 끊는다는 말인가?”
국사가 어떤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손으로 원상圓相을 그리고, 원상 안에다 일日자를 써 보였는데, 그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국사가 본정本淨 선사에게 물었다.
“그대가 이다음에 기특한 말을 보면 어찌하겠는가?”
본정이 대답했다.
“일념一念의 애착도 없을 것입니다.”
“이는 그대의 집안일이다.”
숙종이 물었다.
“국사는 어떤 법을 얻었소?”
국사가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허공의 한 조각구름을 보셨습니까?”
황제가 말했다.
“보았소.”
국사가 말했다.
“소복소복하게 매달렸나이다.”
또 물었다.
“어떤 것이 10신身의 조어사(調御師:부처님)란 말이오?”
국사가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아시겠습니까?”
“알지 못하겠소.”
“노승의 물병이나 갖다 주십시오.”
또 물었다.
“어떤 것이 무쟁삼매無諍三昧란 말이오?”
“단월檀越 여기서는 황제를 가리킨다.
께서 비로자나의 정수리를 밟고 걸으십시오.”
“그 뜻이 무엇이오?”
“자기가 청정법신을 짓는다고 인식하지 마십시오.”
또 국사에게 물었는데 국사가 전혀 돌아보지 않자, 황제가 말했다.
“짐은 당나라의 천자이거늘, 국사는 어찌하여 전혀 돌아보지 않는가?”
“황제께서는 허공을 보았습니까?”
“보았소.”
“그가 눈을 찡그리고 폐하를 보던가요?”
어군용魚軍容이 물었다.
“스님께서 백애산白崖山에 계실 때에 하루 종일 어떻게 수행하셨습니까?”
국사가 동자童子를 불러 놓고 그의 정수리를 만지면서 말했다.
“또랑또랑[惺惺]할지니, 다만 또랑또랑해라. 역력歷歷할지니, 다만 역력하라. 그리고 나서는 남의 속임을 당하지 말라.”
국사가 자린紫璘 공봉供奉과 토론할 때에 국사가 자리에 오르자, 공봉이 물었다.
“스님께서 뜻[義]을 세우십시오. 제가 타파하겠습니다.”
국사가 말했다.
“뜻을 다 세웠다.”
“어떤 뜻입니까?”
“과연 보지 못하는군. 그대의 경계가 아닐세.”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내려왔다.
하루는 자린 공봉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슨 뜻인가?”
“깨달음[覺]이란 뜻입니다.”
“부처님이 미혹한 적이 있는가?”
“미혹했던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깨달아서 무엇 하겠는가?”
공봉이 대답이 없었다.
공봉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실상實相입니까?”
“텅 빔을 잡아오너라.”
“텅 빔은 얻을 수 없습니다.”
“텅 빔도 얻을 수 없다면서 실상은 물어서 무엇을 하려는가?”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문수당文殊堂 안의 만 명의 보살이니라.”
“학인學人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대비大悲보살은 눈과 손이 천 개이니라.”
탐원耽源이 물었다.
“입멸하신 뒤에[百年後] 어떤 사람이 극칙極則의 일을 물으면 어찌하겠습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이 딱한 사람아, 호신부자(護身符子:생명을 보호하는 부적)를 구해서 무엇 하랴?”
국사는 교화할 인연이 다해서 열반에 들 때가 왔음을 깨닫고 대종大宗에게 하직을 아뢰니, 대종이 말했다.
“국사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제자는 무엇을 기억해 두어야 하겠소?”
국사가 대답했다.
“단월에게 고하나니, 하나의 무봉탑無縫塔을 세우십시오.”
“스승께서 탑의 모양을 떠주시기 바랍니다.”
국사가 묵묵히 있다가 말했다.
“알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
“내가 떠난 뒤에 응진應眞이라는 시자가 도리어 이 일을 알리라.”
대력大歷 10년 12월 9일에 오른쪽 겨드랑이로 누워서 영원히 떠나니, 제자들이 당자곡黨子谷 안에 탑을 세우고 영구를 모셨는데, 황제는 대증大證 선사라는 시호를 내렸다.
나중에 대종이 응진을 궐내로 불러들여서 앞서 있었던 일을 물으니, 응진이 묵묵히 있다가 말했다.
“황제께서는 아시겠습니까?”
“모르겠소.”
응진이 게송을 말했다.
상수湘水의 남쪽이요, 담수潭水의 북쪽이니
그 가운데 황금이 가득한 나라가 있네.
그림자 없는 나무 밑에 같은 배를 탔지만
유리전琉璃殿에는 아는 이가 없다네.
湘之南 潭之北 中有黃金充一國
無影樹下合同船 瑠璃殿上無知識
응진은 나중에 탐원산耽源山에서 살았다.
서경西京 하택荷澤 신회神會 선사
그는 양양襄陽 사람으로서 성은 고高씨이다. 14세에 사미沙彌가 되어서 6조를 뵈었는데, 조사가 물었다.
“지식(知識:상대를 가리킴)이 멀리서 오느라고 몹시 수고했는데, 근본[本]을 가지고 왔느냐? 근본을 가지고 있다면 마땅히 주인을 알 것이니, 한번 말해 보아라.”
대사가 대답했다.
“머무름 없음[無住]을 근본으로 삼고, 봄[見]이 곧 주인입니다.”
조사가 말했다.
“이 사미가 어찌 다음 말[次語]을 알아들을 수 있으랴.”
그리고는 갑자기 주장자로 때렸는데, 대사는 주장자를 맞으면서 생각했다.
‘큰 선지식은 여러 겁을 지나도 만나기 어려운데, 이제 만났으니 어찌 몸과 목숨을 아끼랴?’
이때부터 시봉을 하였는데, 어느 날 조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으며,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으며, 얼굴도 없고 등[背]도 없으니, 여러분은 아시겠는가?”
대사가 나서면서 말했다.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자 신회神會의 불성佛性이겠습니다.”
“그대들에게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고 했는데, 그대는 문득 근원이요 불성이라고 하는구나.”
대사는 절을 하고 물러갔다. 대사는 이윽고 서경西京으로 가서 계를 받고, 당의 경룡景龍 때에 다시 조계로 돌아왔다.
조사가 열반에 든 뒤로 20년 동안 조계의 돈지(頓旨:頓悟의 敎理)는 형오荊吳 지방에서 침체되고, 숭악嵩嶽의 점문(漸門:漸修의 敎理)만이 진락秦洛 지방에서 성행하였는데, 이 무렵에 서울로 들어갔다. 천보天寶 4년에 두 종파[남종은 혜능의 돈종頓宗이고, 북종은 신수의 점교漸敎이다.]의 교리를 확정하여 현종기顯宗記를 저술했는데, 그것이 세상에 널리 퍼졌다.
하루는 고향에서 부모가 별세했다는 소식이 왔는데, 대사는 법당에 올라가서 종을 치고 외쳤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으니, 대중 스님들이여, 마하반야경摩訶般若經을 읽어 주십시오.”
대중이 겨우 모이자, 대사가 다시 종을 치며 말했다.
“대중 스님들이여,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국사는 상원上元 원년 5월 13일 밤중에 엄숙히 열반에 드니, 세속 수명은 75세였다. 상원 2년에 낙경洛京 용문龍門에다 탑을 옮기니, 탑 곁에다 보응사寶應寺를 지으라는 조칙이 내렸고, 대력大歷 5년에는 진종반야전법지당眞宗般若傳法之堂이라는 호가 하사되었고, 7년에는 또 반야般若 대사라는 탑호가 내려졌다.
어떤 스님이 와륜臥輪 선사의 게송을 소개하였다.
와륜은 기량이 있어서
온갖 사량과 상념을 끊을 수 있고
경계를 대해서도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니
보리菩提가 나날이 자라네.
臥輪有伎倆 能斷百思想
對境心不起 菩提日日長
6조 대사가 이를 듣고 말했다.
“이 게송은 아직 심지心地를 밝히지 못했다. 만일 이에 의해 수행하면, 얽매임만 더할 뿐이로다.”
그리고는 한 게송을 보였다.
혜능은 기량이 전혀 없어서
온갖 사량과 상념을 끊지 않고
경계를 대해서도 마음을 자주 일으키니
보리인들 어찌 자라겠는가.
慧能沒伎倆 不斷百思想
對境心數起 菩提作麽長
[이 두 게송은 제방諸方에서 많이 이야기하기 때문에 권의 끝에다 붙인다. 와륜臥輪은 이름이 아니고 살던 장소이다.]